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아재 형아들 주목! 추억 속 JDM (상편)

이정현 입력 2019.03.26 10:50 수정 2019.03.26 11:5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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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타 FT-1 컨셉트. 수프라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수프라가 다시 나온다고? 당연히 마니아들은 열광했다. 떠들썩한 분위기는 한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5년이 흘렀다. FT-1 컨셉트는 다섯 번째 수프라(A90)로 탄생했다. BMW G29 Z4와 뼈대를 함께 쓰는 모델이다. 결과적으로 약간의 실망을 남겼다. 기대가 큰 까닭도 있을 거다. 정통 수프라 부활 꿈꾸던 이들의 평가는 냉정했다.

실망의 이유는 무엇일까? JDM의 향수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JDM(Japan Domestic Market)은 일본내수시장을 뜻한다. 그러나 자동차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일본 내수 전용 스포츠카’로 통한다. 80~90년대는 일본 자동차 메이커들의 전성기였다. 거품처럼 불어나는 일본 경제 황금기를 타고 멋진 자동차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중심에는 스포츠카가 있었다.

하나 같이 독특했다. 운수성(현재 국토교통성) 제한에 따라 최고출력 280마력, 최고속도 180km/h로 묶여 있었지만 가벼운 튜닝만으로도 독일 고성능 차들을 압도했다. 독특한 디자인 덕에 팬덤도 형성했다. 일본의 자동차 튜닝 시장이 커지기 시작했던 것도 이때부터다. JDM은 단순히 일본 내수 전용 스포츠카가 아닌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JDM의 인기는 해외에서도 뜨거웠다. 영화 <패스트&퓨리어스>를 봤다면 오렌지 빛 수프라를 기억할 것이다. 영화 속 수프라는 미국인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JDM이었다. 보멕스(Bomex) 보디킷과 거대한 스포일러를 단 화려한 디자인, 과급기를 양쪽에 달아 600마력을 내고도 멀쩡한 엔진, 페라리를 압도하는 달리기 실력까지 갖춘 스포츠카. JDM은 그런 존재였다. 이처럼 일제 스포츠카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모델들은 무엇이 있을까? 하나씩 추억을 짚어 보자. 첫 번째로 소개할 JDM은 마쓰다 RX-7이다.

마쓰다 RX-7

1961년, 마쓰다는 NSU(아우디의 전신)로부터 로터리 엔진 기술을 사들였다. 이후 배기량이 1L도 되지 않는 작은 엔진(983cc)으로 최고출력 128마력을 내는 ‘코스모 스포츠’를 공개했다. 당시 메르세데스-벤츠와 아우디 등 다른 메이커들도 로터리 엔진 개발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양산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내구성이 떨어지고 기름도 많이 먹는다는 약점 때문이었다.

오일쇼크(1973년)가 터지자 로터리 엔진은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제조사들은 출력보다 연비를 중시하기 시작했다. 코스모 스포츠를 비롯해 사바나(RX-3), 패밀리아 쿠페, 카펠라 등 로터리 엔진을 본격적으로 탑재하기 시작한 마쓰다는 치명타를 맞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엔진 개선 프로젝트(Phoenix Project)를 진행했다. 이로써 연비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했다. 그 결과물로 나온 모델이 바로 'RX-7'이다.

RX-7은 1978년에 태어났다. 1세대(SA22C/FB3S)는 1,146cc 로터리 엔진을 달고 최고출력 101마력을 냈다. 후기형은 과급기를 달아 165마력까지 끌어올렸다. 일반적인 피스톤 엔진에 비해 연비는 나빴다. 대신 조상 격인 코스모 스포츠에 비해 40% 가까이 좋은 연비를 자랑했다. 매끄러운 엔진 질감과 코너링 성능도 매력적이었다.

1985년에 출시된 2세대(FC3S)는 포르쉐 944에서 영감을 받았다. 기존 보디에 944를 버무린 듯한 디자인이 매력으로 통했다. 엔진은 1세대 RX-7의 수출형에만 탑재됐던 13B. 여기에 트윈 스크롤 터보 달아 최고출력 185마력으로 높였다. 보태어 엔진 위치를 앞바퀴 뒤쪽으로 밀어 붙였다. 51:49의 무게배분을 만들기 위해서다. 덕분에 코너링 성능은 더욱 좋아졌다.

RX-7 시리즈의 마지막 모델은 3세대(FD3S)다. 직선을 강조했던 선대 모델들과 달리 유선형 디자인으로 이목을 끌었다. 본격적으로 달리기 위해 태어난 모델인 만큼 토센 LSD, 레카로 레이싱 시트, 빌스테인 서스펜션 등 달리기 옵션들도 마련했다.
엔진은 기존 13B에 시퀀셜 트윈 터보를 단 13B-REW를 썼다. 이로써 최고출력은 255마력, 최대토크는 30.0kg·m으로 높아졌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은 5.5초에 끊었다. 후기형은 매니폴드와 터보를 개량해 최고출력을 280마력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2002년 배기가스 규제 강화로 인해 RX-7 역사가 막을 내렸다. 이후 연비를 개선시킨 RX-8에게 바통을 넘겼지만 큰 인기를 끌진 못했다.

닛산 스카이라인 GT-R

‘스카이라인’의 뿌리는 닛산이 아니다. 지금은 사라진 일본의 자동차 제조사, 프린스의 주력 모델이었다. 과거 파산 위기에 놓였던 프린스는 레이스를 통해 경영 정상화를 노렸다. 스카이라인에 직렬 6기통 2.0L 엔진을 얹어 일본 그랑프리에 뛰어들었고 우승컵까지 들어올렸다. 스카이라인 GT-R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프린스는 닛산에 인수합병 됐다. 그 와중에도 스카이라인은 살아남았다. 이후 닛산의 주력 중형차로서 자리매김했다. 특히 고성능 버전인 스카이라인 GT-R은 닛산을 대표하는 스포츠 모델로 거듭났다.

첫 번째 닛산 스카이라인 GT-R(PGC10)은 1969년에 등장했다. 프린스 자동차의 마지막 고성능 모델인 스카이라인 R380의 개량형 모델이었다. 최고출력 160마력을 내는 직렬 6기통(S20) 엔진 달고 뒷바퀴를 굴렸다. 여기에 5단 수동변속기를 맞물려 일본 그랑프리 레이스를 누볐다. 49전 49승. 불패 신화. 첫 번째 스카이라인 GT-R이 1972년까지 남긴 기록이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곧이어 2세대 스카이라인 GT-R(PGC110)이 나왔다. 당시 유행하던 미국 자동차 스타일을 따라 남성적인 느낌을 풍겼다. 하지만 배기가스 규제로 인해 200여대만 생산됐다. 당초 개발 목적이었던 레이스에는 출전조차 못한 채 단종되고 말았다.

이후 스카이라인 GT-R은 명맥이 끊겼다. 2세대의 실패와 함께 오일쇼크가 터지면서 고성능 자동차 개발에 차질을 겪었기 때문이다. 3세대 스카이라인 GT-R이 등장한 건 1989년. 코드네임 R32다. 이전에 비해 엔진을 키웠다. 직렬 6기통 엔진 배기량은 2.6L(RB26DETT)로 늘어났고 여기에 트윈 터보와 전자식 연료분사 장치를 달아 최고출력 276마력을 냈다. 보태어 평상시 뒷바퀴를 굴리다가 상황에 따라 앞뒤좌우로 구동력을 분배하는 상시 사륜구동, 아테사 E-TS를 탑재해 코너링 실력도 갖췄다. 레이스 대회에서의 성적도 좋았다. 1989년 데뷔 이후 29전 29승 무패행진을 기록하며 1세대 스카이라인 GT-R의 명성을 이어 나갔다.

이후 스카이라인 GT-R은 뉘르부르크링 랩타입 8분대 벽을 깬 R33(일본차로서는 처음이었다), 영화 <패스트&퓨리어스>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R34로 이어졌다. 스카이라인의 전성기였다. 2002년, 스카이라인은 RX-7처럼 배기가스 규제로 인해 단종을 맞이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동시대 일제 스포츠카 중 가장 강력한 성능을 내뿜었던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는 GT-R이 스카이라인 GT-R의 명맥을 잇는다. RB엔진은 V6 3.8L 엔진(VR38DETT)로 업그레이드됐다. 이로써 최고출력과 최대토크는 480마력, 60.6kg·m으로 치솟았다. 성능은 거듭 개선되어 현재 565마력 버전까지 나온다. 2008년 데뷔한 GT-R은 모델 체인지 없이 성능 개선만으로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라이벌로 지목한 포르쉐 911에 비하면 낡았다. 하지만 JDM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매력적인 수퍼 스포츠카로 꼽힌다.

혼다 NSX

자동차 마니아라면 VTEC 엔진에 대해 들어봤을 것이다. 1984년, 혼다는 작은 배기량으로 높은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 엔진을 기획했다. 그 결과 가변밸브 타이밍 및 리프트 전자 제어 장치를 탑재한 VTEC 엔진을 탄생시켰다. 저속 회전과 고속 회전용 캠을 별도로 두고 엔진 회전수에 따라 흡배기 밸브의 개폐량과 타이밍을 바꾸는 기술을 상용화한 것. VTEC은 저회전부터 고회전까지 이어지는 넓은 토크 밴드 덕분에 연비와 출력을 동시에 끌어올린 엔진으로 평가받았다.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고회전 캠으로 전환될 때 묘하게 달라지는 음색이 매력으로 꼽혔다.

80년대 말, 일본의 버블경제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혼다는 수퍼카를 꿈꿨다. 목표는 페라리와 포르쉐였다. 개발 과정은 시행착오 연속이었다. 당시 혼다는 전륜구동 자동차가 대부분이어서 페라리, 포르쉐와 경쟁할만한 미드십 후륜구동 스포츠카를 개발한다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다. 아울러 F1의 전설 아일톤 세나와 미국의 유명 레이서 바비 라할을 테스트 드라이버로 쓰며 개발비도 적잖이 들었다. 그 결과물로 혼다 ‘NSX’가 나왔다.

NSX는 ‘완벽에 가까운 차로’ 평가 받았다. 알루미늄 모노코크 보디를 통해 무게를 줄였고(1,365kg) 경쟁차들보다 다루기 쉬워 ‘쾌적한 슈퍼카’라는 별명도 붙었다. 엔진은 V6 3.0 VTEC(C30A)을 탑재해 최고출력 274마력의 힘을 냈다. 엔진 회전은 8,000rpm까지 쓸 수 있었다. 최고속도는 시속 270km.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데는 6초가 걸렸다. 후기형은 배기량을 3.2L로 키웠다. 최고출력은 280마력으로 올랐고 제로백은 0.3초 끌어내렸다.

하지만 인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1990년대 중반 일본 경제 거품이 빠지면서 스포츠카 수요가 급감했다. NSX 판매량도 떨어졌다. 해외 판매도 신통치 않았다. 혼다의 고급 디비전인 어큐라 엠블럼을 달았지만 페라리나 포르쉐에 비하면 이름값이 떨어지는 게 발목을 붙잡았다.
제작비도 많이 들었다. 당시 알루미늄 금형 기술은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기에 대부분 수작업으로 생산됐다.  이는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 NSX는 1억 원을 웃도는 가격표를 달고 나왔다. 당시 일본 자동차 중 가장 비싼 모델이었다.

판매 부진을 이어온 NSX는 2005년 단종됐다. 강화된 배기가스 규제도 단종을 거들었다. 혼다는 이후 S2000까지 생산 중단하며 스포츠카 라인업을 정리하는 듯했다. 그러다 2012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NSX 콘셉트'를 공개하며 NSX의 부활을 알렸다.
2세대 NSX는 2016년에 나왔다. 1세대 단종 후 11년만에 내놓은 고성능 모델이다. 신형은 3.5L 트윈 터보 가솔린 엔진을 탑재했다. 여기에 3개의 전기모터를 달아 시스템 출력 573마력을 낸다. 라이벌은 닛산 GT-R, 아우디 R8, 포르쉐 911 터보. 이보다 성능을 키운 NSX Type-R 출시도 앞두고 있다.

지금까지 JDM 대표 모델 중 RX-7, 스카이라인 GT-R, NSX를 돌아보았다. 이 콘텐츠는 이번 편을 포함해 총 두 편으로 나간다. 2편은 토요타 수프라를 포함해 WRC(월드랠리챔피언십)을 누비던 스바루 임프레자와 미쓰비시 랜서도 다룰 예정이다. 다음 편에 이어서 JDM을 추억해 보자.

이정현 기자 urugonza@encarmagaz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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