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토요타 아발론, 그리고 캠리 하이브리드

조회수 2019. 1. 29. 21:1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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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타를 6개월 기다려서 받는다고?”

오랫동안 참아야 살 수 있는 차는 포르쉐나 페라리 같은 ‘인디 오더’만 해당된다고 여겼다. 그런데 토요타를 6개월 넘게 기다려야 받을 수 있단다. 주인공은 신형 아발론 하이브리드다. 출시부터 예상 밖의 인기로 출고 적체가 시작됐다. 지금 계약하면 8월쯤 나온다. 이 정도 인기라니, 얼른 이유를 찾아내고 싶었다.

‘구형은 기름 퍼먹는 3.5L였는데 신형은 하이브리드이기 때문에 잘 팔린다’는 거 말고 다른 무언가가 있을 게 분명하다. 결국 우리는 아발론 하이브리드를 불러내어 직접 시승하기로 했다. 상품성을 좀 더 명확히 체크하기 위해 캠리 하이브리드도 함께 나왔다. 둘의 값 차이는 440만 원. 캠리는 4,220만 원이고 아발론은 4,660만 원이다. 그랜저 하이브리드 수요를 가져올 만하다.

아발론은 현대 그랜저와 교집합이 많다. 예를 들어 그랜저는 쏘나타의 고급화 버전이고 현대차 중에서 가장 큰 세단이다. 아발론도 비슷하다. 아발론은 쏘나타 라이벌인 캠리와 플랫폼을 공유한다. 양쪽 모두 TNGA-K 플랫폼 타고 나온다. 또 아발론 역시 그랜저처럼 토요타 브랜드 중에서 가장 큰 세단이다.

이로써 그랜저의 특성을 아발론도 똑같이 품고 있다. 예를 들어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전륜구동 방식을 쓴다. 그 덩치에 비해 내장재가 썩 고급스럽지 않은 것도 닮았다. 마지막으로 실내 공간이 초등학교 운동장 만하다는 교집합도 있다. 뒷자리에 타면 쓸쓸한 기분이 들 정도로 넓다. 트렁크도 크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용 배터리를 테트리스 하듯 예쁘게 수납한 덕분이다.

“확실히 캠리보다 비싼 차처럼 생겼네”. 아발론의 첫 인상에 대해 고석연 기자가 짤막하게 평가했다. 실제로 아발론은 캠리보다 고작 440만 원 비쌀 뿐이지만 그에 비해 한층 좋은 차처럼 다가온다. 이정현 기자는 “캠리는 너무 흔해져서 그렇다”며 아발론이 좋아 보이는 이유를 해석했다. 또 “캠리는 이름이 캠리인 게 문제야. 아발론은 캠리가 아니기 때문에 고급스럽다는 거지”라며 세심하게 첨언했다. 간단히 말하면 아발론이 고급스럽다는 게 아니라 캠리가 싸 보인다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나도 그의 의견에 대체로 동의했다. 그렇지만 아발론의 독특한 헤드램프와 왕관처럼 생긴 그릴도 비싸 보이는 원인일 거라며 이정현 기자를 타일렀다. 또 아발론은 양쪽 테일램프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캠리보다 더 좋아 보인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어렵게나마 나의 말을 인정한 눈치다. 이정현은 미니 쿠퍼를 탄다. 나는 미니가 고급스럽다는 생각을 0.1초도 해본 적이 없다. 물론 이정현 앞에서 그 생각을 언어적으로 표현한 적도 없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아발론의 스타일이 퍽 마음에 들었다. 반짝이는 진주색과 큰 보디는 침몰하기 직전의 타이타닉처럼 호화로웠다. 사실 아발론만 혼자 놓고 볼 때는 그저 중형차 같았는데 캠리랑 같이 있으니 얘기가 달라졌다. 아발론은 늘씬했다. 캠리도 나름 비율이 예뻤지만 아발론의 깔린 듯한 이미지가 더 끌린다. 아발론과 캠리의 스타일 격차는 그랜저와 쏘나타의 디자인 차이보다 벌어져 보인다. 이건 조심스런 얘기지만, 익스테리어만 놓고 보더라도 아발론이 440만 원의 값어치를 한다고 생각했다.

한데 실내로 들어서면 얘기가 달라진다. 시승팀은 아발론의 문을 연 순간 생전 처음으로 의견 일치를 보았다(부정론이 대세였다). 아발론의 검소한 실내는 스크루지에게 어울렸다. 이따금 캠리가 차라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자인도 문제였다. 고석연 기자는 아발론의 센터페시아를 보고는 “으악!”하고 소리쳤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건 마치 센터페시아의 모니터가 스키점프대를 만들면서 솟아 오른 것 같아. 토요타 디자인팀 내에 안티가 있나 봐”. 이윽고 나는 반문했다. “요즘 현대처럼?”

내가 아발론 센터페시아를 조롱할 때 이정현 기자는 “캠리의 실내가 생각보다 괜찮다”며 얼른 그쪽으로 와보라고 부추겼다. 그의 말처럼 캠리의 인테리어는 아발론보다 한층 정돈된 느낌이다. 스키점프대가 모티브인 아발론과 달리 디자이너 스케치를 그대로 담은 듯하다. 센터페시아 버튼 디자인과 폰트가 90년대 일제 미니 콤포넌트를 연상시키는 점까지도 묘하게 맘에 들었다. 버튼의 배치나 쓰임새도 아발론보다 조금이나마 좋았다. 심지어 컵홀더도 캠리의 것이 쓰기 편했다.

내장의 감성 품질은 두 차 모두 토요타스럽다. 팩트만 말하자면 아발론과 캠리 모두 플라스틱과 우레탄이 듬뿍 쓰였다. 반면 천연 가죽이나 진짜 나무 장식은 공룡과 함께 멸종해 버렸다. 시트까지도 인조가죽이니 말 다 했다. 그래도 비닐보다는 감촉이 좋았다. 그런데 4,000만 원 넘는 차가 인조가죽 시트라고? 현대가 그랜저에 인조가죽 시트를 달았다면 나라 전체가 뒤집어졌을 거다.

인테리어에게 어렵게 주었던 면죄부는 편의장비 쪽에서 비로소 거두게 된다. 그리고 그 죄의 크기는 아발론에서 더 거대하게 다가온다. 아발론이 더 크고 비싼 차라서 편의장비에 대한 기대도 더욱 생기기 때문이다. 일단 캠리와 아발론 모두 뒷자리 관련 옵션이 전무하다. 뒷자리 열선도 없고 수동식 커튼도 없다. 그나마 팔걸이와 센터 송풍구가 있지만 전혀 위로가 안 된다. 그러니까 캠리나 아발론을 살 거면, 당신 뒷자리에 탈 사람을 미워해야 한다.

전자동 트렁크가 없다는 점도 거슬린다. 국산 경차까지 흔한 열선 스티어링 휠도 없다. “가격을 맞추려면 어쩔 수 없다”는 대응 논리는 결국 아발론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말을 반증할 뿐이다. 그랜저 하이브리드는 3,576만 원짜리 ‘깡통’ 모델에도 79만 원만 내면 전자동 트렁크를 달아준다. 이때는 통풍시트까지 따라온다. 그러고 보니 아발론과 캠리는 통풍시트도 없다. 아발론을 살 거면 뒷자리에 탈 사람을 미워하고, 골프장에 가지 않고, 더위와 추위를 타지 않아야 한다는 세 가지 조건이 서는 순간이다.

달려야 드러나는 매력
나는 아발론과 캠리 하이브리드를 각각 하루씩 번갈아 시승했다. 결론 먼저 말하면 그 주행성에 대단히 만족했다. 원래 차 탈 때는 뻥 뚫린 길 달리는 게 좋기 마련. 반면 아발론과 캠리는 하이브리드이기 때문에 막힐 때 더 좋았다. 꽉 막히는 출퇴근 시간도 스트레스 없었다. 이율배반적이었다.

필자가 출퇴근용으로 타는 차는 V6 3.3L 엔진의 제네시스다. 실연비가 8~9km/L 나온다. 막힐 때는 4~5km/L로 나빠진다. 그래서 정체가 시작되면 배기가스와 함께 100원짜리 동전이 와르르 쏟아지는 듯하다. 그런데 아발론과 캠리 하이브리드는 정반대였다. 막힐수록 연비 창의 숫자가 치솟았다. 같은 주행 환경에서 L당 20km씩은 거뜬했다. 제네시스 G80 기름값의 40%로 굴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완성도가 인상적이었다. 예를 들어 두 차는 EV 모드, 그러니까 모터로만 갈 수 있는 능력이 좋았다. 신경 써서 가속하면 시속 50~60km까지도 엔진을 켜지 않고 간다. 시속 100km 이상에서도 ‘발컨’하면 EV 모드를 쓸 수 있다. 이정현 기자는 “아발론 하이브리드는 모터 출력이 120마력인데 그랜저는 50마력 정도 밖에 안 된다”며 THS를 높게 평가했다.

모터에서 엔진으로 동력이 넘어갈 때도 자연스럽다. 반대로 전환될 때도 마찬가지다. 브레이크 페달의 제동감도 내연기관 자동차의 유압식 브레이크 수준에 다가섰다. 다만 아발론과 달리 캠리 하이브리드는 특유의 푹푹 밟히는 느낌이 남아 있다. 무심하게 운전하면 거슬리지 않는 수준이긴 하다. 장기보유 관점에서는 더욱 거슬릴 수도 있고, 반대로 적응될 수도 있을 거다.

가속감도 반전. 녹색의 친환경 이미지와 달리 새빨갛게 달아오른 듯 잘 나간다. 아발론과 캠리 하이브리드는 풀가속할 때 상당히 빨랐다. 3.0L 가솔린차 수준의 가속을 떠올리면 얼추 맞을 거다. 고석연 기자는 “웬만한 유럽 2.0L 디젤차보다 빠른 것 같다”며 놀라워했다. 다만 하이브리드 시스템용 배터리가 바닥이라면 웬만한 2.5L 가솔린차보다 굼벵이처럼 구는 것도 사실이다. 또 모터 토크가 추락하는 고속 영역에서도 힘이 없다. 우리의 계측에 따르면 두 차의 0→100km 가속 시간은 8초 정도.

누군가 필자에게 “그랜저와 아발론 중 굽잇길에서 탈 차를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아발론을 택할 거다. 그만큼 운동성이 마음에 들었다. TNGA 플랫폼의 핵심이 저중심 설계라는 토요타의 말이 헛소리가 아님을 알 만했다. 캠리와 아발론 모두 댐퍼와 스프링이 말랑거리는 편임에도 선회할 때는 차체가 갑자기 납작해진 것처럼 잘 돌아나간다. 특유의 롤이 있되 그게 과하지 않았다. 요리조리 주무를 수 있는 자연스런 수준이다.

고속안정성도 믿음직하다. 기본기에 충실한 토요타답다. 한계 상황에서도 만족스러웠다.시속 100km에서 강한 제동과 조향을 동시에 주면 대부분의 전륜구동 준대형 세단은 뒤 차축이 흐른다. 하지만 아발론은 이 테스트에서 운전자의 시선 방향을 그대로 따라갔다. 뒤쪽 트랙션을 전혀 잃지 않았다는 얘기다.

단점도 있다. 아발론과 캠리 모두에게 해당된다. 둘은 조용한데 시끄럽다. 일단 저속에서 모터로만 갈 때는 잔잔하다. 꿈 속에서 자동차를 모는 것 같았다. 엔진이 아예 안 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대신 속도를 높이면 바람 가르는 소리와 타이어 마찰음이 귀를 찌른다. 싸구려 4기통 엔진음도 적잖이 거슬렸다. 이따금 철 덩어리가 아니라 종이를 타고 있는 기분에 휩싸였다. 정숙성을 중시한다면 그랜저가 나아 보인다.

시승을 마칠 무렵 우리는 다시금 논쟁했다. 우선 이정현 기자는 반대파였다. “하이브리드를 왜 사는지 모르겠어. 남자는 일단 가솔린 자동차를 타야 해”라며 이번 시승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고석연 기자는 중도를 걸었다. “그랜저 하이브리드는 너무 흔하잖아. 택시도 많지. 그런 이들에게 캠리나 아발론이 대안이 될 거야. 근데 기름값이 진짜 걱정이면 디젤차가 낫지 않겠어?”

나는 두 사람에 비해 아발론의 가치를 좀 더 높게 봤다. 편의장비가 적지만 좋은 하체와 미친 연비가 마음을 끌었다. 뭔가 ‘레어템’을 탄다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캠리에다 440만 원을 더 내면 더 크고 멋진 차체와 조수석 전동 시트(캠리는 조수석이 수동식이다), 락 폴딩 미러, 스마트폰 무선 충전 기능을 추가로 주는 격이다. 그리고 캠리의 A필러 내장재는 플라스틱인데 아발론은 직물이다. 이런 연유에서 시승하는 동안 큰 매력을 느꼈다. 아발론을 6개월 넘게 기다릴 계약자들의 마음을 어렴풋이 알게 됐다. 마침내 ‘G80을 아발론으로 바꾸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만일 우리나라에 삼일절과 광복절이 없었다면, 정말 그렇게 했을지도 모른다.

정상현 기자 jsh@encarmagaz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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