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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제네시스 G90..가치를 증명해야 할 때

김상영 입력 2019.03.08 16:1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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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방영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핵심적인 시대적 배경은 ‘갑오개혁(1894~1896)’이다. 갑오개혁으로 인한 신분제도의 폐지는 드라마를 이끄는 핵심 요소다. 신분제도가 폐지됐지만 세상은 여전히 평등하지 않았다. 양반은 가마나 인력거를 탔고 한성 바닥에서 누구도 양반의 걸음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노비들은 가진 게 없었다. ‘굳은 인식’은 사람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자본주의는 새로운 신분제도를 만들었다. 돈이 많은 사람은 곧 높은 사람이었다. 프랑스 원단으로 코트를 해 입은 조선의 부자는 일본의 장군도 어찌하지 못할 힘을 지니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부자들이 입는 옷이나 장신구가 사회적 위치를 알려주는 수단이 됐다.

자본주의가 탄생한 유럽에서는 오래 전부터 부자들을 위한 ‘브랜드’가 생겨났다. 부자들 사이에서도 서열이 정해졌다. 자동차는 단순하게 마차를 대체하는 수단이 아닌 손쉽게 부를 뽐내는 물건이 됐다. 메르세데스-벤츠, 마이바흐, 부가티, 롤스로이스 등은 그 시절부터 고급차를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도 고급차를 만들고 있고, 포드는 지금도 열심히 자동차를 찍어내고 있다.

대중적인 차를 만들던 회사가 고급차를 만들어 성공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자동차 뿐만 아니라 모든 상품이 그렇다. 태생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은 그만큼 확고하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자동차 그룹을 이끌고 있는 폭스바겐도 ‘페이톤’으로 고급차 시장에 진입하려 했다. 전용 공장, 고급 소재, 수작업 등 ‘럭셔리’라고 불릴만한 것이 수두룩했지만 페이톤은 성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팔 때마다 손해를 봤다.

현대차는 에쿠스를 꾸준하게 만들면서도 이런 과정을 전부 지켜봤다. 다행스럽게 한국 시장은 특이하게 고급 세단에 대한 일정한 수요가 있었다. 덕분에 덩치만 컸던 에쿠스도 내실을 다질 수 있었다. 미쓰비시와의 관계도 끝났고, 현대차의 기술적 성취는 빠르게 높아졌다. 2011년부터 북미 시장에서 판매되기 시작했고, 의외로 좋은 성과를 올렸다. 여기에는 여러 분석이 있겠지만, ‘저렴하고 옵션이 잘 갖춰진 큰 차’라는 게 주요했다.

하지만 한계는 명확했다. 현대차에 대한 인식이 훨씬 강했다. 고급스러움과 기술이 접목되면서 자연스럽게 가격은 높아졌고, 그 가격을 주고 현대차를 사야 할 이유는 부족했다. 제네시스 브랜드의 독립은 필연적이었다. 단순히 렉서스를 따라한 것만은 아니다. 둘다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이 같을 뿐이다. 폭스바겐이 실패한 이유는 자본주의가 만든 신분제도를 누구보다 잘 알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제네시스는 독립을 위한 여러 움직임을 미리 보여줬다. 프라다와 함께 한정판 모델을 만들기도 했고, 에르메스의 가죽이 쓰인 쇼카를 내놓기도 했다. 새로운 이미지 구축과 함께 제품력 확보도 계획됐다. 애초에 발전할 구석이 많기도 했지만 현대차와 제네시스는 유럽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레전드’라고 할 수 있는 외국인 전문가들을 데려오면서 큰 변화를 겪었다. 유명 디자이너와 관록있는 엔지니어, 그리고 그들의 팀원들이 백지장 같았던 제네시스에게 화려한 색을 입혔다.

제네시스는 더이상 무르지 않다. 물침대 같았던 푹신한 느낌은 전부 사라졌고, 탄력적이고 단단한 주행감각을 보여준다. 에쿠스와는 완전히 다른 차고, EQ900보다 한 차원 높다. G90은 잘 달린다. 그것도 마치 오랜 역사를 가진 유럽의 플래그십 모델처럼 안정적이고 민첩하게 달린다.

불안감 없이 직진하고, 힘도 꽤 좋다. 3.3리터 터보 엔진은 이미 여러 차종에서 충분히 검증됐다. 굳이 5.0리터 자연흡기 엔진을 선택할 이유도 없어 보일 정도다. 다만 그 힘이 절정으로 향하는 과정은 독일차에 비해 매끄럽지 못하다. 변속기는 나긋나긋하고 그 성격 변화가 밋밋하다. 낮은 속도에서 순간적인 가속이 필요할 땐 주춤거린다. 터빈이 쌩쌩 돌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가 크고, 엔진회전수가 높아졌을 때도 역동적인 느낌은 없다.

G90의 가장 큰 미덕은 고요함이 아닐까. 정숙성으로 미국을 강타했던 렉서스보다 더 조용한 것 같다. 거센 바람소리도 실내로 침투하지 못한다. 유리는 전부 꼼꼼하게 두장씩 겹쳐놓았다. 문짝이나 필러 속에도 꼼꼼하게 방음재와 흡음재를 넣었고, 타이어의 소음을 없애기 위한 설계도 이뤄졌다. 엔진 소리는 말할 것도 없다. 뒷좌석에 앉으면 마치 전기차처럼 느껴진다. 뒷좌석에 앉는 사장님이라면 폐차할 때까지 엔진 소리를 들어보지 못할 수도 있다.

플래그십은 실내 공간이 굉장히 중요한 세그먼트다. 거실 소파보다 편안하고 침실보다 안락해야 한다. 몸이 닿는 곳은 서류가방이나 핸드백에 쓰인 가죽만큼 고급스러워야 하고, 오디오 시스템은 탑승객을 세상과 단절시킬 만큼 선명하고 풍성해야 한다. G90은 용케 이런 몇가지 조건을 잘 만족시키고 있다. 우리가 그동안 간과했던 것도 클 것이다. 좋은 소재를 가공하는 기술도 늘었고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겠다는 욕심도 조금 줄었다. 그러면서 품질은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뒷좌석 공간만큼은 분명 경쟁력이 높다. 독일차보다 편한 구석도 있다.

새로운 디자인은 스산한 느낌마저 든다. 현시대의 것이 아니라고 느껴질 정도다. 자연적인 느낌이 없다. 가장 위대한 디자인은 자연이라고 했는데, G90은 너무 기계적이고 도시적이다. 인간미가 없다. 그렇지만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제네시스를 상징하는 디자인 요소는 화려하고 실험적이다. 우리가 쉽게 보았던 기법이 아니다. 그래서 한없이 낯설지만, 눈이 간다. 자주 보면 정들고 오래 보면 예쁘다고 일단 G90과 친숙해지면 신기하게 G90이 묘하게 끌린다. 그리고 그 모습이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프리미엄 브랜드가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프리미엄이라고 인정받을 만한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프리미엄 브랜드가 된다는 것은 스스로의 외침이 아닌 셈이다. 브랜드를 소비하는 사람들과의 섬세하고 끈적한 커뮤니케이션이 오랫동안 지속돼야 한다. 제네시스는 어렵고 느린 길을 달려야 한다. 우리는 태생이 주는 ‘굳은 인식’을 알고 있다. 제네시스만의 새로운 차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네시스만이 줄 수 있는 새로운 가치도 생각해야 한다. 지금의 G90은 놀랍도록 좋은 차지만 S클래스보다 가치가 높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제네시스는 가치를 쌓아가는, 쌓아가야만 하는 브랜드다. 그리고 G90은 맨앞에 선 모델이다. 세상은 몹시 차갑고 냉정하겠지만 신진사대부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잃을 각오까지 해야 한다. 다만 모든 것이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자동차를 판단하는 기준이나, 플래그십을 설명하는 요소들이 달라지고 있다. 첨단 기술이 요구되는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 다양한 디지털 시스템 등은 제네시스가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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