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O] 황욱익의 클래식카 이야기 | 英 '오스틴 7' 복제하며 성장한 닛산·BMW·재규어

황욱익 자동차 칼럼니스트 2020. 10. 26.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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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선(닛산)은 ‘오스틴 7’을 무단으로 카피해 첫 모델을 다양한 버전으로 내놨다. 사진 황욱익

오래된 디자인이지만 지금도 사랑받는 클래식카 중에서는 카피 혹은 라이선스 생산으로 만든 모델이 꽤 있다. 지금이야 저작권이나 특허 관련 법규가 꼼꼼하게 준비돼 자동차를 제작할 때 법률적인 검토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만, 과거에는 그러지 못했다. 복제의 복제가 나오고 어떤 때는 원조가 가려지고 흉내만 낸 모델들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번 기사에 소개하는 내용은 레플리카(replica·복제품)와는 조금 다른 것들이다.

초기 자동차 산업은 대장간이나 마차를 제작하던 제작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쇠를 다룰 줄 알아야 하지만, 기술공학을 제대로 몰랐기 때문에 아무나 제작할 수 없는 분야였다. 독자 모델, 독자 플랫폼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1900년대 초반이지만, 푸조와 메르세데스-벤츠, 오스틴, 피아트, 란치아 등을 제외하고는 복제품을 만들면서 출발한 회사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자동차 회사들의 시작을 보면 기존에 있던 자동차의 복제품이나 조립 생산으로 시작한 경우도 꽤 많다.

국내에 매우 생소한 영국 자동차 회사인 오스틴의 사례만 봐도 그렇다. 1905년 설립된 오스틴은 자동차 역사에서 나름 한 획을 그었다. 주로 소형차를 만들었던 오스틴은 한때 ‘미니’도 생산했으며 ‘BMC’와 ‘브리티시 레이랜드’ 등 영국 자동차 산업을 상징하던 회사의 중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오스틴의 모델 중에 가장 유명한 ‘오스틴 7’은 독일과 영국, 심지어 일본과 미국에서도 생산된 모델이다. 지금이야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오스틴 7은 영국 최초의 대량 생산 소형차로 유럽 자동차 산업의 흐름을 바꾼 모델이기도 하다. 포드의 컨베이어 시스템이 도입되고서 자동차 산업은 부호들을 위한 소품종 소량 생산 시스템과 서민들을 위한 대량 생산 시스템으로 나뉘었는데, 오스틴 7은 대량 생산 체제가 더디던 유럽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오스틴 7의 가장 유명한 라이선스 버전은 닛산의 전신인 닷선(DATSUN)과 BMW, SS(스왈로 사이드카·재규어의 전신)의 첫 모델이다. 이 중 1930년대 닷선은 오스틴 7을 무단으로 카피한 ‘타입 10’을 자신들이 만든 최초의 차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닷선은 1950년대 오스틴과 정식 계약을 체결하고 일본 자동차 시장의 기초를 닦는다.

BMW의 첫 모델인 ‘딕시’도 오스틴 7의 라이선스 버전이다. 아우토모빌베르크 아이제나흐는 1896년부터 자동차를 만들던 회사였고, 1903년 딕시라는 이름의 브랜드명으로 중형차를 내놨으나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다.

이후 1927년 오스틴과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해 오스틴 7 베이스의 소형차들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생산량은 연간 2000대였고 초기에는 오스틴에서 제작한 키트카 형태로 공급했다. 이렇게 생산된 차가 ‘3/15(과세 등급/실제 마력)’으로 쿠페, 로드스터, 세단을 선보였으며, 일부 모델은 별도의 코치빌더(소량의 자동차를 제작하는 회사)가 제작하는 커스텀 형태로 제작·판매했다.

1928년 BMW는 자동차 제조업으로 전환하기 위해 아우토모빌베르크와 딕시에 대한 모든 권리를 인수했다. BMW의 첫 모델은 BMW 딕시라는 이름을 사용했지만 1929년부터는 BMW ‘3/15 DA-2’로 대체되면서 딕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변변한 기술력이 없던 BMW는 오스틴 7의 섀시를 이후에도 사용했다. 재규어의 전신인 SS가 자동차 사업에 진출하게 된 계기도 오스틴 7의 영향이 있었다. 1931년 SS가 제작한 자동차인 ‘SS1’은 오스틴 7의 섀시에 SS가 디자인한 보디를 올린 형태였는데, 초기 예상과 달리 큰 호응을 얻었다. 벤틀리를 닮은 SS1의 성공으로 자동차 사업으로 눈을 돌린 SS는 바이크 제작소를 아예 자동차 제작 업체로 전환하며 재규어가 된다.

BMW가 1955년부터 1962년까지 만든 마이크로카 이세타. 사진 BMW
페르디난트 포르셰 박사가 설계한 ‘타입1(비틀)’은 타트라 ‘T97’을 그대로 베꼈다. 사진 폴크스바겐

폴크스바겐 ‘타입1(비틀)’과 BMW ‘이세타’의 원형은

가장 오랜 기간 생산된 폴크스바겐의 국민차 ‘타입1(비틀)’도 정확히는 폴크스바겐의 독자 개발 모델이 아니다. 독일의 국민차 프로젝트에서 시작한 타입1은 경제성에 초점을 둔 모델로 페르디난트 포르셰 박사의 설계로 탄생했다. 타입1은 포르셰 ‘356’과 ‘911’의 뿌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폴크스바겐의 첫 모델인 타입1은 사실 체코의 자동차 회사인 타트라의 ‘T97’을 그대로 베껴 만든 차다.

독일의 국민차 프로젝트는 히틀러가 체코로 정치 유세를 다니면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 당시만 해도 자동차 산업은 독일보다 체코가 훨씬 앞서 있었다. 국내에는 생소하지만 타트라는 1850년에 설립된 회사로 1897년부터 자동차를 만들었다. 반면 독일은 패전국에 가난한 농경 국가였기 때문에 경기 부양을 위해 히틀러는 다양한 정책을 내놓는다. 올림픽과 함께 독일의 국민차 프로젝트 역시 그중 하나였는데, 결과적으로 히틀러가 내세운 이 프로젝트의 혜택은 독일 국민에게 돌아가지 못했다.

타입1의 원형인 타트라 T97이 생각보다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적은 생산 대수(508대)와 당시 정치적인 상황이 물려 있다. 한스 레드빈카가 개발을 주도한 T97은 디자인부터 기계적인 구조까지 타입1과 같은 부분이 많다. 실내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RR(엔진이 뒤에 있고 뒷바퀴를 굴리는) 레이아웃, 공랭식 엔진 등 타트라 T97은 타입1과 거의 같은 차라고 볼 수 있다.

타입1이 등장한 후 T97을 개발한 레드빈카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독일이 체코를 침공하면서 흐지부지됐고 독일은 타입1이 T97를 베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T97의 생산을 아예 중단시키기까지 했다. 이후 타트라가 제대로 된 권리를 인정받은 시기는 1965년으로 이때 폴크스바겐은 100만마르크를 타트라에 지급했다.

이탈리아의 자동차 업체인 이소(Iso SpA)가 1953년 마이크로카로 개발한 ‘이세타’는 단기통 엔진을 사용하는 삼륜 구조를 갖고 있다. 경기 불황과 소비 위축으로 유럽에서는 마이크로카의 인기가 높았는데 이세타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단기통 자동차에 이름을 올렸다. 이세타는 이소뿐 아니라 독일 BMW, 프랑스 벨렘, 스페인 로미 같은 자동차 회사에서 라이선스 형태로 생산됐는데, 이 중 BMW 이세타가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1954년 BMW가 이세타의 라이선스를 취득할 무렵 BMW는 극심한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금형과 라이선스를 취득한 BMW는 나름의 방식으로 이세타를 개량했다. 바이크 면허로도 운전할 수 있다는 매력적인 조건 덕에 첫해에만 이세타는 1만 대 이상 생산됐다. 이세타 덕분에 BMW는 재정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지금도 BMW를 구해낸 효자 모델로 꼽힌다. 이세타를 개발한 이소는 1956년까지만 생산을 이어 갔고 BMW는 1955년부터 1962년까지 이세타를 생산하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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