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을 오르다, 닛산 엑스트레일

조회수 2019. 2. 27. 21:0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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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퍽’ ‘쿵’ 뾰족한 돌이 솟은 산길에서 닛산 엑스트레일이 요동쳤다. ‘끼이익’ 나뭇가지 닿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랄 만큼 머리털이 곤두섰는데도 차는 무덤덤하게 흔들리며 산길을 올랐다. 도심형 냄새 짙게 밴 날카로운 인상이 무색할 따름이다.

글 윤지수 기자, 사진 임근재 실장(www.studio-z.co.kr)

2세대 닛산 엑스트레일 외모와 실내

사실 엑스트레일은 본디 미려한 SUV가 아니다. 이전세대만 해도 우리에게 익숙한 랜드로버 디스커버리처럼 각진 스타일로 강인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런데 3세대에 들어 날렵하게 바뀌었다. 외모와 함께 오프로더를 지향하던 개성도 버렸을까? 우리가 험한 산길로 향한 이유다.

도로 위에서

이른 아침 엑스트레일 시승차를 받았다. 사진으로 본대로 도심 속에서 퍽 잘 어울린다. 그릴과 헤드램프는 낮게 깔았고, 앞 펜더를 둥글게 감싼 굴곡은 뒤쪽으로 부드럽게 흐른다.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 바닥끝까지 내린 범퍼는 영락없는 도심형 SUV 특징. 바닥에 검게 두른 플라스틱 보호대와 루프랙만이 아웃도어 분위기를 풍긴다.

운전대 아래쪽에 수 많은 버튼(왼쪽), 몸의 무게를 넓게 분산시키는 저중력 시트(오른쪽)

속도 마찬가지다. 네모반듯 기계적이었던 센터패시아는 승용차처럼 말끔히 바뀌었다. 더욱이 탄소 섬유 패턴을 닮은 장식을 집어넣고 운전대는 아래를 일자로 잘랐다. 운전석에서 바라본 시선이 높지 않았다면 세단이라고 착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뒷좌석은 널찍하다

‘지금이라도 시승 코스를 바꿔야 하나?’ 복잡한 머릿속을 뒤로하고 촬영 장비를 트렁크에 집어넣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양손 장비를 가득 든 채 범퍼 밑으로 발을 집어넣자, 역시나 트렁크가 열린다. 짐 실을 때 유용한 핸즈프리 파워 리프트게이트 기능이다.

아래 바닥판을 활용해 다양하게 공간을 구성할 수 있다

공간은 널찍하다. 삼각대와 조명, 여러 렌즈, 반사판 등을 모두 품고도 절반이 차지 않았다. 특히 아래 바닥판을 이용한 공간 활용 방법이 눈에 띈다. 2단으로 트렁크 공간을 나누어 쓸 수 있고 차단막처럼 활용해 별도의 네모난 공간을 만들 수 있다. 굴러다니기 쉬운 짐을 실을 때 유용한 기능이다. 트렁크 용량은 모든 시트를 폈을 때 565L, 뒷좌석을 접으면 1,996L까지 늘어난다(VDA 기준). 참고로 우리나라 준중형급 SUV 트렁크 공간은 쌍용 코란도 551L, 현대 투싼 513L, 기아 스포티지 503L다.

최고출력 172마력, 최대토크 24.2㎏·m 성능을 내는 2.5L 가솔린 엔진

시동을 걸어 4기통 2.5L 가솔린 엔진을 깨운다. 역시 가솔린 엔진답다. 잔잔하게 소리가 깔리고 진동은 거의 없다. 전자식으로 조절하는 유체 엔진 마운트가 진동을 억제하는 까닭이다. 변속기는 엑스트로닉 무단 자동. 부드러운 엔진과 변속기가 만나 울컥거림 한번 없이 차분히 출발한다.

최고출력 172마력, 최대토크 24.2㎏·m, 적당한 성능으로 무난히 달린다. 일상 도심 주행에서는 무단 변속기가 항상 최적의 기어비를 찾아 조용하면서도 잽싸다. 특히 고속기어에서 저속기어로 바꾸는데 머뭇거리는 일반 변속기와 달리 즉각 기어비를 낮추는 명민함이 인상 깊다. 다만 급가속할 땐 얘기가 조금 다르다. 페달을 깊숙이 밟으면 엔진이 거친 소리를 토하고, 무단 변속기가 대개 그렇듯 가속감은 먹먹하다. 일반 변속기처럼 단계를 나누는 기술이 들어갔어도 본질은 감출 수 없었다.

승차감은 부드러운 편이다. 초기 반응 무른 서스펜션과 지름 730㎜ 큼직한 타이어가 작은 충격을 부드럽게 걸러낸다. 그러나 큰 충격에는 댐퍼가 팽팽히 맞서 출렁이는 시간을 짧게 줄인다. 고갯길에서도 마찬가지다. 운전대를 꺾으면 조금 쏠리는 듯하다가 바깥쪽 서스펜션이 든든히 굳으면서 코너를 돌아나간다. 마치 말랑한 공기공 속 단단한 고무 덩어리가 잡히는 기분이랄까.

승차감을 즐기다 보니 어느덧 산길 입구에 도착했다.

도로 밖에서

길은 작은 돌, 큰 돌이 어지러이 널린 돌길부터 시작한다. 느낌을 그대로 쓰자면 ‘드르륵 퍽 퍽.’ 작은 돌 밟는 충격은 잔잔히 거르는데, 큰 충격은 굵직한 소리와 함께 서스펜션을 타고 엉덩이까지 들어온다. 그래도 이전에 타고 왔던 프레임 온 보디 SUV보다는 한결 낫다. 프레임 위 차체를 떠받든 고무 부시 때문에 ‘터덜터덜’ 끊임없이 진동하던 이전 차와 달리 충격을 받으면 한 번만 흔들리고 끝난다. 엑스트레일은 모노코크 차체에 골격을 더한 유니보디 구조니까.

더 깊숙이 들어가자 눈길이 펼쳐졌다. 그늘이 짙게 드리워 눈이 녹았다 얼기를 반복해 딱딱하게 굳은 곳이다. 살짝 경사졌지만, 사륜구동이니 큰 문제는 없으리라. 자신 있게 앞바퀴를 들이밀었다. 순간 계기판 속 사륜구동 동력 배분 표시 화면이 앞 100%에서 뒤쪽 30%가량으로 부리나케 바뀐다. 닛산에 따르면 눈 깜빡이는 속도보다 30배 빠르게 동력을 나눈다고. 네 바퀴 모두 빙판길 위에 올라선 뒤에도 앞뒤 동력 배분을 끊임없이 바꾸며 앞으로 나아갔다.

네바퀴 동력 배분 상황을 계기판으로 볼 수 있다

바퀴가 차례차례 헛돌고, 좌우로 조금씩 미끄러지지만 엑스트레일은 별 탈 없이 하얀 언덕을 올랐다. 언덕을 오른 후 만난 평평한 눈길은 다소 시시하다. 이때 차체 자세 제어장치 VDC를 끄고 사륜구동 록 버튼을 누르면 뒤를 슬쩍 흘리면서 달릴 수 있다. VDC가 미끄러짐을 놓아주고 사륜구동 록 기능이 앞뒤 동력 배분을 50:50으로 고정하기 때문에 운전대를 꺾으면 엉덩이가 코너 바깥으로 흐른다. 앞뒤 무게 배분 57:43으로 준수해 미끄러짐 제어는 어렵지 않다.

이어 작은 계곡을 만났다. 물살이 흐르는 계곡답게 제법 굵직한 돌이 깔려있다. 길이를 재보니 가장 큰 돌은 두께가 바닥으로부터 200㎜에 달한다. 여기서 일반 세단이나 바닥 낮은 SUV는 발길을 돌려야 한다. 엑스트레일 최저 바닥 높이는 8.4인치, 약 213㎜다. 위아래로 흔들지만 않는다면 지나갈 수 있는 높이다. 잔뜩 긴장하고 지나가니 다행히 아무 일 없이 통과했다.

물론 조심해야 할 부분도 있다. 바닥은 낮지 않으나 네모나게 내려온 범퍼 때문에 앞쪽 진입각(앞바퀴와 범퍼 끝을 잇는 선과 바닥 사이 각도)이 17.4°다. 만약 경사로를 오른다면 앞 범퍼가 닿지 않게 대각으로 각도를 잘 조정해 닿지 않게 올려야 한다. 그나마 이탈각(뒷바퀴와 범퍼 끝을 잇는 선과 바닥 사이 각도)은 18.6°로 조금 더 높아 앞 범퍼가 닿지 않는다면 뒤는 신경 쓰지 않고 올릴 수 있다.

이윽고 정상에 다다랐다. 사실 험로 난도가 높지 않아 오프로드에서 엑스트레일만의 강점은 찾기 어려웠다. 단지 반응 빠른 사륜구동과 경사로 출발 시 브레이크를 잡아 밀림을 방지해주는 기능들 덕분에 편안히 오프로드를 즐길 수 있었다. 차체 비틀리는 소리와 실내 내장재 삐걱거리는 소리가 전혀 없던 점도 칭찬하고 싶다.

납작한 닛산 엠블럼에 앞차와 거리를 인식하는 센서가 달렸다

과거를 기억하다

타이어에 붙은 진흙과 자갈이 펜더 때리는 소리를 들으며 도로로 나왔다. 이제 첨단 장치를 켜볼 차례. 인텔리전트 차간 거리 제어 기능을 켜자 앞차와 거리를 알아서 조정하며 달린다. 요즘 차라면 대부분 있는 기능이지만, 엑스트레일은 다른 차보다 더 부드럽다. 앞차가 속도를 줄이면 멀리서부터 일찍이 제동해 운전자가 불안하지 않게 거리를 맞춘다. 다만 그만큼 앞쪽으로 다른 차가 끼어드는 상황이 빈번하긴 하다. 이외 차선 이탈 방지 시스템과 긴급 제동 보조 기능 등이 들어간다.

총 221㎞, 8시간을 달려 기록한 연비는 8.7㎞/L다. 평균 연비 추이를 더 자세히 살펴보면 고속도로에서는 12㎞/L까지 올랐고 험로를 달릴 땐 8.2㎞/L까지 내려갔다. 험로를 나온 이후 9.5㎞/L까지 회복했으나 심한 도심 정체 때문에 시승차를 반납할 때 8.7㎞/L로 마감했다. 공인 복합 연비는 L당 10.6㎞/L. 시승 중 연비는 험로를 달린 탓에 다소 낮게 나왔다.

험로에서 만난 닛산 엑스트레일은 본격 오프로더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늬만 SUV도 아니다. 견고한 유니보디 차체는 신음 한번 내지 않았고, 사륜구동은 무척 빠르게 앞뒤 동력을 나눴다. 파워트레인 역시 자연 흡기 엔진과 무단 변속기를 조합한 비교적 간단한 구조. 비록 스타일은 도심 속에 자연스레 녹아들도록 바뀌었으나 오프로더를 지향했던 과거를 잊지 않고 있었다.

<제원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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