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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메르세데스-벤츠 CLS400d..앞선 자

모터그래프 입력 2019.02.07.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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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위대한가. 거센 바람에 맞서, 캄캄한 길을 먼저 걷는 이들은 칭송받아 마땅하다. 길을 모를 때 우리는 몸을 웅크리고 선인들의 발자국을 쫓으면 된다. 앞선 자들이 얼마나 숭고한가에 대해 몸소 느낀 것은 처음 유럽에 갔을 때였다.

봉지라면을 끓여 먹을 마땅한 용기가 없어서 숙소 근처에 있는 전자제품 매장엘 갔다. 넓적한 커피포트를 사서 라면을 끓여 먹을 생각이었다. 상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아주 큰 유리문을 두번 통과해야 했는데, 바람은 세찼고 그 덕에 유리문은 몇 배나 더 무거웠다. 주머니에서 손을 빼지 않은 채 어깨로 첫번째 문을 밀고 통과했다. 고개를 돌리니, 몇 발자국 앞에서 한 남자가 두번째 유리문을 붙잡고 있었다. 난 그가 문을 놓아버릴까 잰걸음으로 두번째 문을 지나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갈색 목도리를 두른 그는 계속 문을 잡고 있었다. 난 걸음을 옮기면서도 몇번이고 뒤돌아봤다. 내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층을 오를 때도 그는 마치 건물의 주인처럼 유리문을 붙잡고 사람들을 반겼다. 당케, 당케 쉔이 건물 로비를 가득 채웠다. 고맙다는 말을 미처 하지 못해 미안해졌다. 그는 사람들의 통행이 뜸해지자 그제서야 문에서 손을 놓고 갈 길을 갔다.

마침 그의 앞에는 사람이 없었고 그의 뒤에는 사람들이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에게서는 앞선 자의 여유와 뒤를 챙기는 책임감까지 느껴졌다. 그 혼자 특별했던 것은 아니었다. 유럽에서는 이런 아름다운 광경을 너무나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들에게서 앞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부담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즐기는 듯 했다.



어쩌면 이런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마음가짐이 퍼스트무버를 만드는 힘이 아닐까.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자유롭고, 진보적인 환경 속에서 창조적인 에너지는 솟구친다. 그래서 유럽에서 수많은 예술가와 예술품이 탄생한 것일지도 모른다. 창조적인 시도는 비단 예술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발상의 전환은 보수적인 세단을 매혹적인 쿠페로 변화시켰다.

CLS는 메르세데스-벤츠의 울타리가 필요없을 정도로, 하나의 상징으로 우뚝 섰다. 두번의 세대 교체를 겪으면서 CLS는 정체성을 더욱 견고하게 다졌다. 2세대 CLS는 메르세데스-벤츠의 디자인을 따른 개성없는 모델이었다면, 3세대 CLS는 다시 메르세데스-벤츠의 디자인을 이끄는 선도자가 됐다.



몸은 한결 늘씬해졌다. 길이도 늘었고, 휠베이스도 길어졌다. 그런데 더 작아보인다. 2세대 CLS가 넓고 긴 직사각형이었다면, 3세대 CLS는 길고 넓은 타원처럼 생겼다. 군살이 빠졌다. 이제 제몸이 보인다. 코에서 시작된 근육은 한껏 팽창했다가 다시 수축되며 꽁지로 모여든다. 굳이 주름을 굵게 잡지 않아도, 단단하고 강인해 보인다. 모나게 다듬어진 앞뒤의 눈매도 새로운 분위기를 만드는 큰 요소다. 이 세부적인 디자인은 앞으로 나올 메르세데스-벤츠의 신차에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



안쪽에는 좋은 것을 잔뜩 집어넣었다. E클래스와 대부분을 공유하지만, 그보다 더 아름답고 호사스럽게 만들었다. 메르세데스-벤츠에서 이름 끝에 ’S'가 붙으면 이 정도는 돼야 한다. 가장 큰 변화는 뒷좌석에 있다. 지금까지 메르세데스-벤츠는 CLS에게 다섯개의 시트를 허락하지 않았다. 쿠페는 결핍이 존재해야 마땅해서다. 그러나 3세대 CLS는 뒷좌석의 중앙 콘솔이 없어졌고, 세명이 앉을 수 있게 했다. 쿠페가 패밀리카의 임무까지 담당하게 된 셈이다. 다만 공간에 대한 개선은 크지 않다. 트렁크가 열리는 방식도 세단과 같다. 유리까지 통째로 열리는 최신 유행을 따르지 않았다. 조금은 아쉽다.



비율의 변화는 그저 겉모습에 국한되지 않는다. 더 당당하게 도로를 달린다. S클래스와 같은 부드러움도 안고 있지만, 그보다 훨씬 더 호전적이다. 긴 몸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날쌔다.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아주 평평하게 옆으로 돈다. 어질리티 컨트롤에 따른 에어 서스펜션의 변화는 크다. 디자인 만큼이나 CLS를 더 입체적으로 만든다. CLS는 단 하나의 성격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각각의 주행모드에 따라 완벽에 가깝게 성격을 바꾼다.



직렬 6기통 디젤 엔진과 9단 자동변속기의 조합은 메르세데스-벤츠의 여러 파워트레인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궁합이 좋다. V6 엔진에서 직렬 엔진으로 바뀌면서 들을 만한 핀잔에 미리미리 대비한 것 같다. 힘, 정숙성, 효율 등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없다. 별다른 수식없는 ‘400d’란 이름이 평범하게 느껴질 정도로 새로운 파워트레인은 훌륭했다. CLS는 계속해서 앞서 가고 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익숙한 것을 좋아한다. 그래야 모든 것이 통제되고,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새로운 것에 위험성을 느끼기도 하고 호기심을 갖으며, 보고 또 보게 된다. 2004년 메르세데스-벤츠 CLS가 처음 등장했을 때도 그랬다. 편안하고 안락해야 하는 세단이 왜 쿠페의 모습을 취해야 하는지 많은 이들이 이해할 수 없었지만, 멋있었다. 그 과감한 시도는 오늘날까지 자동차 디자인을 뒤흔들고 있고, 수많은 이들이 여전히 그 발자국을 쫓고 있다.

김상영 기자 sy.kim@motorgraph.com<자동차 전문 매체 모터그래프(http://motorgrap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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