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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주행 본능을 자극하다, BMW M760Li

조회수 2019. 11. 30.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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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페달에서 발을 뗄 수가 없다. 보닛 아래에서 V12 엔진이 폭발하며 가슴을 울린다. 운전자는 한순간에 레이서로 돌변한다


평소 이미지와 상반된 모습에 끌릴 때 반전 매력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고정관념을 깨고 스며드는 매혹에 더 쉽게 마음이 흔들린다. 자동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양의 탈을 쓴 늑대 같은 차에 쉽게 마음을 빼앗긴다. M760Li는 극과 극의 요소를 한 몸에 품었다. 한없이 부드럽고 점잖을 듯 보이다가도 잠재된 질주 본능을 자극하면 보닛 아래 12기통 엔진이 거친 숨 몰아쉬며 야수로 변한다. 

2년 전, V12 엔진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M760Li를 처음 경험했다. 운전 재미 가득한 BMW 가문에서 태어나서인지, 플래그십 세단이면서도 스포츠카처럼 심장 팔딱팔딱 뛰게 하던 그 감성에 한순간에 반해버렸다. 그토록 기품 넘치는 자태 뽐내는 차가, 제아무리 슈퍼카라도 쉽사리 얕볼 수 없는 질주 본능마저 겸비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다. 달리면 달릴수록 반할 수밖에 없었다. 



M760Li가 부분변경을 하고 다시 곁으로 다가왔다. 화장을 고치고 옷까지 싹 갈아입고서 고맙게 찾아왔다. 시동을 켜고 가속페달을 밟으면서 생각했다. ‘과연 첫 만남의 벅찬 설렘을 재현할 수 있을까?’ M760Li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선량한 운전자를 레이서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뜨렸다. 플래그십 세단을 무심코 바라본 행인들은 정장 입은 비즈니스맨이 운전석에 앉아있는 모습이나 품격 넘치는 회장님이 뒷좌석에 몸을 기댄 장면을 상상할 터다. 천만에. 지루한 아저씨 따위는 없다. 질주 본능에 불타는 운전자가 레이싱 드라이버의 마음으로 스티어링휠을 쥐었다. 꼭 속도가 빠르지 않아도 좋다. 그저 이 차의 거대한 심장과 하나 되어 달릴 수만 있다면, 루이스 해밀턴이 부럽지 않다. 

레이싱 수트, 장갑, 헬멧을 풀세트로 차려입고 V12 엔진에 불을 지피면 세상의 지배자가 된 듯하다. 스티어링휠을 꼭 쥐기만 해도 가슴이 뛴다. M760Li는 가속페달을 밟는 대로 나가는 차가 아니다. 그 이상이다. 기대보다 한참 더 강력하게 차체를 멀리 밀어낸다. 



세단을 선호하는 편도 아닌데, BMW는 곧 죽어도 M이라고 외치는 사람인데, 대형 세단을 몰면서 기뻐서 호들갑을 떨고 있다. M760Li는 그만큼 특별하다. 의외로 흥을 부추기는 배기음은 크지 않다. 아무리 세게 몰아붙여도 조용히 속도만 더해갈 뿐이다. 스포츠 모드에서는 깊은 울림통을 자랑해도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멋진 12중주 연주팀이 아까운 재능을 썩히고 있는 셈이다. 

뻥 뚫린 도로에서 가속페달을 깊이 밟았다. 거구의 차체가 2t 넘는 중량을 무시하고 튕겨 나간다. 긴장감에 손이 땀으로 범벅이 됐다. 그런데도 M760Li는 주저하는 법이 없다. 엔진 반응은 더없이 날카롭다. 조용한 대포처럼 운전자가 원하는 위치에 즉각 커다란 차체를 쏴 보낸다. 이륙을 위해 도움닫기를 하는 항공기처럼 묵직하고 빠르게 속도를 높일수록 차체는 잠수함처럼 도로 아래로 착 가라앉는다. 이상하리만큼 평화로운 고속주행 안정성에 혀를 내둘렀다. 너무 좋아서 속도 감각을 잃을 지경이었다. 



V12 6.6L 엔진에는 터보차저 2개가 달렸다. 강력한 엔진은 농익은 8단 변속기와 찰떡궁합이다. 스포츠 모드에 두고 세차게 달리다 보면 최고출력 609마력이 쉴새 없이 뿜어져 나온다. 터보랙은 쉽게 눈치챌 수 없었다. 어쩌면 플래그십 권위를 지키기 위해 더 점진적으로 가속하도록 신경 썼는지도 모른다.

섀시는 높은 출력을 감당하기 위한 준비를 완벽히 마쳤다. 출력을 노면에 쏟아내며 좌로 우로 흔들어대도 결단코 자세가 무너지지 않는다. 육중한 체구 탓에 어느 정도 롤은 있지만, 한쪽으로 치우쳤던 무게중심을 반대쪽으로 보내는 리듬이 좋다. 차체자세제어(DSC)는 거의 개입하지 않는다. 이미 안정감 넘치는하드웨어 덕에 소프트웨어가 할 일이 많지 않다. 코너링 한계는 느껴보지 못했다. 그립이 좋아 일반 도로에서 한계점을 파악하기가 불가능하다. 피렐리 타이어 덕택만은 아니다. 똑똑한 x드라이브 시스템 네 발을 바닥에 철썩 붙여두는 데 일등 공신이다. 



20인치 휠 안에 숨은 팔뚝만 한 브레이크 캘리퍼가 작동하기 시작하면 폭풍은 잠시 수그러든다. 반복적인 제동을 하더라도 지치지 않는다. 제동력 또한 일정하다. 물론 노즈다이브와 브레이크 스티어 현상도 일어나지 않는다. 다시금 가속페달에 발을 올리고 폭풍같이 달려 나갔다. 고속으로 코너에 들어서면 조향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앞머리를 코너에 꽂아 넣는다.



남몰래 레이서가 되어 도로를 마음껏 누볐다. 대형 세단으로 이토록 짜릿한 스포츠 주행을 선사하는 브랜드는 흔치 않다. 커다란 플래그십 세단에 오너드리븐의 즐거움을 가미하기는 쉬워도 이토록 짜릿한 재미를 담아내기는 어렵다.



깊은 숨을 몰아쉬었다. 속도를 낮추고 느긋하게 달렸다. 좀 전까지 적진에 뛰어드는 장수처럼 마음껏 호령하던 M760Li가 한순간에 우아한 백조 같이 유유히 미끄러졌다. 문득 깨달았다. 부분변경을 거친 M760Li에는 어디에도 M 배지가 없었다. 하위 모델은 그렇게 M 배지를 자랑스럽게 드러내는데, 유독 큰형 7시리즈만은 자신의 강력함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었다. 과시보다는 운전자만 아는 온전한 만족에 빠질 수 있는 차라서.



서울로 돌아오니 어느덧 퇴근 시간이었다. 지루한 SUV, 고루한 세단, 따분한 해치백 사이에 조용히 숨어들었다. 누구도 알지 못할 것이다. 스포츠카 기죽이는 거대한 심장과 칼날처럼 예리한 주행 쾌감을, 주행의 모든 순간 가슴 설레게 하다가 내쳐 달리면 심장을 녹아내리게 하는 짜릿한 즐거움을. M760Li는 반전을 다 알고 봐도 재미있는 명작 영화 같았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반전매력을 지닌 채, 그 누구도 아닌 운전자에게 오롯한 행복을 선사했다.

박지웅 사진 이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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