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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중반 한국차의 미국 시장 진출기

오토티비 입력 2019.09.1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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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출 초기에는 조롱의 대상이었던 싸구려 차
2000년대 들어와 비약적으로 이미지 향상

미국에서 자동차는 이동 수단 이상이며 생활의 동반자일 만큼 운전자가 많은 시간을 같이 나누는 공간이다. 장거리 운전이 필수인 밀집도가 낮은 도심환경, 오랜 기간 진행된 핵가족화, 개성이 뚜렷한 개인주의 문화 등 개인들의 자동차 소유가 미국인에게 주는 의미는 특별하다. 필자가 미국 현지에서 생활하면서 자주 보게 되는 미국인들의 다양하고 개성적인 클래식카 문화도 이런 것들에 기인하지 않나 생각된다.

한국차의 첫 미국 수출 모델인 현대 엑셀

이런 미국 시장에서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켓리더로서의 변신을 꾀하고 있는 우리나라 자동차들의 미국 시장 진출의 역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자동차 산업의 변방, 한국의 차 미국 상륙

1970년대 이후 본격적인 수입차들의 격전지가 된 미국 자동차 시장은 자동차 메이커들에 있어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시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의 자동차 메이커들이 미국 시장에서의 승부가 브랜드 이미지 구축과 매출 확대, 그리고 미래를 위한 발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열쇠라고 생각할 정도이다. 글로벌 브랜드로 성공하고 성장하기 위한 관문이자 등용문인 셈이다. 이 때문에 여러 자동차 메이커들이 미국에 현지 R&D 연구소 및 생산 공장 건설 등의 다양한 투자를 하고 있다.

폰티액 르망으로 판매된 대우 르망

1970년대의 석유파동을 겪으며 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안전도 관리 및 배기가스 기준을 마련한 미국의 관문을 통과한 자동차라면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공식을 만들게 되었고, 이런 미국 시장에서의 판매 성공은 곧 글로벌 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의미하게 되었다. 1970년대 이전의 미국 자동차 시장은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토종 자동차 메이커 빅3가 나누어 갖는 시장이었지만 1970년대에 와서는 수입차 시장이 커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포드 페스티바로 수출된 기아 프라이드

초창기 미국 수입차 시장에서는 중형 프리미엄 승용차는 독일의 자동차들이, 그리고 경제성과 실용성을 중심으로 한 소형 자동차 시장에서는 일본차들이 입지를 넓혀갔다. 한편, 한국차는 80년대 중반 현대 엑셀의 수출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미국에 소개되었고, GM과 밀접한 파트너였던 대우에서 생산한 월드카 르망이 폰티액 브랜드로 판매되면서 ‘메이드 인 코리아’를 선보였다. 이 무렵 기아차도 프라이드를 포드 페스티바로 OEM 납품하며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한국차는 만만한 차, 조롱의 대상

1980년대 미국 도심의 모습. 점차 수입차들, 특히 일본산 소형차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1980년대 미국 시장에서는 소형차의 인기가 높아지던 시기였다. 한국의 자동차들은 소형차 세그먼트에서 이미 입지를 굳힌 일본차와의 경쟁이 불가피했는데, 이미 일본차는 우수한 완성도와 실용성 면에서 소형차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미국인들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 주었고, 중형차 시장과 스포츠카 시장에도 성공적으로 진입하며 그 영역을 확장해 가던 중이었다.

1986년 처음 수출된 현대 엑셀(사진은 3도어 모델)

외국에서 물밀 듯 들어오는 자동차 메이커들의 공격에 힘들어 하던 미국의 토종 브랜드들인 GM, 포드, 크라이슬러도 전열을 재정비하고 시장이 원하는 다양한 모델을 자체적으로 개발하거나 해외 메이커와의 제휴를 통해 미국 시장에 내놓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미국 시장에서의 한 치 양보 없는 경쟁은 미국 자동차 산업의 또 다른 황금기를 만들어 냈다.

미국에 수출했던 현대 엑셀 4도어 세단 광고 [출처: flickr.com]

이런 상황에서 미국 시장에 진출한 현대 엑셀은 진출 첫 해 16만8,000여 대가 판매되며 의외의 성공을 거두게 된다. 하지만 일본차와 비슷하지만 더 저렴하고 품질도 낮은 자동차라는 인식과 부족한 모델 라인업, 미비했던 딜러 및 A/S 네트워크 등 여러 난관에 봉착하며 이내 한국차의 이미지는 급격하게 추락하게 된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문에 한국에 대한 인지도는 높아졌지만 제품에 대한 신뢰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안타깝게도 그 당시 한국차는 쉽사리 조롱의 대상이 되었는데, 저렴한 가격에 구입해 대충 관리하다 폐차하는 ‘만만한 차’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1988년 서울올림픽으로 한국에 대한 인지도가 조금 높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한국전쟁의 이미지와 싸구려 물건을 그저 그런 품질로 만든다는 이미지를 가진 대다수 미국인들에게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은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저품질의 이미지와 고객의 관리 소홀

1989년 쏘나타(Y2)로 미국 중형차 시장을 노크했지만 성과는 좋지 않았다

한국차들은 한인 이민자와 아시아 사람들의 거주 비율이 높은 캘리포니아 지역을 제외하고는 브랜드 인지도에서 보급형 자동차 이미지를 벗어나기 힘들었고, 따라서 가격에 민감한 학생이나 저소득층이 주요 구매층이 되었다. 이는 상대적으로 자동차 유지관리에 소홀하고 상황에 따라 가볍게 처분하거나 폐차해버리기 쉬운 소비층이 한국차의 주 고객층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때문에 한국산 자동차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더욱 크게 확산되었다.

현대차는 캐나다 브로몽에 현지공장을 만들어 Y2 쏘나타를 생산했지만 쏘나타가 시장에 안착하지 못하면서 공장 문을 닫아야 했다

미국에 진출한 한국차들이 고장이 잘 나는 저품질의 자동차라는 이미지를 오랫동안 가지게 된 것은, 자동차의 품질이나 내구성, 딜러 정비 네트워크의 미비 등 여러 근본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대다수 오너의 관리 소홀도 큰 원인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란트라'란 이름으로 판매된 현대 엘란트라

한국차에 대한 이런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한국차들은 미국 시장에서 90년대 말까지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한국의 자동차 산업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시장에 한번 각인된 한국차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2000년대 초반까지도 지속되었다.

새로운 변화의 시기가 오다

저품질의 싸구려 차라는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을 가지고 있었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 한국 자동차 회사들은 적극적인 글로벌 시장 투자, 꾸준한 소비자 분석과 높은 기술력의 확보, 글로벌 트렌드를 반영한 디자인 개발 등을 멈추지 않았고, 꽤 매력 있는 자동차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2004년 출시된 현대 NF 쏘나타. 세련된 디자인과 괜찮은 성능으로 미국에서 잔존하던 한국차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꾼 베스트셀러이다. NF 쏘나타의 성공은 미국인들에게 한국차의 새로운 인식과 다음 모델에 대한 기대를 심어주었다

한 모델의 라이프사이클이 아니라 기술적인 면에서 자동차의 풀 체인지 기한은 대략 10~15년 주기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데, 80년대 중반 현대 엑셀, 대우 르망, 기아 프라이드 등으로 시작된 한국차들의 대변혁이 시작될 수 있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었다. 2000년대 중반에 접어들며 미국에서의 한국차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급속도로 개선되었으며, 시장에서의 한국차에 대한 반응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뀌게 되었다.

글로벌 시장의 리더가 되기를 희망하며

미국 캘리포니아 주 오렌지카운티에 자리한 현대차 북미법인 사옥

최근 20년 사이 미국에서 한국차의 이미지는 ‘다양한 세그먼트의 라인업을 가지고 있는 우수하면서 신뢰도 높은 브랜드’로 탈바꿈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프리미엄 승용차 시장에도 진입하며 새로운 차원의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것을 보면, 30여 년 전 엑셀이 처음 미국 땅에 들어왔을 때가 떠오르면서 감개무량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 초 북미국제오토쇼의 현대차 컨퍼런스 모습

한국차가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격전지인 미국 시장에 진출한 지 어언 33년. 그 길고도 험난했던 시간 사이에 경이로운 발전을 이룩한 한국 자동차 메이커들이 앞으로도 새로운 도전을 통해 글로벌 자동차 시장을 리드하는 역할을 하게 되기를 희망해 본다.

장세민(라라클래식 미국 주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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