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던 콘서트

조회수 2019. 12. 9. 07:2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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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간 페라리를 그려온 거장이 <탑기어> 초청장을 받아 들고 국민대학교에 왔다. 페라리 일흔 겹 나이테 속에 영혼을 짙게 담은 남자, 피닌파리나 디자이너 마우리찌오 콜비가 한국에서 펜을 고쳐 쥐었다

“자동차는 이동수단이 아닙니다. 진정한 예술품이죠.” 피닌파리나 수석 디자이너 마우리찌오 콜비가 말했다. 따지고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 그토록 가슴을 울렸던 이유는 뭘까. 그의 손. 30년간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슈퍼카만을 그려온, 저마다의 추억 속 드림카를 탄생시킨 그 손을 바라보고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피닌파리나, 페라리를 그리다

250, 디노 206, 375 MM, F512 테스타로사, F40, F50, F355, 360 모데나, F450, 458 이탈리아…. 당신이 이 중 몇 대와 사랑에 빠졌든, 그 이유가 무엇이든, 이 목록은 피닌파리나가 디자인한 페라리 중 극히 일부일 뿐이다. 1951년 세르지오 피닌파리나와 엔초 페라리가 손을 잡던 순간부터 자동차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예술가의 손끝에서 슈퍼카의 전설이 새로 그려졌다. 자동차 역사 태동기에는 차체(body)와 차대 (frame)를 각기 다른 곳에서 제작했다. 보디 온 프레임 방식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자동차 제조사는 단지 엔진·변속기· 서스펜션·섀시 제작을 담당했다. 다시 말해, 달리는 물건을 만드는 곳에 불과했다. 공학적 측면 완성을 제조사가 담당했다면, 미학적 접근은 마차 만들기에 일가견이 있던 카로체리아(코치빌더)가 맡았다.

차체·헤드램프·보닛·트렁크·좌석과 같은 의장품 제작이 그들 몫이었다. 달리는 기계에 영혼을 불어넣는 일, 많은 이가 기억하고 사랑하는 자동차의 모습을 완성하는 공정, 제품을 달리는 예술품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이 온전히 그들 손에 맡겨졌다. 자동차 제조사가 내부 디자인 센터 역량을 강화하고 모노코크 섀시가 보편화된 뒤에도 카로체리아는 디자인하우스로서 역할을 이어갔다. 비록 오늘날, 그들이 설 자리는 많이 남지 않았지만 자동차 역사에 그들이 그려낸 발자취는 짙고도 아름답다. 1951년 토리노에서 온 남자와 모데나에서 온 남자가 손을 맞잡았다. 세르지오 피닌파리나와 엔초 페라리가 파트너십을 맺었다. 그 후로 달리는 예술품이 수도 없이 탄생했다. 그 둘이 만난 이후로 2012년 마지막 합작품 F12 베를리 네타가 나오기까지 피닌파리나 손을 거치지 않은 페라리는 1973년 디노 308 GT4 단 한 대뿐이다. 역사에 가정 따윈 없다. 그러나 피닌파리나가 없었다면 페라리 역사는 물론, 자동차의 지난날이 조금 더 삭막했을지도 모른다.

자동차, 달리는 예술로

“저는 본질적으로 탐미주의자입니다. 자동차에 대한 열정이 큰 예술가죠.” 마우리찌오의 말이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그와 같은 예술가가 혼을 불어넣지 않았다면 자동차는 무미건조한 제품에 머물렀을지 모른다. “자동차 디자이너의 일은 예술과 기술의 중간에 놓인 작업입니다. 때로는 많은 기본요소를 무시하는 일입니다. 훌륭한 디자이너가 되려면 예술적 감성이 필수적입니다.”

마우리찌오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0세부터 그래픽 관련 재능을 인정받았고, 자동차 디자인을 탐미하기 시작했다. 자동차 매거진을 탐독하던 그는 잡지에서 자동차 그리는 직업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30년간 피닌파리나에 재직해오면서 F50·F355·456·캘리포니아 등 수많은 붉은 말을 그려낸 장인이다. 오랜 시간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자동차 디자인 세계 획기적인 변화도 많이 경험했다. 종이와 펜으로 시작해 3차원 VR기기까지 도구의 변화도 무시할 수 없다.

콘서트홀 입구에는 마우리찌오가 그린 순수미술 작품을 전시했다

마우리찌오가 자동차를 그리는 과정은 어떨까? “처음에는 손으로 스케치합니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그려낸 밑그림을 스캔한 후, 태블릿을 이용하여 포토샵 작업을 시작합니다.” 그는 취미로 순수미술 작품활동을 이어간다. 작품을 그릴 때는 온전히 손으로만 그린다. 손과 종이가 맞닿는 즐거움을 잃고 싶지 않아서다. 시대 변화에도 퇴색되지 않는 미학적 영감의 원천은 대체 어디인지 물었다. “외부에서 오는 문화적 영향에 무심하면 안 되겠지만, 영감은 내부에서 나옵니다. 자동차를 디자인하는 모든 과정에는 마법 같은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마법 같은 힘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속 깊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마우리찌오 콜비를 한국에 초대했다. 11월 8일부터 10일까지 3일간, 국민대학교 국제관 콘서트홀에서 ‘카 디자인 콘서트’를 열었다.

디자인, 언어를 초월한 대화

주말, 고요한 캠퍼스에 사나운 배기음이 울려 퍼졌다. 458 스페치알레였다. 페라리 F430도, 테스타로사도 왔다. 맥라렌 720S, 벤틀리 컨티넨탈 GT,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우르스, AMG GT, S 63…. 수많은 슈퍼카, 럭셔리카가 줄지어 들어섰다. 국내 대표 슈퍼카 동호회 포람페와 페라리 오너스 클럽 코리아(FOCK) 회원들 차였다. 불과 1시간도 지나지 않아, 배움의 터전이 모터쇼보다 화려한 자동차 축제로 변했다.

인파가 모여들었다. 두 눈 휘둥그레져서 저마다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관람객은 콘서트를 기다리는 동안 세상 화려한 모터쇼를 즐겼다. 행사와 관계없이 산책을 즐기던 행인들까지 발길을 멈추고 꿈인지 생시인지 눈을 비볐다. 행사 첫날 FMK가 전시한 페라리 포르토피노를 비롯해, 행사 기간 3일 동안 60여 대의 슈퍼카가 콘서트홀 앞에 늘어섰다. 이곳, 국민대학교 캠퍼스에 인파가 모인 이유는 단지 슈퍼카를 보기 위해서 아니다. 그리기 위해서다. 스케치북을 든 관객들이 객석을 가득 메웠다. 카 디자인 콘서트의 주인공,  마우리찌오가 콘서트홀 무대에 오르자,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많은 슈퍼카를 탄생시킨 거장이 자신의 지난 디자인과 비하인드 스토리를 가감 없이 들려주었다. 관객들은 전설적인 슈퍼카의 탄생 비화를 숨죽여 경청했다. 마우리찌오의 담담한 이야기가 그토록 감동적이었던 이유는 그가 그린 디자인 하나하나가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항상 최고와 완벽을 추구하는 페라리를 만족시키기 위해 피닌파리나 디자이너는 치열하게 슈퍼카의 이상을 그려내야 한다. 한 남자의 30년의 열정이 하얀 종이 위에 고스란히 옮겨져 있었다.

F430 오너가 마우리찌오에게 사인을 부탁했다. 3초만에 중고차 가격이 껑충 뛰었다

카 디자인 콘서트 2부는 마우리찌오와 함께 미래 슈퍼카를 디자인하는 시간으로 꾸려졌다. 관객은 저마다 연필을 쥐고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슈퍼카를 그려냈다. 무대 한 편에서 펜을 고쳐 쥔 마우리찌오는 즉석에서 차세대 페라리를 디자인해냈다. 관객은 스크린을 통해 슈퍼카 디자인이 완성되는 과정을 함께 했다. 객석과 무대가 하나의 열정으로 자동차의 미래를 종이 위에 옮겼다.

수많은 디자이너가 균형미를 강조한다. 마우리찌오는 자동차 디자인의 핵심이 조화(hamony)라고 말한다. 균형미와 조화는 언뜻 비슷한 개념 같지만, 엄밀히 말하면 큰 차이가 있다. 균형은 수치화 할 수 있으나, 조화는 결코 숫자로 표현할 수 없다. “정답은 마음속에 있습니다. 우리가 음악을 듣고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었는지 불협화음이 되어버렸는지 바로 알 수 있는 것과 같죠. 우리 마음이 그 음악이 조화롭다고 생각한다면 그게 맞는 겁니다.”

자동차 디자인에서 조화는 라인과 자세로 표현된다. 디자이너는 자신의 영혼을 녹여서 조화로운 자동차를 탄생시킨다. 자동차를 디자인의 첫 단계는 사이드뷰 완성이다. 옆모습이 엔진 배치를 결정하고, 바퀴와 차체 사이 균형감도 확립한다. 마우리찌오는 지식이 자동차 디자이너에게 정말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70년 로드카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결코 미래 페라리를 그릴 수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 명 한 명 맞춤 피드백을 해줬다. 말뿐만 아니라 디자인으로도 손수 응답해줬다

연사와 관객이 호흡하는 2시간의 콘서트가 모두 끝났다. 그러나 관객 대부분이 콘서트홀을 떠나지 못했다. 수많은 참가자가 자신의 디자인과 포트폴리오에 대한 거장의 평가를 듣기 위해 자리에 남았다. 마우리찌오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피드백을 해줬다. 더 조화로운 슈퍼카의 모습을 그리려면 어떤 노력을 하면 좋을지, 관객의 그림 옆에 나란히 맞춤 슈퍼카를 그려주기도 했다. 콘서트가 끝나고도 2시간이 넘도록 참가자 한 명 한 명과 소통했던 마우리찌오의 열정에 진심으로 감동했다. 그보다 가슴을 울린 장면은 그를 바라보는 관객의 눈빛이었다.

‘찰칵! 찰칵!’ 마우리찌오가 디자인을 완성하자, 셔터 소리가 쉬지 않고 울려 퍼졌다

거장에게 디자인을 보여주는 순간의 긴장감, 습작을 설명하고 인정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열정, 가능성을 인정받고 노력할 부분을 확인한 뒤의 행복감이 수십 번 반복됐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평범한 직장인부터 자동차 업계 종사자까지. 수많은 관객이 지금껏 알지 못했던 슈퍼카 디자인의 매력에 흠뻑 젖었다. 

"최고의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단다"

슈퍼카 존재 이유를 꼽으라면, 단 한 글자로 답할 수 있다. 꿈. 슈퍼카는 청춘에게 꿈을 심어준다. 온 세상이 꿈꾸는 페라리의 탄생은 디자이너의 연필과 종이가 맞닿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마우리찌오와 나눈 대화 가운데 절대 잊을 수 없는 대목이 있다.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거장의 대답이었다. “단지 어렸을 적부터 품어온 자동차에 대한 열정이 계속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글·사진 김성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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