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번호판부터" 수입차 '선등록' 관행..하자 발견돼도 보상 막막

김수현 2020. 9. 23.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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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 등 선등록 피해사례..본사·딜러사는 "책임 없다"
영업사원 "사실상 선등록 유도"..전문가 "본사 책임감 가져야"
인천 영종도 BMW 드라이빙 센터 전시관 모습. 사진=연합뉴스
"신차에 하자가 있다는 건 인정했다. 그런데 교환은 못 해준다고 했다. 선등록 했으니 그냥 타라는 얘기였다."

A씨는 지난 7월30일 오후 BMW의 국내 딜러사 직원으로부터 원하는 차를 빠르게 배정할 수 있으니 바로 등록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8월20일경 받기로 한 차종을 당장 받을 수 있다는 안내였다. 조건은 다음날인 7월31일까지 '선등록'을 완료해야 한다는 것. 선등록하지 않으면 해당 차량이 다른 소비자에게 배정돼 순번이 밀릴 수 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A씨는 "찜찜했지만 차가 필요한 상황이었고 순번이 밀린다는 말에 선등록 했다. 잔금 입금, 차량 보험까지 하루이틀 사이에 모두 해결했다"고 말했다.

A씨는 차를 8월4일 인도받았다. 그런데 2주 후쯤 양쪽 사이드미러 연결 부분에 칠이 벗겨져 있다는 걸 발견했다. 서비스센터 어드바이저가 차를 살핀 뒤 이상이 있는 차량임을 인정했지만, 이달 15일 통보받은 최종 결론은 하자가 크지 않아 교환은 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딜러사가 아닌 본사에 직접 컴플레인(불만 제기)을 걸지 고민 중이라는 A씨는 "처음엔 광택 약품 같은 게 묻어서 그런 것 같다고 하더라. 하지만 손으로 만져보니 흠집과 쓸림 같은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며 "솔직히 이해가 안 된다. 선등록 하지 않고 차량을 구매했다면 교환이나 수리를 진행해줬을 것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호소했다.

 선등록 피해 호소 "나도 모르는 번호판에 협박까지"

선등록이란 차량이 준비되기 전에 번호판만 미리 발급받는 형태다. 소비자는 차량 상태를 모두 확인하지 못하고 차량 대금을 미리 지불해야 한다. 원래는 소비자가 딜러사 영업사원에게 계약금을 지불한 뒤 차량이 전시장에 도착하면 차량 검수 이후 번호판을 등록해야 한다.

선등록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차량에 이상이 있어도 인수 거부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 번호판까지 발급을 마친 차량을 구제할 유일한 제도는 현재로선 '레몬법' 정도다. 정상 제품인 줄 알고 구매했는데 제품이 불량일 때 제조사가 소비자에게 피해를 보상하도록 하는 게 골자지만 국내에선 권고 사항이라 법적 강제력은 없다.

선등록 강요 및 피해 사례를 겪었다는 소비자는 BMW 차량 구매자 중에 특히 많았다. BMW 소유자들이 가입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선등록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이 여럿 발견됐다.

B씨는 지난 3월 한 딜러사 영업사원으로부터 선등록을 제안 받았으나 거부했다. 정상 등록 절차를 밟기 위해 다른 딜러사에서 계약하고 6개월 가까이 차량을 기다린 끝에 8월 초 차가 배정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는 "선등록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잔금 입금 처리 이튿날 영업사원으로부터 "선등록 하지 않으면 차량 받는 순서가 뒤로 밀린다"는 설명을 들었다.

B씨는 "너무 화가 났다. 7000만~1억원 정도 되는 차를 사는 건데 하자가 있으면 소비자가 사지 않을 선택권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털어놓았다. 그는 결국 사비 십여만원을 부담하고 정비사를 보내 하자 여부를 체크했다.

B씨는 "하자가 있으면 딜러가 책임 지겠다고 하더라. (하자) 기준에 대해 계속 두루뭉술하게 말하길래 제3자인 정비사를 보냈다"며 "문제가 있다고 진단하면 인수를 거부하는 것으로 합의 봤다. 이것도 그나마 강력 항의해서 받아낸 것"이라고 했다.

C씨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차량 번호판이 나왔다. 8월 말 잔금 처리한 뒤 31일자로 보험을 가입하라는 안내를 받은 C씨가 선등록 여부를 묻자 곧바로 그렇게 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자신이 결정하지 않았는데 이미 진행된 것이었다. 영업사원은 하자 우려에 "걱정 안 해도 된다. 우선 등록이 돼야 차가 잡힌다"는 말만 반복했다고 C씨는 전했다.

그는 "번호판은 다시 생각해도 당황스럽다. 내가 고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번호가 나오냐고 따지자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더라"면서 "이후 예정됐던 차량 인도일도 며칠씩 연기됐다. 보상을 요구하니 10만원이 페이백(환불) 됐다. 다시는 선등록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 중구 BMW코리아 사무실 입주 건물. 사진=뉴스1

 본사·딜러사 "책임 없다"…영업사원 "유도 정책 무시 못 해"

이같은 컴플레인(불만 제기)에도 BMW코리아 본사와 공식 딜러사는 모두 '모르쇠'로 일관했다.

딜러사는 BMW코리아 본사와 직접 얘기하라고 하고, 본사 측은 딜러사에 선등록을 강제하거나 권유하는 등의 지시를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BMW코리아 본사 관계자는 "정책적으로 선등록을 밀어붙이고 지시하는 부분은 절대 없다. 오히려 딜러사에 선등록을 하지 말아 달라고 권고하고 있다"며 "시스템적으로도 안 된다. 고객 대상 영업활동을 하는 딜러사에 대한 권한을 넘어선 지시는 공정거래법에도 어긋난다”고 말했다.

선등록 피해 사례에 대한 책임과 관련해 이 관계자는 "차가 딜러사로 옮겨진 이후의 관리는 저희(본사)가 할 수 없는 영역이다. 고객과의 분쟁은 일차적으로 딜러사와 고객 사이에 진행되는 사안"이라고 했다.

다만 BMW코리아는 월별로 혜택과 할인율 등이 차이나는 '프로모션'을 벌인다. 소비자에 혜택을 주자는 취지지만 딜러사 입장에선 얘기가 달라진다. 다음달에 프로모션 내용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기 때문에 프로모션 혜택이 큰 달에 딜러사 간 경쟁이 심해진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BMW코리아의 인센티브 체계의 간접적 영향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최근까지 BMW코리아 딜러사에서 근무한 전직 사원은 "월마다 할인 프로모션이 다르고 이에 따라 딜러가 받는 수익도 차이가 난다"며 "가령 프로모션 규모가 이달엔 300만원인데 당장 다음달에 없어질 수도 있다. 판매에 영향이 없을 수가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딜러사는 BMW코리아 본사로부터 압박을 받는다. 한 달에 팔아야 하는 차량 대수나 금액이 있는 경우도 있다"며 "차량을 등록한 뒤에야 수당이 나오는 BMW는 인센티브가 잘 되어있는 편이지만, 지점장 입장에서는 영업사원들을 재촉할 수밖에 없는 체계"라고 덧붙였다.
 

 전문가 "본사 측 책임 있다면 분명히 져야"

딜러사들의 선등록도 이같은 배경이 깔려있다는 얘기다. BMW코리아 본사 측도 좋은 취지인 프로모션이나 인센티브 정책이 선등록 피해 사례에 일부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봤다.

BMW코리아 본사 관계자는 "'이달의 프로모션'이 선등록에 미치는 영향이 일부 있을 순 있겠으나 고객에게는 혜택으로 돌아간다. 인센티브 시스템을 둔 것도 영업사원 복지와 처우 개선에 목적을 둔 취지였다"며 "코로나19로 물량이 줄어들며 딜러사들 매출이 줄고 8월에 물량이 급하게 풀리면서 그런 사례들이 생긴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소비자 피해 예방을 위해 BMW코리아 본사의 책임 의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과 교수는 "선등록을 금지하려면 관련 법령을 바꿔야 해 시일이 걸린다"면서도 "소비자 보호 측면에서 이미 해외에 차를 수출하는 완성차 업제들은 기본적으로 레몬법을 지킨다. 국내 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해서도 권고 수준인 레몬법 준수가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두 군데 딜러사를 넘어 전반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라면 본사 차원에서 확실하게 서비스 교육을 시켰어야 한다"며 "본사가 법적 책임은 없더라도 글로벌 기업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그 부분에 대해 충분히 딜러사들에게 설명하고 사전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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