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는 승부, 레인지로버 VS 컬리넌

조회수 2019. 11. 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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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어색한 두 차가 만났다. 럭셔리 SUV 최강자는 누구인가?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모른다. 1970년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타고난 오프로드 성능과 리무진 같은 럭셔리한 실내가 큰 호응을 얻었던 건 분명하다. 레인지로버는 차츰 럭셔리 SUV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고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사막의 롤스로이스’ 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괜히 나서서 “난 사막의 롤스로이스가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도 웃기다. 영국 왕실에서 애용하는 SUV로도 유명세를 떨친 마당에 까짓것 그런 별명을 못 가질 이유도 없었다. 내심 또 그렇게 불려서 기분이 좋았는 지도 모른다. 세계 명차 반열에 올라있는 브랜드와 동급 취급받는 건 아무에게나 생기는 일이 아니니까. 

SUV 신드롬은 럭셔리 브랜드 역시 가만두지 않았다. 2015년 벤틀리가 벤테이가를 내놓을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사막의 벤틀리라고 한 적은 없으니까. 하지만 결국 그날이 오고 말았다. 진짜가 나타났다. 롤스로이스에서 SUV 컬리넌을 출시할 줄이야. 레인지로버가 잠자리에서 악몽으로 꾸었던 꿈이 현실이 됐다. 

이대로 가짜로 낙인찍히는 건 용납 못 한다. 컬리넌과의 정면승부를 선택했다. 럭셔리 SUV 최강자를 가릴 참이다. 레인지로버는 SUV 세계에서 수십 년간 입지를 다져온 플래그십 럭셔리 SUV다. 작정하고 화려하게 치장하면 제아무리 롤스로이스라도 만만하게 볼 수 없다.



#EXTERIOR

역시 오토바이오그래피 정도는 돼야 컬리넌과 해볼 만하다. 먼저 컬리넌부터 살펴보면 SUV 세그먼트로는 처음으로 적용한 ‘쓰리 박스’ 스타일(엔진룸, 실내, 트렁크를 완전히 분리한다)로 롤스로이스만의 독특한 디자인을 완성했다. 키는 레인지로버보다 33mm 작지만, 존재감은 결코 작지 않다. 파르테논 신전을 형상화한 프런트 그릴과 보닛 위에 환희의 여신상을 더해 등장부터 좌중을 압도한다. 



이에 반해 레인지로버 얼굴은 비교적 훨씬 부드럽다. 다시 말해 웅장함이 덜하다. 오래전부터 같은 형태로 차를 만들다 보니 디자인이 어느 정도 눈에 익어서 그럴 수도 있다. 눈에 띄는 게 부담스러워서 튀는 차는 일부러 피하는 부자들도 있을 터다. 눈에 덜 띄지만 화려한 실내를 가진 레인지로버는 이런 이들에게 많은 선택을 받았다. 흉이 아니다. 그만큼 실내는 부자들의 취향을 맞췄다는 이야기니까.



#INTERIOR

비교를 위해 데려온 컬리넌은 아쉽게도 옵션을 거의 넣지 않은 모델이다. 옵션을 넣기 시작하면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는 비스포크 특성상 시승차에는 옵션을 비교적 가볍게 담았다. 옵션을 뺀 기본가격만 4억6900만원이다. 레인지로버 오토바이오그래피(2억3820만원) 거의 2배 가격이다. 롤스로이스에서 저렴한(?) 축에 속하는 컬리넌이지만, 실내는 신발을 벗고 타야 할 만큼 화려하기 그지없다. 

가죽은 모기에 물리지 않은 것으로 엄선한다. 구석구석 철저하게 수작업하는 장인정신을 실내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가죽 시트는 실크처럼 부드럽고 양털 매트는 이불처럼 두껍다. 무엇보다 전에 느끼지 못한 안락함을 준다. 브랜드 시그니처 코치 도어는 탑승객을 마차에서 타고 내리는 귀족으로 만들어준다. 



레인지로버 실내는 상위 트림답게 고급 옵션으로는 컬리넌에게 큰소리칠 수 있다. 뒷좌석 리무진 시트, 10인치 리어 엔터테인먼트 모니터, 전 좌석 마사지 기능, 세미 아닐린 가죽 등 고급 편의사양이 차고 넘친다. 버튼만 까딱하면 시트건, 블라인드건 다 자동으로 움직인다. 실내에 들어가는 모터의 숫자를 헤아리는 데만도 한참 걸린다. 항공기 일등석처럼 리무진 시트를 길게 눕혀서 영화를 보며 집처럼 편하게 누워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POWERTRAIN

컬리넌에는 무려 12기통 6750cc 엔진이 들어간다. 터보를 2개나 물렸는데 생각보다 최고출력이 높지 않다(563마력). 8기통 5.0L 슈퍼차저 엔진 (525마력)을 올린 레인지로버와 얼추 비슷한 수준이다. 가속페달을 짓이겨도 핏대를 세우며 달리지 않는다. 고개가 뒤로 젖혀지는 일도 없다. 힘은 남아돌지만, 귀족 가문 자제답게 언제나 고상하게 달리도록 엔진을 세팅했다. 



레인지로버 역시 힘의 전개가 급하지 않다. 파워는 충분하다. 마음만 먹으면 가속페달을 살짝만 건드려도 거구를 제법 민첩하게 움직인다. 실린더 8개가 움직이는 엔진회전질감이 상당히 부드러워서 V12가 부럽지 않다. 변속기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성능을 보장하는 ZF 8단을 물렸다. 같은 변속기를 단 스포츠카에서는 일부러 변속 충격을 주어 스포츠 성향을 살렸지만, 레인지로버에서는 한없이 점잖으면서도 빠릿빠릿하다.

#RIDE & HANDLING

승차감은 최근 시승한 SUV 중 최고다. 묵직함이 더 느껴지는 컬리넌 쪽이 더 마음에 들지만, 레인지로버가 크게 뒤처지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 노면은 그리 깨끗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갓 포장한 아스팔트를 달리는 기분이다. 5시간을 달려도 피곤하지 않을 듯싶다. 부드럽게 충격을 걸러주던 서스펜션은 코너를 돌면서 스티어링휠을 꺾는 순간 짱짱해진다. 가속을 너무 일찍 전개하더라도 걱정 없다. 듬직한 네바퀴굴림 시스템 덕에 코너 탈출이 안정적이다. 



약간의 언더스티어 성향은 두 모델 모두 2t이 넘는 거구이기 때문이다(컬리넌 무게는 무려 2660kg이다). 컬리넌을 세우려면 제동 시점을 조금 앞당겨 페달을 밟아야 한다. 평소처럼 브레이크 페달을 밟으면 원하는 제동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롤스로이스는 멈출 때도 콱콱 경망스럽게 멈추지 않기 때문에 조금밀린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OFF-ROAD

고상한 컬리넌이 오프로드에서도 거침없는 주행을 보여줄 수 있을까? 거친 오프로드에서도 특유의 고급스러움이 그대로 이어진다. 컬리넌의 승차감은 일반 도로보다 오프로드에서 확실하게 도드라진다. ‘매직 카펫 라이드’로 불리는 최신 에어 서스펜션이 차체, 휠 가속, 조향, 카메라 정보를 초당 수백만 번 계산해서 충격을 가장 이상적으로 흡수한다. 조금 과장하면 거친 오프로드도 일반 도로 위를 달리는 듯 매끄럽게 소화한다. 



센터콘솔 앞 ‘에브리웨어’ 버튼을 누르면 오프로드 성능이 한껏 진화한다. 차가 알아서 86.7kg·m에 달하는 최대토크를 4개의 바퀴에 막힘 없이 전달하면서 젖은 잔디, 자갈길, 진흙밭, 모래밭 등 어느 험로 위라도 부드러운 주행이 가능하게 돕는다. 최적의 접지력과 토크로 오르막길도 여유롭게 오른다. 



레인지로버도 전자동 지형반응시스템 Ⅱ로 불리는 비슷한 드라이브 셀렉터를 가지고 있다. 이 시스템은 주행환경을 면밀히 분석하고 가장 적합한 프로그램을 선택한다. 눈길이면 눈길, 자갈길이면 자갈길,운전자가 직관적으로 고를 수도 있다. 서스펜션 높이, 엔진 반응, 트랙션 컨트롤 개입 등도 조정해서 어떤 주행 환경에서도 최상의 오프로드 성능을 발휘한다.

#CONCLUSION

두 모델 모두 훌륭한 럭셔리 SUV다. 단점을 발견하기에 하루라는 시간은 너무 짧았을지도 모른다. ‘억’ 소리 나는 차를 가지고 마음 놓고 험로를 주행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확실한 건 ‘사막의 롤스로이스’라고 칭송받던 레인지로버가 반세기 동안 자기만의 노하우를 축적하고 발전을 거듭해왔다는 사실이다. 레인지로버는 레인지로버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자동차로 성장했다.

박지웅 사진 이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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