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벳 Z06이 페라리를 능가하는 페라리로 불리는 이유

조회수 2022. 5. 2. 12:07
음성재생 설정

이동통신망에서 음성 재생시
별도의 데이터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만약 올 하반기 누군가 어떠한 전기 보조 장치도 없는 새로운 슈퍼카 한 대를 런칭한다고 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넣지 않은 그야말로 순수 내연기관 슈퍼카다. 심지어 흔한 터보차저 한 발도 없다. 요즘 같은 내연기관 황혼기에 출시하는 이 차가 가는 길을 용기 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무모하다고 해야 할까? 어느 쪽이든 이 차의 엔진은 지구상 가장 강력한 V8 자연흡기 엔진이 될 전망이다. 확실히 놀랄만한 소식이 아닌가. 

요새는 내로라하는 슈퍼카 브랜드도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전동화 대열에 합류하는 추세다. 콧대 높던 페라리도 EV 모드로 달리는 세상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시대를 역행하는 자연흡기 슈퍼카 출시 소식이 꽤 당혹스럽다. 이쯤 되면 도대체 어느 제조사가 최신 트렌드를 무시하고 뜬금없는 신차를 들고나와서 슈퍼카 업계의 흐름에 훼방을 놓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탑기어> 독자라면 이미 사진만 보고도 한눈에 콜벳 기사라고 눈치챘을 것이다. 믿기 힘든 소식을 하나 더 전하면, 이 무시무시한 괴물이 올해가 가기 전 영국에도 상륙한다. 과급기로 억지스러운 출력 상승을 유도하지 않아도 놀랄 만큼 분노에 찬 V8 엔진(8600rpm에서 최고출력이 무려 679마력까지 치솟는다), 라페라리를 닮은 멋스러운 스티어링휠, 티타늄 흡기 밸브 등 눈 돌아갈 만한 요소가 가득하다. 예상컨대, 이 차는 우라칸의 다음 세대를 고민하는 람보르기니가 가장 주시하는 모델일 것이다(우라칸은 610마력 10기통 자연흡기 엔진을 쓴다).

출력 수치 표기에서 어딘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는가?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신형 콜벳은 우리가 알던 502마력짜리 기본 모델 콜벳 C8이 아니다. 역대급 퍼포먼스로 무장한 고성능 버전 Z06이다. 콜벳 C8이 미국의 포르쉐 911이라고 한다면, Z06은 GT3에 비견되는 존재다. 물론 미국 자동차 문화의 시각으로 보면 600마력대 스포츠카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 모르지만....


> 1

모든 엔진을 씹어먹을 엔진을 품었다


로스앤젤레스의 한 고층 건물 옥상 주차장을 찾았다. 실눈을 떠야 할 정도로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쬐는 곳이었다. 하얗게 빛바랜 시멘트 바닥 위에 티라노사우루스가 으르렁거리듯이 거칠게 숨을 내뱉는 Z06 한 쌍을 세웠다(한 대는 Z07 패키지를 적용한 모델). 911로 치면 GT3과 GT3 RS라고 생각하면 된다.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텅 빈 주차장이 그 자체로 커다란 울림통이 되어 배기음을 증폭시킨 덕에 불쾌지수가 많이 낮아졌다. 

Z06은 숨소리만 들어도 인정사정없는 악랄한 공격성이 느껴진다. 8세대 콜벳은 앞 엔진을 고수하던 지난 70년 역사가 무색하게 끝내 운전자 뒤로 엔진을 옮긴 첫 번째 미드십 모델이다. 양쪽 문 뒤에서 입을 커다랗게 벌린

에어인테이크는 보나 마나 가까이에 있는 엔진과 곧장 통한다. 스타일링은 호불호가 갈린다. 미국차에서 흔히 느껴지는 투박함이 문제라면 문제다. 하나하나 세심하게 신경 쓴 곡선에서 놀라운 미적 감각이 돋보이는 페라리, 포르쉐, 맥라렌의 유려한 측면과는 영 딴판이다. 다만 미국에서 만인의 드림카로 통하는 영웅적인 콜벳의 명성을 생각하면, 사소한 디자인 문제는 쉽게 용서될 것이다. 

잠시 삼천포로 빠졌다. 이제부터 겉모습에 가려진 엔진 얘기를 해보자. GT3이 그렇듯 Z06과 엔트리 콜벳의 엔진에는 어떠한 공통점도 없다. 잘 알려진 쉐보레 6.2L 스몰 블록 V8을 여전히 사용하지만, 속은 완전히 새로운 LT6이다. 5.5L 드라이섬프 윤활 방식과 플랫 크랭크축 설계는 C8R GLTM 레이스카 엔진에 쓰는 세팅이다. 최고출력 679마력과 최대토크 63.5kg·m 힘으로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을 2.7초 만에 끝낸다. 오른발에 힘을 줘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는 시간까지 포함한 수치다.

무게 대비 출력비도 대단하다. 가장 최근에 나온 GT3(503마력)이 톤당 365마력인 반면 Z06은 톤당 434마력에 달한다. 최대토크는 6300rpm에서 터져 나온다. 작정하고 힘을 발휘할 땐 엔진이 상당히 고회전 영역에서 놀기 때문에 고성능 자연흡기 엔진의 배기음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안타깝게도 제대로 된 시승은 출시 후에 이뤄질 듯하다. 일단 연주 실력부터 먼저 볼까?

> 2

이탈리아산 슈퍼카가 낼 법한 사운드트랙이다


이건 분명 페라리 배기음이다. 음색이며 그것을 내뱉는 방식까지 영락없이 페라리다. 잘게 쪼갠 소리를 다시 촘촘하게 이어 한방에 쏟아내듯 앙칼지고, 가속 페달에서 발을 뗐을 때 불필요한 팝콘 소리가 나지 않는 깔끔함이 특징이다. 센터콘솔에서 D 토글스위치를 당겨 드라이브 모드를 넣고, 여기서 다시 M 버튼을 눌러 수동 모드로 전환한 다음 양쪽 패들시프트를 길게 당기면 V8 엔진회전수를 끝까지 쓸 수 있는 백도어가 열린다. 

Z06은 센 척하느라 일부러 올린 듯한 고음이 귀에 거슬렸던 페라리 458과는 결이 다르다. 한 마디로 전혀 꾸밈이 없다. 본능적인 공격성을 여과 없이 거친 소리 그대로 표현한다. 맹렬하게 포효하는 엔진에서 레이스카의 순수성과 반응 속도를 느낄 수 있다. 엔진회전수도 순식간에 치솟았다가 잦아든다. 콜벳을 생산하는 켄터키주 볼링 그린 공장은 10명 내지 12명으로 구성된 제작팀과 함께 이 괴물같은 엔진을 실제로 만들어볼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 3

서스펜션과 휠, 브레이크가 쾌감을 자극한다


V8 엔진만큼 새롭진 않지만 서스펜션도 상당히 많이 업그레이드됐다. 90mm 늘인 차체 너비는 이미 수치로도 상당한 변화를 말해주지만, 사실 여기에는 더 굉장한 변화가 숨어 있다. 차체 너비를 늘리는 일은 뜀박질이라는 전문 분야에 걸맞은 타이어를 신겨서 횡 접지력을 극대화하려는 업그레이드의 일환이다. 

C8보다 폭이 40mm나 늘어난 345mm 타이어를 차체로 덮으려면 재설계는 필수였다. 더 커진 6피스톤 브레이크 캘리퍼와 370mm 디스크 로터를 품기 위해 휠 사이즈도 한층 키웠다. 원래 옵션으로 선택하는 전자식 디퍼렌셜과 마그네틱 셀렉티브 라이드 컨트롤 댐퍼를 기본 적용했고, 스프링은 더 단단하게 세팅했다. 더 짧은 최종 구동 장치가 들어간 새로운 트랜스 액슬도 주행 성능 개선에 한몫한다.


> 4

두 가지 맛을 제공한다


미국 자동차 시장은 참 숫자를 좋아한다. 슬라럼, 짐카나, 제로백처럼 경쟁에서 얻는 수치에 환호한다. Z06은 어떤 테스트에서든 완벽하게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는 차다. 승리를 200% 확신하려면 1만달러(1200만원) 정도 더 써서 Z07 패키지를 적용해야 한다. Z07 패키지에 딸려오는 새로운 리어 스포일러는 시속 300km에서 다운포스 333kg을 발생시킨다. 두 배나 커진 수치다. 사실 시속 300km일 때의 다운포스는 무의미한 숫자에 불과하다. 

실제로 그렇게 빨리 달릴 일이 없으니까. 빨리 달려봤자 시속 150~200km 사이다. 여기에 맞춰 다운포스를 다시 계산해보면 333kg가 쪼개지고 쪼개져서 별로 안 남는다. 한 마디로 다운포스가 장점인 패키지는 아니다. 하지만 15% 단단해진 서스펜션, 카본세라믹 브레이크, 특히 접지력이 환상적인 미쉐린 컵 2R 타이어는 값어치를 톡톡히 해낸다. 통장에 여유가 더 있다면 탄소섬유 휠 옵션도 생각해 볼 만하다. 18kg을 덜어낼 수 있다. 

Z06이 그다지 경량화에 중점을 둔 차는 아니지만(Z06의 무게는 1560kg이다. GT3보다 150kg 무겁다), 휠 무게에서 18kg 절감은 가치가 크다. 가벼운 신발만 신어도 몸 전체가 가뿐하게 느껴지지 않던가. C8의 쓸만한 특성은 상당 부분 살렸다. 그중에서도 필요에 따라 탈부착이 가능한 루프 패널이 가장 괜찮은 품목이다. 물론 전자동 개폐 루프 메커니즘을 갖춘 컨버터블 모델(사진에서 Z07 패키지를 적용한 오렌지 색상 Z06이 컨버터블 모델이다)도 있다. 

그렇지만 굳이 컨버터블 모델이 아니더라도 모든 콜벳이 원하면 언제든지 오픈톱으로 변신할 수 있게 한 점은 정말 마음에 든다. 뗀 루프 패널은 엔진룸 뒤쪽에 수납하는데, 앞쪽에 프렁크가 있어서 짐공간이 아예 사라지지는 않는다.

> 5

인테리어는 나쁘지 않다


누가 무슨 생각으로 센터콘솔에 버튼을 일렬로 배치하는 디자인을 했는지 알 길은 없지만, 이것만 빼면 전체 레이아웃은 나쁘지 않다. 마감 품질과 완성도도 예상한 수준보다 훨씬 좋다. 변속기가 못내 아쉬워도 어쩔 수 없다. Z06이 600마력 후반대 자연흡기 8기통 엔진을 품은 사실은 환희를 불러일으키지만, 8단 DCT 자동변속기만 고를 수 있는 점은 옥에 티다.

Z06을 생각하면 흥분되는가? 아마도 이 차에 대한 핵심 질문이 아닌가 싶다. 분명 몇몇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지만 내 대답은 ‘그렇다’이다. 그동안 항상 새로운 기술을 선망해왔고, 신차에 그런 기술을 기대했다. 하지만 296 GTB 같은 페라리가 아닌 이상 많은 기술이 뒤섞이면 복잡하기만 하고 운전자가 느낄 수 있는 스릴을 희석할 뿐이다. Z06은 진정한 스릴에 가장 간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지름길이다.

과연 미국을 벗어나도 호응이 좋을까? 포드가 머스탱으로 어떤 재미를 봤는지 기억한다. 유럽에 상륙한 6세대 머스탱은 2016년 아우디 TT 판매 대수를 앞지르며 한때 유럽에서 가장 잘 팔리는 스포츠카로 이름을 날렸다. 부디 Z06도 마땅한 글로벌 시장을 찾길 바란다. 미국은 또 어떤 식으로 마음이 웅장해지는 V8 모델을 내놓을지 진정 다음이 궁금해지는 나라다.

OLLIE MARRIAGE 사진 MARK RICCIONI 에디터 박지웅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