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도 연공서열도 없다… “월급은 실력순” 젊은 車회사의 반란

광주/오로라 특파원 입력 2021. 9. 18. 03:05 수정 2023. 11. 8.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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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80%가 2030 “노조요? 회사가 잘되는 게 급선무”
노조사무실 대신 축구장… 스타트업처럼 서로 호칭도 ‘매니저’
MZ세대 직원들 “노력한 만큼 받는게 공정”
자신들이 만든 SUV 앞에서 “파이팅” - 16일 광주 광산구 빛그린산단에 있는 광주글로벌모터스(GGM)의 생산직 직원 김의진(31·왼쪽부터), 허단비(30), 김근(37)씨가 자신들이 만든 소형 SUV ‘캐스퍼’ 차량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국내 첫 노사 상생형 지역 일자리인 ‘광주형 일자리’를 내건 GGM은 전체 직원의 80%가량이 20~30대 청년들이다. /김영근 기자

16일 오전 10시 광주 광산구 빛그린산단에 있는 광주글로벌모터스(GGM) 조립부 생산라인. 1초에 4㎝씩 전진하는 컨베이어벨트에는 이른바 ‘광주형 일자리’의 첫 산물인 경형 SUV ‘캐스퍼’의 뼈대가 일렬로 세워져 있었다. 조립부 직원 김의진(31)씨는 자신의 작업 구역 안으로 차량이 들어오자, 능숙하게 손에 잡고 있던 트렁크 지지대를 차량에 조립해 넣었다. 김씨는 163초로 지정된 작업 시간 안에 총 11가지의 부품을 조립한다. 그는 “내 손길이 닿은 자동차가 실제로 도로 위에서 달릴 거라 생각하니 뿌듯하다”며 “더 꼼꼼하게 작업할 것”이라고 했다.

이날 찾은 GGM은 추석 연휴를 이틀 앞두고도 생산라인 전체가 분주했다. 컨베이어벨트에서 직원들이 스마트폰을 보거나 앉아서 쉬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예약 첫날 1만8940대가 계약된 캐스퍼가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16일 광주 빛그린산업단지 내 광주글로벌모터스(GGM) 조립부 컨베이어밸트에서 직원이 작업을 하고 있다./김영근 기자

GGM은 20·30대 직원 비율이 전체의 80%에 육박하는 ‘젊은 기업’이다. 기계를 조작해 차량에 도색하는 직원도, 카트를 몰아 부품을 운반하는 직원도 모두 2030세대다. 이들은 서로를 ‘매니저님’이라고 부른다. IT 기업이나 스타트업 업계에선 흔하지만, 기존 공장에선 사용되지 않았던 호칭이다. 김태성 GGM 인사팀장은 “우리만의 젊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자는 의미에서 도입했다”고 말했다.

GGM에서 새로운 것은 직원의 연령대나 호칭만이 아니다. 이곳은 완성차 업체로는 유일하게 노조가 없고, 연공서열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는 호봉제도 채택하지 않았다. 내년에는 아예 성과에 따른 보상을 차등 지급하는 직능급을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강성 노조로 유명한 한국 자동차 업계에서는 유례 없는 실험을 하는 셈이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는 “GGM은 MZ세대형 완성차 공장으로, 근로자의 주축인 MZ세대들은 오히려 연공서열은 불공정하다고 생각한다”며 “국내 제조 현장에 새로운 롤모델을 보여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노사 상생형 '광주형 일자리'를 내세운 광주글로벌모터스(GGM) 도장부 생산라인에서 직원이 도장된 차량을 살펴보고 있다./광주글로벌모터스

GGM은 지난 1998년 삼성자동차 부산공장 설립 이후 23년 만에 처음으로 만들어진 완성차 생산라인이다. 경직된 노동법과 강성 노조의 영향으로 사실상 수년째 신입 채용이 중단됐던 완성차 업계에 1000명 규모의 ‘양질의 일자리’가 생겨난 것이다. 올 1월 GGM의 신입 생산직 공채에는 전국에서 청년 1만2600여 명이 몰려와 경쟁률이 68대1에 달했다. 서영대 자동차학과를 졸업한 배세진(23)씨는 “자동차학과를 졸업하면 대부분 정비소와 자동차 서비스센터에 취직한다”며 “완성차 공장 정규직 같은 일자리는 꿈의 직장”이라고 했다.

자동차 생산 경력이 없는 ‘비전공자’도 많다. 전남대학교에서 생물공학을 전공한 김근(37)씨는 광주의 한 기계설비업체 영업직 사원으로 6년 일하다 GGM으로 이직했다. 지난 3월 입사 후 2개월가량 조립 교육을 받고 현장에 투입됐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대부분 완성차 기업의 생산직 신입은 2~3개월의 수습기간을 거쳐 실제 생산에 투입된다”며 “작업 속도는 숙련공보다 다소 느릴 수 있지만, 품질면에선 문제가 없다”고 했다.

광주글로벌모터스(GGM)가 생산한 현대자동차의 첫 경형 SUV '캐스퍼'의 모습./현대자동차

전체 60만㎡ 크기의 GGM 부지에는 다른 완성차 공장에는 다 있는 노조 사무실이 없었다. 대신 업무동에서 걸어서 2분 거리에 7060㎡ 크기의 야외 운동장이 들어섰다. 이 운동장에는 축구장·풋살장·달리기 트랙 등이 마련돼 있다. 이날 만난 젊은 직원들은 “기존 완성차 산업에 노조 존재감이 크다는 건 잘 안다”면서도 “우리는 일단 회사가 잘되는 게 급선무이고, 노조는 그 후의 일”이라고 했다. 노동계 일각에서 나오는 ‘반값 일자리는 착취’라는 지적에 대해 회사 직원들은 “회사가 잘되면 그만큼 보상이 있을 거라 믿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 회사의 평균 연봉은 3500만원(주 44시간 근무 기준) 수준으로 대기업 완성차 기업의 절반에 못 미친다. 게다가 GGM은 기존 완성차 업체처럼 호봉제를 도입하지 않아 연차가 오른다고 자연스럽게 연봉이 오르는 일도 없다. 대신 직책이 오르거나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면 그에 따른 보너스를 많이 받게 된다. GGM이 향후 자립에 성공하고 실적이 좋아질수록 노력한만큼 실제 수입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여기에 회사는 이르면 내년 성과에 따라 보상을 차등하는 ‘직능급’이라는 새로운 연봉 체계를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업무 관련 자격증·성과 평가·사내 교육 이수 등에 따라 같은 매니저 직급 안에서도 ‘매니저 1급(가칭)’ ‘매니저 2급’으로 세분해 능력순으로 돈을 더 주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GGM의 한 직원은 “임금을 똑같이 받는 게 공정이 아니라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 게 공정”이라며 “좋은 동기 부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광주=오로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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