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車결함 없어" 급발진 못 밝히고 수백억 혈세만..

입력 2013. 4. 13. 09:11 수정 2013. 4. 13.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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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 5시리즈가 지난 2009년 교통안전공단이 실시한 신차안전도평가를 마친 모습. 교통안전공단 제공

연간 수십억 원의 국가예산이 자동차제작결함 조사에 투입되지만 자동차 급발진의 존재 여부와 원인이 규명되지 않아 사회적 불안이 커지고 있다. 더욱이 급발진 원인 규명을 위해 의욕적으로 결성된 민관합동조사반도 뚜렷한 성과 없이 지난 9일 공식일정을 마무리했다.

동아닷컴 취재진이 입수한 '교통안전공단 2011 회계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교통안전공단은 교통안전사업 등과 관련해 정부로부터 약 600억 원을 수령했다. 이 가운데 자동차제작결함 조사 명목으로 지난 2010년과 2011년에 각각 38억, 지난해에는 45억 원의 예산이 책정됐다. 올해는 제작결함조사 사업비 42억 원을 비롯한 공단 전체 사업의 국회 예산안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급발진 조사, 운전자 이름 등 단순 정보가 대부분

차량제작결함 관련 사업비 대부분은 *자기인증적합조사와 차량 급발진 조사를 포함한 전반적인 자동차제작결함 조사에 쓰인다. 이 중 차량 급발진 조사의 경우 그 건수가 지난 10년간 17건에 그쳐 '부실조사'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자기인증적합조사 : 제작사가 자기 인증해 판매한 자동차 및 부품을 공단이 무작위로 구매해 안전기준 적합여부를 확인하는 방법)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이 공단으로부터 받은 급발진 조사 자료를 보면 공단은 2003년부터 합동조사반 출범 전까지 145건의 자동차 급발진 신고를 접수 받아 조사 기록을 남긴 사례는 17건이다. 이중 13건에 대한 공단의 조사보고서는 차량 사양, 운전자 정보 등 단순 정보들로만 채워진 부실한 조사로 확인됐다.

지난해 5월부터 운영된 급발진 민관합동조사반의 활약도 기대에 못 미쳤다. 국토교통부는 조사 전 과정 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던 6건의 사고차량(그랜저·스포티지·프리우스·렉서스 LS430·YF쏘나타·BMW 528i)과 올해 1월부터 지난달까지 3건(제네시스·SM3·올란도)을 조사하고 결과를 약 1년 동안 3차례에 걸쳐 발표( 2012년 5월~2013년 4월)했다. 그러나 당초 기대와 달리 결함을 밝혀내지 못했다.

교통안전공단이 지난달 2월 현대자동차 2013년형 제네시스 급발진 추정사고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차량에서 떼어낸 보쉬 에어백ECU를 언론에 공개하고 있다.

#정부 급발진 조사 사실상 한계 드러내

이에 대해 국토부는 "현재의 기술력으로 할 수 있는 사고기록장치(EDR), 전자제어장치, 기계장치 등을 모두 조사 분석했다"며 "차량 결함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지 결함이 없다고 단정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는 정부 급발진 조사의 사실상 한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동안 정부는 사고 5초전 차량 속도와 함께 엔진회전수, 브레이크 조작유무 등이 기록돼있는 사고기록장치(Event Data Recorder·이하 EDR) 분석에만 의존해왔다. EDR이 급발진을 밝혀내는데 상당한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일 순 없다. 차량마다 사고 시점이 다르고 사고 전체 상황을 EDR이 기록하지 못해 일부 데이터로 급발진을 판단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급발진은 엔진회전수가 갑자기 상승하며 급가속이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를 검증해 내는 것이 현재로선 쉽지 않다. 합동조사반은 재연실험을 통해 이와 유사한 상황을 만들어 검증하려고 했지만 사고 당시 조건과 100% 일치시키기는 어려웠다. 따라서 이 검증방법을 믿고 따르기엔 부족한 점이 많다.

현대자동차 2013년형 제네시스가 지난 1월 급발진 추정사고를 일으켜 서울 영등포 인근 가로수를 들이 받았다. 운전자 제공

#"급발진 사고 방지 장치 개발 서둘러야"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사고기록장치 표준화와 제작사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홍익대 법학과 류병운 교수는 "급발진 사고 신고가 들어오면 차량 제작사는 신속하게 EDR을 공개해 당사자의 의혹을 해소해 줘야한다"며 "장기적으로는 페달을 잘못 밟는 경우를 포함한 급발진 사고 방지 장치를 서둘러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류 교수는 또한 "정부가 주도적으로 EDR과 분석 장비를 표준화해 정보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양대 기계공학과 오재응 교수는 "자동차 급발진을 가려내는 데 브레이크 동작 유무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며 "그 보다도 차량이 급가속을 일으킨 이유를 정확하게 밝혀내야한다"고 설명했다. 오 교수는 "국내 PL법(제조물책임법)상 결함을 주장하는 소비자가 기업에 맞서 이를 입증해 내야하는 어려움이 있다"며 "제작사 측에서 적극적으로 결함조사에 협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부는 앞으로도 급발진 현상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 관계자는 "급발진 추정사고 발생사례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할 것"이라며 "교통안전공단 등 관련전문가 등과 협력해 원인규명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정부는 공정한 급발진 원인 규명을 위해 급발진 재현실험에 대한 아이디어를 이달 말까지 공개 모집한다고 전했다.

정진수 동아닷컴 기자 brje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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