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배터리 때린 '폭스바겐 쇼크' [재계 인사이드]

한재영 기자 jyhan@sedaily.com 2021. 3. 20. 09:1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폭스바겐, '파워데이' 전기차 전략 발표
韓 LG엔솔·SK이노 주력 '파우치' 아닌
中 CATL·BYD 쓰는 '각형' 배터리 채택
[서울경제]

“폭스바겐이 갑자기 한국 배터리 제조사들의 플러그를 뽑아버렸다.(Volkswagen abruptly pulls plug on South Korean battery makers)”

지난 17일 로이터통신은 폭스바겐그룹이 15일(현지시간) 개최한 ‘파워 데이(Power Day)’ 행사의 국내 배터리 업계 영향을 분석한 기사를 내보냈다. 로이터에 따르면 폭스바겐은 행사 불과 며칠 전 국내 배터리 업계에 “우리의 전기차 생산 확대 계획에서 한국 배터리의 현재 기술은 대부분 제외될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 폭스바겐은 ‘파워 데이’에서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공급하는 파우치형 배터리가 아닌, CATL 등 중국 배터리 업계가 주력하는 각형 배터리를 채택하겠다고 밝혔다. 산업계에서는 ‘폭스바겐 쇼크’라는 얘기가 나왔다. 국내 배터리 업계 고위 임원이 부랴부랴 폭스바겐을 찾아가겠다고 했지만, 거절당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이자, 글로벌 2위 전기차 업체인 폭스바겐의 돌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폭스바겐 “각형 통합 셀 쓰겠다”...배터리 독립 선언
토마스 슈말 폭스바겐그룹 기술 부문 이사가 15일(현지 시간) 독일 볼프스부르크에서 개최한 '파워 데이' 행사에서 자사 전기차에 적용될 '통합 셀(Unified Cells)'을 설명하며 80% 가량을 각형 배터리, 20%는 파우치와 원통형 배터리를 채택하겠다고 설명하고 있다. /폭스바겐그룹 유튜브 캡처

폭스바겐이 밝힌 전략 중 주목할 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 째는 ‘각형으로 된 통합 셀(Unified Prismatic Cell)’ 전략이다. 지금까지 폭스바겐 전기차는 차종에 따라 파우치형과 각형 배터리를 혼용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통합 셀 방식을 채택하고 여기에 들어갈 배터리 셀의 유형은 각형으로 통일하겠다는 것이다. 폭스바겐은 오는 2023년부터 통합 셀을 양산해 2030년까지 80%를 주력 전기차 차종에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나머지 20%는 파우치와 원통형으로 채울 계획이다.

둘째는 대대적인 배터리 생산능력 확보다. 폭스바겐은 오는 2030년까지 40기가와트시(GWh) 규모 배터리 생산 공장을 유럽 내에 6개 지어 총 240GWh의 생산능력을 확보하겠다고 했다. 240GWh는 국내 최대 배터리 생산 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이 전 세계적으로 확보하고 있는 생산능력 120GWh의 두 배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다. 폭스바겐은 스웨덴(2023년), 독일(2025년), 서유럽(2026년), 동유럽(2027년)에 단계적으로 배터리 생산 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배터리 생산 능력을 확보하려는 폭스바겐의 노력은 공급을 안정화하고 기술 통제력을 높이려는 자동차 업계가 기울이는 최대의 노력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K배터리 ‘폭스바겐 쇼크’에 당혹

폭스바겐의 배터리 전략이 공개되자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삼성SDI는 자신들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회사별로 온도 차는 있지만, “향후 수주 전략에 적지 않은 영향이 있을 것은 분명하다”고 얘기하고 있다. 폭스바겐은 세계 최대 자동차 업체일 뿐 아니라 지난해 테슬라 다음으로 전기차를 많이 판매한 회사다. 배터리 업계 입장에서는 ‘슈퍼 발주처(OEM)’인 셈이다.

폭스바겐은 자체 전기차 배터리 플랫폼인 MEB를 순수 전기차 ID3와 ID4 모델에 적용했고, 여기에는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가 들어간다. 내년부터는 미국에서 생산되는 폭스바겐 전기차도 SK이노베이션 조지아 공장산(産) 배터리가 탑재된다.

이들 모두 파우치형 배터리다. 파우치형은 라면 봉지 같은 연성 껍데기에 배터리 소재인 양극재 등을 넣는 방식이다. 그러나 폭스바겐이 오는 2030년까지 80%를 적용하겠다고 밝힌 통합 셀에는 파우치형이 아닌 각형이다. LG와 SK로서는 중장기적으로 폭스바겐향(向) 잠재 수주 물량을 잃은 셈이다. 그나마 각형 배터리를 주력으로 하는 삼성SDI가 폭스바겐의 전략을 표정 관리하며 지켜보고 있다.

조현렬 삼성증권 연구원은 “폭스바겐이 배터리 셀 외부 의존도를 낮추고 통합 셀 구조를 각형으로 정한 만큼 기존 파우치형 배터리를 공급하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에 있어 폭스바겐향 중장기 물량 증가 기대감이 크게 낮아질 것”이라며 “특히 수주 잔고 내 폭스바겐 비중이 큰 SK, LG, 삼성 순으로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다만 직접적인 영향을 체감하기에는 수년의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배터리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미 파우치형 배터리 물량을 국내 업체들이 폭스바겐으로부터 수주를 해놓았다”고 말했다. 아울러 폭스바겐이 자체 배터리 생산 능력을 갖추기까지는 10여 년이 필요하다. WSJ은 “유럽 완성차 업체들이 향후 몇 년 간은 아시아 국가들의 배터리 공급에 의존해야 할 것”이라며 “이들이 필요로 하는 배터리 물량과 실제 확보한 생산 능력의 차이를 메꿔야 할 기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배터리 공급 부족 상황인 만큼 당분간은 현재의 구도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폭스바겐, 中 밀착...CATL·궈시안 웃는다

폭스바겐의 중장기 전기차 배터리 전략은 한국을 배제한 채 유럽과 중국 중심으로 추진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폭스바겐이 채택하겠다고 한 각형 배터리는 중국 업체들이 주력으로 하고 있다. 세계 최대 전기차 배터리 업체인 중국 CATL을 비롯해 BYD, 궈시안 등이 각형 배터리를 만든다. 폭스바겐은 중국 5위 배터리 업체인 궈시안 지분 26%를 보유한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폭스바겐이 짓겠다고 한 6개 공장이 노스볼트 뿐 아니라 중국 업체와 합작해 건설할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리는 배경이다.

각형 통합 셀 80% 외 나머지 20%는 대부분 파우치형이 탑재될 가능성이 크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폭스바겐은 원통형 배터리 탑재 기술력이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 “20%는 사실상 파우치형으로 채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20% 물량은 파우치형을 주력으로 하는 국내 업체들이 가져올 수 있을까. 불확실하다. 로이터통신은 “폭스바겐이 CATL 뿐 아니라 완샹A123과 궈시안으로부터 배터리를 공급받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완샹A123은 파우치형 배터리를 생산하는 업체다.

CATL 본사 사옥 모습/사진제공=CATL 홈페이지 캡쳐
폭스바겐은 왜 ‘각형’ 전략을 택했을까

그렇다면 폭스바겐은 왜 이런 ‘각형’ 전략을 택했을까. ‘파워 데이’에 나선 토마스 슈몰 폭스바겐 기술 담당 이사는 “배터리 비용을 줄이는 동시에 배터리 성능과 사용 범위를 넓히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밝혔다. 원론적인 듯하지만, 핵심을 모두 담고 있다.

무엇보다 폭스바겐이 ‘파워 데이’에서 언급한 셀 투 팩(Cell to Pack), 나아가 셀 투 카(Cell to Car) 전략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전기차 배터리는 셀-모듈-팩 단계로 구성이 되는데, 셀 투 팩은 말 그대로 중간인 모듈 단계를 건너 뛰고 곧바로 팩을 만드는 방식을 말한다. 모듈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같은 공간에 더 많은 셀을 채워 넣을 수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셀 투 팩 방식은 겉이 비닐로 된 파우치보다는 알루미늄 캔 형태의 각형이 유리하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그것도 에너지 밀도가 높은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보다는 LFP(리튬인산철)가 유리하다. 각형, 그리고 LFP 모두 중국 배터리 업체들이 주력하는 방식이다. 실제 CATL이 LFP 배터리를 셀 투 팩 방식으로 중국 테슬라에 공급하고 있다. 선양국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LFP 방식은 국내 업체들의 NCM보다 상대적으로 셀 투 팩 제조가 쉽다”며 “에너지 밀도가 낮고 안정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가격 측면에서도 NCM 보다 LFP가 저렴하다.

폭스바겐의 중국 판매 비중은 40%에 이른다는 점도 ‘중국 편향’ 전략을 택한 배경으로 볼 수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당국의 입김이 센 중국에서 폭스바겐이 지속적인 지배력을 유지하려면 현지 업체와의 협력 강화 제스쳐를 어필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르베르트 디스 폭스바겐 최고경영자(CEO)는 로이터에 “중국은 기술적으로 매우 강해졌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분쟁이 폭스바겐의 변심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폭스바겐은 SK이노베이션 미국 조지아 공장에서 배터리를 공급받기로 했는데, 조지아 공장은 SK가 미 국제무역위원회(ITC)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패소하며 ‘10년 수입 금지’ 조치를 받아 2년 시한부 가동 위기에 놓여 있다. 폭스바겐으로서는 매우 난처한 상황일 수밖에 없다.

/한재영 기자 jyhan@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