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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 7시리즈, 마주치면 깜짝 놀랄걸?

조회수 2019. 10. 1.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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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1분 동안 자유롭게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벌써 숨이 턱 막히는 질문이다. ‘어디 한번 보자’라는 식의 매서운 눈초리까지 더해지면, 자꾸 말을 더듬고 준비했던 소개는커녕 에둘러 말하기 바쁘다. 신차 발표회장 분위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기자들은 호랑이 면접관으로 얼굴색을 바꾼다. 1인자에 맞서는 도전자의 발표라면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민다. 이번 BMW 7시리즈 발표가 그랬다. 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불안에 찬 긴장은 아니다. 오히려 BMW는 착실히 완성한 숙제를 빨리 검사받고, 칭찬 들을 생각에 설레는 눈치였다.


첨단 기술 보편화를 이끈 과거

1세대 7시리즈 E23

‘최신 기술을 접목한 자동차는 BMW, 고급스러운 이미지는 벤츠’라는 말이 있었다. 7시리즈가 걸어온 역사만 들여다봐도 최신 기술을 발 빠르게 적용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세대 7시리즈가 첫울음을 터뜨린 1977년, BMW는 브랜드 최초로 두뇌 역할을 수행하는 컴퓨터를 심어 자동차의 이상 증세를 계기판에 띄웠다. 2세대(1986년)는 전자식 댐퍼 컨트롤 시스템과 트랙션 컨트롤, 제논 헤드램프를 뽐냈다. 3세대(1994년)는 커튼 에어백을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인공위성을 기반으로 한 내비게이션 시스템 또한 자랑이었다.

2세대 7시리즈 E32

4세대(2001년)에는 BMW 인포테인먼트 조작 시스템인 i드라이브가 최초로 들어갔다. 5세대(2008년)는 일찌감치 네바퀴 조향 시스템을 챙겼다. 길다란 휠베이스를 숨기고 비좁은 도로를 휘젓고 다닐 묘수였다. 고속 주행 안정성까지 덤으로 따라왔다. BMW 7시리즈는 많은 자동차가 선망하는 대상이었다. 달리 말해 최신 기술 전도하는 역할을 맡은 셈이다. 7시리즈는 경쟁 브랜드뿐만 아니라 보다 저렴한 대중 자동차들의 첨단 기술 보편화를 이끌었다.

5세대 7시리즈 F01

첨단 이동수단을 대표했던 이미지가 약해진 탓일까, 아니면 크리스 뱅글이 이끈 2001년 BMW 디자인 르네상스와 같은 시대를 기다리는 이들이 많은 걸까? 최근 BMW 7시리즈의 입지는 몰라보게 쪼그라들었다. 라이벌 벤츠 S-클래스와 판매량을 비교하면 7시리즈에 드리운 그림자는 생각보다 더 어둡다. 미국은 럭셔리 세단이 노리는 가장 큰 시장 중 하나다. 2018년 BMW 7시리즈는 미국 시장에서 8271대 판매를 기록했다. 벤츠 S-클래스는 1만4978대를 기록하며 7시리즈를 크게 따돌렸다. 한국 시장 패권 싸움은 BMW 7시리즈의 완패다. 지난해 S-클래스의 한국 시장 판매량은 7016대에 달했다. 반면 7시리즈는 3분에 1 수준인 2351대에 그쳤다. BMW는 7시리즈의 변곡점을 이끌 불꽃이 절실했다.

반전 노리는 파격 디자인

이대로 들고 집에 가고 싶다

이번 시승회의 시작은 서울 광진구에 자리한 워커힐 호텔. BMW는 그 안에서도 애스톤 하우스에 7시리즈 라운지를 마련했다. 바깥마당으로 나서자 입이 떡 벌어졌다. 7시리즈 3대가 필러 맞은 코끝으로 기자들을 맞이했다. 유리로 벽을 쌓고 그 안에 7시리즈를 넣었는데, 크기를 줄여 집에 가져가 장식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산꼭대기에 자리한 애스톤 하우스 뒤로 탁 트인 한강뷰는 7시리즈의 성대한 잔치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유리문을 열고 바이에른 가문 우두머리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웅장한 모습에 기가 죽어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옮겼다. 잠을 깨우면 커다란 부리로 간을 쪼아 먹을 인상이다. 역시 차는 실물로 봐야 안다고, 커다란 키드니 그릴에 대한 우려를 단박에 지워버렸다. BMW는 7시리즈의 숨구멍을 기존보다 40% 더 크게 파냈다. 큰 코에 맞춰 얼굴도 비율 조정에 들어갔다. 엠블럼은 지름 82mm에서 95mm로 늘어났고, 전면부 높이는 기존보다 50mm 더 높다. 날카로운 눈매 때문에 멀리서 보면 키드니 그릴이 돋보이긴 하지만 몇 발자국 떨어져서 바라보면 큰 성곽 대문이 떠오른다.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며 거대한 폭포의 웅장함을 카메라에 담지 못해 아쉬워한 적이 있다. 7시리즈를 뷰파인더 속에 넣으며 딱 그 심정이었다.

옆모습 변화는 크지 않다. 그런데 색다른 차처럼 느껴져 흥미롭다. 이번 7시리즈의 차체 길이×너비×높이는 각각 5260×1902×1479mm(롱휠베이스 기준)다. 너비와 높이는 그대로지만 22mm 더 기다랗다. 작은 차이지만 기존과 비율이 확 달라 신선하다. 에어 브리더 형상도 새롭다. 바퀴가 구르며 만드는 공기저항을 줄이는 구멍인데, 수직으로 바짝 추켜세웠다. BMW는 여러 개의 살이 빙그르르 자리한 핀 타입 휠과 함께 어울렀다.

백미는 뒤태다. 테일램프 디자인을 새로 바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7시리즈는 신형 3시리즈와 마찬가지로 검정과 빨강으로 램프를 꾸몄다. 덕분에 BMW 시그니처 알파벳 L 라인이 보다 또렷하다. 그 위로 얇은 LED를 길게 쭉 이었다. LED는 과하지 않고 은은하게 불을 밝힌다. ‘나 고급차야’라고 대놓고 밝히는 제네시스 G90보다 표현이 완곡하다. 럭셔리 세단이라면 BMW의 방식이 더 나아 보인다.

압도적 마법 양탄자

BMW는 시승 방식부터 색다르다. 최신 기술 접목으로 유명한 브랜드답다. 스마트 워치(?)를 닮은 기계를 차고 있다가 진동이 울리면 시승하러 나가면 된다. 차례차례 순서에 따라 움직일 수 있어 부산스럽지 않아 좋았다. 과연 럭셔리 세단 시승회답다. BMW 코리아는 6개 파워트레인에 롱휠베이스, 숏휠베이스를 조합해 총 9가지 7시리즈를 마련했다. 가솔린 모델은 롱휠베이스만 선택 가능하고, 디젤과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는 둘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이번 시승은 740Li x드라이브와 함께했다. 12기통 심장을 품은 M760Li x드라이브도 시승차로 있었지만 아쉽지 않았다. 소비자가 가장 많이 찾고 궁금해하는 모델은 아닐 테니까.

차 문을 열고 7시리즈의 시트로 파고들었다. 사실 6세대 7시리즈와 첫 만남은 아니다. 1년 전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740e를 시승한 적이 있다. 새로운 7시리즈의 1열 인테리어에 변화는 적다. 그래서 더 익숙했다.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12.3인치 디지털 계기판이다. 태코미터와 속도계를 디지털로 보여줄 뿐 활용도가 적었던 기존 계기판의 한계를 넘어섰다. 시원스러운 화면이 보기 좋지만 3시리즈와 그래픽이 똑같아 아쉽다. 계기판은 운전자의 시선이 가장 많이 머무는 곳. 그래픽을 달리해 플래그십을 타고 있다는 기분을 내줬다면 더할 나위 없었겠다.

운전을 시작하면 아쉬운 마음은 눈 녹듯 사라진다. 740Li x드라이브는 직렬 6기통 가솔린 터보 엔진을 품고 최고출력 340마력, 최대토크 45.9kg·m를 뿜는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은 4.1초 만에 끊는다. 제원표 숫자만 보면 흉흉한 분위기가 팽배하다. 공차중량은 2045kg에 달하지만 가속 페달을 지르밟으면 가슴팍이 저릿한 속도를 즐길 수도 있다. 속도에 따라 실내로 들어오는 바람 소리는 커지기 마련. 7시리즈는 뗄 수 없는 속도와 소음 관계를 무시한다. 터널에 들어서도 앞뒤를 오가는 대화를 방해하지 않는다.

마, 제네시스 이게 바로 럭셔리 세단의 뒤태다

노면이 좋지 않은 길을 만나도 문제없다. 버튼을 눌러 차고를 지면으로부터 20mm 높이면 된다. 압권은 강한 제동으로 차를 멈출 때다. 고개를 아래로 숙이며 고꾸라질 만도 한데, 7시리즈는 꼿꼿하다. 오기가 생겨 브레이크 세기를 높여봐도 굴하지 않는다. 땅속 누군가가 7시리즈를 아래로 세게 잡아당기는 듯 착 가라앉으면서 멈춰 서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7시리즈는 운전이 편한 차다. 차체 크기가 큰 대형차라고 운전에 지레 겁먹지 않아도 좋다. 7시리즈에 담긴 첨단 운전자 보조시스템은 일일이 읊기도 어려울 만큼 풍요롭다. 액티브 크루즈 컨트롤을 켜고 속도와 차간 거리를 설정하면 주행 상황에 맞춰 스스로 차로를 유지하며 달린다. 완전히 멈췄다 다시 출발하는 기능도 품었다. 단, 스티어링휠을 잡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기판은 그래픽을 띄우고, 스티어링휠 컨트롤러 양쪽은 주황색 불을 깜빡이며 운전자에게 경고한다.

몰려 다니면 '정상회담이라도 있나' 오해 받기 십상이다

차로를 벗어나면 경고를 하고 바깥으로 벗어나려는 조작을 감지하면 스스로 스티어링휠을 꺾기도 한다. 시속 20km가 넘으면 앞에 주행 중인 차를 따라 스스로 방향을 바꿔 달리기도 한다. 좁은 골목을 들어갔다가 뒤로 나와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고 진땀 빼지 않아도 된다. 7시리즈는 시속 36km 이하로 주행 시 50m까지 발자국을 기억했다가 스스로 후진한다. 첨단 기술의 BMW. 7시리즈는 이런 수식에 부끄럽지 않은 맏형이었다.

숏휠베이스의 2열 공간
롱휠베이스의 2열 공간

웰메이드 쇼퍼드리븐

7시리즈에 뒷자리에서 오고 간 대화

50km 남짓 운전하고서 740Li x드라이브 주행 성격을 모두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쇼퍼드리븐카로서 7시리즈의 가치는 충분히 경험했다. 탑기어 두 기자가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 강변북로를 달렸다. 어둠이 드리운 서울의 밤, 플래그십 세단 뒷자리에서 우리가 나눈 대화다.

이현성 소재가 마음에 들어. 손과 몸이 닿는 부분은 모두 가죽으로 감쌌어. 플라스틱만 덩그러니 남은 부위를 찾기 힘들 정도야. 지금 당장 플라스틱이 보이는 곳은 도어 손잡이 안쪽, 창틀을 감싼 커버, 안전벨트가 전부네. 

김성래 이 차급에, 이 가격에 당연한 걸 수도 있어. 나는 촉촉하고 보드라운 가죽보다 매끈한 소재가 더 눈에 들어와. 앞시트 뒤에 달린 커다란 화면 두 개도 모자라 2열 중앙 팔걸이에도 탈착식 태블릿 PC를 담았네. 고급스러운 B필러 조명이나 컬러가 들어간 글래스 루프도 호화로운 분위기를 더해.

주인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태블릿 PC 하나로 모든 전자 장비를 주무를 수 있는 점은 7시리즈의 자랑이야. 뒷자리에서도 스마트폰을 블루투스로 연결할 수 있고, 시트 등받이 각도는 물론 선루프와 옆 뒤 창문 블라인드를 여닫기까지 터치 한 번이면 끝이야. 내 방에 들여놓고 싶어. 침대에 누워서 불을 끄고 켜고, 스피커로 노래도 틀고, 커튼도 걷고 상상만 해도 좋다. 

기능이 많아서인지, UI가 복잡해서인지, 아님 둘 다인지. 기능 하나 사용하려면 태블릿 PC 속 여기저기를 뒤져 봐야 해. 헛다리 짚고 다시 기능을 찾아 나설 때면 굶주린 들개처럼 조급해지던데. 지체 높으신 분들이 과연 이걸 좋아할까? 물리 버튼을 사용할 때는 이렇게 팔 뻗어서 꾹 누르면 그만인데 말이야.  

그래서 물리 버튼도 빼놓지 않고 마련했잖아. ‘모두를 위한 배려’, 프리미엄 브랜드라면 당연히 지녀야 할 덕목이지. 조수석 뒷자리, 그러니까 가장 상석은 항공기 비즈니스 클래스 부럽지 않아. 버튼 하나만 누르면 1열 동승석을 앞으로 끝까지 밀고 등받이를 접어. 2열 시트는 최대로 눕히는데, 여기에 맞춰서 모니터 각도까지 조절해준다니까. 시간을 재봤는데, 이렇게 변신하는 데까지 20초 정도 걸리더라.  

마음 급한 VIP한테는 20초도 길지. 확실히 화면 해상도는 비즈니스 클래스보다 낫네. 조수석을 앞으로 끝까지 밀고 달릴 때 운전자는 오른쪽 시야를 많이 잃더라고. 헤드레스트가 사이드미러를 상당 부분 가려. VIP 모시는 운전자 입장에서는 좀 치워달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상황일 텐데….

글래스 루프에 아로새긴 패턴. 이것도 사진빨 안받네 참...

후측방 상황을 계기판에 띄우는 기아 K9나 현대 쏘나타의 기능이 들어가면 도움이 될 텐데. 다음 세대 7시리즈에서나 기대해 봐야겠네. 근데 7시리즈는 밤에 타서 퇴근할 때 더 즐거운 것 같아. 일단 눈이 즐겁잖아. 저기 글래스 루프 좀 봐. 패턴을 유리에 새기고 주위를 엠비언트 라이트로 둘렀어. 꼭 고급 모던바에 온 기분이 들지 않아? 여기에 샴페인 한 잔 곁들이면 진짜 딱인데. 

벤츠 S-클래스 실내조명이 호화찬란한 루미나리에 같다면, 7시리즈는 고급 라운지바 같아. 의외의 위치에서 색다른 결과 감으로 배어나는 빛이 공간을 더 매력적으로 만드네. 의외야. 7시리즈를 시승할 때마다 뒷좌석만 넉넉할 뿐, 사실은 운전자를 위한 차라고 생각했어. 막상 뒷좌석에 앉아보니 여기서 경험하는 만족이 운전석에서 누리는 즐거움보다 결코 작지 않아.



나도 마찬가지야. 7시리즈를 타보고 BMW 플래그십 세단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어. 브랜드 성격과 외모만 보고 오너 드리븐 성격이 강한 차라고 짐작했는데, 뒷좌석에서 여유를 즐기기에도 훌륭해. 하지만 BMW 엠블럼을 단 이상 이런 오해를 하는 사람이 적지는 않겠지. 과연 잘 팔릴까? 

7시리즈가 4번째로 많이 팔리는 나라에 살면서도, 길에서 7시리즈를 마주친 기억은 별로 없어. 그동안 별다른 존재감이 없어서 눈길을 주지 않았거나, 세계적으로 판매량이 많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일 듯해. 곧 알게 되겠지. 이렇게나 큰 라디에이터 그릴을 단 7시리즈를 마주친다면 잠들기 전까지 또렷이 기억날 테니까.


이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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