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시승] 최고의 V8 그랜드 투어러는 누구?

조회수 2019. 11. 6.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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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 vs 재규어 F 타입 SVR vs 메르세데스-AMG GT S

V8 3대를 불러 모았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출연진만 봐도 흥미진진하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얼마 전부터 자동차 시승이 교감 아닌 관망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자율주행기술이 자동차의 경쟁력으로 떠오른 뒤부터였을까. ‘그래, 너 얼마나 잘하나 보자’는 마음으로 운전을 맡겨 둔 채 디자인과 조립품질이나 따져보고 있다. 이러려고 서킷에 돈을 뿌리고, 애꿎은 타이어를 불태웠나. 운전 연습에 쓴 시간과 노력이 아까웠다. 이래선 안 돼. 조금이라도 늦기 전에 운전자에게 조종 전권을, 배기음 지휘봉을, 엔진 고삐를 넘겨줄 자동차를 찾아 나섰다.



엔진 다운사이징과 같은 타협은 없다. 먹성 좋고, 성질 괴팍한 녀석들 모아 악다구니판을 벌여보자 다짐했다. 조건은 V8 스포츠 쿠페. 8기통 하면 메르세데스-AMG를 빼놓을 수 없다. 그중에서도 끝판왕인 AMG GT S를 가장 먼저 불러 세웠다. AMG의 적수 BMW M도 자연스레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지만 아쉽게도 8기통 엔진 얹은 쿠페가 없다.



프리미엄 브랜드의 고성능 디비전이 또 무엇이 있을까. 동료가 재규어 SVR을 추천했다. 다행히 F-타입 SVR 쿠페가 시승차로 마련되어 있었다. SVR은 ‘Special Vehicle Racing’의 앞머리를 딴 줄임말. 경주를 위한 특별 모델이라는데, 안 불렀으면 섭섭할 뻔했다. 잠깐. 두 대를 모아놓고 보니 과급기로 터보와 슈퍼차저를 얹고 있다. 자연흡기 엔진만 있으면 더 볼만 하겠다 싶어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 스포츠를 스파링 무대에 올렸다.

GOLDEN RATIO



말로는 쉽지. 셋을 한데 모으기까지 고생 꽤나 했다. AMG GT S의 일정이 빡빡한 까닭이다. 용인 스피드웨이에서 고객 대상 드라이빙 아카데미로 바쁘신 몸이다. 일정을 맞추다 결국 잡지 마감 하루 전까지 밀려났다. 별수 있나. 동료 기자 둘에게 시승 지원을 요청했다. 원고 쓰느라 바쁠 텐데 오히려 즐겁게 픽업할 차를 고른다. 시승 장소는 꼬부랑 길 가득한 곳으로 미리 점 찍어 뒀다.



다음날, 산새들의 지저귐 대신 벼락같은 천둥으로 아침을 깨웠다. 셋은 목청 높여가며 초반부터 기 싸움을 벌인다. 목소리 크기로는 F-타입 SVR이 ‘갑’이다. 소음규제를 어떻게 통과했는지 의심이 들 정도. AMG GT S는 V-트윈 엔진 얹은 할리데이비슨 4대가 한꺼번에 지나가는 듯하다. 마세라티는 배기음에 한이 서려 있다. 새끼 잃은 어미 호랑이의 울음 소리를 닮았다. 역시 배기음은 자연흡기다.





셋은 청각만큼이나 시각적 자극도 남다르다. 아찔한 몸매를 자랑한다. 키는 60% 이상이 유전이라고, 명품 몸매 또한 집안 내력이다. AMG GT S는 벤츠의 레이스카 실버애로우의 비율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F-타입은 E-타입의 후손이 분명하다. 그란투리스모는 1966년 조르제토 쥬지아로의 손에 태어난 기블리를 빼닮았다. 아름다운 몸매의 비결은 환상 비율에 있다. AMG GT를 그린 벤츠 익스테리어 디자인 총괄 로버트 레스닉과 F-타입을 디자인한 전 재규어 디자인 총괄 이안 칼럼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비율을 강조했다.




로버트 레스닉은 AMG GT 디자인에서 ‘비율이 전부’라고 말했을 정도다. 실제로 AMG GT S를 길에서 마주하면 숨이 턱 막힌다. 롱노즈 숏데크 디자인의 정수를 보는 듯하다. 차체 길이는 4546mm. 이 가운데 앞 코끝부터 문이 시작하는 곳까지 길이는 1865mm에 이른다. 운전석은 뒷바퀴 바로 앞에 자리하는데, 꼭 롤러코스터 가장 뒷자리에 앉아 스릴을 즐기는 기분이다. 1939mm에 이르는 너비도 범상치 않은 분위기에 한몫한다.



F-타입은 뒤태가 예술이다. 지붕을 타고 내려온 라인을 꽁무니 끝까지이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꼭 떨어지는 물방울을 닮았다. 트렁크 해치를 사이에 두고 뒤 펜더는 양껏 부풀렸다. 화룡점정은 좌우로 길게 찢은 테일램프. 인상 팍 쓰고 쳐다보는 표정이다. F-타입을 뒤따라가면서 속옷을 살짝 적실 뻔했다. 정말이지 F-타입보다 예쁜 뒤태 가진 자동차를 지금 시대에는 찾을려야 찾을 수가 없다.




자동차 외모를 바다 생물에 곧잘 비교하곤 한다. 평가는 극과 극이다. 정말 못생겼거나 정말 멋있거나. 그란투리스모는 후자다. 아스팔트에 올라 온 상어가 따로 없다. 그란투리스모는 올해로 데뷔 12주년을 맞이했다. 잘생긴 얼굴이 어디 갈까. 브래드 피트는 늙어도 브래드 피트다. 그란투리스모도 여전히 빛나는 외모를 뽐낸다. 안으로 꺾여 들어가는 라디에이터 그릴 속 살들은 꼭 상어의 날카로운 이빨을 보는 듯하다. 뒷모습은 세월의 흐름을 막아서지 못했다. 테일램프만 풀 LED로 새로 디자인해도 참 멋질 텐데. 아쉬울 따름이다.

RED, RED AND RED




속살은 모두 빨간색으로 포인트를 줬다. F-타입은 블랙이 포인트 컬러인가? 아무튼 셋 모두 올라타면 심박수가 덩달아 치솟는다. 가장 긴장감 넘치는 운전 자세는 AMG GT S에서 맛볼 수 있다. 시트를 최대한 내리깔면 문 열고 땅바닥에 담뱃불 비벼 끌 수 있을 정도로 낮다. 사이드미러는 눈높이보다 위에 자리한다. 센터터널이 높게 자리해 사방이 옹벽으로 가로막힌 기분이다. 경주차 콕핏에 앉으면 꼭 이런 느낌일까? 자리에 앉기만 해도 달리고 싶은 마음이 벅차오른다.




F-타입은 여느 승용 세단과 시트 포지션이 비슷하다. 적응할 시간이 필요 없어 좋다. 시야도 좋은 편이어서 도심 주행이 한결 쉽고 편했다. 인테리어 디자인과 소재는 AMG GT S보다 고급스럽다. 사실 AMG GT의 은빛 센터 터널은 조금 촌스럽다. 블랙 브러시 무늬로 꾸민 F-타입의 센터페시아가 훨씬 멋스럽다. 에어컨을 켜면 대시보드에서 송풍구가 ‘징’하고 올라오는데, F-타입 인테리어에 놀란 친구를 한 방 더 먹일 수 있는 킬링 포인트다.





그란투리스모에 비교하면 둘 다 공산품에 불과하다. 그란투리스모의 인테리어는 수공예 작품을 보는 듯하다. 요소 하나하나마다 장인의 손길이 느껴진다. 계기판만 봐도 급이 다르다. 셋 다 진짜 바늘이 있는 아날로그 계기판을 품고 있다. 그란투리스모는 고급 오토매틱 시계처럼 기품있다. 나머지 둘은 어딘가 모르게 가벼워 보인다. 비단 계기판만 그런 건 아니다. 스티어링휠, 패들시프트, 가속 페달, 기어 레버 심지어 도어 손잡이까지 그란투리스모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을 AMG GT와 F-타입에선 경험할 수 없었다. 물론 공조기 조작 버튼만 빼고.




TWIN-TURBO, SUPER CHARGERED, NATURALLY ASPIRATED




엔진은 실린더 8개를 V자로 줄 세웠다는 점만 같을 뿐 공통점은 없다. AMG GT S의 심장은 V8 4.0L 트윈터보. 최고출력은 510마력, 최대토크는 66.3kg•m에 이른다. 특징은 V자 가운데에 얹은 트윈터보의 위치다. 일명 ‘핫 인사이드 V’다. 이를 통해 엔진 크기를 보다 작게 만들고, 터보차저 반응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AMG GT S 터보차저의 분당 최대회전수는 18만6000rpm에 달한다. 벤츠에 따르면 같은 배기량 엔진보다 2.3배 많은 공기를 불어 넣는다고.




F-타입 SVR은 셋 중 배기량이 가장 크다. 무려 5000cc에 달한다. 여기에 슈퍼차저까지 더해 힘도 가장 세다. 최고출력 575마력, 최대토크 71.4kg•m를 뿜는다. 반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17g/km로 가장 적고, 복합연비도 8.0km/L로 가장 좋다. 슈퍼차저는 엔진 동력 일부를 이용해 공기를 압축하고 쑤셔 넣는 까닭에 연비가 좋지 않은 게 정상인데 의외였다.

물론 체감 상 연비가 가장 떨어진다고 느낀 건 비밀. 대신 엔진 회전수가 어느 정도 올라야 제대로 힘을 내는 터보와 달리 슈퍼차저는 저속에서도 높은 출력을 끌어내기 쉽다. 물론 AMG GT S의 엔진 반응이 워낙 날쌔고 좋아 슈퍼차저의 이점이 잘 드러나진 않았다.




이런 말 많이 들어봤을 테다. “터보랙을 줄여 자연흡기 엔진과 같은 반응을 끌어냈다” 또는 “자연흡기 엔진과 같이 출력 곡선이 선형적이다”. 과급기 얹은 엔진의 이상적인 목표는 자연흡기 엔진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역시 완벽히 따라 하기란 쉽지 않다. 엔진 회전수를 높여 최고출력 내뿜는 지점에 도달하는 과정에 감성이 없다. 발가락 까딱하기만 해도 최대토크 밴드에 다다르는 까닭이다.

그런 점에서 그란투리스모의 V8 4.7L 엔진은 찬양할만하다. 무려 7000rpm에 이르러 최고출력 460마력을 토해내는데, 그 과정에 멜로와 드라마, 액션이 모두 담겨 있다. 툭하면 기계적으로 ‘여기 있어’하고 모든 힘을 내놓는 과급기 방식 엔진과 다른 매력이다.

FURIOUS TOURER



고갯길 정복 첫 번째 상대로 AMG GT S를 골랐다. 시동 버튼을 눌러 잠에서 깨우자 ‘우르르 쾅’ 거친 성미를 내비친다. AMG GT S의 개발 목표는 포르쉐 911 타도. 처음엔 911의 움직임에 가깝게 만들었다는 말인가 싶었다. 직접 몰아보니 완전히 다른 매력으로 어필하고 있었다.

911보다 경주차 성향이 더욱 짙다. 서스펜션은 단단함을 넘어 다소 뻣뻣하다. 요철을 만나면 위험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템포를 높여 나갔다. 그런데 노면을 부여잡는 실력이 엄청나다. 차체가 붕 뜰라치면 잽싸게 낚아챈다. 누가 위에서 눌러주고 있나? 놀라울 뿐이었다.



911은 보디 롤이 살짝 느껴진다. 단점은 아니다. 코너를 돌아나갈 때 무게 중심을 이동해 노면을 제대로 짓누르고 있다는 느낌이 선명해 오히려 안정적이다. AMG GT S는 보디 롤 따위 없다. 그저 레일 위 기차처럼 머리만 틀어 코너를 빠져나간다. 서스펜션은 끄떡하지도 않는다. 타이어만 살짝 눌리는 기분이다.



때문에 타이어 한계 파악이 매우 중요하다. 사이드월이 크게 눌려 접지를 잃는 순간 바깥으로 밀려나기 십상인 까닭이다. 대신 재미가 월등하다. AMG GT S는 레이서에 빙의해 밀어붙이는 재미가 911보다 한 수 위였다. 편안한 마음으로 빨리 달리느냐, 스릴 넘치는 주행 즐기며 빨리 가느냐. 후자가 마음에 든다면 답은 AMG GT S다.




F-타입 SVR은 성인 심장 품은 중등부 육상선수 같다. F-타입은 여기 모인 셋 중 가장 빠르다. 0→시속 100km 가속 시간은 3.7초. AMG GT S보다 0.1초, 그란투리스모보단 1.1초 날렵하다. 그런데 몸놀림이 불안하다. 심장은 피가 철철 끓어 넘치는데, 아직 뼈와 근육이 덜 여물은 듯하다. 심지어 홀로 네 바퀴를 굴리는데도 안정을 찾기 좀처럼 쉽지 않다. 스티어링휠은 노면 정보를 너무 많이 거른다. 조금 더 직관적이어도 좋을 듯한데, 편안한 크루징에 초점을 맞췄다. 레이스 모드에서라도 스티어링휠을 더 바싹 조였으면 좋을 뻔했다.




F-타입 SVR의 밑천이 드러났다는 의미는 아니다. AMG GT S를 타고 바로 뒤에 운전해서 불안함과 부족함이 더 크게 느껴졌을 가능성이 크다. 단 제목에 가장 잘 어울리는 차를 고른다면, F-타입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분노의 투어러. F-타입 SVR을 운전하면서 ‘이러다 가는구나’ 싶었다. 지금 어떤 차를 타도 재미가 없다면 F-타입 SVR을 경험해 보기 바란다. 이 세상 자동차의 자극이 아니다. 그러나 지나친 흥분은 금물이다.



마지막으로 그란투리스모 운전석에 올랐다. 스티어링휠은 90도에 가깝게 서서 운전자를 정면으로 주시하고 있다. 양손을 턱하고 올리면 바로 깨닫는다. 스포츠카 운전 자세의 정석이 무엇인지. 가속 페달 밟는 감각도 묵직하다. 발을 밀어내는 반발력까지 느껴질 정도다. 그래서 미세하게 조절하기 좋다. 주행모드는 스포츠로 바꿨다. ZF 6단 변속기는 40% 더 빠른 속도로 기어를 바꿀 준비를 마친다. 머플러도 플랩을 활짝 열어 한 음 더 높인다.




그란투리스모는 2+2 시트 구성을 갖추고 있다. 셋 중 유일하다. 즉 차체 크기가 가장 크다는 뜻이다. 길이×너비×높이는 4910×1915×1355mm. 휠베이스는 2942mm에 달한다. AMG GT S와 F-타입보다 30cm 더 길다. 무게도 1880kg으로 육중하다. 출력은 가장 낮으니 굼뜬 게 사실이다.

그런데 누가, 어떻게 운전하느냐에 따라서 다른 맛을 낸다. 그란투리스모는 운전자를 심하게 가린다. 클래식 음악과도 같다. 분명 악보는 하나인데 어떤 지휘자가 어떻게 지휘하느냐에 따라 음악의 세기, 템포가 바뀌어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스포츠 모드로 바꾼 김에 박자를 높였다. 격렬한 움직임과 울부짖는 배기음으로 박진감이 넘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점잖은 클래식 음악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가속과 감속, 차체 움직임은 우아하고 부드럽다. 갑자기 헤비메탈로 바뀌는 일은 없다. 코너를 공략하면 커다란 차체 크기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을 만큼 날렵하다.




하지만 분명 한계는 AMG GT S와 F-타입 SVR보다 낮다. 코너를 조금 높은 속도로 들어갔다 싶으면 언더스티어로 경고한다. 운전자가 선을 넘지 않도록 유도하는 배려다. 친절을 베푸는데, 괜한 호기로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 흥분을 가라앉혔다. 확실히 운전은 AMG GT S와 F-타입 SVR보다 편안하고 쉽다. 이 둘은 운전자를 재촉하는 반면 그란투리스모는 어르고 달랜다.



시승 내내 영화 <매드맥스>의 워보이가 되어 V8을 외쳐댔다. 어떤 차를 타고 퓨리오사를 쫓아볼까 고민에 빠졌다. 경주차 피가 흐르는 AMG GT S는 너무 뻣뻣해서 금방 지쳐 쓰러질지도 모른다. F-타입 SVR은 정신줄 놓고 달리다 다른 워보이 차를 박고 뒤처지겠지. 이내 곧 삼지창 들고 뒤를 쫓기로 마음먹었다. 장거리 추격은 체력전이나 다름없다. 편안하되 날쌘 GT카가 딱이다.

이현성

사진 이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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