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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카 특집 1: 페라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모터트렌드 입력 2020.09.16.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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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보적인 위치에서 저마다의 성능과 개성을 앞세워 드림카 반열에 오른 자동차 석 대를 한자리에 모았다. 이들이 말하는 드림카의 조건은 무엇일까?


드림카는 쉽게 가질 수 없는 동경의 대상, 욕망이 투영된 오브제다. 그래서 존재만으로도 우리의 가슴에 불을 지른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가슴 한편에 드림카 하나쯤은 있다. 하지만 그 차가 왜 드림카인지 물으면 대부분 속 시원한 답변을 내놓지 못한다. 존재는 하지만 존재 이유를 알지 못하는 우리의 삶과 같은 맥락이다. 흔히 드림카라고 하면 운전자가 버거울 정도로 빠르고 범접할 수도 없이 비싼 자동차를 떠올린다. 하지만 주변을 살펴보면 미니 쿠퍼 3도어나 지프 랭글러를 드림카로 여기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단순히 속도와 가격이라는 조건만 따진다면 이들은 드림카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차들은 드림카가 될 수 없을까? 꼭 그렇지도 않다. 드림카는 개인의 경험과 욕망의 크기, 주어진 환경, 자동차의 가치와 개성 등 다양한 조건들이 상호작용을 하며 얼마든지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드림카를 언급할 때 높은 비율로 나오는 자동차들은 분명 존재한다. 한자리에 모인 페라리 F8 트리뷰토, 포르쉐 911, 메르세데스 AMG GT 63 S 4도어가 그들 중 하나다. 이들은 다른 차에 비해 빠르고 비싸다. 하지만 이번엔 앞의 예와는 반대로 두 조건만으로 드림카의 반열에 올랐다고 볼 수 없다. 자동차 시장엔 이들보다 빠르고 비싼 차들이 차고 넘친다. 그렇다면 이 차들의 어떤 형질이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이를 찾아내기 위해 자동차를 깊이 이해하고 탐구하는 <모터트렌드> 편집장 이진우, 자동차 칼럼니스트 나윤석, 카레이서 강병휘를 한자리에 모았다. 이 세 사람은 페라리 F8 트리뷰토, 포르쉐 911, 메르세데스 AMG GT 63 S 4도어의 어떤 부분에서 드림카의 조건을 찾았을까?

페라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페라리 F8 트리뷰토

자동차 전문 기자가 돼 여러 페라리를 시승할 수 있는 지금도 페라리를 꿈꾼다. 페라리 사랑은 페라리를 실물로 본 적이 없는 10대 때부터 시작됐다. 자동차 잡지에서 본 빨간색 스포츠카가 순식간에 나의 뇌를 지배했다. 코가 뾰족하고, 아주 낮고 넓은 차였다. 헤드램프가 차체 안에 숨어 있다가 우아하게 튀어나오는 신기한 기능이 있고, 뒤엔 하늘이라도 날 것처럼 엄청나게 큰 날개를 달고 있었다. 너무나도 멋지고 강렬한 그 차에 내 마음을 홀딱 빼앗겨버렸다. 바로 페라리 40주년 기념으로 만든 F40이었다.

그때부터였다. 페라리에 관한 온갖 정보를 모으기 시작한 때가. 물론 정보의 창구는 자동차 잡지가 전부였는데, 기사를 쓴 기자도 페라리를 직접 보거나 타고 쓴 글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페라리를 글로 배운 기자가 쓴 기사로 페라리를 공부했던 거다. 물론 그 당시엔 정보의 신빙성이나 가치는 중요하지 않았다. 페라리를 좋아하는 소년에겐 그저 새로운 페라리 이야기가 흥미롭고 신났으니까.

페라리가 선보인 최초의 로드카 125S부터, GT카로 제작했음에도 밀레밀리아에 출전해 우승한 195S 투어링, 전설적인 플레이보이 포르피리오 루비로사가 사랑한 500 몬디알 스파이더, 테일핀을 단 몇 안 되는 희귀한 페라리 410 슈퍼아메리카, 빨간 머리 250 테스타로사, 투르 드 프랑스의 영웅 250GT, 이탤리언 핫로드 250GT 베를리네타, 처음으로 아들 이름을 사용한 206 디노 콤페티치오네 등 모든 페라리는 각각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 난 조선왕조 500년 역사보다 페라리 40년 역사가 더 재미있었다.

페라리가 좋았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속도다. 잘 알고 있겠지만 페라리는 레이싱을 기반으로 한 자동차 메이커다. 창업주 엔초 페라리가 모데나에 스쿠데리아 페라리를 설립한 게 1929년이다. 당시는 자동차 제조사가 아니라 자동차 경주팀이었다. 그리고 1933년 알파로메오의 워크스 팀으로 경주차로 참가하기 시작했고, 1940년에는 독자적인 레이싱카를 만들어 밀레밀리아에 참가했다. 이후 페라리는 수많은 자동차 경주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다른 팀들은 우승이 목표가 아니라 페라리 타도를 위해 자동차 경주에 출전했다.

페라리가 처음 로드카를 만든 계기도 자동차 경주를 지속하기 위해서였다. 경주에 참가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고, 때마침 젠틀맨 드라이버들은 경주에서 가장 강력한 페라리를 일반 도로에서도 타고 싶어 했다. 그렇게 생산자와 소비자의 욕구가 맞아떨어지면서 처음으로 125S를 생산하게 된다. 하지만 엔초 페라리는 마뜩잖았다. 일반도로용이라는 건 ‘느리다’는 뜻이니까. 그래서 괴짜 창업주는 125S를 경주차보다 더 빠르게 만들었다. 당시 경주차의 주류가 직렬 8기통이었는데, 엔초는 125S에 12기통 엔진을 넣었다.

인류에게 속도는 중독이자 도전이다. 어쩌면 숙명인지도 모른다. 달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속도를 겨뤘고, 말을 타고 마차를 끌면서 남들보다 빨리 달리기 위해 애썼다. 자동차도 마찬가지였다. 차를 타자마자 내기를 시작했으며,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 엔진을 개량하고 차체를 개선하기 시작했다. 이런 인류의 역사에서 페라리는 언제나 가장 빠른 차를 만드는 경주팀이자 자동차 제조사였다.

수많은 사람이 페라리를 찬양하고 꿈꾸는 이유는 이처럼 지난 70년간 오직 승리와 영광의 역사를 걸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페라리를 탄다는 것은 단순히 이동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페라리 70년 역사의 레이싱 헤리티지 그리고 속도에 대한 경외를 의미한다. 이 의미를 위해 수억 원씩 지불하는 게 아깝지 않은 이들이 페라리를 타는 것이다.

‘눈은 도로에, 손은 운전대에’ 라는 모토를 가진 페라리는 운전대로 차의 거의 모든 부분을 제어할 수 있다.

여러 페라리 모델 중 미드십 모델은 페라리의 속도에 대한 집념과 고집이 고스란히 담긴 모델이다. 우선 미드십은 인류가 찾아낸 자동차 구조 중에서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달릴 수 있는 구조다. 그리고 운전자의 뒤엔 페라리 70년 역사가 뜨겁게 들끓으며 운전자를 채근한다. 288 GTO와 F40 등 페라리 미드십을 특히나 사랑하는 이유다. F8 트리뷰토도 GTO와 F40이 내게 건전한 자극이 된 것처럼, 누군가의 드림카 리스트에 가장 높게 자리할 것이다.

세상 모든 카가이가 페라리를 꿈꾼다. 페라리가 가장 빨라서도 아니고 비싸서도 아니다. 페라리이기 때문에 꿈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지난 십수 년 동안 여러 페라리를 경험했는데, 당신의 꿈은 틀리지 않았다. 그 꿈을 오롯이 간직해 나아가길 바라며 아울러 꿈이 실현되길 응원한다.

글_이진우


Tester’s Comments

과도한 파워를 능수능란하게 다루어내는 핸들링 실력은 이미 인간계가 아니다. 이제는 슈퍼카의 범주에 당당히 들어섰다.
나윤석

확실히 페라리는 페라리만의 아우라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어린아이부터 할아버지까지 이 차를 향해 고개를 돌리지 않을 사람은 없다.
강병휘



CREDIT
EDITOR :
김선관   PHOTO : 최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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