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함부로 반하지 마, 로터스 엘리스

이현성 입력 2019.09.10 09:50 수정 2019.09.10 09:5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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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완전 귀엽다. 이 차 딱 내 스타일인데?
이름이 뭐야? 어느 나라 차야?

로터스 엘리스를 마주한 친구들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질문을 쏟아 부었다. 꾸역꾸역 대답은 해줬지만 모두 헛수고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1차 충격은 엘리스에 올라탈 때. 달리기 시작하면 손사래를 친다. 내리면서는 곡소리와 함께 갖은 욕을 퍼붓는다. 충격적인 반응의 피날레는 가격이다. 거짓말 말라면서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에 나선다. 결국 ‘안 사’라는 말을 내뱉는다. 대부분 이런 식이다. 외모에 반해 관심을 가졌다가 이내 곧 발길을 돌린다. 진지한 만남을 시작하기도 전에.

오르지 못할 나무 쳐다도 보지 말아야 하는데, 그러기엔 로터스 엘리스는 너무 예쁘다. 일단 흔히 볼 수 없는 비율에 눈이 간다. 로터스의 차체 길이와 너비, 높이는 3824×1850×1117mm다. 박스터 GTS보다 556mm 짧은데, 너비는 오히려 50mm 넓다. BMW M2 컴페티션보다는…굳이 말하지 않겠다. 몸짱 대회에 돼지가 웬말이야. 키는 7살 여자아이 평균 신장을 조금 밑돈다. 덕분에 어딜 가나 귀여움을 한 몸에 받는다. 육감적인 몸매는 또 어떻고. 엘리스는 말똥말똥 뜬 눈으로 길 걷는 뭇 남성들의 애간장을 녹였다.

기어코 빨간약을 먹고야 말았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파란약을 먹으면 가상의 매트릭스 세계에서 진실을 뒤로한 채 안주하게 되고, 빨간약을 먹으면 매트릭스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한다. 엘리스를 만나고 지금까지 경험한 스포츠카는 진리의 그림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두 인간 입맛에 맞춘 허상에 불과했다. 이제야 동굴 밖으로 뛰쳐나와 이데아를 향해 바로 섰다.

여기 수동 맛집이네

‘물 타지 않아 깊은 맛’, 맥주 광고에 나오는 문구다. 맞다. 무언가 계속 더하면 본질을 잃기 마련이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스포츠카에 굳이 편의를 찾으려 한다. 흐릿해져만 가는 운동 신경은 뒷전이다. 엘리스는 인간 욕심에 맞서 끝까지 살아 남은 순수 스포츠카다. 최신 스포츠카에 길들여진 인간은 엘리스에게 ‘이건 왜 없어, 저건 왜 뺐어?’라고 꼬집는다. 애초에 잘못된 질문이다. 빼지 않았으니까. 원래 스포츠카에는 없었을 뿐이다.

각고의 노력 끝에 38초 만에 엘리스 지붕을 열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말하면 페라리에는 왜 있냐고 되묻는다. 지구상 최고의 스포츠카를 만드는 페라리가 본질을 흐린 거냐고 따지면서. 그럼 난 당당하게 페라리가 팔고 있는 차는 스포츠카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도 스포츠카라고 부르지 않는다. 모두 ‘그랜드 투어러(GT)’라고 칭한다. 페라리는 레이스 팀이다. 참가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고성능 자동차를 만들어 팔 뿐이다. 진짜 스포츠카인 레이스카를 만드는 그들은 소비자 입맛 맞춘 양산차에 ‘스포츠’를 붙이기 꺼려한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셈이다. 자, 그러니까 이제 스포츠카를 타고 불평 불만은 그만하자. 정 불편하면 포르쉐 박스터나 BMW M2 같은 ‘승용차’를 타면 된다.

더하지 않아 가볍다. 엘리스 최고의 무기다. 몸무게는 단 914kg에 불과하다. 운전자(70kg, 뜻밖에몸무게 공개)를 포함해도 1t 트럭에 싣고도 남는다. 시트 바로 뒤에 자리한 엔진은 토요타 코롤라의 심장과 같다. 2.0L에도 미치지 않는다. 직렬 4기통 1.8L 가솔린이다. 대신 슈퍼차저를 더해 최고출력 220마력, 최대토크 25.5kg·m를 뿜는다. 가뿐한 무게와 짝지어 혼백을 쏙 빼놓기 충분하다. 엘리스의 0→시속 100km 가속시간은 4.6초다. 오늘 모인 셋 중 가장 느리다. 하지만 가장 자극적이다.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명치를 한 대 얻어 맞은 듯 숨이 턱 막힌다. 물론 고속에서는 펀치력이 덜하다. 배기량의 한계는 분명했다.

포르쉐 박스터 GTS와 BMW M2 컴페티션은 기어코 엘리스를 앞뒤로 막아 세웠다

이제 와 말한다. 와인딩 주행에서 난 시승을 함께 한 두 동료를 농락하는 맛을 즐겼다. 일부러 거리를 멀리 벌렸다 금세 따라잡기를 반복했다. 엘리스의 스포츠 모드는 차체자세제어장치 개입만 조금 더딜 뿐 엔진이나 서스펜션 등 운동성능에 변화는 없다. 그런데 굳이 스포츠 버튼을 누를 필요는 없다. 웬만해서는 미끄러지지 않아 차체 자세 제어장치가 개입해 출력 다독이는 일이 없는 까닭이다. 주차할 때 끙끙 앓았던 논-파워 스티어링휠은 와인딩에서 빛을 발한다. M2의 스티어링이 정밀하다고? 그럼 엘리스의 조향감각은 설명할 길이 없다. 정밀하다의 사전적 정의를 빌릴 수밖에. 한마디로 ‘아주 정교하고 치밀하여 빈틈이 없고 자세하다’.

촬영차로부터 천천히 가라는 무전을 수없이 들었다. 분명 천천히 간 것 같은데...

로터스 엘리스는 스포츠카가 분명하다. 어떤 자동차도 엘리스와 같은 희열을 전하지 못한다. 하지만 감당하지 못할 거라면 함부로 눈길 주지 않는 편이 좋다. 엘리스를 감당할 수 있는 방법은 2가지다. 하나는 불편함을 참는 것. 다른 하나는 돈으로 감당하는 방법이다. 엘리스의 운전재미는 좋지만 불편함이 싫다면, 견인차에 실어 옮겨 서킷에서만 즐기면 되니까.


글 · 이현성

사진 · 이영석


LOTUS ELISE SPORT 220

가격 8350만원

엔진 I4 1798cc 수퍼차저, 220마력, 25.5kg∙m

변속기 6단 수동, RWD

성능 0-100km/h 4.6초, 최고속도 234km/h

연비 13.3km/L, 173g/km

무게 914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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