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과속 운전자가 학생들 앞에서 신 레몬을 먹게 된 사연

이완 입력 2019.06.12 10:27 수정 2019.06.12 10:28 댓글 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왜 운전 중에 다른 생각을 하시나요?

[이완의 독한(獨韓) 이야기] 독일에는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교통안전 교육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자전거 교육을 들 수 있는데, 학교 정규 과정 중 하나인 자전거 면허 취득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교통 체계를 이해하고 안전하게 자전거 타는 방법을 익힌다.

당연히 현장 학습도 이뤄진다. 경찰뿐만 아니라 아데아체같은 거대 교통 단체 등이 나서 형광 조끼를 무상으로 나눠주거나, 안전과 관련한 주요 교통 체계를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교육한다. 핵심 사업으로 여길 만큼 아이들 교통안전 교육에 힘을 쏟는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통안전 교육을 하고 있는 모습 / 사진=ADAC

그런데 최근 독일 일간지 디차이트가 초등학생들과 함께 독특한 현장 학습을 실시하고 있는 한 경찰관을 소개했다. 뤼네부르크라는 작은 도시에서 교통 교육 등을 담당하고 있는 마르틴 슈바니츠는 초등학교 2학년 학생 21명과 함께 과속 단속 현장으로 나갔다.

유치원 주변에 과속 카메라를 설치하고 최고제한속도 30km/h를 위반하는 운전자들을 멈춰 세웠다. 첫 위반자는 전직 초등학교 교사 출신이었다. 어린이보호구역 내에서 시속 45km/h로 달렸다. 보통은 범칙금을 물고 끝나겠지만 이날은 달랐다. 운전자는 아이들 앞에서 왜 과속을 했는지 해명해야 했다.

한 여학생이 “늘 과속하세요?”라고 묻자 단속에 걸린 운전자는 아니라고 답했다. 잠깐 다른 생각을 하다가 그만 실수를 하게 됐다고 했다. “왜 다른 생각을 하시나요?”라고 재차 묻자 여성은 더듬거리며 울 듯한 표정으로 잘못을 인정했다. 그리고 아이들 앞에서 신 레몬 조각을 물었다. 범칙금을 대신한 것이다.

디차이트와의 인터뷰에서 마르틴 슈바니츠는 오랜 세월 교통경찰로 일하며 많은 운전자를 단속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이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변명으로 일관했고, 이런 현실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고자 ‘신 레몬(Saure Zitrone)’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됐다고 전했다. 아이들 앞에서는 어른들의 태도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판단은 틀리지 않은 듯하다.

실제로 과속으로 단속에 걸린 운전자들이 아이들 앞에 섰을 때는 이전처럼 억지를 부리고 거짓 변명하기보다는 자신의 실수라며 인정을 하는 편이었다는 게 마르틴 슈바니츠의 설명이었다. 이날 단속에 걸린 많은 운전자는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것을 생각하다가’라고 과속의 이유를 가져다 댔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운전에만 집중하세요. 딴생각은 하지 마시고요.”

이날 현장 교통 단속 교육에 참여한 아이들에게 마르틴 슈바니츠는 물었다. “너희 부모님도 과속 카메라에 찍힌 적 있어?” 아이들은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기사가 나간 후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일부는 우려하기도 했지만 많은 이들이 마르틴 슈바니츠의 ‘신 레몬’ 프로그램에 박수를 보냈다. 아이들과 운전자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며 확대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눈에 띄었다.

독일의 스쿨존 / 사진=이완

◆ 충격요법 P.A.R.T.Y

해당 기사를 읽으며 'P.A.R.T.Y' 프로그램을 떠올렸다. P.A.R.T.Y는 Prevent Alcohol and Risk Related Trauma in Youth의 약자로 ‘젊은 층의 알코올 및 위험 관련 외상 예방’이라는 뜻이다. 1986년 캐나다 토론토의 한 종합병원이 제안한 일종의 충격요법으로 대상은 만 15세에서 18세까지다.

독일도 2012년부터 지역별로 P.A.R.T.Y를 운영하고 있다. 과정은 대략 이렇다. 교통사고로 다친 부상자가 구급차에 실려 온 직후부터 물리치료를 받는 전 과정을 관찰하게 된다. 또 간접 체험 학습도 진행한다. 그중에 가장 효과가 큰 것은 중환자실을 방문하는 것과 치료 중인 환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가해자, 혹은 피해자인 환자들로부터 끔찍했던 사고 당시의 순간을 전해 듣는 등, 대화를 통해 안전 운전의 중요성을 자연스럽게 익힌다.

물론 교육은 환자들의 동의 아래 이뤄진다. 현재 독일은 ACU라는 전담 교육 기관에서 P.A.R.T.Y 프로그램을 이끌어 간다. 독일에서는 이것을 쇼크테라피(충격요법)으로 부르고 있다. P.A.R.T.Y는 캐나다와 독일 외에 미국, 브라질, 호주, 그리고 일본 등에서 운영되고 있다.

참여하는 병원들도 계속 늘고 있는데, 대상을 면허 취득 전의 청소년들로 한정한 것은 학습 효과가 가장 크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실제로 교육에 참여한 학생들은 면허 취득 과정은 물론 운전을 하게 되었을 때도 이때의 교육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P.A.R.T.Y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 / 자료=ACU

◆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안전 프로그램 개발 시급

독일의 경우를 이야기했지만 우리나라도 초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체계적인 교통안전 교육이 필요하다. 학습 능력이 가장 좋은 시기의 청소년들이기에 잘 개발된 프로그램을 통해 교통 문화에 대한 틀을 짠다면 좋은 운전자로 성장할 확률은 그만큼 높아진다.

이른 시간 안에 면허 시험에서 합격을 시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얼마나 좋은 운전자가 되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허술한 면허 취득 과정 개선은 물론이고, 이처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통 교육을 체계화시켜야 한다. 기초부터 제대로 짜야 하는 것이다.

자동차 생산 강국, 2,300만 대의 자동차 시대다. 분명 눈에 보이는 부분에서는 교통 선진국이라 할 부분들이 있다. 하지만 기초가 단단해야 높은 건물을 올릴 수 있듯, 안전하고 쾌적한 도로 문화가 뿌리 내리기 위해서는 청소년 때부터 좋은 교통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도로 문화를 유산으로 물려주는 것은 어른들의 의무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완

이완 칼럼니스트 : <모터그래프> 등에 칼럼을 쓰고 있으며 ‘이완의 카폐인’이라는 자동차 동영상 콘텐츠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다. 현재 독일에 살고 있으며, 독일의 자동차 문화와 산업계 소식을 공유하는 일을 즐기고 있다.

이 시각 추천뉴스

로딩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