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승 롤러코스터, 메르세데스-AMG GT 63 S 4도어

조회수 2019. 12. 22. 10:2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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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를 찢는 도로용 레이스카가 되어 세상의 모든 차를 추월한다

배지를 붙인 모델을 만들었다. 그중 가장 AMG다운 모델은 AMG가 독자 개발한 첫 모델인 GT라고 생각했다. AMG는 50년간 비밀스레 지켜온 가문의 비기를 전수하듯 브랜드가 쌓아 올린 모터스포츠 정수를 순수혈통 GT에게 쏟아냈다. 그러나 웬걸? AMG GT에 뒷자리가 생겼다. 쿠페형 세단 GT 4도어다. 실용성을 생각하면 GT 본연의 운동 성능과 2열 공간, 넓은 트렁크를 가진 GT 4도어에 끌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메르세데스-벤츠는 원래 문이 네 짝짜리 세단 맛집 아니던가.

사실 GT 4도어를 사진으로만 봤을 때는 디자인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조금 짓궂게 말하면 매미 유충처럼 기괴하고 투박해 보였다. 그러나 직접 보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다. 실물깡패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구나 싶었다. 특히 최상위 모델 GT 63 S 4도어(시승차)를 실제로 보면 압도적인 존재감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AMG는 디자인 요소에 고성능 감성을 살릴 때 심장을 뛰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시그니처 파나메리카나 그릴은 GT 특유의 육중하면서도 날렵한 이미지를 강조한다. AMG 전용 프런트 범퍼는 바람구멍이 어찌나 많은지 이게 범퍼인지 공기흡입기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지경이다. 큰 입으로 들이마신 공기는 브레이크 열을 식히고 공력성능을 높이는 데 활용한다. 뛰어난 공기역학 설계는 대개 훌륭한 디자인을 낳는다. 기능적인 공기 구멍이 모이고 모여 미학적 측면에서도 훨씬 뛰어난 결과를 불러왔다.

두툼한 펜더를 비롯해 전체적으로 볼륨감을 키워 다부진 인상을 완성했다. 거대한 21인치 휠 안에는 근사한 구릿빛 AMG 캘리퍼가 은은한 빛을 낸다. 엉덩이를 보면 어느덧 AMG 전통으로 자리 잡은 사각 배기파이프에 시선이 절로 간다. 가변 리어 스포일러는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지만, 최대로 작동하면 꺾이는 각도가 상당해서 적당한 다운포스로 차체 뒷부분을 눌러준다.

스포츠 시트의 사이드 볼스터가 얼마나 도톰한지 타고 내릴 때마다 허벅지에 쓸렸다. 운전자가 뛰어넘어서 타지 않는 이상 계속 쓸리는 부위라서 오너라면 가죽 상태가 걱정될 듯했다. 사이드 볼스터를 극단적으로 키운 만큼 시트에 몸을 맡기면 운전자를 든든하게 껴안는다. S-클래스에 앉았을 때의 편안함과는 거리가 멀다. 레이스카 시트가 주는 신뢰감에 더 가깝다.

보닛 아래에는 4.0L V8 엔진에 터빈 두 개를 달았다. 영리한 9단 자동변속기와 조합해 최고출력 639마력, 최대토크 91.7kg·m의 괴력을 뿜어낸다. 전통적으로 연료 효율과 친하지 않은 브랜드라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엔진회전수 1000~3250rpm 구간에서는 4개의 실린더만 작동하는 ‘AMG 실린더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탑재했다(GT 63 S 4매틱 기준 복합연비는 7.2km/L. 단, 매우 천천히 달렸을 경우).

연비 따위 생각 않고 마음 놓고 가속페달을 밟을 생각이라면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2.1t이 넘는 덩치를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 까지 3.5초 만에 튕겨낸다. 마음 급한 사람이 계단을 2~3개씩 오르듯 GT 63 속도계는 숫자를 성큼성큼 건너뛰었다. 눈 깜짝할 새 시속 100km를 넘어선다. 고급휘발유가 아깝지 않은 펀치력이다.

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CLS인 줄 알고 겁 없이 덤볐다가 룸미러에 작은 점이 되어버린 차가 한둘이 아니다. 쭉쭉 뻗은 도로를 질주하니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 주행 질감은 라이벌 파나메라보다 한층 역동적이다. 포르쉐가 파나메라를 만들 때 포르쉐 특유의 스포츠 DNA를 희석해서 넣었다면, AMG는 반대다. 이미 AMG 배지를 단 편안한 세단은 이미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개발진은 AMG는 GT 4도어가 적통이라는 사실에 집착했다. 아스팔트를 찢는 도로용 경주차가 되어 세상 모든 차를 추월하기를 바랐을지 모른다. 강력한 비트를 담은 배기음이 달릴 맛을 더욱 살린다. 소리가 크지는 않아도 음색에 AMG 특유 감성을 가득 담았다.

와인딩 코스에 진입했다. 육중한 몸으로 어떻게 코너를 요리할지 기대됐다. 가속 페달에 힘을 실었다. 코너 진입속도가 높아도 뒤축에 달린 차동제한장치가 과도한 미끄러짐을 막으며 재치 있게 빠져나간다. 특히 액티브 리어 액슬 스티어링 덕에 스포츠 쿠페처럼 날렵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AMG 세라믹 브레이크 시스템은 지금껏 경험했던 모델 중 최고다. 적당히 열만 오르면 아무리 빠르게 달리더라도 불안하지 않다. 강한 제동을 반복해도 지친 기색 하나 없다. 최고 수준의 제동 장치지만 크게 민감하지 않아 아스팔트에 꽂히듯 정차할 경우에 대해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

AMG GT 4도어의 주행성은 슈퍼카도 부럽지 않을 만큼 만족스러웠다. 10점 만점에 10점이다. 하지만 운전 재미만 추구했다면 애초에 고성능 스포츠카를 사지 않을까? AMG GT 4도어를 구입하는 이들 대부분이 이미 불편한 정통 스포츠카 한 대쯤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세단이 필요했다면 같은 가격으로 빠르고 편한 S 63을 살 수도 있다. 슈퍼 세단을 허락받은 가장이더라도 불편한 뒷좌석 때문에 GT 4도어 구매를 망설일지도 모른다.

실상 오너가 앉을 일이 많지 않다는 이유로 뒷좌석에 대한 아쉬움을 간과하기에는 영 찜찜하다. AMG GT 4도어는 10점짜리 자동차지만, 실용성이라는 가치에 끼워 맞추려고 하면 어딘가 계속 어긋난다. 매력에 끌리면서도 GT 63 S의 구매가 망설여지는 이유다.

박지웅 사진 이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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