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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시스 G90이 벤츠·BMW에 회심의 일격을 가했다는데..

전승용 입력 2019.03.13 10:44 수정 2019.03.13 16:0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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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고급차가 수입차 방어에 성공했다는 '통계의 함정'

[전승용의 팩트체크] 매월 초가 되면 자동차 실적 기사가 뉴스 페이지를 가득 채웁니다. 보통 1~2일에는 국산차가, 5~7일에는 수입차협회인 카이다(KAIDA)에서 판매량(또는 등록 대수)을 집계해 배포하고, 이를 바탕으로 언론사에서 기사를 쏟아냅니다. 단순히 판매 숫자만 전달하는 기사도 있고, 이를 바탕으로 전체적인 흐름이나 변화를 분석한 기사도 있습니다.

이번 달에는 유독 제 눈에 띄는 분석 기사가 있었습니다. 대략적으로는 ‘그동안 수입차에 밀렸던 국산 대형 고급세단의 판매가 급증하며 반격에 나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역시나 좋지 않은 댓글이 달렸네요. ‘에쿠스(EQ900).. 신형 나올 때 잠깐 팔리고, 거래처 임원들 차 다 바꾸고 나면 (벤츠)S500보다 안 팔리는 차’라는 글과 ‘연말연초에 수입차는 없어서 못 팔았고, 현대기아차는 법인 인사이동에 따른 차량 구매로 숫자가 늘어난 거잖아’라는 글이 명치를 깊게 때립니다.

물론, 해당 기사 틀렸다는 것은 아닙니다. 저 기사에 들어간 숫자는 틀림없이 사실일 테니까요. 그러나 이 숫자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집니다. 수십 년간 이어져온 판매량 데이터는 다양한 의미와 맥락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두 달 실적, 또는 점유율 변화를 가지고 그게 전체인 것처럼 해석하면 안 된다는 것이죠.

맥락 없이 쓰인 통계는 왜곡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늘 옳은 말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통계가 기사화될 때는 어느 정도의 의도를 가지기 마련입니다.

이 기사에 나온 큰 팩트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고급 수입차 판매량이 줄었다는 것, 다른 하나는 국산 고급세단 판매량이 늘었다는 겁니다. 덕분에 점유율이 늘어나며 방어에 성공했다는 것인데, 사실인지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일단, 올해 고급 수입차 판매량이 전년 대비 하락한 것은 사실입니다. 대표적으로 메르세데스-벤츠의 경우 1~2월 판매량은 9407대로 작년 같은 기간(1만3701대)에 비해 31.3% 감소했습니다. BMW 역시 5066대로 전년(1만1525대)로 56.1%나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숫자를 가지고 ‘그동안 수입차에 밀렸던 국산 대형 고급세단의 판매가 급증하며 반격에 나섰다’는 결론을 내리기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수입차 판매량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물량과 가격(프로모션)입니다. 그런데 이 둘은 보통 함께 움직이죠. 그래서 수입차는 특정 모델의 판매량이 갑자기 늘었다고 해서 인기가 높아졌다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물량 공급과 맞물린 할인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재 수입차 시장은 물량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폭스바겐 디젤게이트 이후에 인증 절차가 까다로워지면서 신차 출시 일정이 점점 더뎌지고 있습니다. 팔고 싶어도 인증을 통과하지 못해 팔지를 못하는 것이죠. 그래서 인증 통과 후 밀렸던 물량을 한꺼번에, 그것도 파격적인 프로모션을 적용해 파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이유로 국산차와 달리 수입차의 판매 곡선이 급격히 변동합니다. 인증 자체가 원활하지 않을뿐더러, 인증이 취소되기라도 하면 당장 판매가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이는 인증 문제로 고통 받던 아우디와 폭스바겐은 물론, 나름 꾸준한 실적을 자랑하는 벤츠와 BMW도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새로운 배출가스 인증 방식인 WLTP(Worldwide Harmonized Light Vehicle Test Procedure) 기준이 시행되면서 물량 확보가 더 어려워졌습니다. 유럽에서도 WLTP 인증을 통과하지 못해 출고가 밀렸고, 그 결과 유럽 전체 판매량이 25%가량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본사 상황이 안 좋은 상태에서 예년 수준의 물량을 들여오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죠.

한마디로 고급 수입차는 물량만 충분하면 언제든지 다시 잘 팔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다시 국산 대형 고급세단이 고급 수입차에 밀렸다는 기사가 나올 수도 있겠네요.

이번에는 국산 대형 고급세단을 살펴보겠습니다. 어차피 제네시스 G80, G90과 기아차 K9 세 종류밖에 없지만요.

아쉽게도 국산 대형 고급세단 판매량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이들의 지난 1~2월 실적은 총 8652대로, 전년(9050대)보다 4.4% 감소했습니다. 새로운 K9이 166대에서 1953대로 무려 1076.5%의 성장세를 기록하고, 페이스리프트를 하며 이름을 바꾼 G90도 2347대로 31.7% 늘었지만, 국산 대형 고급세단에서 가장 큰 볼륨을 차지하는 G80이 7102대에서 4352대로 38.7% 줄었기 때문입니다.

G80이야 올해 하반기 풀체인지를 앞둔 자연스러운 하락세로 보입니다. 그러나 신형 K9과 G90의 성장세는 조금 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신형 K9의 성장률에는 허수가 많습니다. 1076%란 숫자는 이전 모델이 작년 1~2월에 겨우 166대 팔린 덕분입니다. 물론, 구형 모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출시된 지 1년도 안 된 풀체인지 모델의 성적표라는 것도 고려해야겠죠.

G90 역시 그리 좋은 성적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2016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판매된 G90(당시 EQ900)은 1월 2164대를 시작으로 2월 2476대, 3월 3570대, 4월 2986대, 5월 2893대, 6월 3025대 등 6개월 동안 무려 1만7114대를 팔았습니다. 반면 최근 페이스리프트된 G90은 작년 12월 2136대로 좋은 출발을 보였지만, 올해 1월 1387대, 2월 960대로 줄어들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도 세부적인 분석이 가능합니다. 2016년 당시는 풀체인지이고 작년 12월은 페이스리프트라는 차이가 있고, 2016년 당시의 G90 역시 상반기(1~6월)에는 월평균 2853대를 팔더니 하반기(7~12월)에는 월 1036대로 판매량이 급격히 하락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러나 이를 고려하더라도 G90의 성적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맥락과 변수가 포함된 분석이 필요합니다. 저는 아무리 살펴봐도 국산 대형 고급세단이 고급 수입차에 반격에 나설 정도의 변화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급 수입차 물량이 풀리면 국산 대형 고급세단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고민될 정도입니다.

일시적인 판매량과 점유율 변화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습니다. 쉽게 반박당할 요소도 많고요. 댓글에 쓰인 것처럼 이런 기사 같은 경우는 판매량과 점유율 변동 이외에 각 모델의 개인 vs 법인 비율, 법인 중 일반 리스와 렌터카, 단체 판매 비율 등의 자료도 추가되면 좋겠네요. 또, 고급 수입차와 국산 대형 고급세단 사이의 구매층 이동 자료도 있으면 줗겠네요. 전반적인 시장의 변화를 아우를 수 있는 진짜 분석 기사가 자주 보이길 기대해 봅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전승용

전승용 칼럼니스트 : 모터스포츠 영상 PD로 자동차 업계에 발을 담갔으나, 반강제적인 기자 전업 후 <탑라이더>와 <모터그래프> 창간 멤버로 활동하며 몸까지 푹 들어가 버렸다. 자동차를 둘러싼 환경에 관심이 많아 여기저기 킁킁거리며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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