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마세라티 르반떼 트로페오

조회수 2019. 8. 7.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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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UINE BEAST

외모만 SUV인 슈퍼카를 만났다. 그의 별명은 트로페오.

SUV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면서 프리미엄 완성차 업체들도 지분을 나눠 먹기 위해 너 나 할 것 없이 SUV 개발에 뛰어들었다. 전통적으로 스포츠카만 만들었던 제조사들도 예외는 아니다.

포르쉐가 2002년 내놓은 카이엔은 ‘매운 고추’라는 뜻처럼 보란 듯이 고성능 SUV 시장을 키워나갔고, 경영난까지 해소해준 효자 모델로 자리 잡았다.

커져가는 시장을 마세라티도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 2016년 르반떼를 전격 데뷔시키며 고성능 SUV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마세라티는 2018년 ‘르반떼 트로페오(Trofeo)’를 발표한다. 이미 GTS에 올려진 페라리의 F154 엔진을 좀 더 손봐 출력을 590마력까지 높인 한정판 트림이다. 람보르기니 우루스의 등장을 꽤 의식한 모양이다.

이유야 어찌 됐건 르반떼 트로페오는 지금 눈앞에 있고, 직접 경험해보면 알 것이다. 자칭 슈퍼 SUV로 부르는 우루스에 필적할 만한 차인지, 머지않아 세상에 나올 페라리 SUV의 예고편이 될 자격이 충분한지 말이다.

우선 르반떼 트로페오의 디자인을 살펴본다. 언뜻 보면 기존 르반떼와 같아 보여도 레이싱 혈통을 가진 브랜드에서 나온 슈퍼 SUV라는 점을 드러내기 위해 구석구석 차별화된 디자인 요소를 적용했다.

빠져들 듯한 짙은 블랙 색상의 그릴은 보기만 해도 흐뭇한 배지 옆으로 더블 수직바가 자리하고, 프런트 범퍼 좌우 에어 인테이크 쪽과 하단 스플리터에 적용한 카본 파이버 소재가 트로페오의 존재감을 한껏 고조시킨다.

보닛의 형상도 다르다. 마세라티는 르반떼 트로페오 전용 보닛을 만들어 장착했다. 뜨겁게 달궈진 엔진 열을 식혀주는 배출구는 트로페오의 역동성을 부각하는 디자인적 성격도 강하다.

특유의 마세라티 색은 측면에도 이어진다. 시그니처 디자인 요소인 3개의 에어 벤트가 프런트 펜더 위로 늘어서 있고, 파도치듯 세차게 뻗은 캐릭터 라인은 성난 포세이돈의 힘이 느껴진다. 르반떼는 가장 이상적인 루프 라인을 자랑하는 SUV 중 하나다.

후미로 갈수록 세련미가 넘치는 매끈한 디자인은 잘 빠진 그란투리스모 같은 쿠페형 디자인 철학을 잘 반영했다. 보통 C필러에 붙이는 배지는 삼지창 아래에 ‘TROFEO’ 모델명을 넣었다.

루프 라인이 테일램프까지 뚝 떨어지는 바람에 축 처진 엉덩이가 될 뻔했지만, 카본 파이버 소재를 적용한 리어 범퍼와 트윈 듀얼 머플러가 빵빵함을 채우고, 리어 루프 스포일러가 구원투수로 활약하니 흔히 SUV가 보이는 우람한 자태는 없지만, 빠른 SUV답게 스포티함은 유지한다.

두툼한 문을 열면 시트 헤드레스트에 트로페오 철자 하나하나 박아 넣은 자수가 운전자를 반긴다. 트로페오 글자를 머리맡에 두고 콕핏에 앉으면 호불호가 없는 마세라티 배지에 시선을 고정한다.

일반 사람들 중엔 마세라티를 경험해본 사람이 많이 없을 테니 어쩌면 차보단 이 배지 디자인에 더 매료됐을 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봐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배지 디자인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실내 역시 카본 파이버를 몇 군데 적용해 트로페오의 역동성을 표현했다. 컵홀더 덮개까지 카본 파이버인 호사를 누린다.

인테리어 디자인은 썩 트렌디하지 않지만, 이탈리안 클래식으로 통하는 멋은 분명 있다. 마세라티 감성으로 채운 차세대 인테리어는 어떤 모습일지 마세라티 차량만 타면 기대치가 이상하게 계속 올라간다.

트로페오의 엔진을 깨워본다. 8기통의 앙칼진 사운드가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오히려 창문까지 열고 영접해야 할 판. 페라리 F154 계열 엔진이 마세라티에 쓰인 지는 꽤 오래됐다. 아니 사실 6세대 콰트로포르테 GTS가 페라리 모델들보다 앞서 제일 처음 사용했다.

르반떼 GTS가 다음 계보를 이었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르반떼 GTS나 트로페오나 콰트로포르테가 공급받아 쓰던 엔진을 손봐 조금씩 출력을 높인 수준이다.

일반 모드에서도 배기음은 제법 그르렁거리지만, 스포츠 주행을 극대화한 코르사(Corsa) 모드로 바꾸면 먹이를 노리는 사자처럼 자세를 낮추고 거친 숨을 내뱉기 시작한다. 엔진 반응속도 또한 영민하게 바뀌어 가속 페달에 가져가는 발끝에 신중함을 더해야 한다.

곡 뽑는 기술은 마세라티가 한 수 위다. 포르토피노와 488 모델도 F154 계열 엔진을 품었지만, 요리 방법이 다른 두 회사의 배기음 역시 다를 수밖에. 배기음은 예전부터 마세라티가 잘 만들었다. 이번 역시 명불허전이란 말을 실감케 한다.

론치 컨트롤(Launch Control)로 스로틀을 힘껏 열었다. 이 순간 트로페오는 더 이상 무거운 SUV가 아닌 슈퍼카다. 참았던 숨을 내뱉듯 거친 배기음을 내며 튕겨 나간다. 제로백 3.9초란 말이 거짓이 아닐 것이다. 굳이 의도하지 않아도 속력은 금세 시속 200km를 바라본다.

시속 300km 이상까지 더 쓸 힘이 남아있음이 놀라울 뿐이다. 배기음의 하이라이트는 길다란 패들시프트를 당겨 다운시프트를 할 때다. 기어 단수를 낮출 때마다 엔진 회전수를 올리며 포효한다. 듣기 싫은 굉음이 아니라 심금을 울리는 감미로운 소리다.

아스팔트를 네 발로 움켜쥔 트로페오는 거칠게 휘어진 코너 구간도 식은 죽 먹기다. 맹렬하게 휘몰아쳐도 듬직한 Q4 사륜구동 시스템은 1/15초의 순간 판단으로 출력을 최적으로 제어하며 안전하면서도 빠르게 코너를 돌아 나가도록 돕는다.

분명 SUV를 탔지만, 슈퍼카를 탄 기분이 들었다. 여운이 트로페오를 보낸 후에도 계속됐다. 주행 성능은 람보르기니 우루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걱정되는 부분은 다른 곳에 있다. 외관은 개인 취향이겠지만, 인테리어는 호불호가 확실하게 갈릴 것이다.

아무리 멋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도 돈 얘기가 들어가면 호불호는 더 확실해진다. 르반떼 트로페오와 우루스 모두 2억원이 넘는 고가 차량이다.

물론 각종 옵션을 더하면 우루스가 훨씬 가격이 뛰겠지만, 이런 고가의 차량을 사는 소비자는 어차피 얼마가 들어가더라도 돈값을 하는 차를 선호한다. 돈은 억대로 들어갔는데 옛날 차를 타는 기분은 느끼고 싶지 않지 않을까?

글 | 박지웅

사진 | 최재혁

SPECIFICATION

길이×너비×높이 5020×1980×1700mm

휠베이스  3004mm

엔진형식 V8 터보, 가솔린

배기량 3799cc

최고출력 590ps

최대토크 74.85kg·m

변속기 8단 자동

구동방식  AWD

복합연비 5.7km/ℓ

가격 2억27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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