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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 잘 나고 값비싼 자동차를 왜 또 사고 싶어 할까요?

나윤석 입력 2019.05.25 10:03 수정 2019.05.25 10:0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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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리어답터, 영원한 테스트 베드인가 – 신기술과 신뢰성의 딜레마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BMW 뉴 3시리즈 / 사진=pennstudio

[나윤석의 독차(讀車)법] 최근 J.D. 파워가 발표한 2019 영국 자동차 내구성 조사(VDS, Vehicle dependability survey) 결과에서 푸조가 1위, 현대가 3위를 차지했습니다. 기아도 7등으로 톱 10 안에 들었습니다.

이번 결과는 2015년 11월부터 2018년 1월까지 신차를 구매한 11,530명의 영국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지난 1년 동안 경험한 품질 문제를 2018년 11월부터 2019년 1월까지 조사한 실측 데이터를 근거로 합니다. 8개 부문에 모두 117가지 고장 증상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상당히 세밀하게 차량의 내구성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단위는 pp100, 즉 해당 기간(1년) 내에 차량 100대당 발생한 문제의 숫자입니다. 따라서 숫자가 작을수록 품질이 우수하다는 뜻입니다.

일단 푸조의 선전은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지난 몇 해는 푸조의 제품군이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였던 기간이기 때문입니다. 전반적으로 상품성을 크게 향상시킨 푸조가 제품의 내구성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고급스럽게 만들면서 동시에 잘 만든다는 것은 원가의 상승, 즉 수익성의 희생을 최소한 단기적으로라도 불가피하게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독일 오펠을 인수하고 DS 브랜드를 시트로엥에서 분리 독립시키는 등 장기적 포석을 위한 대규모 투자가 집행되는 기간이었기 때문에 원가 절감의 유혹을 심하게 느꼈을 텐데 이를 참아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더 칭찬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DS7

그런데 브랜드 랭킹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0위 볼보를 제외하고 모든 브랜드가 대중 브랜드들입니다. 8위의 미니도 프리미엄 브랜드로 볼 수 있겠습니다만. 프리미엄 브랜드들에서 더 높은 품질을 기대하는 것이 상식일 겁니다. 물론 더 좋은 소재와 높은 마무리 품질, 조용한 실내와 안락한 승차감으로 우리의 오감을 더욱 즐겁게 할 것입니다. 더 숙련된 기술자들이 정성들여 조립할 것이기 때문에 문제점도 더 적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번 VDS의 결과입니다. 왜일까요?

그 이유는 바로 ‘더 일찍 더 복잡해졌기’ 때문입니다. 프리미엄 브랜드의 제품은 대중 브랜드의 제품보다 더 많은 장비를 갖고 있으며 더 새로운 기술을 먼저 사용합니다. 즉 최근 자동차들이 반자율주행 등 다양한 기능이 적용되면서 그 복잡도가 매우 높아졌다는데 그 새롭고 값비싼 기술들은 프리미엄 브랜드들부터 적용되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남보다 먼저 누린다는 것이 프리미엄 브랜드의 특권이기는 합니다만 그 대가로 다소의 모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아마도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더 촘촘하고 치밀한 서비스 정책들을 갖추려고 하는 것은 단순히 고객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런 예측 가능한 돌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J.D. 파워가 발표한 2019 영국 자동차 내구성 조사(VDS, Vehicle dependability survey) 결과

앞서 살펴본 영국의 경우 뿐만 아니라 독일, 미국 등의 VDS 리포트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VDS 리포트는 대중 브랜드가 상위권 – 프리미엄 브랜드가 하위권을 차지한 모습이 영국 리포트와 매우 흡사합니다. 하지만 미국의 리포트는 일본의 렉서스와 인피니티, 독일 3사와 포르쉐 등 프리미엄 브랜드들의 순위가 높습니다. 그러나 평균값에서는 대중 브랜드들의 신뢰도가 더 높습니다. 2019년 미국 VDS에서 출고된 지 3년이 지난 2016년형 모델들의 내구 신뢰도의 경우 대중 브랜드들이 135 PP100을 보인 반면 프리미엄 브랜드들은 141로 고장률이 다소 높았습니다.

J.D. 파워가 발표한 2019 독일 자동차 내구성 조사(VDS, Vehicle dependability survey) 결과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분야의 고장률이 높았다는 점입니다. 영국 리포트는 새로운 안전 보조 장비들, 즉 사각 지대 모니터링, 전방 충돌 회피, 차선 이탈 경고 등의 고장률이 2.4 PP100을 보인 반면, 도난 경보 장치나 스마트 키, 크루즈 컨트롤 등 보다 친숙해진 기능들의 고장률은 1.5 PP100으로 낮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안전 보조 장비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복잡하고 다양한 기능들을 제공하는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더 높은 고장률을 보였습니다.

J.D. 파워가 발표한 2019 미국 자동차 내구성 조사(VDS, Vehicle dependability survey) 결과

재미있는 것은 각각 고장률이 높고 가격이 비싼 프리미엄 모델들과 친환경 모델들에 대한 소비자들의 재구매 의향이 높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프리미엄 모델에서 엔진 고장으로 오도가도 못하게 된 경험을 한 경우는 재구매 의사에 대중 브랜드보다 더 큰 악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즉, 이제 자동차는 단순히 덜 고장나는 무난한 제품이라는 것만으로 생존하기에는 부족하고 자동차에 대한 기대 수준은 더 높아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요즘 자동차 고객들은 얼리어답터의 특권을 만끽하며 적극적인 테스트 베드가 되어 가는 경향이 커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한 가지 긍정적인 점은 전 세계의 VDS 리포트가 대체적으로 자동차의 신뢰도가 과거에 비하여 좋아지고 있다는 보고를 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만큼 자동차의 가격은 오르고 있습니다. 대중 브랜드들도 니어 럭셔리를 주장하는 데에는 다 피치 못할 사정들이 있는 것입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나윤석

나윤석 칼럼니스트 : 수입차 브랜드에서 제품 기획과 트레이닝, 사업 기획 등 분야에 종사했으며 슈퍼카 브랜드 총괄 임원을 맡기도 했다. 소비자에게는 차를 보는 안목을, 자동차 업계에는 소비자와 소통하는 방법을 일깨우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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