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텀 시승기①] 내가 지프 랭글러를 선택한 이유

조회수 2019. 10. 10. 09:4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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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회초년생 시절을 함께한 ‘아방스’를 보냈다. 3년 동안 애지중지하며 수동 운전의 즐거움을 깨우쳐준, 나에게 교과서 같은 차였다. 정든 애마와 이별하고, 새 식구를 맞이했다. 오프로드의 아이콘, 지프 랭글러다. 최신 기술을 양껏 품은 차를 두고, 투박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이 차를 난 왜 샀을까?

글 강준기 기자
사진 FCA, 강준기

자타공인 ‘차 덕후’인 난, 차밖에 모른다. 그러나 기자 일을 하며 딜레마에 빠졌다. ‘억 소리’나는 스포츠카를 타도, ‘가죽범벅’ 호화 세단을 타도 별 감흥이 없어진 까닭이다. 자동차 만드는 능력이 상향평준화되면서, 각 모델 간 개성은 점점 희석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악명 높은 루비콘 트레일에 다녀오면서 오랜만에 심장이 두근거리는 기분을 맛 봤다. 랭글러였다.

사실 난 투박한 SUV를 좋아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아버지의 낡은 무쏘로 운전을 배웠다. 무려 15년 간 나와 함께한 가족 같은 차다. 그 녀석으로 안 가본 곳이 없다. 마음 맞는 친구와 텐트, 화로, 고기 가득 싣고 ‘오버랜딩’의 즐거움을 느꼈다. 평범한 도로에선 느리고 불편했지만, 험로에선 짜릿한 재미를 전하는 최고의 차였다. 벤츠 5기통 엔진의 독특한 울음소리도 잊을 수 없다.

그러나 아반떼 스포츠를 출고하며 나의 ‘카 라이프’는 반쪽짜리로 전락했다. 수동변속기의 쾌감은 남달랐지만, 산 넘고 물 건너는 여행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오랜 시간 함께한 텐트와 각종 캠핑장비는 창고 속 ‘먼지구덩이’ 신세였다.

나에게 자동차는 출퇴근 이동수단 이상이었다. 그러나 아반떼 스포츠론 굽잇길을 빠르게 달리는 거 외에 마땅히 즐길 만한 코스가 없었다. 서킷 주행은 많아야 1년에 한두 번이었다. 무쏘 탔을 때처럼 캠핑을 가볼까 생각했지만, 2열 시트를 눕힐 수 없어 ‘차박캠핑’ 따윈 꿈도 꾸지 못 했다. 심지어 트렁크는 텐트 하나 실으면 땡이었다. 캠핑용 차 하나 더 들이기엔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았다.

팰리세이드는 오프로드 주행모드를 갖췄지만 험로성능이 떨어진다. 로드테스트 영상 리뷰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그래서 고민했다. SUV를 사서 예전의 재미를 다시 한 번 누리겠다고. 후보에 오른 차종도 참 많다. 무난한 현대 싼타페부터 6개월 이상 기다려야하는 팰리세이드, 쌍용 G4 렉스턴 등 국산 중‧대형 SUV였다. 사실 투싼‧스포티지 정도의 크기도 괜찮지만 풀 체인지 시기가 임박했고, 요즘 유행하는 소형 SUV는 내 기준엔 살짝 키 높인 해치백에 불과했다. 오버랜딩용으론 적합하지 않았다.

아반떼 스포츠에 무척 만족했던 터라 현대차에 마음이 기울었다. 그러나 조금씩 터진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가령, 팰리세이드는 이른바 ‘에바가루’ 문제, 싼타페는 진동‧소음 문제가 연신 뒤 따라다녔다. 보디 온 프레임 방식의 G4 렉스턴도 마음에 들었지만, 20인치 크롬 휠과 부담스러운 라디에이터 그릴, 여전히 20세기에 머무른 낡은 감성이 마음에 걸렸다. 차라리 토요타 4러너처럼, 담백한 오프로더 느낌을 앞세웠으면 어땠을까?

가전제품처럼 자주 바꾸는 형태도 불만이었다. 2~3년에 한 번씩 치르는 부분변경도, 요즘엔 변화의 폭이 무척 크다. 신기술도 좋지만, 유행에 민감한 ‘요즘 차’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금세 구형으로 전락해버리니까.

지프 '판매왕', 이우진 팀장(우)

결국 나의 과녁은 지프 랭글러로 향했다. 기왕 오버랜딩을 제대로 하고 싶은 거, 끝판 왕을 갖고 싶었다. 다소 예산이 초과돼 ‘아방스’와 지난해 출고한 할리데이비슨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전시장에 도착하고, 새빨간 랭글러 루비콘이 환하게 맞이했다. 주로 혼자타기에 2도어를 사고 싶었지만, 가족의 반대로 4도어 모델을 골랐다.

랭글러의 역사는 194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 군용차로 활약한 윌리스 MB가 시초다. 이후 민수용으로 개조한 CJ를 시작으로 약 10년을 주기로 업데이트를 치러왔다. 이번 랭글러는 지난해 풀 체인지 치른 코드네임 JL로 약 11년 만에 새롭게 거듭났다. 포르쉐 911, MINI와 함께 오랜 시간 헤리티지를 간직해오고 있는 몇 안 되는 차종 중 하나다. 적어도, 최소 10년 동안은 새 차 기분 누리며 탈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먼저 외모 소개부터. 루비콘의 차체 길이와 너비, 높이는 각각 4,855×1,895×1,880㎜. 이전보다 105㎜ 길고 15㎜ 넓으며 35㎜ 높다. 휠베이스도 3m를 가뿐히 넘긴다(3,010㎜). 한 덩치 하는 G4 렉스턴보다 너비 빼고 다 크다. 옆모습도 볼거리가 가득하다. 새롭게 장만한 17인치 휠은 안쪽에 윌리스 MB 모양의 빨간 스티커를 붙이는 등 깨알 같은 디테일도 더했다.

또한 루비콘은 이전과 달리 BF 굿리치의 머드 타이어를 기본 사양으로 끼운다. 더욱이 A필러의 각도를 이전보다 완만하게 빚어 공기저항을 7% 줄였다. 압권은 실내 공간. 이번 랭글러는 전통에만 안주한 반쪽짜리 오프로더는 아니다. 가격에 걸맞은 편의장비를 양껏 갖췄다. 가령, 센터페시아 중앙엔 시원한 8.4인치 터치스크린을 끼웠다. 계기판 중앙엔 컬러 LCD를 넣었는데 연비와 오디오, 사륜구동 시스템 등 다양한 정보를 한눈에 ‘쏙’ 확인할 수 있다. 룸미러도 ‘요즘 차’답다.

사실 기존 랭글러가 조립품질 좋기로 소문난 차는 아니었다. ‘툭툭’ 잘라 얹은 대시보드 등은 ‘미국감성’이라고 얼버무렸으니까. 반면 신형은 각 소재가 빈틈없이 정교하게 맞물렸다. 곧게 뻗은 대시보드엔 깊은 컬러의 패널을 더했고, 가죽 이음새는 빨간 실로 메우는 등 기교까지 부렸다. 각 버튼별로 누르는 방법도 조금씩 달라, 모든 조작 경험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특히 운전석에 앉으면 바짝 솟은 A필러 덕분에 장갑차에 앉은 듯한 기분도 든다.

아반떼 타면 멀미하던 강아지가 랭글러의 뒷좌석은 꽤나 마음에 든 모양이다. 시야가 좋아서일까?

구형 랭글러를 타본 사람은 알겠지만, 뒷좌석은 사람 태우기 미안한 공간이었다. 엉덩이를 반쯤 걸친 듯한 시트포지션과 곧추 선 등받이가 미운 사람 태우기 딱 좋았다. 그러나 신형은 기대 이상 포근하다. 가죽으로 몸을 에워 싸는 느낌이 랭글러 답지 않다. 뒷좌석 송풍구는 물론 40:60으로 나눠 접을 수 있어 활용도가 좋다. 트렁크 용량은 898~2,050L로 넉넉하다.

롱텀 시승기 다음 편에선 윈도우 틴팅과 언더코팅, 오프로드 코스 소개 등 다양한 에피소드를 다룰 예정이다. 랭글러와 함께할 앞으로의 카 라이프, 상상만 해도 짜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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