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포르쉐·람보르기니 모두 파는 진짜 수입차 제왕 '레이싱홍'

조귀동 기자 2020. 7. 21.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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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독일 고급 자동차 회사 포르쉐가 발표한 2020년 상반기 판매 실적에 따르면 한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도 ‘나 홀로 고속성장’을 보여준 나라다.

올 상반기 포르쉐의 한국 내 판매량은 4400대(수입자동차협회 집계 기준)로 전년 동기(2500대) 대비 72.2%가 늘어났다. 같은 기간 포르쉐의 글로벌 판매량은 12.4%, 중국 판매량은 7.1%가 각각 감소했다. 포르쉐의 한국 판매량 증감율은 2018년과 2019년(해당 연도 전체) 각각 -1.9%와 4.0%였다. 최근 2년간 부진을 말끔히 씻는 모양새다.

그런데 이런 포르쉐의 실적에 웃는 기업은 따로 있다. 바로 말레이시아 화교가 홍콩에 세운 레이싱홍(利星行) 그룹이다. 레이싱홍은 포르쉐코리아의 주력 딜러사(판매사)인 스투트가르트스포츠카와 서울 용산에서 포르쉐 매장을 운영하는 용산스포츠오토모빌을 갖고 있다.

수입차 유통 구조는 스마트폰과 유사하다. 포르쉐코리아 등 수입사가 본사에서 제품을 수입한 뒤, 여기에 마진을 붙여 딜러사에 넘긴다. 여기에 딜러사는 별도로 마진을 붙여 판매하는 데 재량에 따라 할인을 할 수 있다. 수입사는 스마트폰 도매상, 딜러사는 소매상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마진은 수입사와 딜러사가 각각 10~15% 정도다. 포르쉐코리아가 돈을 버는 만큼 레이싱홍도 버는 셈이다.

레이싱홍은 한국에서 포르쉐뿐만 아니라 메르세데스-벤츠, 람보르기니를 판매한다. 벤츠의 경우 수입가와 딜러사를 모두 갖고 있다. 수입사인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지분 49.0%가 레이싱홍 계열사인 스타오토홀딩스 소유다. 나머지 51.0%가 벤츠의 본사인 다임러 지분이다. 또 할부금융사인 메르세데스-벤츠파이낸셜도 스타오토홀딩스가 지분 20.0%를 보유한다.

벤츠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는 레이싱홍이 말레이시아에 세운 특수목적회사(SPC) 보너스리워즈의 자회사다. 부산 · 경남 지역 딜러사인 스타자동차와 한성자동차에도 각각 지분 51.0%를 보유한다. 홍콩에 세운 SPC 퍼시픽스타오토모빌이 국내 법인 부산인베스트를 세우고, 이 부산인베스트먼트가 두 딜러사의 지분을 갖는 구조다.

레이싱홍은 딜러사가 입주한 매장을 임대하고, 수입차 구매 시 할부 금융을 제공하며, 경우에 따라 고객에게 장기 렌터카 서비스를 하는 회사도 갖고 있다. 한성자동차 매장을 임대하는 부동산 임대회사 한성인베스트먼트는 홍콩에 설립된 SPC 트루스탠드의 자회사다. 렌터카 회사 스타렌터카도 트루스탠드의 자회사다. 할부금융회사 스타파이낸셜서비스는 포르쉐딜러사 스투트가르트스포츠카와 함께 말레시이아의 부동산 개발회사 애스캠피언의 자회사다. 벤츠의 한국 판매와 관련된 모든 게 레이싱홍의 영향력에 있는 셈이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의 매출은 2012년 1조3000억원에서 지난해 5조4400억원으로 4.2배 뛰었다. 그만큼 딜러사, 할부금융사 등의 매출도 늘어나게 됐다. 지난해 레이싱홍 계열 벤츠 딜러사 매출만 보면 각각 한성자동차는 2조7000억원, 한성모터스는 3400억원, 스타자동차는 3100억원에 달한다.

또다른 고급차 람보르기니도 레이싱홍이 판매한다. 람보르기니는 원래 2007~2015년 화장품 회사 참존의 계열사 참존임포터가 수입해 판매했었다. 하지만 판매부진과 경영난으로 판매권이 한성인베스트로 넘어갔다. 한성인베스트는 람보르기니 판매사인 2016년 SQDA를 설립하고 매장을 열었다. 람보르기니는 2017년 24대, 2018년 11대에서 지난해 173대로 판매량이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 판매량은 136대에 달한다. 하반기에도 상반기 수준으로 판매가 이뤄질 경우 300대에 가까운 판매량을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SQDA는 애스캠피언의 자회사다.

레이싱홍은 지난 2007년 홍콩 증시에서 상장폐지되면서 그 실체가 알려져있지 않다. 말레이시아 화교인 고(故) 라우겍포(Lau Gek Poh·刘玉波)가 설립한 합셍그룹 등 라우 일가가 기준 73%를 갖고 있다. 지난 2008년 라우겍포 창업주가 사망하면서 조카인 라우초쿤(Lau Cho Kun·刘子君) 회장이 합셍그룹과 레이싱홍을 이끌게 됐다. 2대 주주로 야우텍승(丘德星·Yaw Teck Seng)을 비롯한 야우 가문이 경영에 함께 참여한다.

벤츠의 최대 딜러사로 중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베트남, 캄보디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자동차 판매업을 영위하고 있다. 1969년 대만에 벤츠 매장을 낸 것이 처음이다. 한국 진출은 지난 1985년 한성자동차를 설립하면서다. 국내 수입차 역사와 함께하는 것이다. 이 밖에 캐터필러, 다임러 등 산업 기계도 아시아 지역에서 판매한다.

국내 수입차 업계에서 레이싱홍의 독주가 계속되면서 지배구조의 불투명성을 둘러싼 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성자동차, 한성인베스트먼트, 부산인베스트먼트, 스타오토홀딩스 등 벤츠와 관련된 회사들의 모회사가 모두 다르고 상당수가 홍콩이나 말레이시아에 있는 SPC다. 람보르기니와 포르쉐 딜러사는 말레이시아 소재 부동산 개발회사다. 국내 계열사간 또는 국내 계열사와 해외 계열사의 거래 관계가 제대로 파악되기 어렵기 때문에, 그에 따른 투명성 문제가 제기될 수 밖에 없다.

지난 2013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레이싱홍은 벤츠의 수입사이면서 동시에 딜러사인 지위를 이용해 불공정거래 행위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의혹에 대해 증인으로 출석한 임준성(본명 림춘생·林春生) 한성인베스트먼트 회장이 ‘사실 무근’이라고 부인했을 뿐, 이후 제대로 된 해명이 이뤄지지 못했다. 한성자동차 등이 부동산 임대업체인 한성인베스트먼트에 고가의 임대료를 지급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꾸준히 제기된다.

한국 수입차 시장에서 레이싱홍은 웬만한 수입차 회사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도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레이싱홍 본사에서는 지난 2017년 초 앤드루 바샴 당시 레이싱홍 자동차 사업부 사장이이 국내 언론 몇 곳과 인터뷰를 한 게 전부다. 바샴 당시 사장은 "한국에서 고용을 20% 늘릴 것"이라면서, 사업 확대에 따라 당시 2100명이었던 직원을 2500명 수준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2017년 8월부터 레이싱홍 자동차 사업부를 이끄는 틸 콘래드 사장이나 울프 아우스프룽 한성자동차 사장 등은 좀처럼 공개 석상에 나서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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