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카, 비밀유지는 핑계..애플 "기술공유 싫어" 현대차 "하청 안돼"

서진우,강봉진,서동철 2021. 2. 8.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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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의 진행하지 않고 있다"
공시로 사실상 무산 선언

◆ 현대차-애플 협상 중단 ◆

현대차와 애플의 '자율차 동맹'을 향한 꿈이 깨졌다. 현대자동차그룹과 애플의 자율주행 전기차(일명 애플카) 공동 개발 협상이 한 달 만에 결국 중단됐다. 추후 재개 가능성이 남아 있긴 하지만 협상이 사실상 무산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8일 오전 현대차와 기아는 각각 동일한 내용의 재공시를 통해 "애플과 자율주행차량 개발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다만 "다수 기업으로부터 자율주행 전기차 관련 공동 개발 협력 요청을 받고 있으며 초기 단계로 결정된 바는 없다"고 전제했다.

지난해 12월 말 애플이 자율주행 전기차를 개발할 것이란 소식이 나온 후 파트너사가 누가 될지 관심이 모아졌고 지난달 8일 애플이 현대차그룹 문을 두드렸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사상 초유의 애플과 현대 간 밀월은 큰 기대를 불러모았다. 물론 당시 현대차는 "아직 결정된 바 없는 사항"이라고 공시했지만 이후 협상을 진행 중인 건 맞는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내외신 추측 보도가 쏟아졌다.

그게 화근이었다. 소문은 확대 재생산됐고 급기야 기아가 미국 조지아 공장에서 애플카를 생산한다는 내용의 정식 협업 계약이 2월 중순 타결될 것이라는 보도까지 나왔다. 마침내 협상 종료 전까지 '비밀 유지(Non Disclosure Agreement·NDA)' 단서를 지나칠 정도로 강조해온 애플이 폭발했다. 지난 5일 블룸버그는 소식통을 인용해 "애플과 현대차 간 협상은 잠정 중단됐다"고 보도했다. 8일 현대차·기아의 재공시는 이를 확인해준 셈이다.

지난 한 달간 현대차그룹과 애플 간 협상도 난항을 겪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애플과 현대차그룹이) 서로 주고받을 건 내놓고 해야 하는데, 그 점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해 협상이 쉽게 흘러가지 않았다"며 "그래서 (현대차그룹) 내부에서도 찬반 양론이 많았다"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누가 애플카 생산을 맡게 될지 지켜봐야겠지만 애플의 독점적이고 완고한 협의 방식이 얼마나 완화되는지도 향후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라며 "애플 계약 상대방이 운신의 폭이 전혀 없는 '을'이 된다면 이에 응할 제작사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협상 중단에 주식시장은 즉각 충격을 받았다. 이날 증시에서 기아가 15% 가까이 하락하는 등 하루 새 현대차그룹주 시가총액이 13조 5000억원가량 증발했다.

[서진우 기자 / 강봉진 기자]


기술공유 싫다는 애플, 하청기지 안된다는 현대차…결국 판 깨져

현대차 - 애플 동맹 무산

기아 생산설·계약타결 보도에
애플"비밀유지 어렵다"발뺀듯
기술공유 이견이 가장 큰 이유

현대 전기차 독자 플랫폼 보유
협상무산, 경쟁력 훼손과 무관
향후 재협상 가능성 배제 못해

비밀 유지 논란과 '동상이몽(同床異夢)'. 8일 현대자동차그룹과 애플 간 자율주행 전기차(일명 애플카) 공동 개발 협상이 중단된 것은 크게 그 두 가지 이유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날 현대차와 기아가 공동 재공시를 통해 "애플과 자율주행차량 개발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지 않다"고 밝힌 것은 협상이 잠정 중단돼 향후 재개할 수도 있거나, 아예 무산됐다는 두 가지 시나리오를 동시에 내포한다.

물론 현대차·기아는 "8일 재공시 설명 외에 추가로 밝힐 사안은 일절 없다"고 못 박았지만 업계는 협상 무산에 무게를 둔다. 애플 사정에 밝은 한 소식통은 "애플은 모든 타 기업과 협상을 진행할 때 종료 전까지 그 어떤 내용도 공개해선 안 된다는 'NDA(Non Disclosure Agreement)'식 비밀 유지를 강조한다"며 "그 원칙이 깨졌다고 판단한 애플이 현대차그룹과는 향후 협상을 더 이상 진행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보기술(IT) 업계 최강자인 애플은 우월한 지위를 앞세워 다른 기업과 비밀리에 협상하기로 유명하다. 지난달 8일 애플이 현대차그룹과 자율주행 전기차 개발과 관련해 협상한다는 첫 소식이 알려졌을 당시 현대차는 '애플' 언급 없이 "다수 기업에서 협력 요청을 받고 있으며 결정된 바는 없다"고 공시했다. 애플도 당시 현대차 첫 공시에 대해서만큼은 이해하는 입장이었지만, 이후 현대차그룹 내 기아를 통한 생산 협력설과 2월 중순 정식 계약 타결 조짐까지 보도되면서 애플은 더 이상 비밀 유지 원칙이 지속되기 어렵다고 본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의 동상이몽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달 20일 기아는 공시를 통해 "다수 기업과 협업을 검토하고 있지만 결정된 바는 없다"고 밝혔다. 현대차는 "협력 요청을 받고 있다"고 공시한 반면 기아는 "협업을 검토하고 있다"고 좀 더 구체화했다. 현대차그룹 중에서도 기아가 애플과의 유력 협업 대상으로 떠올랐지만 한 테이블에 앉은 양측은 생각이 크게 달랐던 것으로 파악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기아나 현대차가 애플카 생산만 담당하는, 사실상의 하도급 방식을 받아들일 리 없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애플은 인공지능 등 소프트웨어와 고유의 운영체제 등 각종 전장 분야 고도 기술을 현대차그룹과 쉽게 공유하려 들지 않기 때문에 양측 협상은 계속 난항을 이어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애플은 자신의 전장 분야 기술 공유를 최소화한 채 자율주행 전기차를 만들고 싶어 한 반면 현대차그룹은 협업 시 얻을 건 있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내세웠고, 결국 서로 꿈꾸는 내용이 달랐기에 협상은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협력을 제안하는 입장의 애플이 일본 자동차 회사 등 다른 완성차 업체들과도 협상하는 과정에서 현대차·기아의 문을 다시금 두드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번에 협상이 중단되긴 했지만 현대차그룹의 본질적인 전기차 경쟁력은 여전히 세계 완성차 업계 상위권이며 애플로서도 현대차·기아만큼 매력적인 협력 대상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올해부터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Electric-Global Modular Platform)를 통해 신형 전기차를 양산하며 전기차 핵심 부품인 배터리 자체 개발에도 적잖은 노하우를 갖고 있다. E-GMP 기반 첫 전기차인 '아이오닉5' 외형을 이달 중 공개할 예정인 현대차그룹은 기아 'CV'와 제네시스 'JW'(이상 프로젝트명) 등 후속 전기차 모델도 완성해 올해를 전기차 도약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이로써 지난해 1~9월 기준으로 테슬라 17.5%, 폭스바겐그룹 12.9% 등에 이어 세계 시장점유율 7.2%로 전기차 분야 4위로 올라선 현대차그룹은 올해 전기차 판매와 수출을 비약적으로 늘린다면 3위 르노·닛산·미쓰비시 연합의 시장점유율 8.2%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현대차그룹처럼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갖추고 대량 생산 기술까지 보유한 곳은 흔치 않기 때문에 여전히 애플과 현대차그룹은 궁합이 잘 맞는 상대"라며 "애플의 비밀주의와 주도권 싸움 등으로 현대차그룹이 재공시를 통해 일단 관련 논의를 수면 아래로 낮추며 숨 고르는 차원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항구 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비단 애플뿐 아니라 글로벌 자동차 업계 내 많은 제휴 협상에서도 보안 유지는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며 "그 약속이 다시금 잘 지켜진다는 전제 아래 양측이 협상 테이블에 다시 마주앉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진우 기자 / 서동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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