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다 포기하지마, 푸조 508 SW

이현성 입력 2019.08.21 15:07 수정 2019.08.22 09:2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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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구열이 달아올랐다. 이번 시승의 주인공은 508 SW. 푸조의 자동차 철학을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머릿속에 제목까지 떠올랐다. ‘푸조 실용주의 철학: 스테이션 웨건을 중심으로’. 무슨 논문 쓰냐고? 단지 궁금했을 뿐이다. 유럽인들은 왜 그렇게 웨건에 열광하는지. 역시 웨건은 푸조였다. 쓸모 있는 자동차에 대한 푸조의 고민, 그 결과 50년 동안 이어온 고집, 이내 곧 정립된 브랜드 철학이 듬뿍 담겨 있었다.

무려 130년 전 일이다. 1889년은 프랑스와 푸조 모두에게 의미가 깊다. 프랑스는 세계 만국박람회 개최를 기념해 에펠탑을 세웠고, 푸조는 첫 번째 자동차 세르폴레 푸조를 선보였다. 처지도 비슷했다. 에펠탑은 ‘종루의 뼈대’ 등 악의적인 비유에 시달렸고, 세르폴레 푸조는 이동수단으로 마차를 떠올리는 대중의 사고를 깨뜨리지 못했다. 둘 모두 괴기스러운 신문물에 불과했다. 심지어 에펠탑은 20년 뒤 허물어질 운명이었다. 돌파구는 실용주의. 과연 프랑스다웠다.

에펠탑은 기상관측소와 공기역학 실험실로 모습을 바꿔 살아남았다. 이후 라디오 방송국이 터를 잡아 쓰임새를 높였다. 푸조는 말 2마리보다 저렴한 유지비를 자동차의 강점으로 내세운다. 내구성 증명에도 많은 공을 들인다. 1891년 출시한 타입3으로 2,000km에 이르는 여정을 떠나 139시간 만에 완주하며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성능은 두말하면 잔소리. 1894년, 푸조는 세계 최초의 자동차 경주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저렴한 유지비와 뛰어난 내구성, 부족함 없는 성능 등 푸조는 실용성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꾸며 나간다.

푸조는 메르세데스-벤츠에 이어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자동차 제조사다. 하지만 추구하는 방향은 달랐다. 부자들을 상대로 고급화 전략을 취한 벤츠와 달리 푸조는 오늘날까지 실용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크고 화려한 차보다 생활력 강한 자동차 만들기에 초점을 맞췄다. D 세그먼트 508이 푸조 라인업의 꼭짓점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푸조 508은 2010년 처음 등장했다. 푸조는 407과 607을 한 데 묶어 508로 라인업 최상위 포식자를 그렸다. 모태는 1966년 세상에 나온 504다. 실용주의 푸조는 항상 소비자의 취향, 라이프스타일과 함께 자동차의 쓸모를 고민한다. 그 결과 포기하지 않는 고집이 하나 있다. 세단이 있는 곳엔 언제나 웨건이 따른다. 504때부터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어온 철학이다.

이번에 만난 508 SW는 지난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싹 바꾼 2세대다. 이제야 고백한다. 사실 508 SW를 만나기 전부터 외모에 취해 있었다. 특히 뒤태가 예술이다. 푸조 인스팅트 콘셉트의 현실판을 보는 기분이었다. 포인트는 해치를 가로지르는 검정 패널. 까맣게 칠한 테일램프와 이어 붙여 보다 넓어 보이는 효과를 만들었다. 양 끝은 날카롭게 각을 세웠다. 램프 안은 사자가 할퀸 상처로 벌겋게 달아 올랐다. 테일램프 끝과 LED 디테일은 같은 각도로 눕혀 높은 속도감을 나타냈다.

날렵한 이미지를 위한 눈속임은 옆모습에서 극에 달한다. 508 SW의 길이와 너비, 높이는 4780×1860×1420mm다. 너비와 높이는 세단과 같지만 30mm 더 길다. 지붕과 꽁무니를 길게 늘여뜨리는 까닭에 웨건은 세단처럼 늘씬한 옆태를 뽐내기 힘들다. 비율도 망가지기 십상이다. 푸조는 착시효과로 이를 극복했다. 지붕선은 A 필러를 시작으로 D 필러까지 유지하되 창문 윗라인에 변주를 줬다. 뒤로 갈수록 점점 낮아져 금방이라도 튀어나갈듯한 기세다. 2열 머리 공간 손해는 없다. 지붕 높이는 변하지 않은 까닭이다. 오히려 패스트백 디자인을 취한 세단보다 4cm 더 여유롭다.

세단보다 3cm 더 기다란 혜택은 짐공간이 독차지했다. 508 SW의 기본 트렁크 용량은 530L다. 세단보다 43L 더 넓다. 6:4로 나눠 접을 수 있는 2열 시트를 모두 접으면 차이는 더 크게 벌어진다. 508 SW는 1780L로 세단보다 243L 더 여유롭다. 라이벌인 볼보 V60 크로스컨트리보다(1364L)도   드넓은 포용력을 지녔다. 배려심도 돋보인다. 508 SW의 지면으로부터 트렁크 문 아래까지 높이는 63.5cm다. 세단보다 6cm 더 낮다. 해치 너비는 2.4cm 더 넓다. 짐을 보다 더 쉽게 실을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짐 정리를 도울 여러 장치들도 눈에 띈다. 먼저 양쪽 벽면에 탄성 강한 줄을 매달았다. 여분의 워셔액 통이나 각종 세차 용품을 꽂아 놓기 딱이다. 오른쪽 뒤 벽면은 깊게 파내고 그물망으로 벽을 쳤다. 자잘한 물건 넣어 두면 좋겠다. 바닥에는 레일을 심고 앞뒤로 움직이는 고리를 달았다. 짐 크기에 따라 위치를 조정해 물건을 단단히 묶을 수 있다. 국내 판매 모델에 빠진 전동식 트렁크 버튼은 아쉽다. 웨건의 용도를 고려해 추후 업데이트를 거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이제 내 몸 실을 공간을 볼 차례. 운전석을 열면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난다. 최근 푸조와 시트로엥은 디자인에 물이 올랐다. 안팎 모두 만족스럽다. 하지만 성격 차이는 뚜렷하다. 시트로엥은 인간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해 담은 조형미가 뛰어난 반면 푸조는 미래 지향적이다. 인테리어 디자인도 마찬가지. 한마디로 시트로엥은 따뜻하고 푸조는 시크하다. 508 SW의 계기판은 운전자에게 눈싸음을 걸어오고, 메탈 소재로 감싼 버튼은 도도한 이미지를 내비친다.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푸조 i-콕핏은 차가운 외모와 달리 속마음은 친절 그 자체다. 가령 센터페시아에 자리한 버튼 배치는 인간중심적이다. 푸조는 센터페시아에 버튼을 딱 7개 심는다. 7개를 넘으면 기억력이 떨어지는 인간의 뇌를 고려한 까닭이다. 대형 디스플레이 딱 하나 넣고 ‘미래 지향적 디자인’이라고 자랑하는 여느 제조사들보다 푸조의 방식이 더 나아 보인다. 블랙 하이그로시를 덧댄 내장재는 불만이다. 지문이 너무 많이 남아 닦기 바빴다.

508 SW 보닛 속은 직렬 4기통 2.0L 디젤 엔진이 자리 잡았다. 8단 자동변속기와 짝지어 최고출력 177마력, 최대토크 40.8kg·m를 뿜어낸다. 0 →시속 100km 가속은 8.4초만에 끊는다. 실력 좀 볼까. 주행모드를 스포츠로 두고 가속 페달을 지르밟았다. 웬걸 우렁찬 8기통 엔진음이 귓가에 울려 퍼진다. 지금까지 타 본 어느 차보다 연출이 뛰어나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라고 상상하기 힘들 정도. 가속 성능은 2.0L 디젤 엔진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다. 도심과 고속도로 등 어느 곳에서나 부족하지 않지만 쾌감을 북돋는 정도는 아니다.

대신 주행모드에 따라 성격 바꾸는 엔진과 변속기 반응이 운전 재미를 돋운다. 헐크와 배너 박사가 따로 없다. 508 SW는 스포츠·노말·컴포트·에코 등 4가지 주행모드를 갖췄다. 개인적으로 스포츠와 에코 모드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스포츠 모드로 두면 어느 속도에서든 최대토크를 바로 토해낼 수 있는 기어 단수를 최대한 오래 끈다. 가속을 하다 페달에서 발을 떼도 기어를 쉽게 바꾸지 않는다. 운전자의 명령에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태세를 취한다. 빠릿빠릿한 반응에 긴장감 넘치는 주행도 가능했다.

반대로 에코 모드는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는 순간 엔진과 변속기의 동력을 끊는다. 엔진 회전수는 공회전 때와 같다. 엔진 브레이크에서 오는 저항을 줄여 탄력 주행을 돕는다. 엔진과 변속기를 잇고 끊는 과정은 대단히 매끄럽다. 특히 막히는 도심에서 컴포트 모드보다 편안한 주행이 가능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구간에서 울컥하는 일이 없었다. 고요한 실내도 안락한 운전을 거든다. 창문 틀 없는 프레임리스 도어라 거센 바람 소리를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508 SW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침에 출근하며 지하철역에 세워둔 자전거가 떠올랐다. 다음날 번거롭지 않으려면 집에 가져다 놓아야 하는 상황. 집에 차를 세워두고 다시 나올까? 자전거를 먼저 가져다 놓고 버스 타고 나와야 하나? 보다 편한 수를 찾느라 머리를 굴렸다. 세단 타는 착각에 빠져 508 SW가 웨건이라는 사실은 새까맣게 잊은 채. 겨우 떠올려 유레카를 외쳤다. 2열 시트를 접으니 28인치 자전거를 꿀꺽 집어삼킨다.

웨건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세상 어떤 것도 완벽할 수 없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하나를 얻기 위해 다른 무엇을 포기하기 마련이다. 세단은 편안한 승차감을 얻지만 실용적이지 못하다. SUV는 훌륭한 짐 공간을 자랑하지만 둔한 몸놀림을 숨기기 어렵다. 쿠페나 로드스터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가장 적게 잃되 많이 얻는 법을 찾느라 애쓴다. 자동차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면 시간 낭비할 필요 없다. 답은 웨건. 그 중 푸조 508 SW는 좋은 선택이다.


FOR 승차감, 실용성, 디자인 중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는 욕심쟁이

AGAINST 바짝 서있는 2열 등받이. 굳이 뒤에 앉아 긴장하고 싶진 않을 텐데…


글 · 이현성

사진 ·  박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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