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분 만에 80%, 5분이면 120km..전기차 충전속도, 믿어도 될까

이재연 2021. 3. 15.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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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아이오닉5. 현대차 제공

“초급속 충전 시 18분 만에 80% 충전 가능”(현대차 아이오닉5 보도자료)

“5분 충전으로 최대 75마일(120㎞) 주행 가능”(테슬라 슈퍼차저 V3 소개 자료)

전기차에 관심 있는 이라면 혹할 법한 문구다. 내연기관차 주유에 비해 훨씬 오래 걸리는 전기차 충전은 여전히 가장 큰 진입장벽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전기차 운전자들 사이에서는 “충전을 기다리는 동안 마시는 커피 값까지 차량 유지비로 계산하면 엔진 차와 별 차이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완성차 업체들이 앞다퉈 ‘빠르고 간편한 충전’을 내세우는 까닭이다.

문제는 홍보 문구에 나온 충전 속도가 실생활에서 실현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업체들은 “급속 충전소가 부족한 탓”이라고 하지만 인프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기차의 충전 속도는 배터리 사양과 충전기 출력뿐 아니라 배터리관리시스템(BMS)의 충전 로직, 배터리 잔량과 온도 등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현실에서의 충전 속도를 방정식 풀듯 계산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자동차 제조사들은 충전 속도를 산정한 구체적인 기준을 밝히지 않아 혼란을 더하고 있다. 정확한 충전 속도를 파악하기 위해 운전자가 알아둬야 할 사항들을 살펴봤다.

전기차 충전 속도를 결정하는 것들

충전 속도에 대한 감을 잡기 위해 가장 먼저 봐야 할 것은 충전기의 출력이다. 출력은 단위시간당 전기기기가 하는 일의 양을 일컫는 전력으로 표현된다. 쉽게 말해 ‘속도’의 개념이다. 전기차 충전기의 출력으로는 킬로와트(㎾)라는 단위를 쓴다. 개인적으로도 쉽게 구매해 설치할 수 있는 7㎾급 완속 충전기부터 최근 등장한 350㎾급 초급속 충전기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충전기에 따라 속도가 천차만별인 이유다.

충전기 출력과 배터리 용량을 함께 보면 충전에 필요한 시간을 대략 가늠할 수 있다. 배터리 용량은 킬로와트시(㎾h)라는 단위를 쓴다. 1㎾h는 1㎾의 일률로 1시간 일했을 때 쌓인 전력량을 뜻한다. 350㎾급 충전기를 1시간 이용하면 350㎾h의 전력량이 쌓인다. 아이오닉5 롱 레인지의 배터리 용량이 72.6㎾h이니, 이론적으로는 13분 안에 100% 충전이 가능한 셈이다.

‘이론적’이란 말이 붙은 이유는 현실과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100㎾급 충전기의 경우 실제 평균 출력은 60㎾ 안팎에서 형성된다고 한다. 차이가 나는 이유 중 하나는 차종 사양이다. 전력을 늘리려면 전류나 전압을 그만큼 높여야 하는데, 둘 다 기술적으로 한계가 있다. 한 예로 차량이 더 많은 전류를 받아들이게 하려면 굵은 전선을 써야 하지만 그렇게 하면 차량이 무거워져 전비가 나빠진다. 충전 속도를 높이려다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가 줄어드는 일종의 조삼모사다.

때문에 완성차 업체들이 발표하는 공식 충전 속도는 앞서 계산한 것과 차이가 크다. 아이오닉5의 경우 800V 전압의 350㎾급 충전기를 이용할 시 18분 만에 80%까지 충전할 수 있다는 게 현대차의 공식 설명이다. 여러 조건을 따져봤을 때 해당 구간에서 평균 170㎾의 전력으로 충전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지난 1월 개소한 현대 EV 스테이션 강동. 현대차 제공

18분 만에 80%…실제로는?

이런 공식 설명도 100% 충분하지는 않다. 충전 속도는 같은 충전기, 같은 차량이어도 여러 조건에 따라 감소한다. 완성차 업체들은 배터리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배터리관리시스템(BMS)이 충전 속도를 제어한다고 설명한다. 특히 배터리 잔량이 0%나 100%에 가까울 때는 속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일부 업체들이 100% 완충이 아닌 80% 충전을 기준으로 발표하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배터리 온도도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배터리 온도가 낮을수록 충전 속도가 느려진다.

실제로 각 업체가 기준으로 삼는 충전 구간은 제각각이다. 몇몇 업체는 ‘0%→80%’가 아닌 ‘5%→80%’나 ‘10%→80%’ 구간의 속도를 발표한다. 시작점이 0%에 가까울수록 평균 충전 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에 5%나 10%를 선호하는 것이다. 때문에 자동차별로 충전 시간을 정확하게 비교하기 위해서는 각 업체가 기준으로 삼은 초기 배터리 잔량을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이를 투명하게 안내하고 있는 업체는 소수에 그친다. 현대차 아이오닉5의 사례를 보자. 보도자료에는 “350㎾급 초급속 충전 시 18분 이내 배터리 용량의 80% 충전이 가능하다”고만 나와 있다. 충전을 시작할 때의 배터리 잔량에 대한 정보는 없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완전 방전 상태(0%)에서 80%까지 충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누리집에서 다운받을 수 있는 아이오닉5 가격표 피디에프(PDF) 파일을 보면, ‘18분 만에 10%→80%’라고 나와 있다. ‘0%→80%’나 ‘5%→80%’ 구간의 충전 속도는 밝히지 않고 있다.

테슬라는 좀 더 불친절하다. 미국서 배포된 모델Y 사용 매뉴얼을 살펴봤지만 관련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국내 출시 당시 배포한 보도 참고자료에만 “(슈퍼차저를 이용하면) 80% 충전까지 평균 한 시간 정도 소요된다”는 문구가 있을 뿐이다.

반면 르노삼성 조에는 설명이 친절한 편이다. 50㎾급 충전기를 쓰면 70분 만에 0%에서 80%까지 충전할 수 있다는 문구를 누리집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완속 충전기(7.4㎾)를 쓰면 0%에서 100%까지 9시간 25분이 걸린다는 것과, 배터리 온도에 따라 충전 시간이 달라질 수 있다는 설명도 있다. 독일 폴크스바겐도 누리집을 통해 미국 공용 급속 충전기(120㎾)를 이용하면 ID.4를 5%에서 80%까지 충전하는 데 약 38분이 걸린다고 안내하고 있다.

모호한 표현=전략?…“정확한 기준 필요”

일부 업체가 전략적으로 모호한 표현을 쓰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대표적인 예가 홍보 자료에 단골로 등장하는 “5분 충전으로 최대 120㎞를 주행한다” 따위의 문구다. ‘최대’라는 표현을 쓴 데서 알 수 있듯이, 이는 이용자가 실제로 경험하게 될 속도와는 괴리가 있다. 특히 배터리 잔량이 0% 또는 100%에 가깝거나, 충전 속도가 느리고 전비도 낮은 겨울철의 경우에는 효율이 이보다 훨씬 떨어질 수밖에 없다.

테슬라의 ‘온루트 배터리 웜업’(On-route battery warmup)도 같은 맥락에서 비판을 받았다. 테슬라는 2019년 이 기능을 출시하며 “충전 시간이 25% 줄어든다”고 홍보했다. 운전자가 내비게이션에서 슈퍼차저를 목적지로 설정하면 가는 동안 자동차가 배터리를 최적 온도로 예열해 충전 속도를 높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계절 등 여러 요건에 따라 효과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터라, 운전자들 사이에서는 그만큼의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컸다.

소비자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현대차는 초급속 충전기가 아닌 일반 급속·완속 충전기를 사용한 아이오닉5 충전 속도를 밝히지 않고 있다. 350㎾급 충전소는 현재 국내에 6곳뿐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충전 속도에 대한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업체 입장에서는 숫자를 최대한 높게 잡고 싶은 욕심이 있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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