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현지시승] 텔루라이드에서 만난 텔루라이드

강준기 입력 2019.04.16 11:40 수정 2019.04.17 13:0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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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로버에서 새 차가 나왔나요?” 픽업트럭 모는 백인 청년이 묻는다. “아니, 이거 기아차예요”. 그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차를 훑어보더니 인사를 하고 떠난다. 기아 텔루라이드를 타고 미국 콜로라도주 텔루라이드에 오면 이 같은 질문을 적지 않게 받게 된다. ‘VISIT TELLURIDE’라는 배너 붙인 아우디 Q5에 탄 지역 관광청 직원도 우리를 응시한다. 

금광 촌에 뿌리 둔 고산지대 마을 

텔루라이드 다운타운에 차를 세우고 주변을 둘러보면, 기아가 왜 대형 SUV에 이 지역 이름을 따서 붙였는지 쉽게 이해가 간다. 해발 2,438m에 자리한 텔루라이드는 주변으로 4,000m 훌쩍 넘는 로키산맥 줄기를 잇는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1878년 콜롬비아라는 이름으로 세운 금광 촌에서 시작한 마을이다. 

이후 콜롬비아라는 이름이 비슷한 지역 이름과 혼동을 줄 수 있어 1887년 텔루라이드로 이름을 바꿨다. 텔루라이드는 사실 금은 나오지 않았고, 다양한 광물 등이 채취됐다고 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텔루리움으로, 이 마을을 대표하는 광물이다. 

산세가 험한 이곳은 ‘한 덩치’를 하는 자동차들이 많다. 가령 포드 픽업도 1500보다는 3500급이 대부분이다. SUV 역시 대형이 많다. 내가 만약 자동차 회사의 네이밍 부서 책임자라면, ‘한 덩치’ 하는 신차 이름을 텔루라이드로 지으면 참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했을 듯하다. 기아차도 아마 그런 마음으로 이름을 짓지 않았을까?  

박스형 디자인으로 실제보다 커 보여 

텔루라이드는 박스형 디자인을 강조한다. 차체 길이×너비×높이는 각각 5,001×1,988×1,750㎜며, 휠베이스는 2,900㎜다. 경쟁 모델로 볼 수 있는 혼다 파일럿은 5,005×1,995×1,795㎜로 좀 더 크다. 토요타 하이랜더는 4,854×1,925×1,730㎜다. 수치만 보면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 경쟁 모델 옆에 서면 텔루라이드가 훨씬 커 보인다. 

특히 후드와 그릴이 닿는 부분에 붙인 ‘T-E-L-L-U-R-I-D-E’라는 이니셜이 정면에서 마주할 때 차가 한층 넓어 보이는 효과를 낸다. 박스형 디자인이 갖는 장점으로, 랜드로버가 이 같은 기교를 잘 활용해왔다. 앞서 만난 픽업 오너처럼 텔루라이드를 랜드로버로 헷갈리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반대로 기아차는 이 같은 효과를 노렸을 테고.  

실내도 큼직하다. 가로형 대시보드 디자인은 시각적으로 넓은 느낌을 준다. 센터페시아엔 10.25인치 디스플레이와 공조장치를 간결하게 배치했다. 기어레버 좌우의 큼직한 손잡이는 텔루라이드의 지향점을 뚜렷이 나타낸다. 험로를 달리며 차체가 요동칠 때 이 손잡이를 요긴하게 쓸 수 있다. 트렁크 공간은 기본이 595L(북미 기준)로, 동급에서 제일 넉넉하다. 

291마력 내는 V6 3.8L 가솔린 엔진

기아차는 텔루라이드에 LX, S, EX, SX 등 4가지 트림을 마련했다. 시승 모델인 SX는 LED 헤드램프와 20인치 블랙 휠 등으로 나머지 트림과 차별을 뒀다. 특히 SX에서 프레스티지 패키지를 고르면 시승차처럼 브라운 컬러의 나파 가죽 시트 등을 더할 수 있다. 이 같은 최고 옵션을 갖춘 텔루라이드는 리무진으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고급스럽다. 

특히 SX 트림에 적용한 2열 캡틴 시트 덕분에 승객 거주성도 높고 3열 드나들기 또한 쉽다. 2~3열에는 컵홀더를 비롯해 USB 충전 포트를 인색하지 않게 심었다. 하지만 2열 전용 모니터처럼 뒷좌석 승객을 위한 별도의 엔터테인먼트 장비가 부족한 점은 아쉽다. 

북미 시장에서 기아차는 텔루라이드에 V6 3.8L 가솔린 자연흡기 람다 엔진만 얹는다. 6,000rpm에서 최고출력 291마력(hp), 5,200rpm에서 최대토크 36.2㎏·m를 낸다. 변속기는 8단 자동, 굴림방식은 앞바퀴가 기본이다. AWD는 전 트림에서 2,000달러짜리 옵션이다. 북미 시장에서 중요시하는 견인능력은 굴림방식과 상관없이 최대 2,268㎏다. 수치만 볼 때 텔루라이드의 파워트레인은 2톤 가까운 덩치를 끌기엔 다소 부족해 보인다. 

부드러운 가속, 제법 타이트한 서스펜션

출발은 기대 이상으로 부드럽다. 이후 제한속도까지 무난하게 차체를 이끈다. 토크가 조금 더 낮은 구간에서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평지에서는 큰 불편함이 없다. 다만 경사가 심한 언덕을 달릴 때 추월이 필요하거나 갑자기 힘을 내야 할 때는 아무래도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연비를 고려해 얌전하게 다독인 변속기 세팅도 조금 거슬린다.  

서스펜션 구조는 앞 맥퍼슨 스트럿, 뒤 멀티링크 타입이다. 댐핑 스트로크는 짧은 편으로, 물렁하지 않고 기대 이상 타이트하다. 특히 AWD 모델은 스포츠 모드에서 앞뒤 구동력 배분과 토크벡터링 코너링 컨트롤로 안정적이면서 재미까지 기대할 핸들링 성능을 완성한다. AWD 모델도 에코와 스마트 모드에선 구동력 대부분을 앞바퀴로 몰아 연료를 아낀다. 

시승차로 나선 텔루라이드 SX는 20인치 휠과 미쉐린 프라이머시 투어 올시즌 245/50 R20 사이즈의 타이어를 신었다. 그립은 그런대로 무난한 편이다. 하지만 매끈하지 않은 도로를 달릴 땐 낮은 편평비의 타이어가 썩 반갑지 않다. 멋을 위해 편안함을 희생시킨 까닭이다. 물론 비포장 흙길로 구성한 시승코스에선 큰 불편함을 느끼기 어려웠다. 

텔루라이드의 AWD는 센터 디퍼렌셜을 완전히 잠글 수 있다. ‘AUTO LOCK’ 모드에선 알아서 대응하고, ‘SNOW’ 모드에선 앞뒤 구동력을 5:5로 나눈다. 다만 디퍼렌셜을 잠궜을 땐 시속 64㎞까지만 달릴 수 있다. 차선 유지 보조 장치나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서라운드 뷰 모니터, 헤드업 디스플레이 등을 갖춰 덩치는 크지만 누구나 쉽게 몰 수 있다. 

철저히 미국 시장에 맞춘 전략 모델 

미국 시장에서 기아차는 지난 2월 말 본격적으로 텔루라이드 판매에 나섰다. 첫 공식집계인 3월 판매가 5,000대를 넘어섰다. 기아차로서는 그야말로 대박을 낸 셈이다. 텔루라이드의 인기 비결은 철저한 현지화에 있다. 캘리포니아 주 어바인의 미국 디자인센터에서 그리고, 조지아 주 웨스트포인트에서 만들며, 미국의 대표적 아웃도어 명소를 이름으로 썼다. 

가격도 괜찮다. 텔루라이드 기본형이 3만1,690달러(약 3,600만 원)부터 시작한다. 굳이 최상급 트림인 SX까지 가지 않아도, 3만5,035달러(약 약3,973만 원)에 살 수 있는 S 트림에 20인치 휠과 7인승 캡틴 시트가 기본이다. 근래 동급에서 보기 드문 ‘가성비’를 자랑한다. 다만 인기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기 위해선 파워트레인 선택폭을 넓힐 필요가 있다. 

기아차는 텔루라이드를 공개하면서 ‘GIVE IT EVERYTHING’이라는 브랜드 슬로건을 만들어냈다.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고 만들었다는 의미다. 아직 텔루라이드를 한국에 출시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그러나 현지에서 시승해 보니, 한국 소비자가 관심을 가질만한 디자인과 상품성을 충분히 갖췄다. 

글 황인상(<로드테스트> 미국 통신원|미주 자동차 여행 전문 칼럼니스트) 

사진 기아자동차, 황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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