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골프의 심장을 이식한 전기밴, MAN eTGE 시승기

조회수 2019. 4. 17. 06:2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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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는 이미 ‘친숙한 탈것’이 됐다. 점점 높아만 가는 환경에 대한 관심에, 정부는 전기차 보급을 서둘렀고, ‘보조금발’을 노린 많은 브랜드에서 앞다투어 전기차를 내놓았다. 불과 몇 년 사이, 사람들은 “이거 전기차예요?”라고 신기하게 묻는 대신 ‘나도 사볼까?’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SUV의 인기에 쿠페형 SUV가 등장한 것처럼, 전기차의 보급에 ‘전기 상용차’도 나오기 시작했다. 며칠 전 독일에서 만나고 온 eTGE도 한 예다. eTGE는 MAN에서 만드는 밴, TGE를 기본으로 만든 전기 밴이다. 국내에서 전기 승용차는 여럿 타봤지만, 독일에서 전기 밴을 타본 건 처음이었다.


다른 유럽산 밴들도 그렇지만, TGE 역시 다양한 형태와 크기, 파워트레인을 제공한다. 형태는 적재공간이 철판으로 막힌 패널밴을 시작으로, 의자와 창문이 달려 사람을 실어나르는 콤비밴, 1열 운전석 뒤를 사방이 뚫린 트럭으로 꾸민 섀시캡, 섀시캡과 콤비밴의 중간 형태인 크루캡이 있다. 또 형태에 따라 길이와 높이, 엔진, 변속기, 구동방식까지 다양한 조합이 가능하다.


이 중, eTGE는 TGE의 패널밴과 스텐더드 길이(5,986mm, 셋 중 가장 짧다), 하이루프(2,590mm, 셋 중 중간 높이)를 사용했다. 수많은 경우의 수 중 가장 대표적인 기본 구성이다. 지금은 이 구성밖에 없지만 향후 다양한 조합을 추가할 예정이다.


폭스바겐 e-골프

eTGE의 핵심인 전기 파워트레인은 폭스바겐 e-골프에서 빌려왔다. MAN이 폭스바겐과 한 식구이기에 가능한 결과다. TGE도 본래 폭스바겐 크래프터와 쌍둥이 모델이다. 하나의 기술과 부품, 심지어 모델까지 그룹 내 여러 브랜드에 맞춰 어색함 없이 돌려쓰는 게 폭스바겐의 오랜 장기 아니던가.


eTGE는 보닛 아래 136마력, 29.6kgm의 전기모터를 품었다. TGE의 심장으로 쓰이는 네 가지 2리터 디젤 엔진과 견주면, 출력(101~176마력)은 중간, 토크(30.6~41.8kgm)는 아래 즈음에 해당한다.


차체 바닥에는 36kWh 용량의 배터리를 납작하게 깔았다. 모터와 배터리 모두 e-골프와 동일한데 성능은 차이가 크다. e-골프가 유럽기준(NEDC)으로 300km까지 달릴 수 있는 반면, eTGE는 173km를 간다. 최고속도 역시 e-골프의 150km/h에 비하면 eTGE의 90km/h는 한참 낮다.


‘에게?’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차이는 승용차와 상용차의 차이, 사용 환경을 위한 최적화로 이해하는 게 맞다. 전기차의 특성상 고속으로 정속주행 할 때 가장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최고속도를 시속 90km로 묶었다. 더구나 상용차의 특성상 최고속도는 큰 의미가 없다.


eTGE는 조금이라도 멀리 달리기 위해 히팅 시트와 열선 앞 유리도 적용했다. 히팅 시트는 몰라도 열선 앞 유리는 고가 승용차인 재규어, 랜드로버에서나 봤던 장비. 이게 주행거리와 무슨 상관인가 싶을 수 있지만, 전기차라면 얘기가 다르다.


내연기관 차들은 버려지는 엔진 열을 사용해 겨울철 실내 온도를 올리고 앞 유리 성에를 제거하지만, 전기차는 온전히 차가 달리는데 써야 할 배터리를 갉아먹을밖에. 이때, 히터를 돌려 뜨거워진 바람을 승객과 앞 유리에 보내는 것보다, 각각 열선을 심고 개별적으로 온도를 높이는 편이 전기를 덜먹는다는 게 MAN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TGE의 주행거리는 173km다. 짐과 사람을 실으면 실제로는 120-150km 정도를 달릴 수 있다. e-골프나 최신 전기 승용차와 비교하면 아쉽지만, eTGE의 덩치나 무게를 고려하면 납득할 수 있다.


게다가 eTGE가 주로 활동하게 될 환경은 도심에서의 ‘라스트 마일’이다. 라스트 마일은 상품 유통 중 소비자에게 이어지는 마지막 과정을 뜻한다. 앞으로 전 세계 인구의 도심 집중화 현상이 심해질 것으로 보여 미래 운송 산업에서 보다 중요한 개념으로 여겨지는 상황.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도심에서는 회생제동장치의 개입이 활발해 효율도 높다. MAN은 eTGE의 하루 주행거리를 60-80km로 내다봤고, 따라서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단, 유럽의 밴 운전자들은 월급을 받으며 주로 정해진 도심 구간을 왔다 갔다 하지만, 국내는 자기 차로 그날그날 상황에 따라 이곳저곳 온종일 누벼야 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주행거리를 늘이기 위해 더 큰 배터리를 넣으면 되지 않느냐고? 최신 전기 승용차가 보통 60kWh 내외의 용량을 지니고 있으니, eTGE의 36kWh는 다소 작은 게 사실이다.


일단은 e골프에 쓰인 전기 파워트레인을 가져다 변경하는데 제약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상용차의 특성상, 정해진 총중량 안에서 배터리의 무게가 늘면 그만큼 짐을 덜 실을 수밖에 없다. eTGE에 실린 배터리는 약 340kg. 같은 크기의 일반 TGE보다 공차중량이 약 120kg 무거운 이유다.


만약 더 큰 배터리를 얹었다면 eTGE가 확보한 950kg의 적재량은 그만큼 더 줄었을 터다. 시승에 앞서 만난 eTGE 개발 담당자는 2020년 즈음 보다 효율이 향상된 eTGE를 내놓겠다고 밝혔다.


배터리는 적재공간에도 영향을 끼쳤다. eTGE는 앞바퀴를 굴리지만, 적재공간 바닥 높이(상면고)는 뒷바퀴 굴림 TGE와 같다. 전륜구동 TGE와 후륜구동 TGE의 상면고 차이는 10cm. eTGE의 10cm 높아진 상면고는 배터리가 차지하는 공간이다.


설명은 이쯤 듣고, 이제 달려볼 차례. eTGE를 만난 곳은 독일 뮌헨 시내에서 멀지 않은 MAN 테스트 트랙이다. 고저차 없는 단순 원형 코스이며, 도로 폭도 2차선 정도에 불과한 작은 트랙이다.


시동을 아니 전원을 넣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었는데 차가 움직이지 않는다. 자동변속기를 통해 유압으로 힘을 전달하는 일반 내연기관차와 달리, 변속기 없이 모터와 바퀴가 바로 연결된 전기차의 특성 때문이다. 주차 편의성이나 이질감 때문에, 일부 전기차는 메뉴에서 크리핑(creeping, creep: 살금살금 움직이다) 모드를 지원하기도 한다.


가속페달에 발을 얹으니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한다. 처음 달려나가는 느낌은 밴이라고 다르지 않다. 소리 없이 스르륵 미끄러지면 출발하고, 속도를 높여가는 과정이 영락없는 전기차다. ‘전기모터 회전 = 바퀴 회전’을 화석연료의 폭발이 피스톤과 크랭크축을 거쳐 회전운동으로 변하고 변속기를 통해 바퀴까지 전달되는 과정과 비교할 수는 없는 노릇.


물론 같은 전기차라고 해서 테슬라나 다른 전기 승용차와 같이 폭발적이거나 시원한 가속을 기대하면 곤란하다. eTGE는 산뜻하지만 묵직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오른발에 욕심을 부려보니, 계기반 좌측 바늘이 숫자 10을 향해 돈다. 모터의 힘을 얼마나 뽑아 쓰는지 나타내는 계기였는데, 처음에는 모터 회전수인 줄 착각했다. 엔진의 힘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보여주던 롤스로이스 ‘파워 리저브’ 게이지가 떠올랐다.


테스트 트랙 중간에는 꽤 심한 코너도 있었는데, eTGE는 우려보다 훨씬 잘 돌아나갔다. 코너 시작 부근에서는 높은 시트포지션 탓에 살짝 불안감도 들었으나, 막상 진입 후에는 무리 없이 운전대 돌린 대로 동선을 그렸다. 바닥에 납작하게 깔린 배터리 덕분이다.


가속페달 조작에 따른 가감속의 변화가 심하다. 회생제동장치의 개입이 꽤 강하게 설정돼 있기 때문. eTGE 개발 초기에는 회생제동장치의 개입 정도를 운전자가 조절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고려했지만, 복잡한 도심에서 단계를 조작하느라 안전운행에 방해될 우려가 있어 결국 뺐다고 한다.


대신 eTGE는 가속페달만으로 가감속은 물론 완전 정차까지 가능하도록 했다. 버려지는 운동에너지를 가장 적극적으로 모을 수 있으며, 적응만 되면 도심과 정체구간에서 편리한 방식이다. 쉐보레 볼트EV와 닛산 2세대 리프도 각각 ‘원페달드라이빙’과 ‘e-페달’의 이름으로 적용 중이다.


MAN은 작년 하반기부터 eTGE 판매를 시작했으며 현재 200대가량을 팔았다고 전했다. 판매량은 매달 가파르게 늘고 있으며, 기대를 웃도는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지금 유럽에는 MAN 외에도 PSA와 르노 등 몇몇 브랜드에서 전기 밴을 판매 중이다. 머지않아 다임러도 e스프린터를 투입할 예정이다.


사실 전기차는 승용차보다 상용차에 더 어울리는 파워트레인일지도 모른다. 정해진 구간을 왕복하니 충전 계획을 세우기 편하고, 연료비와 긴 주행거리에 따른 고장과 수리비용이 줄어들며, 대형 화물차에서 발생하는 매연과 소음을 없애 쾌적한 도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이날 eTGE와의 만남은 매우 제한된 공간에서 잠깐 타본 게 전부라 깊이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미래 상용차를 미리 한입 맛본 것 같아 신선했다. 이미 전기차는 승용차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이광환 carguy@carla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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