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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n 칼럼] 일본차 디자인이 건담 같은 이유

모터그래프 입력 2019.02.05 22:30 수정 2019.02.06 14:3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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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란 단어는 주제와 컨셉을 정하는 것부터 껍데기 모양을 만드는 것까지 의미가 폭 넓습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자동차의 ‘생김새’는 사실 디자인보다 스타일링에 가깝지요. 그러니 이 글에서는 우리가 ‘생김새’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디자인’ 단어를 ‘스타일링’으로 고쳐서 사용하겠습니다.

스타일링은 주관적인 것이라 좋다 나쁘다 평가하기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균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호감을 보이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나누어볼 수 있지요. 물론 좋아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다면 좋은 스타일링일 것입니다.

자동차 스타일링이 주관적인 것이라고 치부해 버린다면, 전세계적 히트작을 연속적으로 디자인해내는 디자이너의 순위가 있고, 그들로 향한 높은 연봉과 스카우트제의를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자동차에는 분명, 수준 높은 스타일링과 그렇지 못한 스타일링이 있습니다.

위 사진은 요즘 일본차들의 모습입니다. 굉장히, 굉장합니다. 심지어 모두 제조사의 순정 모습이지요. 전통적으로 자동차디자인에서 중요시 여겼던 예리한 균형감과 깊은 조형미, 은유적인 표현 등은 온데간데 없습니다. 극단적으로 과장된 형상이 난무하죠.

요즘 일본차 스타일링은 건담 같다는 평가처럼, 정말로 애니메이션 작가가 그린 자동차 같습니다. 애니메이션의 특징은 과장입니다. 짧은 시간에 한정된 화면에서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해야 하죠. 그래서 중요한 부분은 매우 강하게 표현하고, 필요 없는 부분은 아예 생략해 버리기도 합니다. 요즘 일본차, 그 중에서도 일본 내수용차 스타일링이 딱 그렇습니다. 전통적인 자동차디자인 가치관으로 보면 너무 과장됐고 가벼우며, 직설적이고 저렴하기 그지 없습니다.

한때 'Japanese Classic' 이라 불릴 만큼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줬던 그들의 스타일링실력이 어쩌다 이렇게 초라해진 것일까요? 여기에는 내수시장에 함몰된 그들 내부 사정이 있습니다.

일본도 한 때는 앞선 자들을 따라잡아야 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해외에서뿐 아니라 일본 국내시장에서도 그랬습니다. 유명 해외브랜드를 열심히 벤치마킹해 차를 만들면 수출뿐 아니라 일본 국내시장에도 통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유럽이나 일본이나 잘 팔리는 차들의 모양이 크게 다르지 않았지요. 세단이나 해치백이었습니다. 모터리제이션으로 인해 모든 집집마다 마이카 시대가 열렸던 반 세기 전부터, 일본만의 독자적인 시장이 형성되기 전인 90년대 초반까지의 일입니다. 해외 브랜드에서 이미 만든 차종에, 자신들만의 맛을 살짝 더한 정도로 디자인했으니 비교적 수월했을 겁니다.

그러나 자동차가 생필품으로 자리잡고 생활에 밀접해 지면서, 자동차 개발에 일본 국내만의 독특한 사정에 의한 독자적인 기획이 더해졌습니다. 90년대들어 일본 내수용차들은 일본시장만의 특화된 방향으로 향하게 됩니다. 1995년 등장한 다이하츠 무브의 초대형 히트는 2019년 현재 기형적 박스경차가 가득한 일본 내수 자동차시장으로 향하는 출발점이었습니다.

멋있는 외국 차들을 따라 만들어 국내에 팔면 됐던 과거와 달리, 이제 독자적인 자기들만의 차를 만들어내야 했던 것이죠. 세단도 해치백도 SUV도 아닌 ‘그 무엇인가’를 말입니다. 이런 완전한 신차종을 만들 때, 회사의 개발승인을 획득하는 가장 검증된 방법은 객관적 숫자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일본 도로사정에 맞게 차체크기가 얼마나 작은지, 경차규격에 얼마나 딱 맞는지, 하지만 그 안에서 내부 공간은 또 얼마나 넓은지, 등등의 이야기를 숫자로 제시하는 것이죠. 객관적 수치를 근거로 이야기가 오가니, 개발승인을 받기도 편하고 주기도 편합니다.

그렇게 만든 모델이 잘 팔리면, 다음 모델에서는 더 매력적인 숫자로 이야기합니다. 구형보다 몇 밀리미터 더 높아졌고, 몇 밀리미터 더 넓어졌고, 몇 개의 수납함을 추가했으며… 등등. 역시나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숫자로 이야기하니, 빈 카운터로 가득한 경영진들을 이해시키기 쉽지요. 이렇게 일본 내수용 차는 점점 더 숫자로만 이야기하는 숫자투성이의 디자인이 되어갔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기능성 숫자와 멋진 스타일링은 양립하기 쉽지 않습니다. 두 마리 토끼와 같습니다. 단적인 예로 천장은 높을수록, 실내는 네모날수록 공간 활용도가 높아지지만 밖에서 본 스타일링은 멋 없고 딱딱해지죠. 디자인이란 결국, 뛰어난 활용성과 멋있는 스타일링 사이에 교묘한 타협점을 찾아내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일본차는 멋있는 외국차를 따라 했던 과거와 달리, 스스로 답을 찾아내야 하는 위치에 오르자 숫자만 쫓았습니다. 멋은 주관적이고 숫자는 객관적이며, 멋은 검증되지 않았고 숫자는 검증된 것이라 생각했을 겁니다. 그들에게는 더 나은 숫자가 곧 정답이었던 것입니다.

예술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행위입니다. 그 옛날 조각가들이 더 아름다운 형상을 다듬어내고, 더 유려한 조형미를 추구할 때의 근거가 숫자는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매우 깊은 감각적 영역 어디쯤을 탐색하는 행위죠. 그것을 찾아내는 과정은 지극히 감각적이고 추상적이지만 그 결과물은 확실히 사람들을 감동시킵니다. 우리들은 자신도 모르는 멋에 대한 감이 있고, 예술가들은 스스로의 감각을 바쳐 그것을 찾아내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숫자와 기능성만으로 내달려온 일본차 디자이너들에게는 바로 그 감각적 영역 찾기가 빠져있었습니다. 십 수년 동안 기능성 위주로만 생각해 오면서 조형미에 대한 감각, 멋있는 형상을 다듬어낼 줄 아는 능력, 이런 것들이 줄어들어 버렸습니다. 디자이너는 예술가와 공학자 양쪽 면을 모두 갖추어야 하는데 예술적 영역을 등한시해온 탓입니다.

내수시장 만으로는 별 문제 없었습니다. 이미 그들 시장은 해외브랜드가 만들지 않는 독보적인 차들로 가득 차버려 침범 당할 위기도 없었고, 하던 것처럼 구형보다 나은 숫자로 도배된 신형을 내놓으면 그럭저럭 팔렸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퇴화된 디자인감각이 수출용 차에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경쟁자라 생각하지 않았던 상대가 멋진 디자인으로 치고 올라오면서 문제가 불거졌지요.

위 사진은 동시대 혼다 어코드와 현대 쏘나타입니다. 일본차는 여전히 실내크기 등 숫자로 증명할 수 있는 부분에만 힘을 쏟은 탓에 외관 스타일링은 지극히 보수적입니다. 아름다움이나 신선함에 대한 추구는 별로 눈에 띄지 않습니다. 반면 YF쏘나타의 스타일링은 유려하고 관능적이며, 화끈했습니다. 이는 미국에서도 꽤 큰 반향을 일으켜서 정확한 숫자로도 영향이 나타났습니다. 현대차 점유율이 급증한 것이죠.

이때 당시 저는 일본의 디자인회사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토요타와 닛산이 연달아 현대의 YF쏘나타와 그랜저HG를 사들여 디자인과 만듦새를 분석했고, 무척 당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미팅 왔던 그들로부터 직접 말입니다.

세계금융위기로 모든 자동차회사의 판매대수가 급감했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물론 디자인 덕은 아닙니다만)한국차는 현상유지 중이었고, 게다가 YF와 K5 등 스타일링까지 매우 관능적인 차가 연달아 출시됐던 탓에 한국차의 존재감이 크게 뛰어올랐습니다. 일본차 회사들은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하마터면 한국차에게 밀릴지도 모를 ‘존재감’이 일본차의 화두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일본 자동차회사가 현대기아차를 가장 열심히 뜯어본 게 이 무렵일 겁니다. 분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일본차 스타일링이 세계금융위기 직후였던 2010년을 기준으로 크게 바뀌었습니다. 얌전함을 버리고, 보수적인 접근을 버리고, 과격하고 적극적인 분위기로 존재감을 내도록 방향을 틀었습니다. 2010년에 처음 선보인 렉서스 스핀들 그릴 하나만 보아도 극적인 변화를 단번에 알 수 있지만, 토요타나 닛산, 심지어 미츠비시까지 모두가 그랬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이 무렵 현대 기아차의 과감한 생김새가 일본차 스타일링 방향선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업계 아는 사람만 아는 비밀 아닌 비밀입니다.

자, 이제 일본차가 디자인으로 존재감을 나타낼 차례. 그들에게 스타일링 존재감을 높여야 하는 숙제가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예술적 영역을 한동안 등한시해왔던 일본차 디자이너들에게 그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습니다.

예술적 관능미로 존재감을 어필해야 하는데, 예술적 감각이 줄어들었지요. 그러니 존재감만 추구하게 된 것입니다. ‘건담 같다’는 요사이 일본차 디자인평가는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단시간에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에니메이션에서 과장된 수법을 쓰는 것처럼, 예술적 조형미 없이 존재감을 높이다 보니 과장된 형상만 남는 것입니다. 존재감을 아름다움으로 승화하는 것이 아니라 과장과 현란함으로 뽑아내는 것이죠. 화면 안에서 잠깐의 러닝타임동안 짧게 접하는 에니메이션에서는 문제가 없지만, 우리 동네의 일상에서 늘 접하는 물건으로는 너무 과격한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 보는 이도 만드는 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너무 이질적이고 괴상했던 렉서스의 스핀들그릴도 보는 이의 눈에 익숙해졌고, 만드는 이들 또한 손에 익은 듯 합니다. 새로 나오는 렉서스들의 스타일링 완성도가 점점 더 올라가고 있는 것이죠.

2015년식 프리우스(좌)와 2019년식 프리우스(우)

또한 일본차 일부에서는 너무 나갔다 싶었는지 정리하는 모습 또한 보이고 있습니다. 심각하게 과격한 스타일링으로 미국 고령층에서의 평가가 곤두박질 친 프리우스가 페이스리프트에서 구형보다 얌전해진 케이스가 그것입니다.

디자인, 그리고 스타일링은 살아 숨쉬며 진화하는 생명체와 같습니다. 계속적으로 움직이고 바뀝니다. 과거 우리가 우러러봤던 일본차보다 어느새 한국차 디자인이 더 낫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처럼 언제 어디서 또 어떤 변화가 찾아올지 모르죠.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자동차 디자인은 예술과 공학 양쪽 모두를 머금어야 한다는 것.

모두에 대한 깊은 탐구를 유지하고 밸런스를 잃지 않는다면 어떤 변화가 와도 대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차 디자이너들이 한동안 숫자에만 치우치다 아름다움을 잃게 된 것이나, 그 반대의 경우를 겪지 않으려면 말이지요.

김준선 칼럼리스트 autodesigner@naver.com<자동차 전문 매체 모터그래프(http://motorgrap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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