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글러vs콜로라도, 지금과 다른 삶을 꿈꾼다면..

조회수 2019. 11. 4. 09:1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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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오프로드 주행성능 확인하기 위해 떠난 여행이었다. 그런데 랭글러와 콜로라도는 드림카의 기준까지 뒤집었다

‘친구란 당신에게 완벽한 자유를 주는 사람이다.’ 미국 싱어송라이터 짐 모리슨의 말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자동차는 내게 둘도 없는 친구나 다름없다. 언제나 자동차라는 친구와 함께 자유를 꿈꾼다. 욕심도 많지. 함께하고픈 친구도 여럿 있다. 고성능 스포츠카와 함께 끝없이 이어진 고속도로를 내달리는 자유, 컨버터블 지붕 열어젖히고 하늘을 만끽하는 자유, 초호화 세단에 앉아 시끄러운 도시 소음과 이별하는 자유를 갈망해왔다. 그중에서도 ‘어디로든 훌쩍 떠날 수 있는 자유’를 최고 가치로 여긴다.

함께라면 어떤 여정도 두렵지 않은 친구,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동반자를 이상형으로 점 찍은 이유다. 지프 랭글러는 버킷리스트에 오른 지 이미 오래다. 없는 길도 만들어 갈 듯 기운찬 분위기에 반해 어릴 적부터 절친이 되길 꿈꿔왔다. 미국산 픽업도 항상 곁에 두고 싶은 친구 중 하나였다. 영화나 뮤직비디오를 볼 때면 짐 몽땅 싣고 떠나는 여행이 그렇게 부러웠다. 하지만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친구였다. 정식 수입 판매하는 브랜드가 없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넋 놓고 군침만 흘릴 뿐이었다.

기회는 언제든 찾아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쉐보레가 콜로라도를 국내 시장에 출시하면서 꿈이 한 발짝 다가왔다. 닭이 지붕에서 내려와 앉은 셈. 과연 콜로라도는 내가 쫓던 닭이 맞을까? 어떤 길이든 함께할 수 있는 든든한 동반자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합격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랭글러를 불러 세웠다. 꽁무니 바짝 쫓아갈 수만 있다면 두 번 확인할 필요 없이 통과다. 혹시 몰라 구렁에 빠진 콜로라도 구출을 위해 두툼한 밧줄도 하나 챙겼다. 그런데 웬걸 뒤처지기는커녕 랭글러를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빨리 오라고 손짓하는 여유까지 보인다.

TOUGH COOKIES

겉보기에도 부드러운 케이크와 달리 쿠키는 울퉁불퉁 거칠고 단단해 보이는 분위기를 풍긴다. 자신만만하고 늠름한 사람을 일컬어 터프 쿠키라고 부르는 이유다. 랭글러와 콜로라도 외모를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두 차 모두 우락부락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생김새를 자랑한다. 일단 크기부터 압도적이다.

랭글러의 차체 길이×너비×높이는 4885×1895×1850mm다. 휠베이스는 3010mm에 달한다. 현대 팰리세이드보다 110mm 더 길다. 하지만 넓은 실내 공간을 기대하긴 조금 힘들다. 두꺼운 프레임에 실내 공간을 내어준 까닭이다. 지붕과 문짝을 모두 떼어 내고 달리다가 차가 뒤집히는 상황이 발생하면 승객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넓은 너비도 우람한 타이어를 껴안기 위해 튀어 나온 휠하우스 때문이지 실내 공간과는 별 관계없다. 실제로 1열 시트의 양 끝 길이를 측정한 숄더룸은 1415mm에 불과하다. C 세그먼트 세단과 비슷한 수준이다. 성인 남성 2명이 올라타면 생각보다 어깨 사이가 가까워 괜히 어색해질 수도 있다.

콜로라도는 미국에서 미드-사이즈 픽업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크기는 역시 상대적이다. 콜로라도주 면적보다도 한참 작은 한국 땅에선 XXL 사이즈다. 차체 너비(1885mm)와 높이(1830mm)는 랭글러보다 작지만 훨씬 길쭉하다. 5415mm에 달한다. 제네시스 G90 길이를 29cm 잡아 늘인 리무진 버전보다 단 8cm 짧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광활한 공간이 펼쳐진다.

2열 시트를 들어 올리면 시크릿 수납함이 모습을 드러낸다. 비상금은 여기로

콜로라도의 1열 숄더룸은 1460mm. 넓적한 암레스트만 봐도 옆에 탄 남자와 어깨 부대낄 일은 없어 보인다. 2열 공간도 여유롭다. 무릎 공간은 910mm로 현대 쏘나타보다 널찍하다. 등받이를 절묘한 각도로 눕히고, 허리 받침 부분을 깊게 파내 운전자세가 한껏 느긋해진다.

POWER RANGERS

쿠키가 모두 동그랗다는 생각은 선입견이다. 미국산 터프 쿠키 둘은 네모반듯한 사각형으로 가득하다. 오스트리아의 한 예술가는 이렇게 말했다.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 인간이 만든 사각 조형물, 랭글러와 콜로라도는 자연에 잘 녹아들 수 있을까? 앞에 놓인 거대한 산이, 세차게 흐르는 강물이 둘을 내쫓진 않을까? 우리는 궁금증 가득 안고 초록 숲과 파란 하늘을 향해 뛰어들기로 마음 먹었다.

출발지는 서울역. 첫 상대로 콜로라도의 키를 빼 들었다. 스마트키가 아니라 시동을 걸기 위해선 키를 주머니에서 정말로 빼야 한다. 이 또한 미국(이라 쓰고 시골이라 읽는다) 감성이려니 하고 위안 삼았다. 키를 넣고 꼬집어 콜로라도를 잠에서 깨웠다. 야수의 숨소리치고 대단히 조용하다. IT 기기 마니아 사이에서 ‘다다익램’이란 말이 유행이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액세스 기억장치인 램(RAM)이 많아서 나쁠 게 없다는 뜻이다. 탑기어 사무실에서 난 ‘실린더 다다익선’을 입에 달고 산다. 4기통 엔진이 판치는 다운사이징 엔진 시대에 6기통 엔진만 만나도 시승이 즐겁다. 부드러운 가속, 고요한 엔진, 잔잔한 진동 등 장점은 차고 넘치지만, 단점을 찾기 어려운 까닭이다.

콜로라도도 마찬가지. V6 3.6L 엔진을 벗 삼아 보드라운 발걸음을 시작했다. 서울을 빠져나가는 길에 남산3호터널을 마주했다. 평소와 같이 혼잡통행료를 지불하려는 찰나 수납원이 ‘화물차는 무료에요. 통과하세요’라는 말을 전한다. 취득세·자동차세 혜택만 있는 줄 알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덕을 보니 괜히 흐뭇하기까지 했다. 화물차 혜택은 모두 챙기지만 승용차와 비교해 잃는 점은 거의 없다.

여느 SUV와 다르지 않아서다. 오히려 출력은 더 넉넉하고 실내는 한층 정숙하다. 고속으로 달릴 때 들이치는 풍절음도 말끔히 틀어막았다. 보디 온 프레임 특유의 통통거리는 승차감도 찾아보기 힘들다. 얼마 전 기아 모하비 더마스터를 시승하고 엉덩이를 턱턱 치는 진동을 보디 온 프레임의 한계로 단정 지었는데, 쉐보레는 단점을 잘도 지워냈다.

인테리어 디자인도 이만하면 합격점이다. 비스킷만 한 버튼이 조금 촌스럽긴 하지만 모두 픽업 제조 100년 노하우가 담긴 디자인이다. 화물차 운전자는 짐을 싣고 난 뒤 장갑을 그대로 낀 채 운전하는 경우가 많다. 버튼이 작으면 여러 개가 한 번에 눌릴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이를 고려해 쉐보레는 큼지막한 버튼을 집어넣었다. 스티어링휠에 자리 잡은 버튼은 고무로 씌워 먼지 유입을 방지했다. 무심한 듯 친절한, 콜로라도는 딱 ‘츤데레’ 스타일이다.

휴게소에 들러 랭글러로 차를 바꿔 탔다. 탐험의 아이콘은 어딜 가나 시선 집중. 나이 성별도 따지지 않는다. 우리 엄마도 지나가는 랭글러를 보고 감탄할 정도다. 노란색 페인트를 뒤집어쓴 시승차는 어련할까. 타고 내릴 때 주변 시선을 즐기는 ‘하차감’ 하나는 끝내준다. 정작 중요한 승차감은 별로(많이 좋아진 건 확실하다). 일단 시트를 몸에 맞춰 조정하기 힘들었다. 높이를 최대한 낮춰도 교실 나무 책상다리에 앉은 듯 다리가 직각으로 떨어진다. 가속 페달은 뒤로 밀어 밟는다기보단 아래로 눌러 밟아야 할 정도로 누워있다. 자세가 어정쩡해서인지 조금 지나 허리가 아파왔다.

고속 주행 안정성은 만족스럽다. 키는 높지만 무거운 프레임이 아래에 자리하고 있어 차체가 들뜨는 법이 없다. 다만 귓가를 어지럽히는 소음으로 가득하다. 조립식 패널은 ‘찌그덕’, 거대한 머드 타이어는 ‘웅웅’, A필러 부근은 풍절음으로 ‘씩씩’댄다. 랭글러를 구매하는 이유가 오프로드 주행 성능보다 디자인 때문이라면, 루비콘보단 오버랜드를 택하는 편이 낫다. 적어도 타이어 구름 소리는 잦아들 테니까. 그래도 여행가는 기분 내는 데는 랭글러가 최고다. 소음쯤은 신나는 음악과 떠들썩한 친구들 수다 소리로 잠재우면 그만이다.

인테리어 디자인은 뒤에 탄 친구들에게 자랑할만하다. 이전 랭글러 인테리어는 바깥 디자인 보고 들뜬 마음에 찬물을 끼얹었다. 껌껌하고 칙칙한 삼촌 방 같달까? 바닥부터 벽지까지 모두 리모델링이 절실했다. 새로운 랭글러는 각종 아웃도어 제품으로 꾸민 친구 방에 온 기분이다. 요샛말로 ‘힙’하다. 가죽으로 씌운 네바퀴굴림 조작 레버와 빨갛게 칠한 디퍼렌셜 잠금장치가 포인트. 보고만 있어도 든든하다. 센터페시아 모니터를 오프로드 페이지로 설정하면 차체 기울임 정도를 보여주는데, 그래픽이 멋있어 평평한 도로에서도 괜히 한 번씩 들여다보기를 반복했다.

JUST GO FOR IT

드디어 눈앞에 넘어야 할 산, 건너야 할 강이 모습을 드러냈다. 랭글러는 물 만난 고기인 양 신이 난 표정이다. 콜로라도는 살짝 긴장한 눈치. 연이은 태풍 탓에 노면이 질척해져 있었다. 미끄러운 진흙과 부러진 나뭇가지 위로 달렸다. 살짝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냥 즐기기로 했다. 굴림 방식은 두 차 모두 오토로 설정했다. 사막이나 바위 넘는 상황이 아니라면 굳이 네바퀴굴림까지 쓸 필요는 없다. 비포장 산길 정돈 네 바퀴에 끼운 오프로드용 타이어만으로도 충분하다.

어라!? 이 문구 어디서 봤는데?

그런데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길을 잘못 들어 되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미 꽤 깊숙이 들어온 까닭에 후진으로 돌아가기는 무리다. 길 바로 옆 비탈진 경사를 올라 차를 돌리기로 결정했다. 한눈에 봐도 경사각이 장난 아니다(길이 아니니까 당연하지만). 순서는 앞서간 콜로라도 먼저. 이때다 싶어 4L로 구동방식을 바꿨다. 곧장 꺾어 올라가면 앞범퍼 긁어먹을 게 불 보듯 뻔하다. 왼쪽 앞바퀴부터 둔덕에 걸치고 그대로 스티어링휠을 꺾어 올라탔다. 생각보다 너무 쉽게 해내는 모습에 조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어서 랭글러도 무리 없이 앞머리를 돌렸다. 차체 길이가 콜로라도보다 짧아 한결 가뿐하다.

바로 여기! 콜로라도는 랭글러를 신발로 쓴다

첫 번째 관문을 넘고 나서부턴 순탄한 여정이 이어졌다. 잘 닦인(?) 비포장도로 정도는 랭글러와 콜로라도에게 ‘피스 오브 케이크(누워서 떡 먹기)’다. 폭이 조금 넓은 길을 만나면 뒷바퀴를 날리기도 하고, 물웅덩이를 마주하면 물장구 튀기면서 아이처럼 뛰놀았다. 1차전을 끝내고 점심을 먹기 위해 마을로 내려왔다. 식당은 바로 반대편. 강물이 우리를 가로 막아섰다. 원래 차가 다니는 길인데, 불어난 물이 길을 집어삼켰다. 질러가면 1분, 돌아가면 10분이 걸린다.

고민 없이 지름길을 택했다. 랭글러와 콜로라도가 넘을 수 있는 물 높이는 각각 최고 760mm, 800mm. 깊이를 가늠하기 위해 신발과 양말 벗고 확인에 나섰다. 무릎에 조금 미치지 못했다. 깊어봤자 60cm 정도인 셈. 거침 없이 풍덩 뛰어들었다. 이쯤 되면 이미 눈치챘을 터다. 그냥 랭글러·콜로라도와 함께 물에 빠지고 싶었다. 쯧쯧… 사내들이란. 포기하고 돌아갔으면 벌써 도착해서 밥 먹고 있었을 텐데.

식후엔 역시 금강산 구경이다. 멋진 곳에서 사진도 찍을 겸 횡성에 자리한 산 정상으로 향했다. 포장도로는 아니지만 길이 잘 닦여 있어 굳이 SUV가 아니어도 쉽게 오를 수 있는 곳이다. 이번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빗물에 노면이 쓸려서 깊은 구덩이가 생겨 있었다. 스키장 모글 코스가 부럽지 않다.

산을 오르자 앞뒤좌우 네 바퀴가 모두 따로 놀기 시작한다. 콜로라도는 깊은 구덩이를 지날 때 한 쪽 바퀴가 들뜨기도 했다. 좌우 바퀴를 굵은 막대 하나로 잇는 솔리드 액슬 방식 리어 서스펜션의 한계다. 물론 네바퀴굴림 덕분에 꿀떡꿀떡 넘어가는 덴 문제 없다. 하지만 랭글러의 스웨이바를 끊는 기능이 부러운 건 사실이다. 랭글러는 스웨이바 버튼 하나만 누르면 붕 떠 있는 바퀴를 축 늘어트려 노면을 부여 잡는다.

DREAM PARTNERS

정상에 올라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 태양을 향해 마주 섰다. 아래로 시선을 돌리니 초록 숲은 붉은 기운 머금고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뒤로 돌아 랭글러와 콜로라도를 지긋이 바라봤다. 마치 날개라도 얻은 기분이다. 어디로든 훌쩍 떠날 수 있는 자유의 날개. 그리고 머릿속에는 이 친구들과 함께 누리고 싶은 삶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순간 이런 차가 바로 ‘드림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드림카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돌아오는 답은 값비싼 자동차가 대부분이다. 돈 많이 벌고 싶다는 의미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저 화려하고 비싼 차를 사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허무해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꿈꾸던 차를 타고 있지만 삶은 차를 사기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까닭이다. 비싼 차를 사봤자 가장 큰 변화는 눈앞 엠블럼뿐이다. 더 좋은 차를 사면 나아질까 싶은 기대감에 또 하루 지루한 출근길에 오르는 게 우리 삶이다.

만약 자동차가 단순한 꿈이 아니라 ‘꿈꾸는 삶을 이뤄주는 동반자’라면 어떨까? 없던 꿈도 만들어 주는 친구라면? 함께 꿈 찾아 떠나기 바빠 지루할 틈 없을 테다. 랭글러와 콜로라도는 이런 의미에서 드림카로 부족함이 없다. 오지로 떠나는 캠핑, 산 넘고 물 건너 떠나는 여행이 당신의 꿈이 아니라도 좋다. 랭글러, 콜로라도와 함께한다면 적어도 일상은 따분해도 주말이면 즐거움이 넘칠 테니까.

이현성

사진 이영석, 박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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