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련된 취향을 드러내고 싶다면, 마세라티 르반떼 GTS

조회수 2019. 7. 2. 15:4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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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SUV를 좋아하지 않는다. 우락부락한 덩치와 필요 이상 짐 공간은, 싱글남인 내게 사치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세라티 르반떼라면 가치관이 약간 흔들린다. 길이 5m, 휠베이스 3m를 넘는 ‘덩치’지만, 운전대로 느껴지는 감각은 영락없는 마세라티 스포츠카이기 때문이다. 오늘 만난 르반떼 GTS라면 더더욱.

글 강준기 기자
사진 마세라티, 강준기

프리미엄 브랜드와 SUV. 오늘날 자동차 시장을 대표하는 두 개의 키워드다. 포르쉐 카이엔을 시작으로 이젠 콧대 높은 스포츠카 업체까지 SUV를 선보이고 있다. 마세라티 르반떼, 람보르기니 우루스, 알파로메오 스텔비오 등이 대표적이다. 마니아들은 “자본주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며 이들을 비판하기도 했지만, 놀라운 운동성능으로 당당히 주류로 인정받았다.

소리만 요란하다고?

후안 마뉴엘 판지오와 마세라티 250F

마세라티와 SUV.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조합이다. 1914년, 마세라티 성을 쓰는 다섯 형제들이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오롯이 레이스카 제작을 위해 세운 브랜드니까. 실제로 마세라티는 모터스포츠를 빼고 설명할 수 없다. 1939년, 인디애나폴리스 500 레이스에서 이탈리아 업체 최초로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1957년까지 F1을 포함해 무려 500회 이상의 우승을 기록했다.

이후 마세라티는 모터스포츠뿐 아니라 일반도로용 스포츠카 제작에 몰두했다. 1960년대를 풍미했던 3500 GT와 기블리가 대표적이다. 이들 쿠페 안엔 이탈리아 그란투리스모 DNA가 녹아있다. 영어로는 그랜드 투어러. 즉 빠른 주행성능과 장거리 주행도 거뜬한 편안함을 양립시킨 주역이다. 이러한 유전자는 콰트로포르테와 그란카브리오 등 후손에게 이어지고 있다.

SUV에 대한 마세라티다운 해석

르반떼는 2016년 제네바 모터쇼를 통해 데뷔한 마세라티 최초의 SUV다. 그러나 SUV라는 틀을 한 꺼풀 벗기면 영락없는 마세라티 GT다. 모양만 봐도 그렇다. 바짝 드러누운 A필러와 풍만한 펜더, 꽁무니까지 매끈하게 떨어지는 루프를 통해 선조의 가치를 고스란히 담았으니까. 세상 큼직한 그릴 속 삼지창과 매섭게 찢은 눈매가 타고난 골격을 교묘히 감춘다.

르반떼 GTS 엔진
르반떼 트로페오 엔진

보닛을 열면 “굳이 이렇게 까지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시뻘겋게 물든 페라리 심장을 앞 차축 안쪽에 당겨 얹은 까닭이다. 길이 5m 넘는 덩치도 50:50 무게배분을 지켜야하는 고집, 마세라티니까 이해해보기로 한다. 잘 안 보게 되는 엔진룸까지 CFRP(카본섬유강화플라스틱)와 빨간 페인트로 장식했는데, 정교한 조각작품 얹은 듯하다.

보닛에 양보한 실내 길이는 3,004㎜의 휠베이스가 보상한다. 건장한 성인이 뒤에서 다리 꼬고 앉는 건 힘들지만, 기대 이상 넉넉하다. 이보다 감성적 만족도가 독일제 SUV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촉촉한 피에노 피오레 가죽으로 감싼 시트와 도어트림 덕분에 눈도 피부도 즐겁다. 1.7m에 불과한 차체 높이 때문에 머리공간이 답답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정수리 찧을 걱정 없이 쾌적하다. 트렁크 용량은 기본 580L.

우리가 SUV를 사는 이유는 가족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르반떼 GTS는 가족 핑계대기 딱 좋다. 뒷좌석보다 운전대가 탐나는 스포츠카니까. 위로 바짝 솟은 센터콘솔과 CFRP로 빚은 스티어링 휠 덕분에 다른 SUV와는 포지션부터 다르다. 더욱이 기둥과 천장은 블랙 알칸타라로 씌웠고 패들 시프터도 금속을 깎아 얹었다. 마세라티 흉내만 낸 SUV라고? 천만에.

이급에서 편의장비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 오히려 없는 장비 찾는 게 쉽다. 총 17개 스피커로 이룬 바워스앤윌킨스 오디오 시스템은 무려 1,280W(와트)의 최고출력을 낸다. 4-존 에어컨, 애플 카플레이를 지원하는 마세라티 터치 컨트롤 플러스 디스플레이, 전동식 리어 선블라이드, 통풍시트 등 갖출 건 다 갖췄다. 단, 후방카메라 화질은 좀 더 높여도 좋을 듯하다.

두렵지 않은 550마력

첫인상 3초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의 인상이 3초 내에 결정된다는 뜻이다. 자동차도 그렇다. 운전대를 쥐는 순간 느낌이 온다. 르반떼 GTS의 성격이 시동 거는 3초에 집약됐다. 절절 끓는 V8 3.8L 가솔린 트윈터보 엔진과 계기판 세레모니로 기선을 제압한다. 아름다운 소리를 위해 피아니스트, 작곡가를 개발과정에 참여해 악보 그려가며 조율할 정도니까.

성능제원도 압도적이다. 6,250rpm에서 최고출력 550마력, 2,500~5,000rpm에서 최대토크 74.74㎏‧m를 ZF 8단 자동기어와 맞물려 네 바퀴에 나눈다. 소위 ‘제로백’이라고 부르는 0→시속 100㎞ 가속은 4.2초, 최고속도는 시속 292㎞에 달한다. 마세라티는 이 엔진을 얹는 데에만 2년이 걸렸는데, 개발단계부터 이탈리아 모데나에서 시험해 고성능 SUV의 한계를 엿봤다.

사실 500마력 대 고성능차를 경험하는 건 쉽지 않다. 날뛰는 심장을 조련할 담력도 내겐 없다. 그러나 르반떼 GTS는 출력을 꺼내 쓰기 무척 쉽다. 페달을 깊게 짓이겨도, 꽁무니를 흔들거나 불안한 기색이 전혀 없다. 295㎜의 피렐리 P제로 타이어가 노면을 꾹꾹 눌러가며 맹렬하게 가속한다. 시트에 스르륵 기대, 한 손으로 운전대 쥐고 초고속 영역에 도달할 수도 있다.

비결은 에어 스프링 공기압축 시스템. 주행속도에 따라 총 6단계로 나눠 차체 높낮이를 최대 75㎜까지 주무른다. 여기에 GTS 버전은 르반떼 최초로 통합 차체 컨트롤(IVC)을 전자식 주행안전 장치, Q4 사륜구동 시스템과 엮었다. 주행 중 접지력을 잃거나 움직임이 불안하면, 각 바퀴에 제동력을 나누거나 엔진 토크를 조절한다. 남다른 안정감의 비결이다.

르반떼 GTS는 직선보다 코너에서 빛을 발한다. 서스펜션 구성은 여느 마세라티와 마찬가지로 앞 더블 위시본, 뒤 멀티링크 구조. 뒤 차축엔 기계식 차동제한 장치(LSD)를 물려 2.3t(톤)의 몸무게가 무색할 만큼 놀라운 궤적을 그려낸다. 똑똑한 조수들로 예쁜 몸놀림 만드는 여느 SUV와는 분명 다르다. 스포츠카 본연의 재료로 끈끈한 손맛을 만드는 느낌이 일품이다.

범람하는 SUV 시대에 마세라티가 겨눈 과녁은 명확했다. 누구나 흉내 낼 수 있는 구성은 피하되, 마세라티만의 레시피로 새로운 GT를 만들어냈다. 또한, 선택된 소수만 즐길 수 있는 스포츠카에서 벗어나 누구나 부담 없이 다룰 수 있는 마세라티를 빚어냈다. 뻔한 구성의 독일제 SUV에 실망했다면, 르반떼로 세련된 취향을 드러내보는 건 어떨까.

<제원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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