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긴 포르쉐, 멍청이만 타지"..3번 욕먹더니, 스포츠카 '신화창조'[세상만車]

최기성 입력 2022. 5. 7.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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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자' 카이엔, 적자 탈출에 기여
파나메라·타이칸도 배신행렬 동참
포르쉐 파격, 슈퍼카 브랜드 충격
포르쉐를 먹여살리는 타이칸, 파나메라, 카이엔 [사진출처=포르쉐]
[세상만車] "지금까지 이런 포르쉐는 없었다."

2000년대 들어 '2인승 스포츠카의 자존심' 포르쉐가 정통성과 정형성에서 벗어난 파격적인 모델을 세 번 내놓을 때마다 나온 반응이다. 호평이 아니라 혹평이다.

배신감에 뒤통수를 맞았다고 판단한 포르쉐 추종자들은 "멍청한 사람들이나 타겠다" "못생겼다" "징그럽다" "황소개구리, 무당개구리" 등 외모를 비하했다. "포르쉐 시대 끝났다"는 비난도 쏟아졌다.

현실은 달랐다. 추종자들이 치를 떨면서 욕하던 카이엔, 파나메라, 타이칸은 포르쉐를 먹여 살렸다.

포르쉐 붐을 일으키며 새로운 추종자들도 많아졌다. 경쟁 브랜드들도 욕하면서 배웠다. 이들 3개 차종은 '배신의 아이콘'에서 '혁신의 아이콘'으로 거듭났다.

포르쉐 배신의 원조-SUV 카이엔
1세대 카이엔 [사진출처=포르쉐]
"카이엔은 그냥 용서할 수 없다. 징그럽다. 런던 서부의 멍청한 사람들만 타고 다닐 차다."

영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자동차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톱기어'는 2002년 출시된 포르쉐의 첫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악담을 쏟아냈다.

포르쉐 모델 중 가장 많은 혹평에 시달린 카이엔은 1990년대부터 경영이 악화되면서 파산 직전까지 갔던 포르쉐의 승부수였다.

타이밍은 좋았다. 2000년대 초반부터 SUV 열풍이 불었기 때문이다. 포르쉐가 적자 탈출을 위해 전략적으로 내놨던 카이엔은 혹평에도 불구하고 대성공했다.

카이엔 [사진출처=포르쉐]
2002년 1세대, 2010년 2세대, 2018년 3세대로 진화한 카이엔은 포르쉐 역사상 가장 많이 판매됐다.

결론적으로는 실패했지만 카이엔으로 벌어들인 막대한 이익은 2008년 포르쉐 가문이 폭스바겐그룹 장악에 나서는 돈줄이 되기도 했다.

카이엔의 성공은 포르쉐보다는 한 수 위라고 자부하며 품격 낮은 SUV에 관심을 애써 꺼두던 슈퍼카·럭셔리 브랜드들에 고민거리를 안겨줬다.

포르쉐의 변심을 욕했지만 더 이상 지체하다가는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속의 개구리'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 카이엔을 따라했다.

람보르기니 우루스, 마세라티 르반떼, 벤틀리 벤테이가, 롤스로이스 컬리넌, 페라리 푸로산게 등도 카이엔 덕분에 출현했다.

이유있는 배신-4인승 파나메라
파나메라 [사진출처=포르쉐]
파나메라는 포르쉐가 911, 박스터와 카이맨, 카이엔에 이어 네 번째 선보인 모델이다.

2000년대 중반 '2인승 스포츠카 브랜드' 포르쉐가 카이엔에 이어 정통성을 훼손한 4인승 세단을 만든다는 소문이 퍼지자 추종자들은 물론 글로벌 자동차업계도 또다시 술렁였다.

2004년 '쿠페=2도어 2인승' 공식을 파괴하며 '4도어 쿠페'라는 새로운 세그먼트를 창조한 메르세데스-벤츠 CLS의 성공이 포르쉐를 자극했다는 얘기도 나돌았다.

실체는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유령처럼 그 모습을 보일 듯 보이지 않았다. 추종자들은 포르쉐가 두 번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며 안도했다.

파나메라 [사진출처=포르쉐]
추종자들이 카이엔의 배신을 용서해줄 무렵 포르쉐는 다시 뒤통수를 때렸다. 카이엔 이후 7년이 지난 2009년 파나메라가 모습을 나타냈다.

톱기어 진행자들은 카이엔 때처럼 진절머리를 냈다. "못생겼다. 못 보겠다"라고 비난했다.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포르쉐의 배신에 앙갚음했다.

파나메라는 또다시 예상을 벗어나는 성과를 일궈냈다. 2인승 스포츠카보다 범용성 높은 4인승 스포츠 세단인 파나메라 덕에 포르쉐 마니아들은 더 많아졌다.

'첫 번째 배신자' 카이엔으로 적자 탈출에 성공한 포르쉐는 '두 번째 배신자' 파나메라를 통해 글로벌 브랜드 입지를 굳혔다.

반면 프리미엄 세단 시장을 장악했던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는 충격을 입었다. SUV에 이어 세단 분야에서도 껄끄러운 포르쉐와 본격적으로 경쟁해야 하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성공한 배신은 혁신이다-전기차 타이칸
타이칸 [사진출처=포르쉐]
배신으로 혁신과 함께 성장세를 이끈 포르쉐는 테슬라가 장악한 전기차 시장까지 노렸다.

포르쉐의 세 번째 배신자인 타이칸이 선봉에 섰다. 타이칸이 나오기 전까지 스포츠카·슈퍼카 브랜드의 전동화 전략은 하이브리드(HV) 수준에 머물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전기차로 나오더라도 가능한 한 시기가 늦춰질 것으로 전망됐다. 전기차로는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고배기량 내연기관의 포효 소리와 바람을 가르는 질주 성능을 충족시키지 못할 것으로 여겨져서다.

포르쉐는 예상보다 빠른 201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타이칸 콘셉트카 '미션E'를 선보였다. 포르쉐의 전기차 출시는 기정사실이 됐다.

4년 뒤 포르쉐는 미션E를 공개했던 모터쇼에서 타이칸을 공개하고 판매에 들어갔다.

프리셉트(왼쪽)와 타이칸 [사진출처=볼보, 포르쉐]
타이칸은 카이엔과 파나메라와 마찬가지로 추종자들을 실망시킨 배신자다. 다만, 두 차종보다는 비난 수위가 약했다.

SUV이건 4도어 세단이건 모두 형태만 다를 뿐 스포츠카로 개발했던 포르쉐에 대한 믿음이 작용했다.

포르쉐가 국제 전기차 레이싱대회 '포뮬러E'에 출전하면서 전기 스포츠카 기술력을 뽐낸 데다 테슬라 모델S로 고성능 전기차 시대가 개막된 것도 배신감을 덜 느끼게 만들었다.

타이칸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창업자 덕분에 더 유명해졌다.

테슬라를 입이 마르도록 칭찬한 게이츠가 2년 전 유명 정보기술(IT) 유튜브 채널과 인터뷰에서 "첫 번째 전기차로 타이칸을 구입했다"며 "아주 만족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타이칸 [사진출처=포르쉐]
"기운 찬 젊은 말"이라는 차명에 어울리게 성능도 판매도 질주하는 타이칸은 벤츠, BMW, 아우디, 마세라티, 폴스타, 제네시스, 현대차, 기아에 '고성능 전기차' 화두를 던졌다.

더 나아가 SUV는 어쩔 수 없더라도 내연기관만큼은 포기하지 않으려던 슈퍼카 브랜드에 충격을 안겨줬다.

람보르기니는 2020년대 후반기에 브랜드 최초 순수전기차를 출시하기로 결정했다. 2년 전까지 전기차를 내놓지 않겠다던 페라리도 2025년에 순수전기차를 선보일 예정이다.

세 번의 배신, 포르쉐 먹여살린다
포르쉐 SUV [사진출처=포르쉐]
세 번의 배신은 포르쉐를 살리고 키웠다. 포르쉐 실적이 이를 증명한다.

포르쉐는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총 30만1915대를 판매했다. 마칸이 8만8362대, 카이엔이 8만3071대, 타이칸이 4만1296대, 911이 3만8464대, 파나메라가 3만220대, 718 박스터·카이맨이 2만502대다.

마칸이 카이엔 영향을 받은 동생 SUV라는 점을 감안하면 1~3위는 모두 배신의 결과물이다. 파나메라는 포르쉐 대표 모델인 911보다는 적게 팔렸지만 911과 함께 포르쉐를 이었던 718 박스터·카이맨보다는 많이 판매됐다.

신형 마칸 [사진출처=포르쉐]
포르쉐는 배신자들의 활약에 힘입어 올 1분기에도 흥행가도를 달렸다. 매출은 전년보다 4.1% 증가한 80억4000만유로(약 10조7800억원), 영업이익은 17.4% 늘어난 14억7000만유로(약 1조9700억원)를 기록했다.

카이엔이 1만9029대로 가장 많이 판매됐다. 마칸은 1만8329대, 타이칸은 9470대로 그 뒤를 이었다.

한국에서도 카이엔, 파나메라, 타이칸은 포르쉐코리아를 먹여살리는 동시에 추종자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7일 국토교통부 자동차 데이터를 바탕으로 차종별 판매대수를 집계하는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포르쉐 판매 1~3위는 모두 배신자들이다.

카이엔은 3492대, 파나메라는 1334대, 타이칸은 1303대 판매됐다. 911은 1021대, 마칸은 736대 각각 팔렸다.

타이칸 터보 [사진출처=포르쉐]
포르쉐는 타이칸을 선봉에 세운 전동화 모델이 SUV인 카이엔과 마칸 뒤를 이어 캐시카우(수익 창출원)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한다.

올리버 블루메 포르쉐AG 이사회 회장은 "현재 전동화 모델 비중은 23%이고 순수전기차는 14%"라며 "이를 통해 포르쉐 전동화 전략의 유효성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고 말했다.

블루메 회장은 "2025년에는 판매모델의 50%를 순수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로 내놓을 계획"이라며 "2030년까지는 순수전기차 모델 비중이 80% 이상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최기성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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