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변치 않는 품위, 볼보 XC90

조회수 2019. 11. 11. 11: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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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연비를 자랑하는 엔진을 넣었습니다”, “동급 최대의 뒷좌석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신차가 나왔을 때 귀가 따갑도록 듣는 말이다. 대부분 경쟁차와 비교해 수치적 우월함을 앞세운다. 반면 볼보 XC90의 과녁은 다른 곳에 있다. 단순한 기계 장치를 넘어 사람 중심(Human-Centric)의 ‘공간’을 제시한 까닭이다. 묘하게 구매욕 자극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글 강준기 기자
사진 강동희 기자, 볼보자동차

월드컵 열기로 한창이던 2002년. 볼보의 첫 SUV XC90이 등장했다. S80, V70의 앞바퀴 굴림 P2 플랫폼을 바탕으로 독일산 경쟁자의 등짝을 겨눴다. 이때 당시 수입 프리미엄 브랜드는 SUV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가령, 1998년 메르세데스-벤츠가 M 클래스를, 1999년 BMW가 X5를 선보였다. 폭스바겐 투아렉과 아우디 Q7 등의 경쟁자도 속속들이 등장했다.

이들 ‘라이벌’은 공교롭게 출신 국가가 같다. 독일이다. 볼보에겐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그 만큼 상대를 압도할 준비가 철저했다. 미국 고속도로 안전보험협회(IIHS)가 2012년 기습 도입한 스몰 오버랩 테스트에서 모두 낙방할 때, 볼보는 10살 먹은 XC90으로 최고점을 받았다. 전고 높은 SUV의 한계를 극복한 세계 최초의 전복방지 기술(ROPS)도 시선을 사로잡았다.

2세대 XC90은 2015년에 모습을 드러냈다. 새로운 볼보 SPA 플랫폼을 바탕 삼아 이전보다 훌쩍 덩치를 키웠다. 차체 길이와 너비, 높이는 각각 4,950×1,960×1,770㎜. 스웨덴 출신다운 장대한 기골을 뽐낸다. 메르세데스-벤츠 GLE보다 20㎜, BMW X5보다 30㎜ 더 길다. 실내 공간 가늠할 휠베이스는 2,984㎜에 달한다. ‘큰 차’ 좋아하는 국내 정서와도 알맞다.

부분변경 치르며 얼굴도 소폭 다듬었다. 네모반듯한 콧날은 크기를 키우고 움푹 파인 수직 크롬 바를 짝지었다. 볼보 특유의 ‘아이언 마크’는 카메라 센서를 이질감 없이 품었다. 범퍼 양 끝단의 공기구멍은 아래에 크롬을 더해 한층 고급스럽다. 각 패널간 단차는 강박에 가깝게 줄였다. 눈을 자극할 과한 기교는 없지만,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게 XC90의 ‘으뜸매력’이다.

XC90의 ‘얼짱각도’는 뒤쪽에서 45°로 바라볼 때. 트렁크 창문까지 쭉 뻗은 테일램프로 1세대의 DNA를 계승했다. 마치 두꺼비가 두툼한 뒷다리도 땅을 움켜쥔 듯, 안정감이 넘친다. 볼보 엠블럼을 붙임 면도 단순히 직선으로 빚지 않고 디테일을 더했다. 또한, 반사판 사이를 크롬으로 메웠고 아래엔 듀얼 머플러를 짝지었다. 담백하면서도 스포티한 이미지가 물씬하다.

볼보 성장 비결 중 7할은 인테리어에 있다. 이른바 ‘스칸디나비안 스타일’이다. 2013년, 볼보는 벤틀리 실내 디자이너 출신 로빈 페이지(Robin Page)를 데려와 혁신의 칼자루를 건넸다. XC90이 첫 번째 작품이다. 스웨덴 가정집 특유의 따뜻한 느낌을 듬뿍 담았다. 이전 모델은 물리 버튼만 40개가 넘었지만, 신형은 9개로 줄이고 9인치 터치스크린이 몽땅 삼켰다.

또한, 디스플레이는 스마트폰처럼 원하는 앱(App)을 메인 화면에 옮길 수 있으며, 여러 기능을 직관적으로 조작할 수 있다. 특히 터치 조작은 마찰을 통한 정전기 방식이 아닌 적외선을 이용한다. 따라서 큰 압력 없이 가벼운 터치만으로 화면을 주무를 수 있다. 해상도는 768×1,020 픽셀. 주변부에 블랙 하이글로스, 매트한 원목, 가죽의 조화가 환상적이다.

신형 XC90은 4인승, 7인승으로 나눈다. 7인승이 기본이다. 의자 높이는 뒤로 갈수록 점점 더 높은데, 뒷좌석 승객도 탁 트인 시야를 느낄 수 있다. 부부와 자녀 1~2명으로 구성된 가족이 XC90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어린이용 부스터 시트’다. 2열 시트 중앙에 자리했는데, 볼보가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엉덩이 받침 높이를 조절해 아이 몸에 맞출 수 있다.

또한, 2열 시트 아래엔 레일이 달렸다. 앞뒤로 최대 120㎜까지 슬라이딩할 수 있다. 단, 앞으로 최대한 당겼다고 3열이 넉넉한 건 아니다. 볼보는 170㎝의 성인이 편안하게 앉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 압권은 트렁크 용량. 3열을 펼치고도 721L(VDA 기준)의 공간을 확보했다. 2열까지 모두 접으면 최대 1,899L까지 늘어난다. 2열은 40:20:40으로 나눠 접어 활용도가 높다.

정숙한 디젤 엔진, 반응속도 빨라

XC90은 크게 3가지 파워트레인을 품었다. 직렬 4기통 2.0L 디젤&가솔린의 ‘드라이브-E’, 플러그인 파워트레인이다. 오늘 소개할 모델은 가장 볼륨인 디젤 버전. 사실 체격을 감안하면 다소 작은 엔진이라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성능제원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8단 자동변속기와 맞물려 최고출력 235마력, 최대토크 48.9㎏‧m를 뿜고 네 바퀴를 굴린다.

이 엔진은 볼보가 2014년 출시한 ‘드라이브-E’ 파워트레인이다. 기존 5기통 엔진보다 무게는 45㎏ 덜고 효율은 35% 개선했다. 더욱이 여느 4기통 심장보다 잔잔한 숨을 토한다. 보닛을 열어보니, 방음재가 모든 부품을 감쌌다. 엔진 커버는 고무처럼 말랑말랑한데, 손으로 눌러봐도 움푹 들어갈 정도다. N.V.H(소음. 진동. 불쾌감) 설계에 신경 쓴 흔적이 눈에 띈다.

안팎 디자인 감상을 끝내고 운전대를 잡았다. 역시 볼보의 매력은 시트다. 인간의 척추 형상을 본 따 빚은 시트는 출퇴근뿐 아니라 장거리 주행에도 ‘안성맞춤’이다. 엉덩이 받침 길이와 옆구리 등을 몸에 맞게 조일 수 있다. 단, 의자를 조절하면 모니터에 시트 그래픽을 띄우는데, 다소 정신 사납다. 운전자가 지도를 보는 중, 동승자가 시트를 움직이면 싸움 붙기 딱 좋다.

3년 전 XC90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 다소 단단했던 승차감이 기억에 있다. 반면 신형은 한층 여유롭다. 댐퍼의 상하 스트로크도 이전보다 유연해 시종일관 편안하다. 275/45 R20 사이즈의 크고, 납작한 신발을 신었지만 부담스럽지 않다. 또한, 스티어링 휠과 가속 페달의 답력이 가벼워 넉넉한 덩치를 조련하기 수월하며, 속도를 붙일수록 무거워져 안정감을 높인다.

엔진 ‘다운사이징’은 이미 트렌드다. 배기량은 줄이되 과급기를 물려 성능과 효율,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의도다. 대신 작은 배기량에 고성능을 내기 위해선, 대용량 터보차저를 물려야 한다. 그 만큼 터빈에 압력 차는 시간이 늘어 반응속도가 더뎌진다. 이를 ‘터보래그’라고 부른다. 반면, 볼보 D5 엔진은 가속 페달을 밟았을 때 머뭇거림이 없다. 직관적이다.

비결은 ‘파워 펄스(Power-Pulse)’라고 부르는 압축공기 저장소에 있다. 엔진 오른쪽 아래에 보면 2L 크기의 저장 공간이 있다. 공기 필터에서 이동한 공기가 압축기를 거쳐 이곳에 머무른다. 운전자가 저속에서 가속 페달을 밟으면, 이 저장소에 있던 압축 공기가 밸브를 거쳐 터빈에 도달해 강력한 ‘펄스’를 만든다. 즉각적인 터보 반응을 자랑하는 이유다.

또한, 최대토크는 1,750rpm부터 줄기차게 토한다. 그래서 XC90을 운전하다보면, 더 넉넉한 엔진이 아쉽지 않다. 반응 속도가 빠르며, 어지간한 실용 구간에선 최대토크 영역 안에 있으니까. 제조사가 밝힌 0→시속 100㎞ 가속 시간은 7.8초에 불과하다. 2.0L 디젤 엔진, 공차중량 2,160㎏의 조합치곤 기대 이상 날렵하다. 진정한 ‘다운사이징’은 이런 게 아닐까?

완성도 높은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

XC90은 가다 서다 반복하는 정체구간이 반갑다. 소위 ‘준자율주행’ 시스템이라고 부르는 ‘파일럿 어시스트 Ⅱ’가 모든 트림에 기본이다. 앞차와의 간격을 유지하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CC)과 차선유지 보조(LKA)를 엮었다. 작동방법도 간단하다. 스티어링 휠 왼쪽 속도계 모양 버튼을 누른 뒤, 오른쪽 화살표를 누르면 끝. 차간거리는 다섯 단계로 조절할 수 있다.

현재는 해당 기술이 소형 차급까지 들어가고 있지만, XC90은 한술 더 뜬다. ‘시티 세이프티(City Safety)’ 기술은 자동 제동기능과 충돌 회피기능을 지원한다. 가령, 카메라 센서가 자전거 주행자는 물론 큰 동물까지 감지한다. 어두운 밤, 갑작스레 튀어나오는 멧돼지도 걱정 ‘뚝’이다. 여기에 ‘반대 차선 접근 차 충돌 회피기능(OLM)’도 심리적 안정감을 높인다.

‘도로 이탈 완화 기능(RRM)’도 눈에 띈다. 도로 이탈 사고 시에 일어나는 흉추와 요추 부상을 막기 위한 장비다. 승객을 재빠르게 시트에 밀착시켜 부상을 최소화한다. 안전벨트에 빠른 압력을 줘 충돌이 일어나는 반대 방향으로 탑승자의 몸을 고정시킨다. 이때, 의자 아래에 자리한 에너지 흡수 장치는 충격을 흡수한다. 안전띠 버클에 새긴 ‘Since 1959’ 글자도 포인트.

주행모드는 에코, 컴포트, 다이내믹, 오프로드, 개인 등 총 5가지. 상시 사륜구동 시스템이 기본으로, 어지간한 임도주행도 거뜬하다. 특히 최저 지상고는 223㎜로, 450㎜ 깊이의 물길 도강도 문제없다. 또한, 2열과 3열 시트는 평평하게 눕힐 수 있어 요즘 인기 있는 ‘차박 캠핑’을 즐기는 데도 수월하다. 최대 견인능력은 2.4t(톤)으로 보디 온 프레임 SUV 부럽지 않다.

XC90을 몰다 보면, 골목길이나 유턴 구간이 부담스럽지 않다. 체격에 걸맞지 않게 최소 회전반경이 11.8m에 불과한 까닭이다. 중형 세단과 비슷한 수준이다. 참고로 비슷한 덩치의 포르쉐 카이엔이 12.1m, BMW X5가 12.6m다. 사륜 조향 시스템 등 별다른 기술을 품지 않고 달성한 결과라 놀랍다. 단, 스티어링 휠 ‘록-투-록’은 3.0회전으로 다소 많이 감기는 편이다.

라이벌 압도하는 충돌 안전성

충돌 안전성은 굳이 이야기 안 해도 모두가 알 듯하다. 좀 더 꼼꼼한 비교를 위해 유로NCAP 테스트 결과를 경쟁 차와 한 데 모았다. XC90은 어른 탑승자(1열) 97%, 어린이 탑승자(2열) 87%, 보행자 안전 72%, 안전보조 94%의 점수를 받았다. BMW X5는 각각 89%, 86%, 75%, 75%이며, 메르세데스-벤츠 GLE는 각각 91%, 90%, 78%, 78%다. 즉, 어른 탑승자와 안전보조 등 두 가지 부문에선 XC90의 점수가 한층 높은 걸 알 수 있다.

볼보 XC90. 최근 독일산 ‘라이벌’들이 풀 체인지를 치르며 완성도를 높였다. 그러나 일부 모델은 안전 장비를 빼거나 할인 금액을 바꾸는 등 브랜드에 걸맞지 않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반면 XC90은 한결 같다. 유행 쫓아 과감한 변화를 치르기보단, 오랜 시간 다져온 철학을 토대로 내실을 다져온 까닭이다. 변치 않는 품위. XC90에 가장 어울리는 문장이 아닐까.

<제원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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