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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스포츠를 찾아서, 마세라티 기블리 S Q4

조회수 2019. 7. 5. 16:5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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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타공인 자동차 마니아인 난, 요즘 딜레마에 빠졌다. 매끈한 독일제 쿠페를 타도, 억 소리 나는 영국제 컨버터블을 타도 별 감흥이 없는 까닭이다. 갈수록 차종 간 개성은 희석되고 프리미엄 브랜드조차 대중성을 어필하고 있으니까. 화려한 모양에 감동받고 짜릿한 사운드에 취했던 예전의 나, 다시 돌아갈 수 없을까?

글 강준기 기자
사진 마세라티, 강준기

최근 메르세데스-벤츠 CLS를 타고 적잖이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차가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양산차 최고수준의 준자율주행 시스템, 화려한 디스플레이, 남다른 파워 지닌 V6 엔진 등 흥행에 필요한 요소를 두루 갖췄다. 그러나 스포츠 세단을 타며 기대할 본질적 자극은 전혀 없었다. 운전대 쥐고 흔들 내 권력은 사라지고, 완벽한 차에 끌려가는 기분이 들어서.

요즘 자동차에 ‘스포츠’란 말 참 많이 붙인다. SUV도 머리글자가 스포츠고, 지붕 조금 낮추면 스포츠 세단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스포츠는 이런 게 아니다. 페달 밟고 운전대 돌려가며 감성적 희열을 쫓는 행위. 나의 의도와 죽이 척척 맞을 때 주는 쾌락. 절절 끓는 소리를 기어로 주무르며 속도와 씨름하는 일. 진짜 스포츠 세단의 가치는 이런 게 아닐까?

색다른 자극을 찾기 위해 삼지창을 들었다. 그 중에서 가장 마세라티다운 기블리를 골랐다. 누군가에겐 과시 성향 짙은 사람을 위한 사치품일 수 있고, 누군가에겐 감성적 쾌락을 만족시키는 스포츠 파트너일 수 있다. 2013년 첫 선을 보인 3세대 기블리는 브랜드 진입장벽을 낮춘 주역이자, 기름기는 조금 거둬내고 담백한 운동성능 갖춘 ‘막내’ 마세라티다.

마세라티의 시작은 모터스포츠였다. 1914년, 마세라티 성을 쓰는 다섯 형제들이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레이스카 제작을 위해 세운 작업장에 뿌리를 뒀다. 분초를 다투는 전쟁터에서 빠른 속도로 승부하는 데 모든 초점을 맞췄다. 실제로 1939년, 인디애나폴리스 500 레이스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1957년까지 F1을 포함해 무려 500회 이상의 우승을 기록했다.

이후 마세라티는 모터스포츠를 통해 쌓은 노하우를 양산차에 차츰 녹여냈다. 1967년 최초 등장한 기블리가 대표적이다.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서 베일 벗은 기블리는 마세라티 GT의 서막을 연 주인공이다. ‘펜두상어’처럼 길쭉한 콧날과 매끈한 지붕 등 이탈리안 감성으로 똘똘 뭉쳤다. 겉모습은 당대 자동차 디자인을 이끈 천재,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맡았다.

1973년, 기블리는 7년 남짓 짧은 생을 끝으로 종적을 감췄다. 이후 1992년 약 20년 만에 2세대에게 바통을 넘겼다. 코드네임 AM336이다. 이번엔 람보르기니 쿤타치와 미우라, BMW 5시리즈를 설계한 마르첼로 간디니가 디자인을 주도했다. 문 두 짝 품은 쿠페에 V6 2.0L 가솔린 트윈터보 심장 얹어 뭇 남성의 감성을 촉촉이 적셨다. 네모반듯한 표정도 그렇고.

2세대 역시 7년 동안 살다가 떠났다.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의 전신이자 기블리의 실질적 후계자인 3200 GT에게 1998년 바통을 넘겼다. 오늘 소개할 기블리는 2013년 등장한 3세대. 선조의 가치를 계승하되, 4도어 스포츠 세단의 탈을 쓰고 나타났다. 어느덧 6년이 지났지만, 오랜만에 만난 기블리는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다른 숙성된 매력을 갖춰 돌아왔다.

가령 주행모드 선택에 따른 변화보다, 페달 밟는 힘의 크기에 따라 성격을 바꾼다. 여느 프리미엄 세단처럼 얌전히 숨죽여 달리다가도, 발끝에 힘주면 시퍼런 발톱을 내민다. 굽잇길에선 부드럽게 궤적을 그리다가도, 손끝에 힘주면 앞머리를 코너 안쪽으로 예리하게 찔러 넣는다. 각종 전자장비로 버무린 성능이 아닌, 본질적 재미를 추구한 진짜 스포츠 세단이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든 안심감 주는 독일차 마니아에겐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누가 운전하든 100% 실력을 발휘하는 차가 아니니까. 기블리와 함께하며 농익어가는 나의 운전실력, 잃어버린 자극을 되찾은 기분이다. 그렇다고 장비에 인색한 건 아니다. ‘준자율주행’을 완성하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CC)과 차선유지 어시스트(LKA), 사각지대 경고도 빠짐없이 담았다.

기블리 S Q4의 보닛은 V6 3.0L 가솔린 트윈터보 엔진을 품는다. 미국 크라이슬러 인디에나 코코모 캐스팅 공장에서 알루미늄으로 빚은 블록을 가져와 이탈리아 페라리 마라넬로 공장에서 완성했다. 좌우로 구불구불 펼친 흡기포트와 삼지창 엔진커버 등 볼거리도 풍성하다. 5,750rpm에서 최고출력 430마력을 뿜고, 2,500~4,250rpm에서 최대토크 59.2㎏‧m를 토한다.

파트너는 ZF 자동 8단 변속기. 보편적인 토크컨버터 방식이지만 불과 0.15초 안에 각 단을 오르내린다. 또한, M(수동) 모드에선 타코미터 눈금이 레드존(6,500rpm)까지 치솟아도 자동으로 변속하지 않는다. 그만큼 운전자의 주도권이 크다. 커다란 패들 시프터를 당기며 각 단을 주무르는 맛이 짜릿하다. 0→시속 100㎞ 가속은 4.7초, 최고속도는 시속 286㎞다.

특히 4,000rpm 안팎에서 울려대는 ‘으르렁’ 악다구니에 자꾸만 – 버튼에 손이 간다. 또한, 이전보다 고속 안정감도 한층 올라갔다. 부분변경을 치르며 공기저항 계수를 Cd 0.31→0.29까지 낮춘 결과이기도 하다. 3m에 달하는 휠베이스도 한 몫 한다. 50:50으로 칼같이 맞춘 무게배분과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이 주는 까마득한 한계에, 이날 내 간은 배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재미가 대수랴. 짜릿함만으로 기블리를 고르기엔 명분이 부족하다. 패밀리카로 쓸 가장에겐 더더욱. 하지만 이차의 진가는 따로 있다. 유로NCAP에서 5 스타를 받았고, 어른 탑승자 부문 점수는 95%에 달할 만큼 안전하다. 뒷좌석에 탄 유아 더미는 24점 만점에 24점을 받았다. 대놓고 드러내지 않는 안전설계는 ‘츤데레’ 아저씨처럼 기대 이상 든든하다.

진짜 스포츠를 추구한 마세라티 기블리. 유행과 신기술이 우선인 요즘 차에 싫증났다면, 우직한 악당 같은 이차는 어떤가.

<제원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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