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 맞은 포르쉐 'PDK' 개발 후일담.. 전동화 시대 생존법 "하이브리드"

동아닷컴 김민범 기자 입력 2021. 12. 24.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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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PDK 40주년 미디어 라운드테이블 개최
PDK 개발 총괄 뷔스트·드라이버 스턱 후일담 공개
포르쉐 크리스찬 하우크 "향후 하이브리드와 동반" 전망
세계 유일 브랜드 이름 적용된 변속기
레이스카 적용해 완성.. 대중화 2008년
1세대 파나메라 시작으로 전 모델 기본 탑재
가솔린·디젤·하이브리드 등 범용 자리매김
아우디 랠리카 스포츠-콰트로 S1 탑재
포르쉐 962
포르쉐를 상징하는 변속기 ‘포르쉐 듀얼클러치(PDK)’가 어느덧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포르쉐는 40주년을 기념해 전 세계 미디어를 대상으로 디지털 라운드테이블을 개최했다. 국내에서는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소재 포르쉐코리아 본사 대회의실에서 화상회의 방식으로 진행됐다. 국내는 중국 등 아시아·태평양 일부 국가들이 참여하는 디지털 라운드테이블에 포함됐다.

디지털 라운드테이블은 포르쉐 본사가 있는 독일에서 PDK 개발자들이 직접 나와 PDK 개발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미디어와 소통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1960년대에 변속기 개발을 총괄한 엔지니어와 레이서 등 PDK 개발에 기여한 주요 인물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특히 이번 디지털 라운드테이블을 통해 PDK의 미래에 대해서도 엿볼 수 있었다. 포르쉐는 전기차 시대가 도래하면서 PDK 100주년은 박물관에서 맞이하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여전히 내연기관을 이용하는 플러그인하이브리드 모델이 출시되고 있기 때문에 PDK의 역할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왼쪽부터) 라이너 뷔스트, 한스-요하임 스턱, 크리스찬 하우크
(왼쪽부터) 크리스찬 하우크, 한스-요하임 스턱, 라이너 뷔스트
PDK는 국내 판매되는 포르쉐 대부분 차량에 탑재되는 변속기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PDK가 포르쉐 디자인과 강력한 엔진성능 등 다른 요소에 가려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PDK가 포르쉐 브랜드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비중은 상당하다. 포르쉐를 완성하는 핵심 요소로도 꼽을 수 있다. 돌이켜보면 PDK가 일반 판매용 모델에 장착되고 점점 대중화되면서 ‘외계인을 고문해 만든 차’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한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포르쉐를 타보면 PDK의 진가를 느낄 수 있다. 가속 페달 조작에 맞춰 빠르게 변속 단수를 찾아간다. 계기반에서 엔진회전수(RPM) 게이지를 분주하게 움직이는 바늘을 통해서도 빠른 변속을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갑작스러운 속도 변화에 변속 단수와 최적 엔진회전수를 신속하게 찾아내는 영리한 면모도 PDK 주요 장점 중 하나다. 때문에 울컥거리거나 엔진 과부하 현상을 느끼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PDK는 모든 주행상황에서 운전자와 차가 한 몸(또는 한 팀)으로 움직이는 주행감각을 극대화해주는 장치로 볼 수 있다.
변속기 이름에 브랜드 이름이 붙은 점도 의미가 있다. PDK 개발 초기에는 ZF가 참여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결국 포르쉐 이름이 들어간 변속기가 완성됐다. 폭스바겐 ‘DSG(Direct Shift Gearbox)’ 역시 듀얼클러치 변속기지만 브랜드 이름이 더해지진 않았다. 기어를 개발한 업체는 보그워너(BorgWarner)다. 폭스바겐이 보그워너로부터 기술 라이선스를 사들여 완성했기 때문이다. 슈퍼카 브랜드 페라리도 변속기를 다른 부품업체로부터 공급받아 사용한다. 포르쉐 이름이 들어간 변속기의 위상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많은 브랜드와 차종에 다양한 변속기가 탑재되지만 브랜드 이름이 들어간 변속기는 포르쉐가 유일하다. 변속기가 필요 없는 전기차 시대로 넘어가는 상황에서 굳이 완성차 업체가 변속기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단행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제너럴모터스(GM)가 흡수·합병해 사업부로 편성한 올즈모빌과 하이드로매틱 자동변속기를 1930년대에 선보였지만 변속기 이름에 브랜드를 붙이지 않았다.
지금은 국내 판매되는 모든 포르쉐 신차에 PDK가 적용되지만 사실 PDK가 대중화되기 시작한지는 20년이 채 안됐다. 공식적으로 일반 도로용 차종에 탑재된 것은 지난 2008년 911(992 F/L) 모델부터라고 한다. 당시 선보인 7단 PDK는 기존 팁트로닉S 변속기보다 무게가 가볍고 변속 속도는 60%가량 빨라 차량 성능을 크게 개선시켰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 도달에 걸리는 시간은 4.6초로 그 당시 6단 수동변속기보다 시간을 0.4초 단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911 이후 PDK는 박스터와 카이맨, 파나메라 등 다른 차종에도 적용됐다. 이후 2세대 파나메라를 통해 8단 PDK를 처음 선보였고 기술 개발을 통해 현재는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과도 조합되는 범용 변속기로 거듭났다.
포르쉐 911(997.2)
포르쉐 파나메라
일반 도로용 모델에 탑재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포르쉐는 혁신적인 변속기 개발을 통해 기술 선구자로 거듭났다. 수동변속기 장점을 구현하면서 자동변속기 단점을 없애기 위한 기어박스 콘셉트 탐색의 역사는 공식 개발연도인 1981년보다 훨씬 이전에 시작됐다고 한다. 1971년부터 변속기 테스트 엔지니어로 근무하면서 2009년까지 포르쉐 바이작 연구개발센터에서 섀시 개발 책임자로 일한 라이너 뷔스트(Rainer Wüst)는 “기술이 성숙되고 완성되기까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며 “당시 포르쉐는 자동차 업계에서 20~30년을 앞서간 선구자였다”고 회상했다. 포르쉐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들은 이미 1964년부터 캠 디스크를 통해 기계적으로 제어하는 파워시프트 듀얼클러치 변속기 개발에 착수했다고 설명했다. 의외로 듀얼클러치 시스템에 대한 아이디어는 헝가리 출신 엔지니어 임레 소드프리트(Imre Szodfridt)로부터 나왔다고도 했다. 뷔스트는 “소드프리트는 진정한 팅커러(Thinkerer)였고 아이디어가 매일 샘솟았다”고 PDK 개발 주역 중 한 명인 당시 포르쉐 기술개발 책임자 페르디난트 피에히(Ferdinand Piëch)에게 언급했다.
PDK 개발 과정이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수년간 도전 끝에 ‘타입 919’ 변속기가 탄생했지만 거친 변속 프로세스로 인해 더 이상 개발을 진행하지 않았다. 몇 년 후인 1979년, 오일 위기(1973년)에 대응해 독일연방연구기술부는 자동차산업계를 대상으로 연료 소비가 최적화된 미래 자동차 비전인 ‘비히클 2000’을 주제로 경진 대회를 개최했는데 대회에서 PDK 변속기 콘셉트가 가장 미래적인 기술로 인정받았다고 했다.

당시 개발 책임자 헬무트 플레글(Helmut Flegl)은 듀얼클러치 변속기가 유망할 것으로 생각했다. 뷔스트는 “우리는 여러 분야를 통합한 팀을 꾸렸고 이는 젊은 엔지니어로서 정말 흥미로운 도전이었다”며 “다행히 지하 저장실에서 소드프리트 기어박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강력한 전자제어장치나 차량용으로 적합한 양산형 전자유압식밸브가 없었기 때문에 여전히 난관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후 프로토타입 변속기 개조를 통해 PDK 기본 기능 개발을 성공할 수 있었고 ‘포르쉐 924’에 적용해 시연을 마칠 수 있었다.
한스-요하임 스턱
기본 사양 PDK 변속기 개발 외에 ‘포르쉐 956’과 함께 PDK의 레이싱 성능 개발도 추진됐다. 레이스 드라이버로 PDK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한 한스-요하임 스턱(Hans-Joachim Stuck)은 “스티어링 휠에 손을 얹은 채로 풀 로드 상태에서 기어를 변속하는 느낌은 정말 매력적이었다”며 “견인력이 단절되지 않고 훨씬 빠르게 변속이 가능했다”고 전했다. 초창기 기어를 바꾸기 위해서는 운전 중 스위치만 작동하면 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기어는 각자 클러치를 가지고 있는 2개의 서브트랜스미션으로 구분됐다. 클러치는 한 번에 하나만 연결되고 다음 기어가 다른 서브트랜스미션 내에서 미리 체결을 준비하는 원리라고 설명했다. 수동변속기와 동일한 방식으로 기어는 시프트포크를 통해 체결되지만 PDK는 컴퓨터로 제어되는 전자유압식 밸브가 그 역할을 수행했다. 기어 변경 시 새로 작동하는 클러치는 연결되고 동시에 이전에 연결돼 있던 클러치는 끊어졌다고 한다. 뷔스트는 “견인력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완전히 자동화된 기어 변속이 구현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포르쉐 962 레이스
포르쉐 944
포르쉐 워크스 드라이버 책임자 크리스찬 하우크(Christian Hauck)는 “결국 PDK는 수동과 자동 변속 기술의 장점만을 결합한 장치로 완성됐다”고 말했다. 포르쉐 모터스포츠는 수십 년 동안 양산차에 사용될 기술을 위한 연구소 역할을 해왔다. 한스-요하임 스턱은 ‘포르쉐 962’를 포함한 다양한 모델의 변속기를 레이스트랙에서 직접 실험할 수 있었던 PDK 개발 프로젝트는 포르쉐 소속 드라이버로서 흥미로운 작업이었다고 소개했다.

특히 스턱은 데릭 벨(Derek Bell)과 함께 PDK가 장착된 첫 레이스카 ‘포르쉐 962’에 올라 1986년 몬자(Monza) 360km 레이스에서 최초로 우승을 기록했다. 이어 1986년 월드챔피언십을 거머쥐었다. 그해 스턱은 포르쉐 962와 함께 독일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ADAC 뷔르트 슈퍼컵 챔피언십 타이틀까지 차지했다. 처음으로 개최된 그룹C 스포츠카 프로토타입 시리즈에서 새로운 PDK를 레이스 페이스로 테스트했고 무거운 무게와 복잡한 설계에도 불구하고 PDK 성능 이점을 레이스트랙에서 입증한 역사적 순간이라고 강조했다.
포르쉐가 개발한 PDK는 랠리에서도 테스트를 거쳤다. 발터 뢰를(Walter Röhrl)은 지난 1985년 말 셈페리트(Semperit) 랠리 첫 출전에서 PDK를 장착한 아우디 스포츠-콰트로 S1 모델로 우승을 차지했다. 파워시프트 이점은 변속이 빈번히 일어나는 랠리 조건에서도 빛을 발했다고 설명했다. 협력업체 지원에 의존해야 했던 1980년대 말 PDK를 양산차에 적용하는 시도는 일시적으로 중단되기도 했다. 대신 포르쉐는 1989년 11월에 선보인 토크컨버터 자동변속기인 팁트로닉(Tiptronic) 개발에 집중했다. 2008년까지 성능을 입증하면서 지속적으로 발전을 거듭했다. 토크컨버터 자동변속기 팁트로닉은 ‘포르쉐 986’과 ‘포르쉐 993’에 탑재됐다. 2000년대 초·중반 높은 수준으로 발전한 차량 전자제어 기술과 정교해진 시스템 덕분에 2008년 출시된 911 시리즈에 PDK를 옵션으로 제공할 수 있었다. 1년 후에는 파나메라에 기본 사양으로 도입됐다. PDK를 기본 사양으로 장착된 첫 모델이 플래그십 세단 파나메라다.
아우디 스포츠-콰트로 S1 랠리카
이렇게 대중화 첫 걸음을 뗀 PDK는 현재 효율과 성능을 동시에 상징하는 장치로 거듭났다. 끊임없는 도전과 기술 개발을 통해 가솔린 자연흡기는 물론 디젤과 터보, 플러그인하이브리드 모델까지 아우르는 포르쉐 만의 범용 변속기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특히 브랜드 최고 성능 모델에는 다른 선택지 없이 PDK만 제공한다. 가장 최근 발표된 718 카이맨 GT4 RS에도 PDK는 필수다.

포르쉐 측은 “PDK는 가장 빠른 랩 타임을 가능하게 하면서 효율적이면서 운전자와 한 몸처럼 구동되는 안락한 드라이빙을 보장한다”고 강조했다.
포르쉐 718 카이맨 GT4 RS
포르쉐 962

동아닷컴 김민범 기자 mb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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