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나믹 듀오, 캐딜락 CT4 & CT5

조회수 2020. 7. 29. 15:00 수정
음성재생 설정

이동통신망에서 음성 재생시
별도의 데이터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무자비한 서킷을 만난 캐딜락 새내기들이 과감히 정장을 벗어 던졌다


캐딜락 하면 열에 아홉은 아직도 정장 곱게 차려입은 사람이타는 거무칙칙한 세단을 떠올릴지 모른다. 자랑스럽게 여겼던 프리미엄 전통이 참으로 벗기 힘든 고루한 이미지가 된 셈이다. 하지만 캐딜락은 생각보다 역동성에 관심이 많은 브랜드다. 오래전부터 모터스포츠와 고성능 라인업 V시리즈로 탄탄한 기본기를 연마했다.

이젠 마침내 대중의 눈높이에서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선봉장으로 나선 모델은 CT4와 CT5다. 최근 세단 라인업을 재편하면서 기존 ATS와 CTS를 대체하는 후속 모델에 V시리즈 DNA를 녹였다. 밋밋했던 녀석들이 과연 짜릿해졌을까? 판단은 트랙 주행이 끝난 뒤로 미루기로 했다.

서킷 시승을 앞두고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 제발 그날 비가 내리지 않기를 빌고 또 빌었다. D-데이가 왔다. 이날을 함께 손꼽아 기다려온 동료도 일찍 도착해 용인 스피드웨이의 적막한 아침을 깨웠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침 댓바람부터 맑은 하늘 위에서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었다. 트랙 위를 살포시 적신 아침이슬이 빠르게 증발했다. 혹독한 하루가 예상됐지만, 머릿속은 온통 신나게 달릴 생각으로 기쁘기만 했다.

짜릿한 뒷바퀴굴림, 강력한 엔진, 듬직한 브레이크, 하나같이 스포츠카로 연결되는 요소다. 미리 본 설명 자료에 따르면 스포츠 트림 CT4와 CT5가 딱 이랬다. 이들에게는 스포츠 세단이라는 수식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실제로 구성품을 보면 쉽게 납득이 된다. 둘 다 4기통 2.0L 터보 엔진을 쓴다. 트윈스크롤을 적용한 엔진은 최고출력 240마력, 최대토크 35.7kg·m을 발휘한다(게다가 이 힘으로 뒷바퀴를 굴린다). 뛰어난 제동력을 보증하는 브렘보 브레이크도 갖췄다. 그밖에 리어 스포일러로 스포티한 맵시를 살렸고, 마그네슘 패들시프트로 주행 감성을 더했다.

막상 트랙으로 들어가려니 설레는 마음에 긴장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CT4·CT5 형제가 진땀 뺄 정도로 살벌한 출력을 가진 모델은 아니다.게다가 오늘날 눈부신 발전을 거듭한 전자장비가 있으니 바보가 아니면 코스를 이탈해 방호벽을 들이받는 일도 없다. 하지만 설렁설렁 달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곳은 서킷이고, 이들이 머금은 단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리라 마음먹었다.

먼저 CT5 키를 받아들었다. 차에 오르기 전 일일 감독님은 모처럼 서킷에 왔으니 마음껏 즐기고 오라고 했다. 안전에 유념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미치도록 속도를 높이며 트랙 위를 종횡무진할 걸 그도 이미 짐작했을 터였다.

전자장비를 모조리 끄고 피트레인에 섰다. 알칸타라 스티어링휠 잡은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조용히 출발 신호를 기다렸다. 앞서 본 두꺼운 모델 설명 자료가 떠올랐다. 정말 꼭 경험하고 확인했으면 하는 항목은 캐딜락 관계자가 애써 하이라이트 표시까지 해뒀다. 그런데 트랙 주행을 앞둔 지금 그런 게 떠오를 리 없다.

마침내 출발 신호기에 초록 불이 들어왔다. 무전기에서 ‘굿 럭!’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다. 분명한 건 이날 시승이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라는 모두의 염원을 담은 외침이었다.

CT5를 타기 전에는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스포티한 요소를 머금었다지만, 원래 트랙 주행에 특화된 차가 아닌 터라 잘 달리면 얼마나 잘 달리겠나 얕봤다. 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CT5는 보기보다 서킷에 잘 어울리는 모델이다. 스로틀을 활짝 열고 앞으로 내달리면 쭉쭉 뻗어나가는 시원한 가속감이 출력에 대한 갈증을 완전히 지웠다(트윈스크롤 덕에 터보 반응성이 우수하다). 스티어링도 기대 이상으로 날카롭다. 코너를 빠르게 베어 들어가는 실력이 수준급이다.

뛰어난 고속안정감은 정말이지 눈이 번쩍 떠질 정도다. 마그네틱 라이드 컨트롤이 1초에 1000번 노면 상태를 읽고 밀리초 단위로 댐핑압을 조절해 안정된 자세를 유지한다고 하는데, 경험해보니 결코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닌 듯하다. 속도를 높여도 좀처럼 운전자가 두려움에 휩싸일 일이 없다. 일부러 연석을 욕심껏 올라타도 태연하기 그지없다. 마치 머리는 흔들림 없이 둔 채 온몸 근육과 관절을 크게 움직여 먹이를 향해 돌진하는 포식동물처럼 빠르고 안정적으로 내달린다.

CT4를 탄 동료는 추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사이드미러를 힐끔힐끔 볼 때마다 단 한 순간도 모습을 감춘 적이 없었다. 그에게 백기를 드는 대신 타이어를 미끄러뜨려 희뿌연 연기를 선물하기로 했다. 타이어도 달궈졌겠다 CT5가 가진 탁월한 재능을 끌어낼 시간이다. 뒷바퀴굴림 자동차를 타면 빠질 수 없는 의식, 드리프트다. CT5가 더 크고 무거운 탓에 차체 컨트롤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드리프트가 까다롭고 두려운 일은 아니다. 랩타임에 손해를 보지만, 더 재미있고 스릴 넘친다.

속도를 유지한 채 CT5로 뒤를 미끄러뜨리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쉐보레 카마로라면 순간적인 오버파워로 파워슬라이딩을 해볼 순 있겠지만, 힘 대부분을 달리는 데 써버린 CT5는 그렇게 뒤에서 밀어줄 힘이 충분하지 않았다. 어쭙잖은 힘으로 시도하면 코너에서 언더스티어만 일어날 뿐이다. 코너에 들어서면서 힘껏 브레이킹했다. 브렘보 브레이크는 원하는 속도까지 순식간에 멈춰 세운다. 

무게중심이 한껏 앞으로 쏠렸을 때 턴인 방향으로 스티어링휠을 90도쯤 꺾고 가속 페달을 한 차례 길게 밟았다. 수월하게 뒤가 미끄러졌다. 기다리던 오버스티어다. 드리프트를 성공시키려면 오버스티어라는 생각을 할 시간 따위는 없다. 생각하는 찰나에 카운터 스티어링 타이밍을 영원히 잃고 스핀하고 만다. 엉덩이가 오버스티어 기미를 감지하는 순간 카운터 스티어링을 잡았다.

신호로 알아들었는지 CT4도 보란 듯이 드리프트를 과시했다. 서킷을 울리는 타이어의 울부짖음이 더 도드라졌다.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바라보는 드리프트는 더없이 멋졌다. 원래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법이다.

한바탕 주행을 마치고 돌아온 피트레인에서 동료가 물었다. “왜 그렇게 천천히 달렸어요?” 이게 무슨 말인가. 온몸이 땀에 젖을 정도로 혼신의 힘을 다해 달렸거늘…. 그 말을 듣자마자 숨 고를 틈도 없이 이번엔 CT4에 올랐다. 애초에 서로 먼저 타기 위해 눈치를 봤던 차다. CT4와 CT5는 엔진을 공유한다. 덕분에 최고출력이 같다.

다만 CT4는 50:50에 가까운 완벽한 무게 배분을 이뤘다. 게다가 더 작고 가벼우니 서킷에서 더 인기가 많은 건 어쩌면 당연하다. 어떻게 다른 움직임을 보일지 너무 궁금했다. 다시 트랙으로 나갔다. 힘 전달은 한껏 흥분한 마음을 따라오지 못했지만, 무르익은 역동적인 페이스를 해칠 정도는 아니었다.

CT4는 선명한 피드백이 백미다. CT5(1750kg)보다 120kg 가벼운 터라 엔진과 궁합이 더 좋게 느껴졌다. 더 민첩하게 차체를 튕겨내고, 톡 쏘는 벌침 공격처럼 스티어링 응답성이 날카롭다. 과한 움직임에도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실제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체감만은 그 좋던 CT5가 무디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운전자의 사소한 명령조차 열정적으로 받아내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가벼워 뒤를 미끄러뜨리기도 더 유리하다. 차체 뒷부분을 흘리면서 ‘방~방~’ 적절한 타이밍에 스로틀을 조금씩 열었다. 스티어링휠도 감았다 풀기를 반복했다. 연속 동작으로 드리프트를 연결하며 코너 탈출 지점에서 다시 그립을 찾았을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슈퍼카를 몰 때는 높은 출력에 압도되어 한 끗 차이의 실수로 드리프트를 실패하고 속수무책으로 스핀하기 일쑤다. 하지만 240마력 뒷바퀴굴림 스포츠 세단 형제는 출력이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수준이다. 오히려 드리프트를 부담 없이 즐기기에 아주 적당했다.

트랙 위를 맹렬하게 질주했지만, 우리 모두 랩타임 따위에는 목숨을 걸지 않았다(물론 랩타임에 상품을 걸었다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세단이라는 양의 탈 속에 잠재된 탁월한 성능을 즐기는 데에만 집중했다. 엔진 사운드는 밋밋한 편이라 귓전을 겨우 맴도는 데 그친다. 배기파이프는 철저한 묵언수행 중인지 앓는 소리만 낸다. 하지만 탄탄한 기본기는 온몸으로 확인했다. 안정적인 발진 가속력, 롤을 최소화한 코너링, 압도적인 제동력은 특히 인상 깊었다.

CT4와 CT5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서킷을 달리기에도 한치의 부끄럼 없는 주행이었다. 이 중에 한 대만 타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CT4를 고르겠다. CT5의 다부진 섀시와 프리미엄 세단으로서의 완성도는 본받을 만하다. 하지만 CT4가 민첩성, 스티어링의 정확도, 악동에 가까운 역동성 측면에서 더 만족스러웠다.

누군가는 더 고급스러운 CT5가 사랑스럽다고 말할 터다. 그렇다면 CT4는 짙은 매혹을 머금은 악녀라고 외치겠다. 그날 아침은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CT4와 CT5는 아지랑이 이글거리는 서킷에서 속도에 굶주린 야수 본능을 어떻게도 감추지 못했다.

박지웅 사진 이영석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