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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 리스펙 핸들링, 서킷에서 타 본 488 스파이더

조회수 2019. 8. 26. 20:5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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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연기관 자동차의 종말이 코앞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다운사이징에 열을 올리더니 이제는 아예 전동화시키는 추세다. 페라리도 고집을 꺾었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슈퍼카, SF90 스트라달레를 통해 전동화에 발을 들였다.
하지만 변화의 물살에도 페라리가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V8 엔진이다. 페라리의 V8은 SF 스트라달레를 비롯, 엔트리인 포르토피노와 최근 우리나라에 선보인 F8 트리뷰토에 탑재된다. 오랜 시간 갈고 닦은 페라리의 상징적 존재다.

필자는 강원도 인제 스피디움에서 페라리의 V8 엔진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시승 차량은 488 스파이더. 308 GTS의 직계 후손이자 F8 트리뷰토의 선조다. 짜릿했던 V8의 전율. 짧은 서킷 주행을 통해 느낀 바를 전한다.

번호판 달린 페라리. 왠지 생소하다. 사진 상으로나 봤던 488 스파이더를 한참이나 바라볼 수 있다니. 그마저도 행복이었다. 생김새는 영락없는 슈퍼카다. 쐐기형 실루엣은 볼수록 빠져들고 바짝 선 헤드램프는 묘한 긴장감마저 든다. 차체를 더욱 볼륨감 있게 만든 사이드 스커트, 그 위로 깊게 판 에어덕트, 그 사이를 파고든 카본 디퓨저까지. 완벽하다.

굳이 트집을 잡는다면 숨어버린 엔진룸을 들 수 있겠다. 하드톱 컨버터블인 488 스파이더는 구조 상 밖에서 엔진룸을 들여다 볼 수 없다. 갤러리에게는 무척 아쉬운 요소다. 물론 488 스파이더의 주인이라면 패널 속 빨간 V8 엔진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겠지만.

인테리어는 지극히 이기적이다. 대다수 버튼들이 운전자를 향한다. 동승석 앞 센터페시아에는 디스플레이를 마련했다. 이 작은 창을 통해 속도와 엔진 회전, 기어 단수등 간단한 정보들을 실시간 확인할 수 있다. 다소 투박한 그래픽이지만 이마저도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운전석에 오르면 인테리어는 또다른 분위기를 낸다. 클러스터 가운데 커다랗게 자리잡은 엔진 회전계, 카본으로 덮인 커다란 패들시프터와 ‘스포츠’가 기본인 마네티노 스위치까지. 운전대의 엔진 스타트 버튼과 센터 터널의 기어 버튼에 손을 얹으면 전투기에 앉은 듯하다.

시트 뒤 편에는 V8 3.9L 트윈터보 엔진이 자리잡았다. 최고출력 670마력, 최대토크는 77.5kg·m에 달한다.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 잡힌다고? 488 스파이더는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이르는 데 3초가 걸린다. 시속 200km까지는 8.3초면 충분하다. 최고속도는 325km/h. 무시무시한 녀석이다.

운전대의 빨간 버튼을 눌러 엔진을 켰다. 웅장한 배기음과 함께 크랭크가 돌기 시작했다. V8 특유의 고동감도 손끝으로 전해진다.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다. 인스트럭터 지시에 따라 피트를 빠져나갔다. 1,420kg에 불과한 차체와 성능 때문에 출발부터 힘을 쏟아내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의외로 차분하게 바퀴를 굴린다. 잔뜩 긴장한 필자를 달래는 듯하다.

첫 바퀴는 감을 익히는 데 집중했다. 코너를 따라 운전대를 좌우로 돌려보고 엑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 페달의 답력도 느껴보았다. 서서히 피치를 높이며 연석을 타고 올랐다. 의외였다. ‘슈퍼카는 거칠고 투박할 것’이라는 필자의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가속과 감속은 시종일관 선형적이다. 자기 유동식 댐퍼는 생각보다 유연하게 움직였다.

두 바퀴 째. 본격적으로 달릴 차례다. 엑셀러레이터를 밟기 시작하자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엔진 회전계는 어느새 8,000rpm을 향했다. 운전대의 LED 인디케이터는 변속 시점임을 알리며 연신 깜빡였다. 폭발적인 가속력에 멍 때렸다. 퓨얼컷이 걸리는 데에도 순간적으로 변속할 생각을 못했다.

정신차리고 인제 스피디움 직선 주로를 달렸다. 페라리 특유의 사운드로 서킷을 채웠다. 488 스파이더는 지체없이 속도를 높였다. 두 개의 터보로 조율한 덕에 터보 래그도 느낄 수 없었다. 속도계는 금세 200km/h를 넘어섰다.

1번 코너. 내려꽂을 듯한 경사와 함께 오른쪽으로 돌아나가는 인제 스피디움의 첫 번째 난관이다. 부드러우면서도 정확한 감속이 요구되는 구간이다. 488 스파이더의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는 칼 같다. 운전자가 원하는 만큼, 필요한 만큼의 제동을 귀신같이 해낸다. 서킷을 네 바퀴 타는 동안 한순간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이어지는 코너에서는 사이드 슬립 앵글 컨트롤(SSC2)이 빛을 발한다. ‘코너에 차를 내던져라’는 인스터럭터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488 스파이더는 앞머리를 코너 안쪽으로 튼 채 시종일관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한다. ‘스포츠’ 모드에서는 불안한 기색이 없다. 사실 필자가 가장 걱정했던 포인트다. 670마력의 힘을 오로지 뒷바퀴에만 쏟는다는 것. 혹여나 미끄러지지는 않을지, 컨트롤 할 수 있을지 두려웠다. 쓸 데 없는 걱정이었다. 488 스파이더는 트랙션을 끈덕지게 유지한다. 기대 이상으로 똑똑했다.

감속과 가속을 반복하는 가운데 변속기도 인상적이다. 488 스파이더는 게트락제 7단 듀얼 클러치를 물렸다. F1 기술을 접목시킨 페라리의 자랑거리다. 빠릿빠릿한 변속은 말할 것도 없다. 업시프트든 다운시프트든 패들시프터 당기면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공식적인 기어 변속 시간은 0.06초에 불과하다고. 과정 자체도 매력적이다. 활대에서 화살 ‘땅’하고 튀어나가는 듯한 변속 충격에 빠져든다.

488 스파이더의 달리기에 익숙해질 때쯤 피트로 돌아왔다. 엔진이 뿜는 열기에 시트 등받이가 후끈해질 정도로 달렸다. 필자가 경험한 페라리 488 스파이더는 감동이었다.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고의 운전 재미를 선사했다. 운전대를 놓으며 ‘조금 더 용기내 볼 걸’이라는 생각을 몇 번이나 되뇌었다. 아쉬움과 후회스러움, 감동이 뒤섞여 복잡 미묘한 심정이었다.

한편으로는 기분 좋은 상상이 이어졌다. F8 트리뷰토에 대한 설렘이다. F8 트리뷰토는 V8 엔진을 다시 한 번 가다듬었다. 최고출력은 720마력으로 끌어올렸고(무려 50마력이나 향상됐다) 최대토크 역시 78.5kg·m로 올랐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9초, 최고속도는 340km/h에서 제한된다. 488보다 빠르다는 이야기.

이탈리아어 트리뷰토(Tributo)는 '헌사, 헌납'을 뜻한다. 20년 역사를 자랑하는 페라리 V8 엔진에 대한 오마주다. 페라리는 F8 트리뷰토에 모든 역량을 쏟았다. 내연기관의 미래가 불투명한 가운데 페라리의 마지막 자존심과도 같다. 페라리 V8의 진화. 488 스파이더를 타고서 F8 트리뷰토를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

이정현 기자 urugonza@encarmagaz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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