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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로스터 N과 토요타 86, 50대 중산층 남자의 현실적 로망

나윤석 입력 2019.01.12 09:33 수정 2019.01.12 09:3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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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로스터 N vs 토요타 86, 여러분의 선택은?
현대차 벨로스터 N

[나윤석의 독차(讀車)법] 이제는 아이들이 다 컸습니다. 가족들이 한 차로 이동할 일도 별로 많지 않습니다. 온 가족이 타야 한다면 아내의 허름한 준중형 세단으로도 대개의 경우는 충분합니다. 그리고 아주 가끔 장거리 여행을 간다면 기차나 비행기와 연계한 렌터카 또는 카 쉐어링이면 됩니다. 굳이 자주 사용하지 않는 큰 차를 갖고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꿈을 꿉니다. 50대 초반인 제가 더 늦기 전에 재미있는 차를 갖고 싶다는 꿈입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아주 넉넉한 편은 아니니 고가의 스포츠카나 스포츠 세단은 무리입니다. 예산과 유지비를 고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후보는 단연 현대 벨로스터 N입니다. 벨로스터 N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3천만원 내외의 예산으로 이 정도 성능을 보여주는 새 차를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엊그제 벨로스터 N을 다시 타면서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푸트레스트를 꽉 누르느라 왼쪽 다리에 근육통이 심했지만 그래도 아주 즐거웠습니다.

현대차 벨로스터 N

엔진이 보여주는 성능도 뛰어나지만 정말로 놀라게 만드는 것은 새시의 완성도입니다. 벨로스터 N은 피렐리 P 제로나 미쉐린 파일럿 스포츠 4와 같은 고성능 타이어를 기본 장착하는데 이 타이어의 성능을 끝까지 꺼내서 사용할 수 있는 새시의 성능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어지간한 상황에서도 꿈쩍하지 않는 접지력도 좋고 운전자가 살짝 실수를 하더라도 신경질을 부리지 않고 수습해 주는 예측하기 쉬운 한계 특성이 믿음직합니다. 즉, 빠르게 달리기가 참 쉬운 녀석이라는 뜻입니다. 요철이 많은 노면에서도 좀처럼 타이어가 접지력을 잃지 않는 전자제어 서스펜션의 질감 좋은 세팅은 승차감까지도 꽤 좋습니다. 잃어버리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숫자로 쉽고 볼 수 있고 광고용으로 사용하기에 좋은 엔진 성능에는 상대적으로 투자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시쳇말로 엔지니어들을 갈아 넣어야 한다는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조종 성능의 향상에 이만큼 공을 들인 현대차가 있었나 싶습니다. 그래서 벨로스터 N은 그동안 가성비에 주로 관심을 가졌던 현대차가 드디어 무형의 요소에도 관심을 갖는구나 하는 회사의 진화를 느낄 수 있어서 더욱 반가웠던 겁니다.

그리고 국산차인 만큼 가성비는 여전히 대단합니다. 특히 196만원짜리 퍼포먼스 패키지는 끝판왕입니다. 25마력의 출력, eLSD, 고성능 브레이크 시스템, 스포츠 배기, 고성능 타이어와 19인치 훨 등을 어떻게 200만원 이하의 가격으로 가질 수 있는지 잘 계산이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기본 옵션으로 열선 스티어링 휠까지 포함되어 있고 운전석 파워 및 통풍 시트도 59만원이면 가질 수 있습니다. 8인치 내비게이션과 JBL 사운드 시스템도 1백만원에서 2만원 빠지는 가격으로 가질 수 있습니다. 일반 현대차나 벨로스터에 비하여 가질 수 없는 것은 스마트 센스 주행 보조 패키지 뿐입니다. 이것은 하드코어 스포츠 모델의 성격에도 걸맞은 설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차 벨로스터 N

하지만 벨로스터 N을 여러 번, 오랫동안 시승하면서 문뜩 발견한 것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미칠 것 같았던 쾌감의 미터가 의외로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해하지 마십시오. 차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저보다 훨씬 잘하는 레브 매칭처럼 차의 모든 부분은 완벽하게 제 임무를 하고 있고 그 조화의 수준은 대단히 높습니다. 그런데 딱 하나가 – 어쩌면 욕심일지도 모르는 것 하나가 – 있었습니다.

벨로스터 N은 이미 완벽한 패키지였습니다. 타이어 하나만 잘못 바꿨다가는 균형이 완전히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이 할 정도로 치밀하게 짜인 구성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 보니 드라이버인 제가 개입할 여지가 많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아주 쉽게 빠르게 달릴 수는 있는데 내 스타일을 덧입히는 펀 드라이빙의 요소가 아쉬웠던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제 나이를 이야기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나이 또래는 ESC는 커녕 ABS도 없는 차로 운전을 배웠던 세대입니다. 그러니까 완전히 날것을 오로지 자신의 책임 하에 다스려야 하는 위험 – 반대로는 쾌감 – 을 감수 혹은 만끽했던 세대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요즘 젊은 세대와는 조금 다른 성취감에 대한 자부심이 더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토요타 86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음속으로 등장하는 새로운 후보가 있습니다. 바로 토요타 86입니다. 86은 어떻게 보면 벨로스터 N과 정반대입니다. 엔진의 출력도 한참 부족하고 전자제어 서스펜션, 레브 매칭과 같은 도우미도 없습니다. 편의 옵션이라고는 열선 시트와 오토 에어컨, 스마트 키 정도가 끝이고 더 선택할 수도 없습니다. 게다가 가격은 벨로스터 N보다 1천만원 이상 비쌉니다. 부품값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펙만 보면 가성비가 한참 떨어지는 셈입니다.

하지만 86은 수평 대향 엔진의 낮은 무게 중심, 재래식이지만 대단히 질감이 우수한 서스펜션, 7500rpm까지 돌릴 수 있는 엔진 등 기본기에 충실합니다. 달리기에 도움을 주는 추가 장비가 있다는 토센 LSD 정도가 전부일 겁니다.

86은 분명 벨로스터 N보다 느립니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드러나는 편차가 엄청납니다. 즉, 내가 책임지고, 반대로 내가 환호할 여지가 더 있다는 뜻입니다.

토요타 86

제 글을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토요타 86이 낫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벨로스터 N과 토요타 86이 말하는 스포츠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세대의 차이일 수도 있고, 스포츠에 투자할 수 있는 여유나 에너지의 차이일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같은 스포츠를 이야기하지만 전혀 다른 뜻을 가진 두 모델이 우리 중산층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랬던 적은 이전에는 없었습니다. 퍽퍽한 요즘 세상에는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선택은 누구인가요?

자동차 칼럼니스트 나윤석

나윤석 칼럼니스트 : 수입차 브랜드에서 제품 기획과 트레이닝, 사업 기획 등 분야에 종사했으며 슈퍼카 브랜드 총괄 임원을 맡기도 했다. 소비자에게는 차를 보는 안목을, 자동차 업계에는 소비자와 소통하는 방법을 일깨우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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