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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값 이것 밖에? BMW 745Le의 신세계

신동빈 입력 2020.08.01. 17:07 수정 2020.08.01.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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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기자들은 독특한 차를 좋아한다. 워낙 다양한 차를 접하는 탓에 평범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 별로 없다. 특히 정통 세단은 기피 1순위로, 국내 최고 인기 모델 현대 그랜저를 타는 이가 드물다. 가 본 적도 없는 지구 반대편 유럽 어느 나라 감성에 젖거나 가성비 확 떨어지는 한정판을 지르는 등, 갖은 이유로 소위 ‘남들 안 타는 차’를 주로 구입하는 이가 많다.

기자 역시 세단 기피인 중 하나다. 높은 성능에 디자인과 공간까지 다 갖춘 독일산 고성능 왜건 구입을 꿈꿨다. 세단을 사면 왠지 너무 평범한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SUV에 비해 실내가 상대적으로 좁은 것도 세단행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번에 시승한 BMW 745Le는 기자의 모든 것을 시원하게 뒤집었다. 애초 ‘1억 6,420만원이나 주고 이거 사야 해?’라며 반기지 않았으나, 이제 이 차라면 자신있게 세단을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물론, 감수해야할 것도 있다. 하지만 745Le를 통해 ‘세단의 신세계’를 경험했고, 왜 세단 기피인에서 ‘전향’을 했는지 솔직하게 나누려 한다.

서울-강릉 왕복 놀라운 기름값

745Le의 복합연비는 10km/l로 고속도로 11.4km/l, 도심 9.1km/l이다. 수치 자체는 그리 대단하지 않지만, 2.2톤이 넘는 플래그십인 것을 감안하면 눈에 띄는 것은 확실하다. 대형 가솔린 플래그십 연비가 디젤 모델 730Ld와 1.4km/l 밖에 차이나지 않는 것은 놀랍다.

체감 연비는 어떨까? 날씨가 좋은 토요일 오전 10시, 배터리 약 35%, 연료 95%를 채운 채 서울 강남역에서 강릉 금진항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헌화로 해변 드라이브 코스를 거쳐 서울 강남역으로 다시 돌아오는 500km 좀 넘는 코스. 다른 사람은 태우지 않고 유아용 카세트와 무거운 카메라 가방이 동승했다.

745Le는 엔진과 배터리가 함께 연료 소비를 최소화하는 하이브리드 모드, 퍼포먼스 주행을 위해 전기모터가 간간히 힘을 더하는 스포트 모드, 전기모터만 사용하는 일렉트릭 모드 등 세가지 드라이브 모드를 지원한다. 자동으로 모드를 변경하는 어댑티브 모드도 있다.


출발 당시 연료량과 배터리 잔량

피서가 시작되는 주말 아침이라 서너군데 막히는 구간을 통과하며 가다서다를 반복했다. 충전모드인 배터리 컨트롤(BATTERY CONTROL) 버튼을 누르고 배터리 100% 만들기에 집중했다. 이후에는 하이브리드 모드와 스포트 모드를 번갈아 사용하며 속도를 낼 수 있는 데 까지 내 보는 등 최대한 퍼포먼스 주행에 초점을 맞췄다.

강릉 금진항 도착 직후 연료량은 50%가 남았고, 하이브리드 배터리는 방전상태였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고속도로 체증이 매우 심했던 탓에 2차선 국도를 이용했다. 그 와중에 약 21리터(3만원)를 추가 주유했고, 스포트 모드와 하이브리드 모드를 넘나들며 또 다시 스포츠 주행을 만끽했다.

금진항 인근 도착 직후

서울로 돌아오는 길 막판에는 충전모드로 전환해 배터리를 100%로 다시 채웠다. 강남역 도착 후 남은 연료는 약 1/4. 배터리는 95% 이상 채웠다. 7월 5일 기준 휘발유 가격 리터 당 1,388원으로 계산했을 때, 이번 강릉 투어에서 소모한 연료비는 약 7만 5천원이다. 독일산 플래그십 세단 치고 상당히 놀라운 수준.

게다가 이번 745Le의 총 주행거리 528.8km 중 약 1/4에 해당하는 132.7km를 전기모터가 담당했다. 745Le는 이전보다 더 큰 12kWh 배터리를 얹고 일렉트릭 모드에서 제원 상 최대 38km(고속도로 기준)까지 주행한다. 하지만, 하이브리드 모드에서는 속도에 관계없이 전기모터 수시 개입으로 실제로는 훨씬 먼 거리를 달린다. 이 정도면 ‘친환경 플래그십’으로 불러도 손색없다. 7시리즈로 강릉을 다녀오는데 7만 5천원라니...첫번째 신세계다.

서울-강릉 왕복 다음 날 일렉트릭 모드 출근까지 마친 주행 데이터

100% 친환경 출퇴근

월요일 아침, 배터리 100%인 745Le를 타고 친환경 출퇴근에 나섰다. 과천 서울랜드에서 서울역 인근까지 약 19km 거리를 엔진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일렉트릭 모드’로 달렸다.  

일렉트릭 모드의 공인 주행거리는 복합 35km다. 고속도로는 38km, 도심에서는 33km다.목적지에 도착하면 배터리 잔량이 45%가 채 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에어컨을 켠 상태이므로 더 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과천-서울역 출근 경로, 막히는 점심시간을 이용했다


전기모터만 사용하는 일렉트릭 모드로 주행했다

일렉트릭 모드에서는 기품 있는 플래그십 주행의 진수를 보여준다. 안 그래도 조용한 차에 전기모터만 작동하니 그렇게 고요할 수가 없다. 측면에 이중접합 유리를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차체 하부, 문짝과 차체사이 등 틈 있는 곳은 꼼꼼히 감싼 덕분에 숨소리조차 예민하다. 여기에 전자제어식 댐퍼와 셀프 레벨링 기능을 담은 2축 에어 서스펜션이 엉덩이를 구름처럼 띄워주면서 최상의 승차감을 선사한다.

어떤 PHEV는 일렉트릭 모드에 있다 하더라도 고속에서 엔진 깨우기 일쑨데, 745Le는 최고 시속 140km까지 고요하다. 이렇게 큰 차를 전기모터만으로 달린다는 느낌은 큰 만족감을 선사한다. 기름값 절약의 기쁨보다 친환경적 주행이 주는 뿌듯함이 의외로 크게 다가온다.

서울역 인근 지하주차장에 도착한 745Le는 배터리 잔량 약 25%를 나타냈다. 예상대로 제원보다 주행 가능 거리가 좀 줄어들긴 했지만, 기름 한 방울 쓰지 않는 깨끗한 출근을 실현했다. 엔진을 깨운다 하더라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km당 63g에 불과하다.

일렉트릭 모드 출근 직후, 왼쪽은 연료량, 오른쪽은 배터리 잔량을 나타낸다

직장에 전기차 충전기가 있다면 퇴근 시 친환경 귀갓길을 보장한다. 배터리 잔량 25%에서 약 60~70km를 충전모드로 주행하면 만충 가능했다. 충전 시설이 없다 하더라도 최소 3~4일에 한 번 정도는 친환경 출근을 누릴 수 있는 셈. 두번째 신세계다.

친환경차는 살금살금? 그건 옛말

지하주차장에서 시동을 걸었다. 디스플레이만 켜질 뿐 엔진 소리가 없다. 으레 하이브리드차 전기모터는 저속 주행 시에만 작동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지하주차장처럼 환기가 잘 되지 않는 곳에서는 전기모터를 사용하는 게 친환경차의 미덕이다. 745Le 역시 그런 곳에서 숨을 죽이고 발자국소리 조차 내지 않는다.

속도를 좀 더 내봤다. 차가 워낙 조용한 탓에 실내에서 엔진 시동 거는 시점을 파악하기 힘들다. 별 생각 없이 달리다 보면 직렬 6기통 엔진이 발끝에서 미세하게 자신을 드러낸다. 이전 모델인 740Le는 4기통 엔진을 사용해 플래그십 답지 못한 회전질감을 보여줬지만, 새 엔진은 7 이름에 걸맞는 몸부림을 보인다.

5,000 rpm에서 최고출력 113마력, 출발과 동시에 최대토크 27kg.m을 내는 전기모터는 속도를 가리지 않고 자주 치고 빠졌다. 에너지 흐름도는 실로 바삐 움직이는데, 150km/h 이상 고속에서도 수시로 존재감을 어필하며 스포츠 주행에 힘을 보탰다. 기계가 사람보다 운전을 더 잘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된 지 오래다. 이제 수동으로는 이런 동작을 해낼 수 없다.

급가속 추월 등 순간적으로 많은 힘이 필요한 찰나 최고출력 286마력, 최대토크 45.9kg.m을 내는 직렬 6기통 엔진과 합세해 시원한 가속감을 뽐냈다. 전체 출력은 394마력, 엔진 최대토크가 무려 1,500rpm에서 나오기 때문에 2.2톤 덩치가 전혀 버겁지 않다.

일렉트릭 모드, 엔진 뒤에 붙은 전기모터만 작동한다


급가속, 고속 주행 시 간헐적으로 전기모터가 힘을 더한다

0-100km/h 가속은 5.3초에 끊는다. 다만, 우아하게 달리는 플래그십 세단인지라 가속페달을 밟는 즉시 내달리는 느낌은 아니다. 전반적으로 침착하면서도 매끈한 가속을 자랑한다. 화끈한걸 원하는 사장님이라면 12기통 M760Li가 있다.

뒷좌석 승차감은 경쟁 모델과 큰 차이 없다. 시트 쿠션 경도가 다소 높기 때문에 국산보다 승차감이 단단하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운전석에서 느낀 승차감은 감동적이다. 롤스로이스 매직 카펫 라이드를 만드는 BMW라 그런지 고성능 구름을 탄 느낌이다. 동승한 한 중년 독자는 “차가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며 감탄했다. 요철은 물렁하게 걸러주는데 좌우 롤링이나 앞뒤 피칭은 기가 막히게 억제한다. 세번째 신세계는 승차감으로 클라이막스를 장식했다.



잃은 것은 없을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 바로 트렁크 공간이다. 국내 고급차 수요는 골프백을 트렁크에 여러개 실을 수 있느냐를 중히 살핀다. 그런데 745Le의 트렁크 공간은 420리터로 국산 중형 세단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배터리가 뒷좌석 아래에 위치 하지만 하이브리드 시스템 관련 장치가 트렁크 바닥까지 들어간 탓이다.

이런 구조는 배터리 위치가 조금 차이가 날 뿐 다른 브랜드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트렁크 바닥을 살짝 내려 다소 숨통을 틔울 수 있지만 국산 플래그십 모델처럼 골프백 풀세트를 여러개 싣는 것은 불가능하다. 폭,길이, 깊이 등이 여전히 넉넉치 않다. 트렁크 때문에 745Le의 경계선은 다소 뒤로 물러섰다.


다만, 이 차를 기사 두고 혼자 타거나 차주 부부 두 사람만 사용한다면, 2인 짐 싣기에는 부족하지 않은 공간이다. 누군가 745Le를 물망에 올려뒀다면, 트렁크 바라보는 관점을 정리하면 되겠다. 구입 합리화의 방아쇠다.

745Le를 반납하며

자동차 환경 규제는 날로 엄격해지고 있다. 국내 지자체 역시 순수 내연기관 자동차에 대한 규제를 더 강하게 짜는 추세다. 서울판 그린 뉴딜 정책이 그대로 시행된다면 2035년부터 서울 사대문 안에 순수 내연기관 차는 들어갈 수 없다. 자동차 전동화는 일반인에게도 임박한 이슈다.

전동화 자동차의 판매량은 아직 극히 적은 수준이지만 BMW는 프리미엄 전동화 모델을 적극적으로 내놓고있다. 2023년까지 BMW표 전동화 자동차가 25종이나 등장할 예정이며, 수년 뒤에는 신차 판매 대부분이 마일드 하이브리드나 PHEV로 채워질 전망이다.

수년 전, BMW가 최초의 PHEV 스포츠카 i8을 처음 내놨을 때, 모든 것이 애매한 설익은 차라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에 만난 745Le는 농익은 신세계를 선사하며 이제는 PHEV로 자신있게 갈아타야 하는 시점을 호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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