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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P SUV!".. SUV는 어쩌다 그들의 타깃이 되었나

이완 입력 2019.09.18 10:19 수정 2019.09.18 10:2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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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터쇼 현장에 'STOP SUV' 푯말이 등장했다

[이완의 독한(獨韓) 이야기] 지난 토요일(14일), 미디어 행사를 끝낸 ‘2019 프랑크푸르트모터쇼’가 일반 관람객을 맞았다. 그런데 이날 가장 많이 뉴스에 오르내린 것은 화려한 모터쇼 현장이 아닌, 박람회장 주변에서 벌어진 시위 소식이었다.

사진=DUH

그린피스와 도이체움벨트힐페와 같은 환경단체, 그리고 독일 자전거 클럽 등이 주도한 이 날 시위에 (주최 측 추산) 2만 5천 명이 참여했다고 독일 언론들이 전했다. 그런데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이튿날에는 수백 명의 시위대가 박람회장 입구를 막아 관람객 입장을 저지하려 했으며, 전시된 자동차 위에 일부 환경단체 회원들이 올라가 ‘기후살인자’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붙들리기도 했다.

이들 요구는 크게 5가지였다. 내연기관 시대를 즉각 끝낼 것, 소형 전기차로 전환할 것, 보행자와 자전거 친화적인 도시로 만들 것, 2035년까지 CO2 배출이 없는 교통 체계를 만들 것, 그리고 다섯 번째로 기름 먹는 SUV 반대였다. 특히 ‘STOP SUV’ 구호가 컸는데, 어떻게 이런 대규모 시위가 발생한 것이고, 왜 SUV가 주 타깃이 되었던 걸까?

출처=독일 그린피스 SNS

◆ 한 학생에 의해 촉발된 환경 아젠다

과거에도 모터쇼 현장에서 시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처럼 대규모의 시위는 아니었다. 어떻게 이런 규모의 시위가 가능했던 걸까? 시작은 지난해 여름으로 거슬러 간다. 그레타 툰베리는 스웨덴 국회의사당 앞에서 지구온난화에 적극 대응하지 않는 정치인들을 향해 1인 시위를 벌였다.

그녀의 외침은 전 세계 학생을 비롯해 다양한 이들이 참여한 ‘미래를 위한 금요일(프라이데이스 포 퓨처)’ 이름의 시위로 발전했고, 유럽 의회 선거 기간과 맞물리며 정치권까지 그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됐다. 짧은 시간 강력한 환경 아젠다가 마련된 것이다.

‘미래를 위한 금요일’의 주장은 크게 3가지로 분류된다. 화석 연료 시대의 끝, 재생 에너지 투자 확대, 그리고 자전거를 비롯한 대중교통 중심의 도시 계획이다. 여기에 독일 지부는 2035년까지 독일 내 온실가스 배출이 없어야 한다는 목표치를 추가로 내걸었다. 앞서 소개한 모터쇼 시위대의 5가지 요구와 일치한다.

환경 이슈는 변방의 작은 목소리가 아닌, 글로벌 이슈의 핵심 중의 핵심이 되었다. 그리고 전면에 ‘미래를 위한 금요일’이 나섰다. 이들의 요구 중심에는 자동차가 있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모터쇼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이 조직적인 시위로 자리 잡은 후 열린 첫 번째 대규모 모터쇼였다. 이런 상황에서 시위는 예견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시위 중인 그레타 툰베리. 노벨상 후보로 언급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영국에서 미국까지 태양광과 수중 모터를 이용한 경주용 보트로 대서양 횡단에 성공했다 / 사진=위키피디아, Anders Hellberg

◆ 反 SUV 정서에 불 지른 베를린 교통사고

그렇다면 SUV는 왜 시위대의 타깃이 된 걸까? 유럽에는 반 SUV 정서라는 게 있다. ‘이기적인 자동차’ 혹은 ‘탱크’라 부르며 SUV를 달갑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들이다. 하지만 그런 유럽에서도 SUV는 대세론은 꺾이지 않았다. 빠른 속도로 시장 지배력을 넓혀갔다.

그런데 디젤 게이트가 터졌다. 잠잠하던 SUV 비판의 목소리가 다시 표면 위로 부상했다. 무겁고 덩치 큰 SUV는 환경과 교통 위협의 자동차라며 제한이 필요하다는 요구에 힘이 실렸다. 환경 단체는 물론 일부 정치인들도 SUV에 세금을 더 부과하는 세법 개정이 필요하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독일 베를린에서 안타까운 교통사고 소식이 들려왔다. 시속 30km/h 구간에서 시속 50km/h로 달리던 포르쉐 마칸 한 대가 전복되며 인도에 있던 사람들을 덮친 것이다. 그 자리에서 4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 중에는 엄마가 보는 앞에서 사고를 당한 4살 아이도 있었다.

이 사건은 반 SUV 정서에 불을 질렀다. 그렇지 않아도 환경 문제로 자동차가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 상황에서 SUV를 이대로 놔두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고, 그 목소리는 고스란히 모터쇼 시위로 이어졌다. 모터쇼 미디어 행사 당시 포르쉐 CEO는 베를린 사고를 의식한 듯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저는 도시에서 SUV 운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SUV를 향한 비판이 과도하다는 반론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사진=포르쉐

◆ 과연 실제로 SUV가 더 위험한가?

빌트와 같은 보수적인 타블로이드는 물론, 쥐트도이체차이퉁처럼 비교적 진보적인 매체도 SUV에 대한 대응이 다소 ‘감정적’이라며 반론을 폈다. 쥐트도이체차이퉁의 경우 소형차와 SUV의 충돌 시 소형차가 더 큰 충격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보행자 충돌 시 SUV가 더 위험하다는 주장은 객관적으로 증명하기 어렵다는 전문가의 발언을 소개하기도 했다.

궁금한 마음에 유로 NCAP의 보행자 충돌 항목을 들여다봤다. 드러난 결과만 봐서는 SUV가 보행자에게 무조건 위협적이라 하기는 어려웠다. 현재까지 실시한 2019년 유로 NCAP 충돌 테스트는 25개 모델, 28회로 그 중 SUV가 14개였다. 시트로엥 DS 3와 C5 에어크로스 같은 SUV의 경우 상대적으로 나쁜 성적을 받았지만 토요타 RAV4나 렉서스 UX, 또 폭스바겐 T-크로스와 스코다, 세아트, 벤츠 등이 내놓은 신형 SUV들은 보행자 보호에서 상위권 수준을 보여줬다.

과거에는 차체가 높은 SUV가 보행자에 더 위협적이었지만 요즘은 SUV 충돌 안전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빠르게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 덧붙여 쥐트도이체차이퉁은 SUV가 유독 사고를 많이 일으키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통계 자료를 봐도 독일에서 자동차가 일으킨 교통사고 중 SUV의 비율은 8% 수준이다.

환경 부분은 어떨까? 더 많이 가스를 내뿜는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SUV와 세단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차이는 km당 4.8g 정도밖에 안 된다는 두덴회퍼 교수의 발언을 소개했다. 생각보다 큰 차이가 아니라는 의미다. 물론 그렇다고 환경 및 안전성에서 SUV가 모두 덜 위험하다는 뜻은 아니다. 특히 요즘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대형 SUV는 배출가스와 충돌 안정성에서 여전히 상대적으로 좋지 않고, 이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2019 프랑크푸르트모터쇼 현장 / 사진=IAA

◆ 환경 이슈, 부담만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내연기관 퇴출 요구, SUV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제조사에 무조건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전기차로 빠르게 전환한 제조사들 입장에서 보면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는 친환경 담론은 인프라 구축에 굼뜬 정부를 움직이는 압박 카드가 될 수 있다. 인프라 구축이 더 빨라지면 그만큼 전기차 시대에 빨리 다가서는 것이고, 이윤을 내는 시간 역시 더 빨리 찾아올 것이다.

SUV도 마찬가지다. 차 바닥에 배터리가 깔리는 현재의 구조상 SUV는 전기차 시대에 각광받을 수밖에 없다. 물론 대형화 되고 있는 SUV의 안전성을 키우는 것은 완성차 업체들의 몫이며, 이 부분이 소홀히 다뤄져서는 안 된다. 소비자들도 덩치가 커지는 만큼 탑승자는 물론 보행자 안전성까지 고려된 SUV로 거듭나기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어쨌든 요즘 분위기만 봐서는 유럽은 말 그대로 ‘환경적이냐’, ‘그렇지 않느냐’가 모든 것의 기준이 된 듯하다. 그리고 자동차는 이 이슈의 중심에 있다. 과연 누가, 어떤 제조사가 이런 요구에 빠르고 정확하게 대응할 것인가? ‘환경’과 ‘안전성’은 자동차 업계에 생존의 키워드가 되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완

이완 칼럼니스트 : <모터그래프> 등에 칼럼을 쓰고 있으며 ‘이완의 카폐인’이라는 자동차 동영상 콘텐츠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다. 현재 독일에 살고 있으며, 독일의 자동차 문화와 산업계 소식을 공유하는 일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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