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시승] 3040을 위한 작은 거인, 더 뉴 GLB

조회수 2019. 12. 5. 13:2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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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말라가에서 더 뉴 GLB를 시승했다. 알파벳이 암시하듯 GLA와 GLC 사이를 메꾸는 벤츠 SUV 2번 타자다. 그런데 단순히 틈새 여밀 신차는 아니다. 컴팩트 카의 탈을 썼지만, 휠베이스는 2,834㎜로 현대 싼타페보다 60㎜ 이상 길며 3열 시트까지 갖췄다. GLS 느낌 물씬한 각 잡힌 외모와 오프로드 패키지, 증강현실 내비게이션으로 영 포티의 등짝을 겨눴다.

글 강준기 기자
사진 메르세데스-벤츠, 강준기



22시간. 이번 시승회의 무대, 스페인까지 이동하는 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터키 이스탄불을 경유해 스페인 말라가까지 가는 ‘대장정’이었다. 이제야 말하지만, 사실 기대하는 출장은 아니었다. ‘SUV가 대세’란 고리타분한 설명은 질색. 더군다나 컴팩트 SUV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라고 느꼈다. “세 꼭지 별이라고 별 거 있겠어?”란 말이 이동 내내 머릿속을 휘감았다.

명확한 제품 콘셉트로 시장 넓힐 주역

메르세데스-벤츠 컴팩트 카의 초석, A-클래스

1997년, 럭셔리 설룬만 줄기차게 빚어온 메르세데스-벤츠가 별안간 대중차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A-클래스가 주인공이다. 폭스바겐, 토요타의 간담 서늘케 한 주역이다. 유선형 눈매와 윈도우 라인 갖춰 독특한 개성을 뽐냈다. 특히 머리공간을 넉넉히 확보해 넓은 거주공간을 갖췄다. 그 결과 벤츠는 2004년까지 7년 간 약 110만 대의 A-클래스를 팔아치웠다.



이후 메르세데스는 컴팩트 카 라인업을 두둑이 살찌웠다. CLA, GLA, A-클래스 세단 등이 대표적이다. 오늘 소개할 GLB는 벤츠의 8번째 컴팩트 모델이다. 전 세계적인 SUV 붐에 힘입어 A와 C의 간극을 촘촘히 메울 신참이다. 이 차의 등장배경엔 철저한 시장조사가 있었다. 크기가 부담스러운 중대형 SUV는 싫되, 7인승을 원하는 소비자 니즈를 공략하고 나섰다.




대장정을 끝내고 말라가 공항을 나오자, 세 꼭지 별 품은 검은색 가건물이 기자단을 반겼다. 그 앞에 형형색색 GLB가 열 맞춰 자리했다. 본격적인 시승은 이튿날 시작이지만, 곁눈질로나마 외모를 살폈다. 예상보다 차가 작지 않다. 실눈 뜨고 바라보면 ‘큰 형님’ GLS와 판박이다. GLC의 전신 GLK의 흔적도 들먹인다. 반듯한 모서리를 매끈하게 둥글린 느낌이랄까?

G바겐과 GLS의 장점 아우른 컴팩트 SUV



다음 날, GLB를 가까이서 마주했다. 2014년 메르세데스-벤츠 디자인 총괄 고든 바그너는 ‘감각적 순수미’와 ‘극단적 곡면’이란 새로운 디자인 철학을 앞세워 모든 벤츠 라인업을 수술대에 올렸다. 차체는 물수제비 뜰 조약돌처럼 매끈하게 다듬고, 눈을 자극할 과한 기교는 과감하게 덜었다. 소형‧대형 구분 없이 멀리서 봐도 단박에 벤츠란 사실을 전하기 위한 묘안이었다.

반면 GLB는 과감한 디테일이 돋보인다. ‘작은 거인’ 프로젝트를 위해 MFA2 플랫폼을 상자처럼 늘렸다. 차체 길이와 너비, 높이는 각각 4,634×1,834×1,663㎜. GLC보다 26㎜ 짧되 높이는 13㎜ 더 크다. 국내 SUV와 비교해보면 어떨까? 현대 투싼보다 154㎜ 길다. 휠베이스는 2,834㎜로 싼타페보다 69㎜ 넉넉하다. 컴팩트 SUV지만 유독 실내 공간이 넓은 이유다.



앞 오버행도 성큼 줄였다. 앞바퀴 굴림(FF) 기반이지만, 비율은 후륜구동 못지않다. 요즘 유행하는 쿠페형 SUV 비웃듯, 창문도 시원하게 빚었다. A필러도 박스 카처럼 바짝 솟구쳤다. 볼륨감 있는 네 바퀴 펜더와 두툼한 블랙 플라스틱 몰딩으로 오프로더 느낌이 물씬하다. 무 썰 듯 수직으로 떨어진 꽁무니와 뚱뚱한 범퍼, 듀얼 머플러도 남다른 존재감을 뽐낸다.

“G바겐과 GLS의 특징을 지닌 아들처럼 만들었어요.” 이날 저녁식사 함께한 GLB 개발 총괄이 한 마디 거들었다. 개발 초, 팬들은 이 차의 애칭을 ‘베이비 G-클래스’로 붙였다. 안팎을 두루 살피면 이 말이 단박에 와 닿는다. 흔한 컴팩트 SUV는 지양하되, 또렷한 제품 콘셉트로 틈새를 공략한다. 동급에서 이례적으로 오프로드 패키지를 마련한 점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기아 레이, 쏘울 같은 박스카를 타면 차급보다 넉넉한 느낌을 받는다. GLB도 비슷하다. 앞좌석 엉덩이 받침과 천장 사이 거리가 1m를 넘는다. 시원한 앞 유리와 낮은 벨트 라인 덕분에 한 체급 위 SUV를 탄 기분마저 든다. 마치 세단에 탄 듯 착각에 빠트리는 여느 모델과 달리, SUV의 본질을 희석시키지 않아 마음에 든다. 제목에 ‘작은 거인’ 붙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밤에 보면 더 화려하다.

앞좌석은 신형 A-클래스의 레이아웃을 밑바탕 삼되, GLB만의 색채를 더했다. 대시보드는 브러시드 알루미늄, 카본, 원목 등으로 분위기를 냈다. 각 패널 틈 사이로 은은하게 불 밝히는 앰비언트 라이트도 포인트. 비행기 터빈 모양 본 딴 송풍구마저 감성을 촉촉이 적신다. 계기판은 아날로그 속도계 대신 모니터를 심고, 같은 크기의 모니터와 가로로 길게 엮었다.


168㎝까진 괜찮다. 또한, 3열까지 ISOFIX를 마련해 카시트 설치하기도 좋다.




뒷좌석은 넉넉한 휠베이스의 혜택을 톡톡히 봤다. 967㎜의 다리공간은 한 ‘덩치’ 하는 쌍용 G4 렉스턴(975㎜)과 비교해도 큰 차이 없다. 2열은 40:20:40으로 나눠 접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앞뒤로 150㎜까지 슬라이딩한다. 대신 3열은 안전상의 이유로 신장 168㎝까지 탈 수 있다. 트렁크 용량은 최대 1,805L로 하극상이 따로 없다. 이 차가 컴팩트 SUV라고? 천만에.

예상 깨트린 험로주파 성능



시승 첫날, 우린 카사라보넬라에 자리한 오프로드 코스로 이동했다. 몇 가지 장애물 갖춘 이벤트 장소로 예상했지만, 보기 좋게 빗나갔다. 축구장 몇 배는 돼 보이는 황량한 모래 산을 깎아 짜릿한 오프로드 코스로 꾸몄다. 50%의 가파른 경사면(약 27°), 허공에 두 바퀴를 의도적으로 띄우는 너울 등 구색별로 갖췄다. 벤츠다운 두둑한 배짱에 머리털이 뾰족이 섰다.

SUV 풍년인 요즘, 키 높이 구두 신은 이륜구동 해치백도 SUV 행세를 한다. GLB는 이를 비웃듯 ‘오프로더’란 애칭을 머리글자로 앞세운다. 시승차는 ‘꼭짓점’ AMG 35도 아니다. 엔트리 GLB 200d다. 직렬 4기통 2.0L 디젤 150마력 엔진을 품고 네 바퀴를 굴린다. 지프 랭글러 오너로서 어깨 힘 잔뜩 주고 호기롭게 운전대를 잡았다. “풉, 이 차가 오프로더라고?”

모니터로 앞 카메라 화면을 띄워준다.

이날 시승은 반전의 연속이었다. GLB의 4매틱 상시 사륜구동 시스템은 GLA와 다르다. ZF와 공동 개발한 다판 클러치를 뒤 차축에 심었다. 앞뒤 차축에 동력을 고정하는 디퍼렌셜 록(Lock) 기능은 없지만, 허공에 한쪽 바퀴가 떠도 나머지 휠로 장애물을 꿀떡 삼킨다. 뒷바퀴 한쪽에 100%의 토크를 몰아줄 수도 있다. 덕분에 어지간한 코스는 하품하면서 달린다.




압권은 언덕길 등판능력. 사진으로 잘 표현이 될지 모르겠지만, 50% 모래 경사로다. 오프로드 경험자라면 공감하겠지만, 올라갈 때 하늘 밖에 보이지 않아 굉장히 까다롭다. 심지어 앞 차는 1차 시도에서 실패했을 정도. 드디어 내 차례가 왔고, 가속 페달을 지그시 눌렀다. 결과는 성공. 네 발은 알아서 동력 나누고 모니터는 앞 카메라 화면을 띄워주니, 두려울 게 없다.

‘올 라운더’ 다운 온로드 성능, 정숙성은 아쉬워



험로주행이 끝나고, 약 80㎞ 떨어진 메르베야까지 온로드 주행을 치렀다. 이번엔 GLB 200의 운전대를 잡았다. 이 차의 보닛은 메르세데스-벤츠와 르노가 공동 개발한 직렬 4기통 1.3L 가솔린 터보 엔진을 품었다. 파트너는 7단 듀얼 클러치. 최고출력 163마력, 최대토크 25.5㎏‧m를 뿜는다. 앞으로 르노 세닉 등 다양한 소형차에 얹을 차세대 ‘다운사이징’ 심장이다.

A-클래스엔 어떨지 모르겠으나, GLB엔 다소 부족한 느낌이다. 과급기를 통해 2L 엔진 수준의 힘을 뽑아냈지만, 욕심 조금 부리면 마른수건 쥐어짜듯 회전수를 높인다. 저회전부터 풍성한 토크 뿜는 200d가 더 만족스러운 이유다. 물론 다이어트 효과는 확실하다. 복합연비는 유럽기준 약 16.1㎞/L이며 CO₂는 1㎞당 137g만 뿜는다. 0→시속 100㎞ 가속은 9.1초.



2L 디젤 라인업은 모두 8단 듀얼 클러치를 맞물린다. 최고출력은 200d가 150마력, 220d가 190마력이다. 내 취향은 200d. 최대토크 32.6㎏‧m를 1,400~3,200rpm까지 줄기차게 뿜는 까닭이다. 디젤 엔진으로 3,000rpm 이상 쓰는 경우는 드물다. 따라서 대부분의 가속을 최대토크 밴드 안에서 해치운다. 복합연비 20.0㎞/L(유럽기준)에 달하는 살뜰한 효율도 포인트.

엔진은 개인 취향의 문제다. 무엇보다 출력을 아득히 감싸는 든든한 골격이 마음에 든다. 반듯한 겉모습 때문에 무게중심이 높고, 굽잇길에서 불안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넉넉한 휠베이스 덕분에 고속주행 안정감도 일품이다. 서스펜션의 상하 스트로크는 짧은데, 수축‧이완하는 과정이 잼 발라놓은 듯 부드럽다. 운전대 쥐고 흔드는 재미가 쏠쏠하다.



동료기자 모두 “BMW X1,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스포츠 등 경쟁자보다 뛰어날 뿐 아니라 GLC보다 완성도가 높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차급을 넘지 못 하는 부분이 N.V.H(소음‧진동‧불쾌감), 특히 정숙성 부문이다. 곧추 선 앞 유리 덕에 A필러와 사이드 미러 사이에서 풍절음이 다소 들이치는 편이다. 하부 소음 역시 B와 C 사이의 경계를 알 수 있는 단서다.

스페인에서 한국어로 길안내를 한다고?



다음 날, AMG GLB 35 4매틱을 타고 공항으로 이동했다. 화장 몇 가지 고쳤을 뿐인데 안팎으로 매콤한 분위기가 물씬하다. AMG 특유의 수직 그릴, 과격한 범퍼, CFRP(카본섬유강화플라스틱) 대시보드 등이 대표적이다. 여느 AMG 모델에서 만날 수 있는 D컷 스티어링 휠과 서슬 퍼런 패들 시프터가 운전욕구를 자극한다. 시트의 조절범위가 커 자세 맞추기도 좋다.

최고출력과 최대토크는 각각 306마력, 40.8㎏‧m. 컴포트, 스포츠, 스포츠 플러스 등 3가지 주행모드로 입맛 따라 주무를 수 있다. 특이하게 포르쉐 신형 911처럼 스티어링 휠 오른쪽 ‘동글이’ 버튼으로 조작한다. 명색이 AMG인데 목소리 빠지면 섭섭하지. 각 모드에 따라 가변배기 플랩을 열고 닫아 목청을 키운다. GLB 200d가 제일 만족스럽다는 말 취소.



가속 페달에서 발 뗄 때마다 ‘으르렁’대는 악다구니에, 이날 내 간은 배 밖으로 나왔다. 자꾸만 밟고 싶어서. ‘스으으읍’ 공기 빨아들이는 터빈 음과 ‘푸슉’ 뱉는 밸브 음도 환상적이다. 특히 4매틱 시스템은 평상시 엔진 힘을 앞뒤 차축에 80:20으로 나누다가 스포츠 모드부턴 70:30으로 고정한다. 오프로드 모드에서만 50:50으로 맞춰 험로주파 능력을 키운다.

이런 식으로 가상의 화살표를 띄운다.

그러나 엔진보다 더 호기심 자극한 장비가 따로 있었다. 증강현실 내비게이션이다. 해외에서 운전해본 사람이라면 공감하겠지만, 경로안내 헷갈려 당황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반면 GLB는 모니터에 앞 카메라 화면을 띄우고, 마치 게임처럼 증강현실로 길안내를 한다. 가령, 전방 200m 앞 우회전이면 해당 길목으로 가상의 화살표를 띄운다. 이거 정말 신세계다.

게다가 길안내 음성이 한국어로 나와 깜짝 놀랐다. 스페인 현지에서 “우회전하세요” 소리 들으니 세상 어색하다. 메르세데스-벤츠는 GLB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개발하며 한국어 지원을 빼놓지 않았다. 또한 “헤이, 메르세데스(멀세이디스라고 해야 알아듣는다)”라고 말하면 MBUX 인공지능 비서가 애플 시리처럼 원하는 기능 조작을 직관적으로 도와준다.



가령, “나 추워!”라고 말하니 뜨끈하게 히터를 켠다. 햄버거 먹고 싶으면 “안녕, 벤츠. 주변에 버거킹 찾아줘”와 같이 편하게 말하면 된다. 농담 삼아 “재미있는 얘기 좀 해줄래?” 했더니 “아시잖아요, 저 독일 출신인 거”라고 되받아친다. “나는 BMW가 더 좋다”고 하니 묵묵부답이다. 참고로 MBUX는 스스로 학습도 하는데, 탑승자 발음을 익히고 유행어까지 공부한다.

즉, ‘주유소’ ‘화장실’ ‘마트’처럼 차가 이해하기 쉽게 간단하게 말할 필요 없다. 옆 사람과 대화하듯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면 된다. 지루한 출퇴근길, 말벗이 하나 생긴 느낌이랄까? 영화 <her>에서 그렸던 장면이 당장 현실로 다가오니 어안이 벙벙하다. 참고로 MBUX는 현재 23개국 언어를 지원하며, A-클래스를 시작으로 향후 모든 벤츠 라인업에 들어갈 예정이다.</her>



600만 대. 메르세데스-벤츠의 컴팩트 라인업 누적 판매대수다. 더 뉴 GLB. 또렷한 제품 콘셉트와 목적에 맞는 패키징으로 브랜드 영토 확장할 새 주역이다. 생산은 멕시코와 베이징, 두 곳에서 치르며 각각 북미와 중국 내 컴팩트 SUV 시장을 조준경에 담았다. 물론 한국 시장에서도 만날 수 있을 전망이다. 반전의 연속이었던 이번 출장. 소비자 반응이 궁금하다.

<제원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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