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노조 "회사가 살아야.." 임금투쟁서 일자리투쟁으로
"회사가 생존해야 조합원도 노동조합도 유지될 수 있다."
현대자동차 노조 집행부가 9일 내부 소식지를 통해 밝힌 입장이다. 집행부는 이어 "최근 몇 년간 투쟁을 자처한 (과거) 집행부의 성적표가 어떠했는지 우리는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며 "투쟁도 생산이 잘되고 차가 잘 팔려야 할 수 있고, 분배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파업을 무기로 매년 임금 인상을 주장해온 국내 강성 노조의 대표 주자인 현대차 노조가 조만간 있을 임금 협상을 앞두고 올해만큼은 임금 투쟁 대신 일자리 지키기에 집중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품질 혁신도 먼저 나서
현대차 노조 집행부는 "품질이 곧 물량이고 고용"이라면서 과거 사측에서 주로 강조하던 품질 혁신도 먼저 외치고 나섰다. 노조는 지난달 23~24일 경북 칠곡 출고센터와 서울 남부서비스센터에서 노사 합동 품질 세미나를 열고 품질 향상으로 코로나 사태를 극복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노사 공동 선언문'을 냈다. 노조 집행부는 이와 관련해 "품질 계몽 운동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높아진 고객의 눈높이와 조합원의 생존 때문"이라며 "노사 품질 세미나에서 확인된 사실이지만 긁힘·까짐·먼지·도장 불량 등 현장에서 조금만 유의하면 얼마든지 불량을 막을 수 있는 것도 많았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주 52시간을 넘긴 특별연장근무도 처음 받아들였다. 현대차는 제네시스 G80과 팰리세이드 등 일부 차종이 내수 시장에서 인기를 끌며 출고가 밀리자 지난달 24일부터 울산공장 출고센터와 변속기 제조공장의 특별연장근로를 시행 중이다. 변속기 부문은 일주일에 총 8시간, 출고센터는 10시간을 추가 근무한다.
◇외면 힘든 글로벌 업계 구조조정 바람
현대차 노조의 입장 변화는 코로나발(發) 경영난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9일 업계와 증권가에 따르면, 올해 2분기 현대차 예상 실적(증권가 컨센서스)은 매출 20조6000억원, 영업이익 33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23.6%, 73% 감소가 예상된다.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코로나 사태로 구조조정에 착수한 상태다. 메르세데스-벤츠의 모기업인 다임러는 지난 4월 1만5000명의 인력을 감축하겠다고 밝혔고, 미국 최대 자동차 기업 제너럴모터스(GM) 역시 미국 내 사무직 종사자 4000명을 해고하고 직원 6만9000명의 급여를 20%씩 삭감했다. 폴크스바겐·BMW·도요타 등 주요 자동차 업체들 역시 적게는 수천 명에서 많게는 1만명 이상을 해고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 노조도 이런 대외 환경을 인식해 임금 투쟁에만 매달릴 수 없다는 인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노조는 소식지에서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이 앞다퉈 인원 감축, 무급 휴직, 임금 삭감, 정리 해고 등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작금의 정세는 나만 살고 보자는 집단적 이기주의로는 결코 돌파할 수 없다"고 했다.
◇내부 반발로 입장 바뀔 수 있어
업계에선 현대차 노조가 올해 임금 협상에서 임금 동결을 통한 고통 분담을 제안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노조는 실제 지난 4월 소식지에서 독일 금속산업 노사가 체결했던 '위기 협약'을 언급하며 위기 돌파 해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현대차 노조가 임금 동결을 언급한 건 처음이다. 독일 금속노조와 기업 단체는 올 3월 말로 만료되는 기존 임금 협약을 올해 말까지로 연장하면서 임금을 동결하는 대신 기업들이 노동자의 생계 타격에 대비해 기금을 적립,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실제 행동 변화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노조 내부의 반발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노조 내부에선 강경파들이 현 집행부에 대해 "품질 혁신하지 말고 지부 혁신하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이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래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변화의 시작일 수 있지만, 나빠진 여론을 의식한 대외적인 포장일 수도 있다"며 "구체적인 약속과 그 약속을 이행하는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차 노조는 올해 임금 협상 요구안을 확정 짓는 임시대의원 회의를 지난 6일 개최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사태로 오는 21일로 미룬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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