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쭈? 얼추! 기블리 하이브리드 시승기

조회수 2022. 5. 11. 12:1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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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콰트로포트테, 르반떼, 기블리

‘마세라티’하면 곧바로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다. 작년 이맘때였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평일 이른 아침이었고, 나는 콰트로포르테 S Q4를 몰며 한적한 지방 국도를 달리는 중이었다. 눈앞엔 가로수와 시골 풍경 사이로 완만한 코너와 쭉 뻗은 길이 연이어 다가왔다.


[콰트로포르테 S Q4 시승기는 여기]


콰트로포르테 S Q4
콰트로포르테 S Q4

3리터 V6 엔진의 부드럽지만 맹렬한 회전 질감, 가감속에 맞춰 시프트페들을 당기면 터지는 배기음, 굽잇길의 기울어짐과 요철을 우아하게 타고 넘는 하체의 조화가 잊을 수 없는 희열을 선사했다. 첨단 슈퍼카도, ‘뚜껑 열린’ 컨버터블도 아닌 5미터 넘는 대형 세단으로 느낀 행복이었다.


르반떼 GT 하이브리드

그 뒤로 마세라티는 기블리와 르반떼에 하이브리드 심장을 달아 출시했다. 감성 빼면 시체라는 마세라티가 감성 대신 이성을 쫓았다니 불안했다. 배기음만 몇 천만 원 한다는 마세라티에게 고작 2리터 4기통 엔진이 가당키나 할는지 걱정이 앞섰다. 게다가 마일드 하이브리드로 전동화를 논하기엔 어딘가 궁색해 보이기도 했다.


한편 ‘그래도 명색이 마세라티인데......’라고 믿고 싶었다. 일 년 전 콰트로포르테로 즐겼던 감성의 절반만 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늘 이야기는 기블리 하이브리드를 타고 경북 안동까지 다녀온 소감이다. 걱정은 현실이 됐을까? 기우에 불과했을까?


어느덧 2013년 첫 공개 후 시간이 한참 흘렀지만, 디자인은 여전히 멋들어진다. 정면을 노려보는 공격적인 인상과 커다랗게 벌린 라디에이터 그릴, 팽팽한 캐릭터 라인과 빵빵한 리어 펜더의 볼륨은 스포츠 세단의 정석이라 부를만하다. 창틀 없는 옆 창과 안으로 과감히 눌러 넣은 텀블홈(앞에서 봤을 때, 옆 창이 위로 갈수록 기울어져 들어간 정도)은 공간이나 실용성보다 멋과 낭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다분히 마세라티다운 흔적이다.


리어램프는 최근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내부 광원 그래픽을 고쳤다. 세기말을 장식했던 쿠페, 3200 GT에서 영감받은 부메랑 디자인이다. 프론트 펜더 장식은 파란색을 섞어 하이브리드 심장을 드러냈다. 22년형은 보닛 끝과 C필러의 삼지창 엠블럼도 달라졌더라.


22년형 기블리에 적용된 C필러 삼지창 엠블럼
22년형 기블리에 추가된 'GT' 레터링

실내도 소소한 변화가 눈에 띈다. 가장 큰 차이는 10.1인치 센터 디스플레이. 마세라티가 속한 스텔란티스 그룹의 최신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품었다. 넓어진 창과 높은 해상도, 세련된 그래픽, 빠른 반응이 반갑다. 업계 상위권은 못돼도 이제 중간은 가겠다.


스마트폰 무선 충전패드는 센터패시아 하단에 서랍처럼 숨겼다. 오래된 레이아웃에 추가하려고 얼마나 고민했을까? 낡은 바탕과 차급에 못 미치는 일부 버튼들은 하도 탓해서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슈트발 끝내주는 이탈리아 신사가 고무줄 늘어난 속옷을 입은 셈이다. 다행인 건, 얼마 전 공개한 신형 SUV 그레칼레의 완전히 새로워진 실내다. 다른 마세라티 라인업에도 확대 적용이 시급하다.


센터패시아 하단에 숨긴 스마트폰 무선충전 서랍
비상시에 누르기 힘든 비상등 버튼

아참, 지금 중요한 건 디자인이 아니지! 생김새는 그만 감상하고 빨리 달려봐야겠다. 시동을 거니 제법 방방대는 배기음을 토하며 깨어난다. 나처럼 삐딱한 시선으로 ‘마세라티다움’을 평가하려는 사람들에게 첫인상부터 움츠러들기 싫었나 보다.


가장 먼저 알아본 건 힘. 감성이니 뭐니 하는 것도 다 차가 잘 달릴 때 얘기니까. 일단 숫자를 보자. 최고출력 330마력에 최대토크 45.9kgm, 공차중량은 2,030kg이다. 대중적인 ‘흔차’들 보다야 분명 넉넉하지만, 그렇다고 감동적일 것도 없는 수준. 차 값이나 브랜드 성격을 생각하면 당연해 보일 수도 있다.


실제 가속 느낌은 ‘음~ 잘 나가네?’ 싶은 200마력 대와 ‘와!! 잘 나간다!’ 싶은 400마력 대의 중간이다. 가속페달을 꾹꾹 눌러댄다고 뒷머리를 낚아채며 팡팡 튀어나가는 반응은 없지만, 저속-중속-고속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속도계를 높여가는 과정이 시원하다. 다만 초고속 영역에선 3리터 V6 모델들이 슬쩍 그립더라. 역시 배기량이 깡패인가?


48V 마일드하이브리드 2리터 4기통 가솔린 터보

인상적인 건 저회전 초기 반응이다. 작은 배기량과 싱글 터보의 조합으로 힘을 쥐어짜는 엔진치고 터보렉을 잘 감췄다. 어느 영역에서도 오른발을 까딱이면 즉각적인 반응으로 답한다.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활용한 일종의 전동식 슈퍼차저를 맞물린 덕분.


e부스터 작동상태

마세라티는 이를 ‘e부스터(eBooster)’라고 부른다. 전기 모터를 통해 언제든 터빈을 돌리고, 압축된 공기를 엔진으로 보내 터보의 공백(터보렉)을 매우는 원리. 실제 시속 100km 도달시간도 5.7초로 3리터 V6 트윈터보 심장을 얹은 기블리 모데나의 5.5초보다 0.2초 뒤질 뿐이다. 가볍고 단순한 구조로 반응과 가속력을 효과적으로 챙긴 해법이다.


48V 마일드하이브리드의 핵심인 BSG(Belt Starter Generator)
터보렉을 줄이고 언제나 빠른 반응을 돕는 e부스터

다음으로 궁금했던 건 소리. 제아무리 V8에 580마력을 자랑하는 최상위 트로페오도 조용하면 마세라티로 인정받지 못할진대, 막내 GT 하이브리드는 어땠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음…… 제법이다. 잠시 뜸 들이다 답한 건, 제대로 된 ‘마세라티 사운드’를 듣기 위한 조치가 몇 가지 필요하기 때문. 그냥 살살 타면 ‘음……’같은 반응이 나온다. 오히려 노면 소음과 풍절음이 생각보다 조용해서 의외다.


첫 번째 조치는 기어노브 옆 ‘SPORT’ 버튼을 눌러 가변 배기 열기다. 그다음 수동 변속을 통해 RPM을 5,000 부근까지 올린 뒤 운전대 오른쪽 + 패들을 튕기면 끝. 이때 창문도 살짝 내리면 금상첨화다. 그럼 ‘우우우우웅 브룩!’과 비슷한 소리를 들려준다. 동시에 입가엔 슬며시 미소가 번지며 ‘그래 이 맛이지!’싶다. 대배기량 다기통 형제들보다 더 좋다고는 못하겠으나 이 정도면 선방했다.


최고의 조작감을 주는 한뼘짜리 알루미늄 시프트페들
변속기를 수동모드로 바꾸면 계기반에 시프트페들을 그려준다

변속기는 유명한 ZF 자동 8단. 후륜구동 차를 널리 이롭게 하기가 거의 홍익인간급이다. 그저 D에 맡겨두면 제때 제 단수를 능구렁이처럼 찾아 들어가고, 수동으로 변속할 땐 주행흐름에 어울리는 반응으로 흥을 돋운다.


ZF 자동8단 변속기

BMW와 짝지었을 때 DCT 부럽지 않을 만큼 빨랐던 것과 달리, 마세라티와의 조합에선 살짝 여유를 부린다. 그랜드 투어러를 지향하는, 그리고 기름진 이탈리아 남자 같은, 마세라티의 브랜드 성격과도 잘 어울리고.


소리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은 마세라티의 주행 특성 중 하나가 하체 감각이다. 탄탄한 듯 부드럽고, 묵직한데 찰랑찰랑하다. 모든 마세라티(MC20는 아직 안 타봤다)에서 공통적으로 전해지며, 스카이훅(Skyhook) 전자식 댐퍼 옵션이 빠져도 기본 설정은 마찬가지.


중저속으로 도심을 달릴 땐 탄탄하게 노면 정보를 전달하다가, 또 너울지는 고속도로를 지날 땐 너그럽게 삼킨다. 속도를 높이면 묵직하게 착 가라앉았다 와인딩에선 불안하지 않을 만큼 롤링을 허용하기도. 이건 마치 바퀴와 노면은 무슨 일이 있어도 놓지 않을 테지만, 차체와 바퀴 사이는 요령껏 대처하겠다는 태도다. 꼭 능청스러운 이탈리안 바람둥이 같다.


든든한 두께의 더블 위시본 앞 서스펜션

가장 기분 좋은 환경은 역시 장거리 고속주행이다. 횡가속이 실린 채 다리 이음매를 밟았는데 무섭지 않을 때, 문득 내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달리고 있을 때, 그 상태로 몇 시간 달렸는데 별로 피곤하지 않을 때 하체의 내공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아쉽게도 이날 장거리 주행을 마친 뒤 계기반 평균연비는 사진을 찍지 못했다. 리터당 7.8km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다음 날 아침 리셋 후 서울로 돌아오는 길, 다른 기자가 찍은 사진에는 8.4km/L를 기록하고 있었다.


제원표상 복합공인연비 8.9km/L보다는 살짝 낮지만, 성능과 주행환경을 생각하면 준수한 수준. 줄어든 성능 대비 늘어난 연비를 따져보면 남는 장사가 아닐까? 줄어든 것도 숫자일 뿐, 체감 성능과 감성은 크지 않아 다행이다. 그래서 기블리 하이브리드도 콰트로포르테 S Q4에서 느꼈던 희열을 줄 수 있었냐고? 대답은……


어쭈?
얼추!


이광환 kwanghwan.lee@carla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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