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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기억해 주세요, 링컨 노틸러스

조회수 2019. 10. 4.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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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MKX를 물으면 돌아오는 답은 '들어는 봤는데..뭐지?'가 대부분이었다. 부끄럽지만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확실히 알았다. 이름 좋네.


16초에 1대 생산. 가전제품 이야기가 아니다. 1923년에만 총 201만 대를 찍어낸 포드 모델 T의 기록이다. 포드는 ‘대중이 탈 수 있는 저렴한 차’를 목표로 소위 말해 대박을 터트렸다. 누구보다 소비자의 니즈를 빠르게 파악하고 변화한 결과다. 하지만 다 지난 얘기다. 2000년 들어 포드의 영업이익은 빠르게 고꾸라졌다. 2001년에는 적자로 돌아섰다. 소비자 성향 변화에 발맞춰 제 때 신차를 내놓지 못해서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소형 SUV 이스케이프만 보더라도 토요타 RAV4보다 출시가 5년이나 더뎠다. 그때부터인가? 포드는 지금까지 라인업 정비에 고민이 많다. 수익이 저조한 세단은 생산 중단까지 고려 중이다.



시장 변화에 빠른 대처가 부족하기는 링컨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자동차 시장에서는 확실한 SUV 라인업구축이 필수다. 링컨에게는 세단과 SUV가 뒤죽박죽인 판매목록 정리가 급선무였다. 링컨은 기계나 자동차 따위를 가리키는 마크(Mark) 뒤에 알파벳을 붙여 MKC, MKX 등으로 이름 불렀다. 하지만 최근 고유명사로 바꾸고있다. 확실히 혼동은 줄었다. 기존 작명법은 세단과 SUV 구분은커녕 이름을 듣고 해당모델이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모델 서열에 따라 알파벳을 오름차순으로 짝지은 여느 제조사들과 다른 까닭이다.



이제 세단 모델 이름은 땅에서, SUV는 하늘과 바다에서 찾는 모양새다. 노틸러스는 프랑스 작가 쥘베른의 소설 <해저 2만리>에 등장한 잠수함의 이름에서 따왔다. 참고로 큰 형 내비게이터의 이름은 항해사, 둘째 에비에이터는 비행조종사다. 막내 MKC는 2020년쾌속해적선을 뜻하는 커세어로 바꿀 예정이다.



노틸러스는 이름만큼이나 얼굴 치장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먼저 스플릿윙 그릴과 이별했다. 1세대 페이스리프트를 시작으로 지난 8년동안 MKX를 지켜온 디자인 테마다. 날개를 활짝 편 형상의 그릴이 처음 등장했을때 놀라움을 금치못했다.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는 물론 남성미까지 모두 아우른 모습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화장을 덧칠하면서 감동은 희미해졌다. 스플릿 윙 패밀리룩이 패밀리룩을 위한스플릿윙으로 전락한 듯 보일 정도니, 디자인 요소로서 생명력이 다한 셈이다.




새로운 MKX 아니 노틸러스는 링컨의 꼭짓점 컨티넨탈과 내비게이터를 빼닮았다. 눈매만 보면 아우디 1세대 Q7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요목조목 살펴보면 링컨만의 디테일이 살아있다. 백미는 시그니처 그릴이다. 링컨 스타 엠블럼 패턴을 널찍한 그릴에 촘촘히 새겼다. 보는 맛은 물론 의미까지 살렸다. 링컨 스타를 따라 시선을 올라가다 보면 보닛 중앙을 가르는 날카로운 선과 마주하게 된다. 




마주서서 쳐다 볼때도 인상적이지만 운전석에서 보면 뿌듯함까지 느껴진다. 마치 앞이 긴 요트 끝에 앉아 물을 가르는 기분이랄까? 부분 변경 모델답게 앞모습을 빼면 큰 차이점을 찾기 힘들다. 차체 옆면에서는 사이드미러 아래 크게 적은 이름과 항공기 터빈을 닮은 20인치 휠이 눈에 띈다. 뒷모습은 리어 램프 테두리를 까맣게 칠한 정도가 전부다.





지난 4월 미국 워즈오토는 2019 베스트 인테리어 10대를 선정했다. 스크롤을 내리다 수상자 목록에 노틸러스를 확인하고 갸우뚱했다. 속살 변화가 크지 않은데도 이름을 올린 까닭이다. 사진으로 봤을 땐 별다른 감흥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실물을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작은 틈 없이 딱 들어맞은 패널과 촘촘히 들어찬 버튼이 뛰어난 조립 품질을 뽐냈다. 필요에 따라 버튼을 쉽게 찾아 누를 수 있도록 빨강, 파랑, 초록 LED로 버튼을 구별한 배려심도 마음에 든다. 수납공간은 충분하다. 두텁고 높은 센터 터널 아래에 고가 도로를 겹쳐 놓은 듯 2층 수납장을 마련했다. 맨 아래층은 갑 티슈를 집어삼킬 정도로 여유롭다.




노틸러스의 차체 길이, 너비, 높이는 각각 4825, 1935, 1700mm다. 쉽게 말해 모든 면에서 현대 싼타페보다 여유롭다. 거주성을 가늠할 수 있는 휠베이스는 83mm 더 기다란 2848mm다. 2열과 짐공간은 우람한 차체 크기 덕을 톡톡히 봤다. 뒷좌석 레그룸은 1000mm에 달한다. 신장 180cm의 성인 남성도 너끈하다. 리클라이닝 기능도 빼놓지 않아 불만 터져 나올 일도 없다. 트렁크 용량은 1053L에 이른다. 버튼을 눌러 전자동으로 2열 시트를 접으면 1948L로 늘어난다. 시트를 다시 일으켜 세울 때는 수동이다.




스타트 버튼을 눌러 잠든 노틸러스를 깨웠다. 타고 내리기 편하도록 뒤로 밀어둔 시트를 원래 위치로 끌어당긴다. 12.3인치 디스플레이를 품은 계기판은 화려한 인사를 건넨다. 링컨에 따르면 현수교에서 영감받아 계기판을 꾸몄다고. 자세히 들여다 보면 태코미터와 속도계 사이 수평선이 자리 잡았다. 금방이라도 해가 떠오를 듯 붉은 기운이 맴돈다. 속도계를 오르는 바늘 끝에는 동에서 떠 서로 지는 태양이 달려 있다. 세련된 디자인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광활한 화면을 활용하는 지혜는 부족하다. 몇 가지 설정과 트립 컴퓨터, 재생 곡 확인만 가능하다. 내비게이션 맵은 바라지도 않는다. 애플 카플레이나 안드로이드 오토에 연결한 스마트폰 화면을 계기판에도 띄울 수 있었다면 더 만족했을 테다.



실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노틸러스의 엔진에 마음을 뺏긴 까닭이다. 다운사이징이 대세라지만 실린더 개수는 지독히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조용하고 부드럽지만 필요할 땐 언제든 편하게 힘을 꺼내 쓸 수 있는 포용력을 지닌 까닭이다. 노틸러스는 V6 2.7L 가솔린 트윈터보 엔진을 품고 최고출력 333마력, 최대토크 54.7kg.m를 뿜는다. 변속기는 기존 6단에서 8단 자동으로 바꿨다. 덕분에 출발이 보다 산뜻하고, 고속으로 달릴 땐 연료를 살뜰히 챙긴다. 가속 페달을 깊게 밟으면 변속과 터보 지연 현상이 맞물려 딱 두 박자 숨을 고른다. ‘하나, 둘’ 세고 나면, 한 순간 최대토크가 터져 나오는 3000rpm에 이르고 무서운 가속을 시작한다. 눈앞 광경은 정신없이 모습을 바꾸지만, 귓가는 고요하다.



링컨 코리아는 노틸러스를 출시하면서 소음•진동•불쾌감 억제를 강조했다. 특히 “이중 접합 유리와 곳곳에 덧댄 방음재로 소음을 최소화했다”고 말했다. 자동차 제조사들이 실내 방음을 설명할 때면 하는 말이 있다. “주파수를 분석해 엔진의 불쾌한 소음은 거르고 듣기 편한 소리만 솎아냈어요.” 노틸러스가 딱 그렇다. 방음에 얼마나 신경 썼는지 보닛 속 경적 소리마저 운전석에서는 아득하다. 어댑티브 서스펜션도 고요하고 안락한 분위기 형성을 한 몫 거든다. 노틸러스는 노면과 주행 상황을 비롯한 46가지 요소를 분석해1초에 50번 댐퍼 강도를 바꾼다. 충격 크기와 상관없이 언제나 두둥실 차체를 떠받든다. 손오공의 근두운 부럽지 않다.





하지만 스포츠 주행 연출력은 부족하다. 코너를 빠르게 돌면 처음에는 기울어지지 않으려 버티지만 이내 곧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게중심이 크게 쏠리고 만다. 연속 코너를 만나기라도 하면 좌우로 갈팡질팡 허둥댄다. 노틸러스는 스포츠 주행에서 운전 재미를 찾는 이에게 어울리는 차는 아니다. 대신 출발지에서 목적지로 편하게 이동하는 과정에서 얻는 만족감이 크다. 링컨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 코 파일럿 360이 더 반가운 이유다. 어댑티브 크루즈컨트롤과 차선유지보조 시스템을 켜고 달리면 여유는 배가 된다.




바쁜 현대인은 혼자만의 시간을 갈망한다. 하지만 마땅한 공간이 없어 자동차를 안식처로 삼기 마련이다. 갖은 소음과 불쾌감으로 가득한 차라면 이마저도 기대하기 힘들다. 자동차를 나만의 공간으로 여긴다면 노틸러스는 정답에 가깝다. 단, 조건이 있다. 먹성 좋은 노틸러스 밥값을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

링컨이 밝힌 복합 연비는 1L에 8.7km다. 도심과 고속도로를 5:5로 나눠 100km 달린 결과 트립 컴퓨터는 6.7km/L를 가리켰다. 정체 구간에서는 복합 연비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문제는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다. 나만의 공간에 대한 욕심을 차치하더라도 노틸러스는 가족을 위한 차로 손색없다. 가만 있어보자. 괜찮은 주유 할인카드 어디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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