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최초시승] 모두가 열광하는 SUV, 포르쉐 카이엔

강준기 입력 2019.04.10 15:42 수정 2019.04.10 17:25 댓글 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568대’. 지난달,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가 보낸 국내 수입차 시장 판매통계에서 포르쉐 신형 카이엔이 기록한 대수다. 출시와 동시에 두 달 연속 수입차 베스트 셀링 탑10 리스트에 올랐다. 카이엔을 향한 남다른 인기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모두가 만족할 만한 요소를 두루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을 열광케 할 ‘포르쉐다움’은 희석되고 말았다.

글 강준기 기자|사진 강동희 기자, 포르쉐

2002년, 포르쉐가 SUV를 만든다는 소식에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RR(뒤 엔진‧뒷바퀴 굴림) 구조의 스포츠카를 고집스레 고수해온 포르쉐니까. “자본주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비판도 받았고, ‘이중교배의 산물(폭스바겐 투아렉과 플랫폼 공유)’이라며 등 돌린 팬도 많았다. 지금처럼 SUV와 플랫폼 공유가 흔한 시절이 아니었으니, 팬들의 마음도 이해가 됐다.

최초의 카이엔은 폭스바겐과 포르쉐, 아우디의 합작 프로젝트로 싹을 틔웠다. 목표는 ‘스포츠카의 핸들링을 지닌 오프로더’. 약 300여 명의 팀원은 리더 클라우스 게르하르트 볼페르트의 지휘 아래 ‘PL71’이라는 플랫폼을 빚어냈다. 이 뼈대를 3개 회사가 나눠 쓰며 각각 투아렉, 카이엔, Q7을 선보였다. 모두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공장 태생의 배다른 형제다.

출신은 같지만 포르쉐가 겨눈 과녁은 명확했다. SUV의 탈을 쓰되, 남다른 달리기 실력으로 당당히 ‘포르쉐 식구’로 인정받았다. 출발은 비주류였지만, 부도 위기의 회사를 일으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며 브랜드 간판 모델로 자리 잡았다. 지금은 마세라티와 알파로메오, 람보르기니 같은 제조사도 SUV를 만들고 있으니, 선구자로서 카이엔의 성과는 실로 대단했다.

그렇게 카이엔은 세대를 거듭하며 최근 3세대로 바통을 넘겼다. 먼저 외모 소개부터. 대개 풀 체인지 모델은 얼굴 화장을 크게 바꾸지만, 신형 카이엔은 달라진 점을 한 눈에 알아채기 힘들다. 그러나 조목조목 따져보면 신상은 신상이다. 가령, 눈매는 718 시리즈처럼 각을 바짝 세우고, 옆 창문도 더 늘씬하게 빚었다. 이전보다 단단하면서 속도감 있는 모습을 뽐낸다.

반면 뒷모습은 변화의 폭이 크다. 예컨대 테일램프는 신형 파나메라처럼 가로로 길쭉하게 이었다. ‘PORSCHE’ 글자는 램프 속으로 이사했다. 또한, 번호판 자리 양 끝단을 대각선 모양으로 빚어 구형보다 시각적인 안정감을 더했다. 머플러는 둥그런 트윈 팁 대신 사각 팁으로 바꾼 게 특징이다. 단, 리어 스포일러와 제동 보조등은 2세대 카이엔과 큰 차이가 없다.

외모보단 내실에 초점 맞춘 업데이트

구형 오너라면 크게 바꾸지 않은 신차의 등장에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문을 열면 상황이 달라진다. 특히 센터페시아 중앙에 자리한 12.3인치 풀HD 모니터가 시선을 잡아끈다. 또한, 파나메라처럼 물리 버튼을 최대한 없애고 터치 방식으로 바꿨다. 기어레버 양쪽 손잡이는 별 기능은 없지만 카이엔의 정통성을 계승하는 요소로 활용했다. GT 스티어링 휠도 포인트.

특히 모니터는 응답성능이 무척 빠르다. 손가락을 채 갖다 대기도 전에 귀신같이 알아채고 반응한다. 각 메뉴 구성도 직관적이어서 처음 탄 자동차임에도 불구하고 적응하는 데 수월했다. 또한, 기어레버 주변부 터치 버튼은, 누를 때 진동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아날로그 버튼만큼 직관적으로 쓸 수 있다. 단, 비상점멸등은 기어레버 뒤에 숨어 있어 누르기 꽤 불편하다.

차체 길이와 너비, 높이는 각각 4,925×1,985×1,700㎜. 이전보다 70㎜ 길고 36㎜ 넓다. 휠베이스는 2,985㎜로 동일하다. 덕분에 적재공간이 크게 늘었다. 기본 용량만 770L(VDA 기준)로 동급 모델인 BMW X5보다 125L, 아우디 Q7보다 120L 더 넉넉하다. 뒷좌석은 옆구리와 허벅지를 감싸 앉는 느낌이 좋으며 40:20:40으로 나눠 접을 수 있어 쓰임새 있게 활용할 수 있다.

밑바탕 삼은 뼈대도 주목할 만하다. 새롭게 설계한 MLB-에보 플랫폼으로 신형 카이엔뿐 아니라 벤틀리 벤테이가, 람보르기니 우루스도 함께 쓰고 있다. 핵심은 경량화. 이전보다 알루미늄 적용 비율을 높여 무게는 줄이되 강성은 든든히 확보했다. 또한, 스타터 배터리도 10㎏ 이상 다이어트 했다. 그 결과 공차중량은 2,040→1,985㎏(유럽기준)으로 55㎏ 가량 낮췄다.

단, 효율 측면에선 다소 의문이다. 국내에 들어오는 카이엔은 V6 3.0L 가솔린 터보 엔진 한 가지만 품는다. 8단 자동변속기와 맞물려 최고출력 340마력, 최대토크 45.9㎏‧m를 뿜는다. 기존과 비교하면 배기량은 약 600cc 줄이고 터보차저를 더했다. 출력은 40마력 높지만, 복합연비는 1.0㎞/L(8.3→7.3㎞/L) 낮고 CO₂ 배출량은 24g/㎞ 더 늘었다(211→235g/㎞).

물론 성능에 대한 보상은 확실하다. 소위 ‘제로백’이라고 부르는 0→시속 100㎞ 가속 성능은 7.7→5.9초(스포츠 크로노 패키지 장착 시)로 성큼 줄었다. 최고속도는 시속 230→245㎞로 더 강력하다. 그렇다면 부족한 효율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시승차는 21인치 휠 타이어를 신었는데, 앞 타이어 너비가 285㎜, 뒤가 315㎜에 달한다. 다소 지나친 ‘오버스펙’처럼 보인다.

풍요로운 주행감각, 개성이 필요하다

안팎 디자인 감상을 끝내고 운전대를 잡았다. 서울 강남에서 출발해 경기도 양평 등을 오가며 도심과 고속도로, 굽잇길 등 다양한 노면에서 2일 동안 테스트를 진행했다. 항상 포르쉐를 타면 까먹는 부분이 있다. ‘시동 걸기’다. 레이스에 뿌리를 둔 포르쉐는 스티어링 휠 왼쪽에 키 박스가 있다. 왼손은 키를 돌리고, 오른손은 기어를 넣어 빠르게 출발했던 방식에서 비롯했다.

최근 버튼 시동 시스템이 보편화된 만큼, 이런 방식이 다소 수고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여느 SUV에선 경험할 수 없는 포르쉐 DNA가 감성을 자극하기도 한다. 단, 시동을 걸면 특별함은 사라진다. 엔진 사운드는 저 멀리 아련하게 들리며, 어지간한 진동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주행 중에도 마찬가지. 각종 방음재와 2열까지 이중접합 차음유리로 꼼꼼히 틀어막은 결과다.

연료효율은 다소 실망했지만, 터보 엔진의 효과는 기대 이상이다. 가령, 45.9㎏‧m에 달하는 최대토크를 1,340rpm부터 5,300rpm까지 줄기차게 뿜어낸다. 그 결과 가속 페달을 살짝만 짓이겨도 2,135㎏(공차중량, 국내기준)의 육중한 덩치를 사뿐하게 이끈다. 시속 100㎞까지 가속을 5.9초 만에 해치우지만, 비슷한 성능을 지닌 쿠페보다 몸에 걸리는 부하가 적다.

그래서 계기판을 확인하지 않으면 속도감을 알아채기 힘들다. 방음 설계가 뛰어나 내가 누르는 경적 소리마저 아득히 들려온다. 앞 285/40 ZR21, 뒤 315/35 ZR21의 낮고 넓은 신발을 신었지만, 불규칙한 노면 요철도 말끔하게 걸러낸다. 덕분에 도로와 단절된 듯한 주행질감을 만끽할 수 있다. 초고속 주행에서도 동승자와 속삭이듯 얘기할 수 있을 정도니까.

그래서 아쉽다. 최초의 카이엔이 등장했을 시기엔, 메르세데스-벤츠 M-클래스나 BMW X5 등 동급 프리미엄 SUV보다 화끈한 달리기 실력을 뽐냈다. 비단 엔진 파워뿐 아니라 굽잇길에서 들쑤시는 재미도 남달랐다. 그러나 주행성능이 ‘상향평준화’된 현재 자동차 시장에서 카이엔 만큼 완성도 높은 주행질감을 갖춘 차가 하나둘씩 늘었다. 즉, 이제는 도드라지지 않는다.

또한, 가속 시 느껴지는 감각은 파나메라 라인업과 퍽 다르다. 모두 넉넉한 공간을 지닌 그랜드 투어러지만, 같은 심장 얹는 파나메라 4는 8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PDK)를 짝지어 절도 있는 가속 능력을 뽐낸다. 그러나 카이엔은 일반 토크 컨버터 방식의 8단 자동변속기를 쓰는데, 가속 페달을 깊게 밟으면 약 1초 이상 숨고르기를 하며 여유 있게 속도를 붙인다.

굳이 SUV라는 이유로, 풍요로움을 강조해야 한다는 이유로 포르쉐만의 정체성을 희석해야 했을까? 변속 시 부드러운 질감도 오히려 수동기어 기반의 8단 PDK가 더 만족스럽다. 이번 카이엔의 경우 감속 시 3단→2단으로 내리 무는 과정에서 약한 충격이 생기는데, 매끈한 제동을 방해하는 요소다. 물론, 공장 출고상태부터 가혹한 운명을 갖는 시승차만의 문제일 수도 있다.

코너링 성능은 발군이다. 이번 카이엔은 앞뒤 타이어의 사이즈를 다르게 배치했다. 포르쉐에 따르면 선회 시 언더스티어 현상은 줄이고 더 매끄러운 궤적을 그리기 위한 묘안이다. 덕분에 운전대를 돌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회전반경은 불과 12.1m로 BMW X5보다 0.5m 더 작은데, 길이 4.9m가 넘는 덩치가 무색할 만큼 민첩하다. 덕분에 골목길이나 유턴 시에도 유용하다.

소위 ‘반자율주행’ 시스템이라고 부르는 첨단 운전자 보조 장치(ADAS)도 만족스럽다. 앞 범퍼에 자리한 레이더 센서와 앞 창문에 붙은 카메라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CC) 등의 기능을 말끔히 수행한다. 조작은 스티어링 휠 왼쪽 아래에 붙은 스위치로 하는데, 크루즈 컨트롤 속도와 차간거리 등을 간편하게 주무를 수 있다.

이번 카이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기능은 오프로드 주행모드다. 모니터로 섀시 높이를 ‘낮음 – 중간 – 높음 – 지형’ 등 4단계로 조절할 수 있다. 덕분에 최저지상고는 190→245㎜까지 늘어난다. 깊이 530㎜의 물길도 끄떡없다. 앞 오버행이 짧아 진입각도 27.5°로 넉넉하다. 운전자는 그래블(자갈), 머드(진흙), 샌드(모래), 락(바위) 등 다양한 모드를 입맛 따라 고를 수 있다.

덕분에 가족과 함께 ‘오지캠핑’도 꿈꿀 수 있다. 온로드만 쫓은 반쪽짜리 SUV는 아니니까. 침낭 하나만 있으면 오케이. 뒷좌석을 접고 누워, 드넓은 파노라마 선루프로 밤하늘 감상하며 남다른 ‘SUV 라이프’를 즐길 수도 있다. 물론 315㎜에 달하는 타이어를 험로에서 낭비하고 싶은 소비자는 없을 듯하다. 300마력 대 성능을 지닌 만큼, 275~285㎜도 충분해보인다.

포르쉐 카이엔. 판매량이 증명하듯, 모두가 만족할만한 장비와 구성으로 포르쉐 브랜드를 이끌어왔다. 신형은 더 완벽한 모습으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최초의 카이엔이 가졌던, 여느 SUV에겐 없는 ‘짜릿함’은 이제 다른 차종도 하나둘씩 갖췄다. 불특정 다수보단 단 한 명이라도 열광케 할 수 있는 SUV를 기대하는 건 무리였을까. 뛰어나지만, 포르쉐라서 아쉽다.

<제원표>


관련 태그

이 시각 추천뉴스

로딩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