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HIGHNESS, 롤스로이스 컬리넌

조회수 2019. 11. 26.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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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왕관을 탐낼 수 없다. 이제 그 주인이 나타났다.




비가 온다. 우산을 썼음에도 신발과 티셔츠가 다 젖을 만큼 바람까지 분다. 재빨리 차에 올라탄다. 할머니 밍크 코트처럼 부드러운 양털 매트에 흙을 묻히고 최고급 가죽 시트에 땀과 비가 섞인 등을 문지른다. 미안하지만 이보다 더한 호사가 어디에 있을까?

이런 교양 없는 나를 너그럽게 품어주는 롤스로이스 컬리넌이다. 큰 덩치에 맞는 큰 마음씨를 가졌다. 그 누가 처음 몰더라도쉽고 안전하게 움직여준다. 이전 롤스로이스를 두 번 몰아봤다. 고스트와 던. 차가 너무 크고 부담스러운 가격표에 운전이 쉽지 않았다. 물론 홍해가 갈라지는 듯한 교통 상황에 편하긴 했지만 차로가 더 넓었으면 하는 바람을 수도 없이 했다.

컬리넌은 이들 보다 더 크지만 오히려 운전하기 편하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시트포지션이 높아서 그런 것 같다. 운전석에서 오나먼트가 잘 보인다. 우리가 성공하면 보닛 위에 삼각별을 둘 수 있고, 이 시대에 업적을 이루면 환희의 여신상을 가질 수 있다.



파르테논 신전과 함께. 우아하게 움직인다는 표현이 맞다. 가속 페달을 짓밟아도 경박스럽게 날뛰지 않는다. 563마력의 어마어마한 힘을 이렇게 점잖게 노면에 전달한다. 12기통 트윈 터보 엔진은 전기모터보다 더 조용하다. 마침 전날 전기차를 타서 더욱 놀랐다. 방음의 끝을 보여준다. 2.6t 무게 중 10% 이상이 방음제가 차지할 것이다.

요트를 타본 적은 없다. 컬리넌에서 짐작이 된다. 아스팔트가 아닌 물 위를 떠다닌다. 그것도 파도 없는 고요한 강가에서 유영이다. 큼지막한 스티어링 휠은 잡는 맛이 일품이다. 스포츠카처럼 좌우로 마구마구 휘젓고 싶기 보단 왼손을 걸쳐 놓는 것이 어울린다.

비가 와서 노면이 미끄럽지만 전혀 불안하지 않다. 고속도로에 진입해도 마찬가지다. BMW 세단처럼 땅에 밀착해서 달리는 느낌은 아니다. 대한민국 도로 포장상태가 이렇게 좋았나 싶다. 거실에 앉아서 레이싱 게임을 여유롭게 즐기는 기분이다. 풍절음과 노면에서 전해지는 진동까지 완벽하게 잡았다.



이차의 코너링을 논하기는 웃기지만 궁금했다. 비 오는 날 컬리넌으로 하는 와인딩은 이번 생에 한 번 뿐일 테니. 생각했던 것보다 좌우롤링이 심하지 않다. 급격한 움직임에도 자세가 무너지지 않는다. 또한 한쪽으로 쏠린 중량을 반대로 잘 넘긴다. 그것도 우아하게. 여기에 브레이크 성능이 좋아 믿음직하다.

브레이크 답력은 보통차 수준이며 노즈다이브와 브레이크스티어 현상을 잘 억제해놨다. 고속에서 강한 제동을 연거푸 걸더라도 쉽게 지치지 않는다. 코너에서 브레이킹이 걸려도 차체가 라인 안쪽으로 말리지도 않는다. VVIP를 태울 준비가 확실하게 되어 있다.

차고가 높고 해치가 있다고 해서 단순히 SUV라 부르는 게 아니다. 컬리넌은 오프로드를 진지하게 뛸 수 있다. 에브리웨어 버튼으로 주행모드를 선택해 컬리넌의 오프로드 성능을 최대로 활용할 수 있다. 이 기능이 활성화되면 네 바퀴에 상황에 맞게 적절한 구동을 분배해 젖은 잔디, 자갈길, 진흙밭과 모래밭에서도 부드러운 주행이 가능하다.



우리야 이 비싼 차를 가지고 오프로드를 갈까 생각이 들지만 컬리넌 구매자라면 갈 것이다. 비가 쏟아지면서 촬영을 강행했는데 슈팅카 속에서 바라본 컬리넌은 광고 속 한 장면처럼 정말 멋있었다. 빗줄기와 흙탕길을 돌파하는 모습이 터프한 도련님 같았다.

카메라까지 혹사당해 잠시 쉬기로 한다. 비를 피해 컬리넌을 감상한다. 디자인은 SUV 중에서 가장 고급스럽다. 당연하다. 우주 역사상 가장 비싸고 호화스러운 SUV다. 파르테논 신전과 환희의 여신상, 중심을 지키는 휠캡, 그리고 도어 속에 숨어있는 우산까지. 롤스로이가 맞다. 그리고 웅장하고 압도당한다.

자잘한 기교 부리지 않고 반듯하고 정직하게 차체를 빚었다. 프런트 오버행은 짧고 보닛은 길어 측면 실루엣이 우아하다. 롤스로이스는 컬리넌을 3박스 타입이라 말한다. 해치라인과 D필러 쪽의 공간을 하나의 박스로 본 것이다. 뭐든 좋다. 어찌됐던 아름다우면 그만이다.



대문을 열고 성 안으로 들어가본다. 최고급 가죽을 붉은 빛으로 물들였다. 이것이 럭셔리란 것이다. 헤드레스트에 자수노인 알파벳 R 두 개는 최고를 상징한다. 이 곳에서 찍은 셀피 한 장으로 인스타그램에서 양민학살할 수 있다. 대칭형 센터페시아는 완벽주의를 보여주는 것 같다.

송풍구는 동그랗게 만들어 클래식하다. 버튼들은 직관적이라 적응시간이 필요 없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BMW에서 가져와 시스템의 완성도가 높다. 뒷마당으로 이동하자. 레그룸과 헤드룸이 여유 있다 못해 넘쳐 쾌적하다. 어디를 가더라도 피로가 1도 쌓이지 않을 것이다. 컬리넌을 훔치고 친구 3명과 함께 떠나고 싶은 생각이 수도 없이 들었다.

내 비루한 아이폰과 컬리넌을 블루투스로 연결한다. 직업 특성상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자동차 브랜드가 내 블루투스 리스트에 있다. 이번에 롤스로이스를 추가할 기회다. ‘ROLLS-ROYCE’라 뜨지 않고 ‘RR’이라고 떠서 아쉽다. 레인지로버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까.



연결한 김에 음악을 듣는다. 그 동안 듣지 못했던 악기 소리가 들리고 보컬의 가사 전달이 또렷이 되는 것을 느낄 것이다. 오디오 성능은 방음 수준에 비례하는 것을 잘 보여준다. 여느 브랜드들처럼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와 협업하지 않았지만 감동적인 사운드를 전한다.

기본적으로 시계와 오디오는 전문 브랜드의 힘을 빌리는데 롤스로이스는 아니다. 롤스로이스와 수준 맞는 브랜드가 없다고 판단했겠지. 오만이 아니니 인정할 수 밖에.

비가 그쳤다. 다시 촬영하러 가기 전에 이 글의 마무리를 해야겠다. 최고와 함께 하는 것은 설레고 영광스럽다. 나아가 롤스로이스 엔지니어를 존경하게 되었다. 컬리넌은 롤스로이스가 처음 제작한 SUV다. 최고의 브랜드는 어색하고 어설픈 실수 하나가 치명적이다.

무게 중심이 높은 차체의 주행 데이터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컬리넌 프로토 타입만으로 기존 세단의 승차감과 주행질감을 수도 없이 조율했을 것이다. 그들은 똑똑하고 책임감이 넘치고 야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경영진에서 제한한 시간과 돈으로 새로운 장르의 작품을 내놨다. 컬리넌의 경쟁상대는 오직 고스트 뿐이다.

글 | 안진욱
사진 | 최재혁


SPECIFICATION

롤스로이스 컬리넌

길이×너비×높이 5341×2164×1835mm
휠베이스 3295mm
엔진형식 V12 터보, 가솔린
배기량 6750cc
최고출력 563ps
최대토크 86.7kg·m
변속기 8단 자동
구동방식 AWD
복합연비 5.8km/ℓ
가격 4억69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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