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리찌오와 무대 뒤에서 나눈 이야기

조회수 2019. 12. 9. 07:2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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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전설이 콘서트 무대에서 내려왔다. 카 디자인 콘서트를 마친 마우리찌오 콜비에게 질문을 던졌다

마우리찌오 콜비가 세상에 없던 미래 슈퍼카를 그려냈다. 새빨간 마커가 스케치에 생명을 불어넣는 동안, 짜릿한 페라리 노트가 절로 들려왔다. 내내 궁금했다. 무대 위에서 수백 명을 감동시킨 디자이너는 무대 뒤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어쩌지 못하고 그의 앞에 마주 앉았다. 30년간 페라리를 그린 남자, 마우리찌오가 털어놓은 진솔한 이야기에 귀를 귀울였다.



TopGear 전 세계를 돌며 디자인 강연을 했는데, 오늘 본 한국 참가자를 어떻게 평가하나?

Maurizio Cobi  놀라울 따름이다. 참가자 가운데 10% 정도가 인상적인 디자인을 보여주는 게 보통이다. 한국 참가자는 100명 가운데 30명 이상 놀라움을 줬다. 아시아에서도 유독 한국인의 펜슬워크가가 정교한 비결이 식사 문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은 무겁고 가느다란 쇠젓가락을 쓰고, 중국과 일본 사람들은 굵직한 나무젓가락을 쓰지 않나. 이탈리아에서 누군가 뇌 수술을 해야 한다면 한국 의사한테 가보라고 말할 정도다. 한국인의 침착성과 손기술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TG 이탈리아는 디자인으로 세계를 이끈다. 페라리·람보르기니·알파로메오를 비롯한 자동차부터 구찌·프라다·베르사체 같은 명품까지. 이유가 무엇인가?

MC 조상을 잘 만나서다. 이탈리아에는 선조들이 남겨놓은 뛰어난 유산이 많다. 어려서부터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거장의 작품을 보면서 자라기 때문에 미적 감각이 뛰어날 수밖에 없다.


TG 이번 행사 참가자를 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무엇인가?

MC 어린 친구들 창의적인 디자인을 봐서 더없이 행복했다. 한국인은 일찍부터 최고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듯하다. 유럽 청년들에게선 이런 열정을 찾기 어렵다. 올림픽만 봐도 한국 선수는 대개 금메달을 따야 기뻐하고, 은메달을 따면 운다. 유럽 선수들은 동메달만 따도 기뻐서 어쩔 줄 모른다. 어린 나이부터 최고를 지향하는 태도가 한국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 자동차를 그리는 일은 근육 단련과 비슷하다. 어려서부터 많이 그리는 게 정말 중요하다.

TG 한국 자동차 브랜드를 어떻게 평가하나?

MC 1990년대, 디자이너 활동 초기만 해도 한국 자동차를 얕봤다. 토리노 모터쇼에 현대차와 이탈디자인이 협업한 자동차가 공개됐는데, 다들 비웃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현대·기아는 뛰어난 업적을 이뤘다. 디자인과 품질 면에서 두루 인상적이다. 이미 일본 자동차 브랜드 수준을 뛰어넘었다고 생각한다.


TG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디자인 실력 외에도 필요한 게 있나?

MC 영어를 잘해야 한다. 인터내셔널 랭귀지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피닌파리나에서 이탈리아어만 썼다. 지금은 영어를 쓴다. 영어에 능숙해야 세계 무대에서 자신의 디자인을 팔 수 있다. 제아무리 뛰어난 디자인이라도 아무에게도 이해시키지 못하면 평생 책상 서랍에만 남게 된다.


TG 회사에서 자동차를 그리고 집에 돌아가면,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나?

MC 자동차를 그린다. 그러나 회사에서 그리는 그림과는 좀 다르다. 디자이너로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미래 자동차를 그려야 한다. 집에서는 펜과 마커로 클래식카를 그린다. 



TG 피닌파리나 디자이너로서 겪은 흔치 않은 경험도 많이 했을 텐데

MC 세상에 한 대만 존재하는 모델을 그려야 할 때가 있다. 페라리 SP 프로젝트에 참여하면 세계적인 유명인사와 부호가 나만의 페라리를 그려달라고 부탁을 한다. 팝 스타, 할리우드 스타를 비롯해 한 나라의 국왕까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 나에게 부탁을 한다. 개인적으로 SP 프로젝트를 정말 좋아한다. 개인 맞춤 주문 디자인이기 때문에 평소 해보고 싶은 시도를 다 해볼 수 있어서다. 세상에 단 한 대 존재하는 차를 만들기 위해 굉장히 특이한 도전도 마음껏 할 수 있다. 제작비 한계도 없다. 그런 면에서 콘셉트카 디자인보다 더 재미있다.



TG 30년간의 커리어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꼽으면?

MC 다음에 나올 모델이 아마 최고일 것이다. 사실, 모든 모델이 내 자식 같아서 하나만 고르기 정말 어렵다. 그래도 굳이 꼽으라면 F355라고 답하겠다. 가장 클래식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팝업 헤드램프, 은색 크롬볼 시프터, 검정 인테리어, 새빨간 페인트…. 꿈의 조합이다.


TG 당신에게 자동차를 그리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MC 나는 자동차 그리는 일이 정말 좋다. 직업으로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는 게 어릴 적부터 꿈이었다. 구체적으로 페라리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이탈리아에서 페라리는 거의 신격화된 존재다. 페라리를 모욕하는 일은 신성모독이나 다름없다. 그런 브랜드의 자동차를 직접 디자인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꿈을 이뤘고, 30년 동안 정말 행복하게 일해오고 있다.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피닌파리나에서 일하는 게 이렇게 즐거운데, 월급을 받아도 되는 걸까.

글·사진 김성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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